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0월 9일 로동신문
일편단심 충성의 한길을 걸어온 첫 세대 인민의 유산
이 땅에는 물리적힘의 한계를 초월한 절대적이며 무한대한 힘이 있다. 세상의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고 그 누구도 만들어낼수 없는 그 힘은 과연 무엇으로 하여 대대로 강대해지며 불가항력적인 신비로움으로 이 나라를 떠받드는것인가. 지심을 움켜쥔 뿌리를 보면 거목인가 아닌가를 알수 있다. 김혁, 차광수동지들과 같은 혁명가들과 더불어 인민이 스스로 그 뿌리를 내렸고 철옹성같이 다져온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동지들과 인민들로부터 내가 받은 사랑과 지지는 참으로 고귀한것이였으며 그런 사랑과 지지가 있었기에 우리가 류례없이 간고하고 엄혹한 조건에서도 굴함없이 싸워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신 아직은 조국해방을 기약할수 없었던 망국의 그 세월에 우리 혁명이 험한 벼랑끝에 섰던 라자구의 이름모를 등판에서 기한에 떨던 유격대원들에게 안식의 선물을 마련해준 마로인이 떠오른다. 앞날에 대한 걱정때문에 저도모르게 눈물을 흘리시는 대장의 얼굴을 보니 일제놈들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겠다고, 락심하지 말라고! 그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도 아니였다.깊은 산중에서 살고있는 한갖 늙은이였다. 하지만 황량한 등판에서 그는 온넋으로 위인을 알아보았다. 우리 천교령의 눈보라소리가 귀전에 들려온다. 촉한에 걸리신 그때 유격대원들에게 포위를 뚫고나갈수 있는 묘술을 가르쳐준 사람은 그 어떤 뛰여난 군사전문가가 아니였다.천교령목재소에서 잡일을 하는 김로인이였다. 로인이 짜준 탈출안은 사실 어지간한 지휘관들도 궁리해내기 어려운 묘안이였다.그것은 자기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것이였다. 라자구등판과 천교령에서도 체험한바이지만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마다 구원자, 방조자, 동행자로 나선것은 언제나 인민이였다고. 어느해 겨울 뜻밖의 일로 부대의 행방을 잃고 무인지경 심산속을 헤매던 유격대원들은 어느 한 산전막에서 정히 보관한 쌀과 성냥을 보게 되였다.무서운 기근에서 유격대원들을 건져준 그 쌀주머니에 사례의 뜻으로 돈을 대신 넣어서 매달아놓고 산전막을 떠났던 그들은 며칠후에야 그 쌀주머니의 임자를 만나게 되였다. 놈들의 삼엄한 경계속에서 매일같이 조금씩 식량을 감추어가지고 집단부락을 빠져나와 산전막에 식량을 보관해왔다는 류로인, 그가 늙은 몸으로 다시 사냥군이 되게 된 사연은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것이였던가. 산속에서 굶어죽게 되였다고 일제놈들이 떠드는 유격대에게 다문 얼마라도 쌀을 가져다드리고싶은데 사냥군노릇을 해야 쌀을 더 많이 가지고나올수 있는 구실이 생기지 않겠는가고 하며 로인은 말하였다. 우리 백성들은 우리 적들은 그가 유격대를 원호한다고 8칸짜리 집에 불을 지르고 뭇매를 안기였다.그런 졸경을 당하면서도 유격대에 필요한 식량과 신발을 지고 혁명군의 숙영지로 자주 찾아오군 하는 리로인에게 언제인가 《무섭지요.내가 혁명군에 물건을 가져다주는것이 탄로나는 날이면 내 아들 셋은 물론이고 우리 일가가 멸족당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방법이 없지요.혁명군어른들이 나라를 찾아주겠다고 변변히 자지두 못하고 자시지도 못하면서 고생하는데 우리가 일신의 안전만 생각하면서 팔짱을 지르구 있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솔직하고 꾸밈없는 로인의 대답은 자신을 친자식이나 친형제처럼 살뜰히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인민이라는 보호자는 어디에 가나 있었으며 어느 고장에 가나 무수한 《교하의 아주머니》들이 있었다고 하신 그는 소박한 촌녀성이였다. 한번도 장장 수십년세월 간고한 혁명의 먼길을 헤쳐오신 우리 그러나 1930년 여름 교하에서처럼 그렇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위기일발의 순간은 그때의 일을 두고 슬기롭고 희생적인 우리 인민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명사, 어려운 고비에서 자기를 희생시켜 혁명가를 도와주는것이 체질로 되여있는 녀성들을 상징하는 뜻깊은 대명사로 된 《교하의 아주머니》. 그때 그 녀인이 우리 하지만 얼굴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그 녀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순박하게, 정답게, 강의하게 늙지 않는 한모습으로 살아있다. 어이하여 그 녀인의 모습은 세대를 이어가며 지워지지 않는것인가. 어려운 때 우리 그는 례사로운 생활의 한순간에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것을 보여주었다.가장 귀중한것을 남겼다. 항일의 폭풍속에서 태여난 무수한 혁명가들, 그들 대부분은 우리 그러나 교하의 그 녀인은 우리 그것은 망국의 비운을 가셔줄 국가도 당도 군대도 없었지만 자기의 생사를 가르는 곤경에 처하실 때마다 과연 우연이였는가. 우리 하다면 어이하여 우리 우리 가난한 농사군의 가정에서 탄생하신 그이는 어려서부터 푸성귀와 시래기국을 드시면서 자라신 평백성의 자손이시였다.권력이나 정권이 아니라 불쌍한 인민을 구원하기 위해 총을 잡으시고 피바다만리, 눈보라만리를 헤치신 인민의 아들이시였다.인민은 우리 백성은 백성을 안다. 인민의 눈은 언제나 정확하다. 우리 스스로 끌려 품에 안기고 태양으로 받든 우리 마로인, 김로인, 교하의 아주머니… 새삼스럽게 돌이켜본다. 어이하여 우리는 그들의 이름 석자조차 력사에 남길수 없었는가.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다달았던 그때, 조선이 영영 그대로 주저앉을번 했던 그때 우리 누구도 대신 못할 큰일을 한 공신중의 공신인 그들은 비문에 그 이름 쪼아 금문자로 아로새겨 두고두고 칭송해야 할 영웅중의 영웅들이였다.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것을 지극히 응당하고 무한한 영광으로 간직한 그 순결함…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진심이였다. 망국의 하늘아래서 우리 조택주로인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일가식솔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혁명군을 도와주었건만 렴보배어머니는 해방이 되여 10년세월이 지나도록 조국땅에서 조용히 살았다.편지라도 한장 하면 안되는가고 진정으로 섭섭해하시는 《내라구 왜 평양으로 참말로 깨끗하고 구김살이 없는 순결무구한 인민의 정은 그 어떤 역경이나 환난속에서도 퇴색하지 않고 보석처럼 빛을 뿌리는 영원한것이였다.인민의 그 믿음과 정은 우리 《평양민보》 1945년 10월 15일부는 민족의 영웅 《평양에 력사가 깊어 4천년 인구가 적지 않아 40만이라 하나 일찌기 이와 같이도 많은 사람이 모인 일이 있었던가?이와 같이도 뜻깊은 모임을 가져본 일이 있었던가?… 조선동포가 가장 숭모하고 고대하던 영웅 진정 태양을 맞이하고 따르는데는 그 어떤 강요나 설교가 필요없다. 망국의 그 세월에 벌써 지심깊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차게 이어진 진정한 인민의 세월의 언덕넘어 못 잊을 목소리가 메아리쳐온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인민을 위하여, 자기 민족을 위하여 우리의 열혈의 투사 차광수동지가 최후의 순간에 남긴 심장의 목소리, 본사기자 조향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