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자욱을 따라
취야벌의 은행나무는 오늘도 끝없이 설레인다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 40돐을 맞는 벽성군 서원협동농장을 찾아서
얼마전 우리는 황해남도 벽성군의 취야벌을 찾았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벼바다가 선들선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파도치는 풍경은 볼수록 장관이였다. 가을계절이 펼쳐놓은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눈앞에 은행나무들이 안겨들었다.가로수로 심은 수삼나무들속에 류달리 두그루의 은행나무가 자라고있는것이 꼭 어떤 사연이 있을것만 같았다. 《어느 고장에나 은행나무들이 있겠지만 우리 고장 은행나무들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답니다.저 은행나무들에 우리 고장의 전변사가 깃들어있다고 해야 옳을것입니다.》 동행한 농장일군의 말이였다. 취야벌의 은행나무! 그것이 안고있는 깊은 의미를 다 알게 되기까지 우리의 취재수첩에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부피두텁게 새겨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령도업적은 우리 혁명의 생명선이며 모든 승리의 근본담보입니다.》 농장일군은 우리가 마주한 두그루 은행나무가운데서 한그루가 바로 주체68(1979)년 9월 19일 벽성군 서원협동농장의 풍년든 논벌을 찾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적을 전하고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40년전 가을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듣게 된 이곳 혁명사적교양실에는 력사의 그날 당시의 서원협동농장 제1작업반 청년분조포전을 만족속에 바라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사진문헌이 정중히 모셔져있었다. 벽성땅이 생겨 처음 보는 대풍도 좋지만 그것을 청년분조포전에서 보시게 된것이 더없이 감개무량하신듯 태양처럼 환히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 사실 그해에 서원리의 청년분조포전이 우리 수령님께 그토록 커다란 기쁨을 드리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전후 두번째로 서원리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당위원회사무실에서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시였다. 그날 농촌의 로력문제에 대하여 깊이 관심하시는 어버이수령님께 관리위원장은 아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생각을 숨김없이 말씀드리였다.그는 핵심진지를 튼튼히 꾸리기 위하여 농촌출신제대군인들을 모두 자기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한 농촌일군의 소박한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대견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천리마운동의 열풍은 농촌에서도 세차게 일고있었다.어디서나 능률높은 농기계와 비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는 때였다.그런데 이곳 관리위원장은 사람을 요구하는것이 아닌가.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사람문제를 제일 중시하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사람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혁명사의 진리를 깊이 체득한 농촌일군을 알게 되신것이 무엇보다 기쁘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비날론공장에 배치받고 마을에 와있는 한 제대군인도 직접 만나보시였다.당시 농촌실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며 청년핵심들이 앞장서서 농촌에서 사상, 기술, 문화혁명을 힘있게 밀고나가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농촌핵심진지를 강화해야 할 현실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다시금 확인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얼마후 농촌로력을 증가시키며 로동행정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중요한 조치들을 련이어 취해주시였다. 이리하여 끌끌한 제대군인들이 고향땅에 들어섰다.공장으로 떠났던 젊은이들도 돌아와 협동벌을 타고앉았다.우리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들고 고향으로 달려온 그들은 사회주의농촌의 핵심으로 되였으며 그때부터 사회주의협동벌은 더욱 활기를 띠고 들끓었다. 그것은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그들의 소박한 의사를 당과 국가의 정책에 담으신 우리 수령님의 손길아래 펼쳐진 자랑찬 현실이였다.그런데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실태를 그대로 말씀올리였던 서원땅의 관리위원장을 잊지 못해하시며 사랑과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어느 한 기회에 서원땅의 관리위원장을 옆에 앉히시고 일군들에게 어떤 동무들은 자동차나 비료를 더 달라고 하지만 이 동무는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것이 아니라 초급간부가 걸린다고 하면서 제대군인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하시며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랜 세월이 흘러간 뒤에도 뜨겁게 회고하시면서 그런 사람들이 혁명적원칙을 알며 그것을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신 서원땅의 관리위원장, 그가 바로 우리 당의 사회주의농촌건설력사에 뚜렷한 생의 자욱을 남긴 안달수영웅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5(1976)년 6월 19일에도 이곳을 찾으시여 청년들이 사상, 기술, 문화혁명의 앞장에 서서 사회주의문화농촌의 면모를 갖추어나가는 서원리의 앞날을 축복해주시며 관리위원장의 팔을 끼시고 길가에서 농장벌을 배경으로 불멸의 화폭을 남기시였다. 이런 가지가지의 사연을 돌이켜보시는가 40년전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례년에 없는 작황을 펼친 청년분조포전을 바라보시며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청년분조포전의 풍작은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결코 단순한 농사작황이 아니였다.사회주의농촌진지를 대를 이어 지켜갈 믿음직한 새 세대들의 모습이 비낀 취야벌의 앞날이였다. 농장의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를 력사에 길이 전해갈 한마음으로 그 뜻깊은 자리들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어버이수령님의 자욱우에 뿌리내린 은행나무들은 오늘도 못 잊을 사연 전하며 끝없이 설레이고있다. 길가의 은행나무앞에 우리는 다시 섰다.벼바다가 물결치는 무연한 취야벌이며 향기그윽한 과일동산 그리고 문화주택들이 오붓이 들어앉은 마을이 한눈에 안겨왔다. 해방된 이듬해부터 전후시기를 거쳐 여러차례나 찾고찾으시며 사랑에 사랑을 거듭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이 무수히 찍혀져있는 서원땅, 그 자욱마다에 뿌리내린 은행나무들이 이제는 무성하게 자라 영광으로 빛나는 이 고장의 력사를 후대들에게 전하고있다는 일군의 말이 무심히 들려오지 않았다. 돌기돌기의 년륜에 하많은 사연을 새기며 줄기를 억세게 뻗치고 무성한 아지를 펼친 취야벌의 은행나무, 그 은행나무들과 더불어 어제날 아버지세대의 뒤를 이어 새 세대들이 사회주의농촌진지를 더욱 굳건히 다져왔다. 취야벌에 새겨진 또 하나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있다. 주체89(2000)년 12월 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토지정리된 서원협동농장의 포전을 찾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가 서있는 뜻깊은 곳에서 마중나온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농장의 젊은 관리위원장이 안달수영웅의 아들이라는것을 알게 되시였다.수령님의 품속에서 농민영웅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자라났던 옛 관리위원장의 모색을 찾아보시려는듯 장군님의 정겨운 시선은 그의 얼굴에서 한동안 떠날줄 몰랐다. 잠시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젊은 관리위원장에게 앞으로 일을 잘하라고, 아버지가 안달수라고 하여 아들도 저절로 안달수가 되는것이 아니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순간 그는 가슴이 뭉클해졌다.몇해전 어버이수령님께서 하신 꼭같은 당부가 귀전에 울려와서였다. 혁명위업의 계승이란 신념의 계승이며 정신의 계승이다.후대들이 전세대들의 혁명초소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 그들의 정신까지 넘겨받을 때 혁명의 명맥이 굳건히 이어지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달수영웅의 아들을 만나주신 그 자리에도 서원리사람들은 현지지도표식비를 세우고 은행나무를 정성껏 심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오늘 안달수관리위원장의 손녀를 비롯한 새 세대들이 농장을 젊은 두어깨에 떠메고 힘차게 전진하고있으니 이것은 정녕 얼마나 자랑스러운 현실인가. 서원협동농장의 발전행로는 절세위인들의 손길따라 달려온 영광의 길이며 우리 농업근로자들이 대를 이어 우리 당을 깨끗한 량심과 의리로 받들어온 충정의 자욱으로 빛나고있다. 청춘의 희망과 열정을 깡그리 바쳐 영광의 이 땅을 대를 이어 지켜가리라! 새 세대들의 심장에서 더욱더 끓어번지는 이 열망속에 서원리는 사람도 땅도 날마다 젊어지고있다.더 좋은 래일에로 힘차게 달려나가고있다. 취야벌의 은행나무는 그 자랑스러운 력사를 년륜에 끝없이 새겨갈것이다.복받은 대지에 억세게 뿌리를 내리고 영원히 푸르러 설레이며…
글 및 사진 본사기자 한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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