주체108(2019)년 9월 16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헌신적인 복무정신으로 수놓아가는 아름다운 생의 자욱

청진시 수남구역상업관리소 소장 박향옥동무에 대한 이야기

 

우리 사회에는 인민을 위한 헌신적복무의 길에 참된 삶의 자욱을 수놓아가는 훌륭한 일군들이 많다.

그들속에는 홍안의 시절부터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오늘까지 30여년간 인민에 대한 헌신적인 복무정신을 지니고 상업봉사활동을 힘있게 벌려온 청진시 수남구역상업관리소 소장 박향옥동무도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자기 사업에 대한 높은 책임감과 일욕심, 진취적인 사업태도를 가지고 최대의 마력을 내야 하며 당과 인민앞에 자기의 충실성과 실천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박향옥동무는 《우리 가정수첩》운영을 정상화하고 매일 식료가공품을 이동판매하면서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지방의 원료원천을 최대한 동원리용할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받들어 녀성들의 힘으로 원료기지를 조성하여 해마다 많은 알곡과 남새를 생산하고 산나물과 산열매를 채취함으로써 식료가공에 필요한 원료들을 원만히 보장하고있을뿐아니라 피복생산기지도 꾸려놓고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해가고있다.

구역안의 전쟁로병, 영예군인가정들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따뜻이 돌보아주고 삼지연군건설장을 비롯한 중요대상건설장들에 대한 지원사업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이고있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불가능을 모르는 일군, 불같은 열정을 지닌 인간이라고 말한다.

우리 당은 사회와 집단을 위해 헌신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뿌려온 박향옥동무를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주었다.

비록 고난과 시련이 겹쌓여도 추호의 동요없이 멸사복무의 한길만을 변함없이 걸어온 박향옥동무, 그의 삶이 우리 시대 인간들에게 안겨주는 강렬한 여운은 무엇인가.

 

인민이 너를 아는가

 

한 인간의 생에서 36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박향옥동무는 그 36년을 상업부문에서 일해왔다.

그 나날에는 한 가정의 살림을 돌보는것만도 힘에 부치였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와 같은 어려운 나날도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여 그는 한개 구역의 주민생활을 돌보아주는 봉사자의 삶을 그처럼 변함없이, 헌신적으로 빛내여올수 있었는가.

그에 대해 박향옥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도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 긍지높은 삶을 누려온 전천땅의 녀성상업일군을 기억할것입니다.인민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였으면 우리 수령님들께서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복무한 산골군의 평범한 상업일군에게 그처럼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겠습니까.저도 그처럼 살고싶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 크나큰 기쁨을 드린 전천군의 상업일군처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는것, 이것이 박향옥동무의 리상이고 포부였다.

흔히 꿈은 인생의 힘이고 등불이라고 한다.

박향옥동무는 바로 이런 소중한 리상과 포부를 지녔기에 30여년세월 늘 땀젖은 모습으로 인민을 위한 헌신적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올수 있었다.

지금도 박향옥동무는 구역상업관리소 소장으로 임명되던 10여년전의 일을 잊지 못한다.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후과가 아직 가셔지지 않은 그때 한개 구역의 인민생활과 직결되여있는 상업관리소의 소장사업을 맡아안게 된 박향옥동무의 심중은 무거웠다.아직은 나라사정이 어려운것만큼 우에서 보장받는 상품만으로는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킬수 없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방도를 찾아 안타깝게 모대기던 그의 뇌리에 수십리 떨어진 해안지대에 위치하고있는 원료기지가 떠올랐다.

행여나 하여 달려가보았으나 실태는 생각보다 더 험했다.대부분이 돌밭이고 거기에 바람피해와 랭해까지 받아 해마다 종자와 비료값도 제대로 보상하지 못하는 정도였다.

새로 온 소장이 원료기지를 돌아보러 갔다는것을 안 일부 종업원들속에서는 그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아마 새 소장도 원료기지에 드는 품이면 낟알을 사는편이 낫다는것을 인정할수밖에 없을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며칠후 원료기지에서 돌아온 박향옥동무가 종업원들에게 한 말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물론 품이 많이 드는것만은 사실입니다.하지만 물러서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원료기지를 버릴것이 아니라 더 늘구어야 합니다.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데 우리 한번 신들메를 조이고 해봅시다.》

그로부터 얼마후 원료기지주변에는 천막들이 생기고 척박한 땅을 옥토로 전변시키기 위한 이곳 종업원들의 힘찬 투쟁이 벌어졌다.

얼마나 많은 돌을 추어내고 또 얼마나 많은 거름을 밭에 내였던가.해풍을 막기 위해 어디서도 들어본적 없는 뚝감자방풍림까지 조성한 이들이였다.

땅은 속이지 못한다.그처럼 척박하던 땅이 마침내 이들의 후더운 땀과 눈물, 불타는 열정과 진심, 그 모든것을 품어안고 알찬 열매를 주렁지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박향옥동무는 만족을 몰랐다.또다시 축산에 달라붙었다.조건도 좋지 못하고 경험도 부족하여 안될것이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으나 그는 락심하지 않았다.낮이나 밤이나 마음속에는 오직 내가 땀을 더 많이 흘리고 고생을 해야 주민들을 위한 좋은 일을 한가지라도 더 할수 있다는 생각만이 차올랐다.그러느라니 늘 몸에서는 거름냄새가 풍기고 편리화는 흙투성이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축사에서 일에 여념이 없던 그는 자기를 찾아온 구역당위원회 책임일군을 만나게 되였다.책임일군과 함께 어느 한 곳을 돌아보려고 차에 오르려던 박향옥동무는 무춤 굳어졌다.온몸에 거름냄새가 배이고 신발은 진흙투성이인 자기를 바라보는 운전사의 눈빛이 마뜩지 않은것을 일별하였던것이다.

《어서 차에 오르오.그 차림새가 어때서, 난 보기 좋은데.…》

주저하는 그의 등을 밀어 차에 태우며 구역당책임일군이 하는 말이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 당책임일군이 얼마나 아픈 마음을 안고 그 운전사를 책망하였는가를 박향옥동무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자기 한몸을 깡그리 불태워서라도, 어떤 험한 고생을 하더라도 주민들을 위한 일을 한가지라도 더 할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행복하였다.

수남구역상업관리소를 찾으면 인민군대후방창고처럼 규모있게 꾸려진 창고들을 볼수 있다.거기에는 주민봉사활동에 필요한 여러가지 원료와 함께 산나물, 산열매들도 차곡차곡 쌓여있다.여기에도 박향옥동무의 인민을 위한 헌신적인 복무정신이 력력히 어려있다.

원료기지확보와 축산기지의 활성화로 차츰 주민봉사활동을 위한 토대가 어느 정도 구축되자 일부 종업원들속에서는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박향옥동무의 눈길은 도안의 산발들을 더듬고있었다.

《우리 산나물과 산열매도 채취하자요.힘은 들겠지만 아마 소득은 클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박향옥동무의 눈빛은 벌써 희망으로 불타고있었다.

그것은 주민들을 위한 좋은 일을 더 많이 할수 있게 되였다는 남다른 기쁨이고 행복이였다.하지만 인적드문 깊은 산골들을 누비며 산나물과 산열매를 채취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도토리채취를 위해 수백리나 떨어진 명천군의 깊은 산골들을 누비던 어느해 가을이였다.

하루종일 깊은 산속을 헤매이면서도, 사품치는 강물을 건느면서도 불룩하게 채운 도토리마대와 배낭만은 놓지 않고 숙소로 돌아온 관리소의 종업원들은 너무도 뜻밖의 광경에 부닥치게 되였다.

폭우로 하여 갑자기 불어난 산골물이 숙소인 천막을 사정없이 휩쓸어버렸던것이다.잠자리는 물론 화식도구까지 말짱 사라져버린 광경앞에서 이들은 맥을 놓고 주저앉았다.저도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종업원들도 있었다.

그대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산나물과 풀뿌리로 때식을 이으면서라도 도토리채취를 마저 끝내야 하는가 하는 갈림길이 앞에 놓였던 그밤,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가에 박향옥동무가 부르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노래소리가 절절하게 울려퍼졌다.

그가 부르는 노래소리는 차츰 합창으로 번져졌다.그것은 천백마디의 말을 대신하는 이들의 심장의 토로였고 불타는 맹세였다.

자나깨나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 우리 수령님들의 모습그대로 인민을 위한 사랑의 길을 걷고걸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마음속으로 절절히 그리며 박향옥동무는 이렇게 앞을 막아서는 무수한 시련과 난관들을 과감히 헤치였고 인민이 알고 조국이 사랑하는 참된 복무자의 삶을 빛내일수 있었다.

이들이 땀과 열정을 다 바쳐 마련한 원료로 상업관리소에서는 주민봉사활동을 활발히 벌리고 매일 식료가공이동매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있다.

《우리 가정수첩》을 가지고 구역안의 주민들과 전쟁로병, 영예군인들을 위한 좋은 일도 적극 찾아하고있다.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역안의 주민들을 위해 늘 땀젖은 모습으로 종주먹을 쥐고 뛰여다니는 박향옥동무를 존경하며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있다.

인민이 알고 존경하는 상업일군, 아마도 박향옥동무가 새겨온 멸사복무의 자욱들이 얼마나 뜨겁고 헌신적이였는가를 알게 하는 이보다 더 크고 소중한 평가는 없을것이다.

 

하나의 뜻과 마음으로 합쳐진 대오

 

한 단위가 얼마나 높은 전진속도와 보폭으로 시대의 흐름에 발걸음을 맞추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그 단위를 책임진 일군들에게 달려있다.적대세력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우리의 사회주의전진도상에 수많은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이고있는 지금 우리 일군들은 어느때보다 완강한 실천력과 투신력으로 대오를 이끌어야 하며 당이 맡겨준 단위와 일터를 믿음직하게 지켜야 한다.

일군들이 자기 단위와 일터를 빛내이는 길은 결코 다른데 있지 않다.혁명과 건설의 백과전서이며 만능의 교과서인 우리 당정책을 결사관철하고 그 길에서 대오를 하나의 뜻,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진 단합된 집단으로 만드는것이다.

박향옥동무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로작들을 자자구구 학습하는것을 생활화하고있다.언제나 거기에서 나아갈 길을 찾으며 힘과 용기를 가다듬군 한다.

이곳 상업관리소에서 피복생산기지를 꾸려놓고 주민봉사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해결할수 있은것도 박향옥동무가 당정책을 자로 하여 모든것을 풀어나가는것을 체질화하였기때문이다.

상업봉사활동은 인민들의 기호와 요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는것을 기본으로 한다.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주민들의 기호와 요구는 나날이 높아가고있다.결정적으로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였다.하다면 방도는 무엇인가.상업부문에 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교시를 밤을 새워가며 파고드는 과정에 그는 저도모르게 무릎을 쳤다.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상업부문에서 피복공장과 양복점들을 꾸려놓고 여러가지 옷을 자체로 맵시있게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교시하신 사실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상업부문에서 수령님의 교시대로 옷과 신발, 양말, 모자를 비롯한 여러가지 어린이상품을 더 많이 팔아주어야 한다고, 공장에서 생산할수 없는 제품은 상업기관들에서 자체로 만들데 대한 강령적과업을 주시였다.

박향옥동무는 눈앞이 환히 트이는것만 같았다.

피복생산기지를 내오면 상업봉사활동을 보다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수 있을뿐아니라 거기에서 각종 솜옷, 이불, 작업복, 운동복, 조끼를 비롯한 상품들을 생산하여 주민들에게도 팔아주고 중요대상건설장들에도 보내줄수 있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흥분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거의 한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싶이 한 그는 다음날 아침 피복생산기지를 내오는 문제를 두고 종업원들과 의논해보았다.

론의가 심화되였지만 피복생산기지를 꾸리는데 필요한 설비와 기술자, 기능공문제, 건물해결방도 등 어느 하나도 만족한 답을 얻지 못하였다.그만큼 이들에게는 피복분야가 생소하고 어려운 길이였던것이다.

《동무들, 생각해보세요.우리가 지금까지 된다고 한 일들을 했나요.녀성들의 힘으로는 못한다고 하던 일들도 끝내 다 해내지 않았나요.피복생산기지를 꾸리는것은 죽으나사나 해야 할 당정책적요구입니다.우리 이 길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맙시다.》

그날부터 박향옥동무는 온넋을 바쳐 피복생산기지를 꾸리는데 달라붙었다.

구역의 지경을 벗어나 시와 도안의 여러 단위를 찾아다니며 한대한대 설비를 구해들였고 구역안의 주민지역들을 돌고돌며 처녀시절에 피복공장에서 일한 가정부인들을 한사람한사람 모집하였다.

그렇게 되여 구역의 어느 한 기업소건물안에 전개되여 첫발을 뗀 피복생산기지였지만 듣던바대로 높은 기술기능을 요구하는 피복가공은 헐치 않았다.밤을 새워가며 애써 가공한 피복제품들에서 불합격품이 나올 때면 종업원들은 눈물이 글썽해서 소장의 얼굴을 쳐다보군 했다.하지만 그때마다 그들보다 더 안타깝고 소리내여 울고싶은 사람은 박향옥동무자신이였다.

《솔직히 어떤 날 저녁에는 사무실문을 걸어놓고 안에서 혼자 운적도 있었습니다.녀성들은 눈물이 헤프다고 하지만 제가 흘린 눈물은 결코 나약함의 표현이나 비관의 눈물이 아니였습니다.그때마다 저는 인민을 위한 길에서 천만고생 다 겪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그리면서 더욱 굳은 마음을 안고 분발하여 일어섰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회의연단에서 울린 박향옥동무의 토론의 한 대목이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뼈가 부서져 가루가 되여도 상업봉사부문에 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더 높은 목표를 점령하려는 굳은 신념으로 그는 추호의 동요없이 길을 열어나갔다.자신부터가 기술기능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묘리를 익혔고 재단으로부터 검사와 출하공정에 이르기까지 자그마한 빈틈도 없도록 기술관리를 짜고들고 요구성을 높이였다.

한차례, 두차례 제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를수록 종업원들의 기술기능수준은 눈에 띄게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한해가 지나자 모든 제품이 당당히 합격품으로 인정되고 그 어떤 피복가공품도 척척 생산할수 있게 되였을 때 박향옥동무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피복가공기지가 은을 내기 시작하자 박향옥동무는 더 높은 목표를 내세웠다.피복가공기지 생산건물을 자체의 힘으로 번듯하게 일떠세울 대담하고 통이 큰 목표였다.

가정부인들이 대부분인 상업관리소에서 자체로 2층짜리 생산건물을 일떠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선뜻 믿지 않았다고 한다.

손에 미장칼도 잡아보지 못한 그들이 단층건물도 아니고 2층짜리 생산건물을 짓겠다고 어벌이 크게 나섰으니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그러나 그런 예상은 점차 뒤집혀졌다.

녀인들의 힘으로 수만장의 블로크를 등짐으로 져올리고 강바닥에서 수백차의 모래를 실어들이느라 잔등이 벗겨지고 입술과 손등이 온통 터갈라지면서도 굴할줄 모르는 이들의 정신력앞에 사람들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고 자신들을 말없이 돌이켜보기도 하였다.그런 간난신고끝에 이들은 마침내 몇달만에 1 300여㎡에 달하는 2층짜리 건물을 보란듯이 일떠세우고야말았다.

성능높은 재봉기들을 비롯한 최신설비들이 그쯘하게 갖추어진 이 피복생산기지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이들은 많은 상품을 확보하여 구역안의 인민생활향상에 적지 않은 보탬을 주고있으며 해마다 수천벌의 솜옷과 이불, 솜조끼, 아동옷을 비롯한 제품들을 생산하여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중요대상건설장들에도 보내주고있다.

어느 단위나 비약과 진보의 길은 당정책결사관철의 길에 있으며 그 길은 집단이 한마음한뜻이 될 때 더 힘차게 열어나갈수 있다.하기에 박향옥동무는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고 집단을 화목하고 뜻과 정이 통하는 집단으로 만드는데도 품과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대다수가 가정부인들로 구성된 상업관리소에서 박향옥동무는 일군이기 전에 종업원들의 친언니, 친어머니가 되여 그들의 생활을 따뜻이 돌보아주고있다.

언제인가 한 상점판매원이 앓고있는 남편을 돌보느라 한동안 출근을 못한적이 있었다.이때에도 친언니의 심정에서 그의 가정을 자주 찾아가 필요한 약재들도 구해주고 남편의 병이 빨리 낫도록 누구보다 왼심을 쓴 사람도 바로 박향옥소장이였다.하기에 후날 그 판매원은 솔직히 가정사정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처럼 진심을 바쳐가며 따뜻이 돌보아주는 소장을 보면서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진정을 터놓았다.

녀성종업원들이 많은 상업관리소의 특성을 고려하여 피복생산기지를 비롯한 생산현장들에 문화후생시설들을 잘 꾸려놓았으며 그들의 생활을 늘 친혈육의 심정으로 따뜻이 돌보아주고있다.하기에 그들은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가정에서의 크고작은 일들도 모두 소장과 의논하고 진심을 터놓으면서 정을 두터이하고있다.

박향옥동무에게 있어서 집단은 당의 뜻을 받드는 보람찬 투쟁의 길에서 뜻과 정을 함께 하는 또 하나의 나이고 소중한 가정이며 친혈육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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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집단을 위해 바친 삶처럼 값높고 아름다운 생은 없다.박향옥동무는 당이 맡겨준 한개 단위를 시대의 앞장에서 나아가는 자랑많은 단위로 되게 하였을뿐아니라 삼지연군건설장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 어랑천발전소건설장을 비롯한 중요대상건설장들에 불같은 애국의 마음을 아낌없이 바쳐왔다.

당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 그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비롯한 중요대회들에 참가하였으며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여러차례나 영광의 기념촬영을 하는 뜨거운 은정도 받아안았다.

박향옥동무는 오늘도 한 상업일군을 한품에 안아 값높고 보람찬 인생의 길을 계속 이어가도록 이끌어주고 떠밀어주는 당의 사랑과 믿음에서 힘과 용기를 얻으며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의 길,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힘차게 걸어가고있다.

글 및 사진 특파기자 리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