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1월 27일 로동신문
장하다! 한몸이 그대로 초석이 되여
온 나라에 만리마속도창조의 열풍이 세차게 몰아치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또다시 여러명의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이 배출되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실천으로 증명하라
이번에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닌 사람들에게서 한결같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당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실천으로 증명했을뿐입니다.》 이것은 당정책을 결사관철하는 길에서 이들이 심장에 간직한 하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 중강군목재가공공장 지배인 리봉룡동무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까지만 하여도 공장의 물질기술적토대는 너무도 보잘것 없었다.크지 않은 생산현장에서 거의 손로동으로 몇가지 목재가공품을 생산하는것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질이 낮아 인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지 못했다. (우리 이런 결심을 굳힌 리봉룡동무는 목재가공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목재가공설비가 하나둘 늘어났다.목재가공품의 질도 이전과는 대비되지 않을만큼 현저히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리봉룡동무는 그는 공장의 생산공정을 봇나무로 얼음과자속심과 위생저가락을 만들수 있게 전환시켰다.원천이 풍부하고 가공원가가 적게 드는 반면에 많은 실리를 얻을수 있어 공장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그쯘히 갖출수 있었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체질화한 일군만이 실천의 결과물을 보란듯이 내놓을수 있다. 수십년전 성천강출하사업소 지배인 김선실동무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 새로 조직된 사업소에는 배 한척, 건물 하나도 없었다.종업원은 겨우 6명뿐, 그야말로 빈터였다.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여서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할데도 없었다. 그때 사업소의 존재가 꽤 가능한가고 묻는 사람들에게 김선실동무는 단마디로 말하였다. 《자력갱생의 정신만 굳건하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이런 의지를 안고 그는 생산토대를 하나하나 구축해나갔다.몇해동안 고생한 끝에 10척의 고기배를 마련하고 갈대만이 무성하던 곳에 현대적인 수산물가공장과 실내축양장, 수천t능력의 랭동저장고를 건설하였다. 사업소가 리용할 부두를 건설할 때였다.그는 현장에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를 큼직하게 써붙이고 공사를 힘있게 내밀었다.온갖 고생을 다하며 일떠세운 구조물이 사나운 파도에 여지없이 파괴되는것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은 타들었다.기어이 제힘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각오를 안고 사색을 거듭하던 그는 끝내 기발한 공법을 찾아내고 그 어떤 파도에도 끄떡없는 부두를 일떠세웠다.전문건설단위의 일군들이 그 공법은 당당히 박사론문감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론문을 쓸것을 권고했다. 《당에서 바라는 일들을 실천하고 사업수첩에 〈집행하였음.〉이라고 써넣는것이 박사론문을 쓰는것보다 더 기쁘답니다.》 당에서 준 과업을 무조건 관철하는데서 생의 보람을 찾는 일군만이 이런 진정을 터칠수 있는것이다.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에 이곳 사업소를 찾으시였던 우리 식의 초고주파멸균기의 연구개발이라는 높은 목표를 세운 그는 어느 한 연구기관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합심하여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였다. 그 길은 단순한 과학탐구의 길이 아니라 우리 식의 초고주파멸균기를 훌륭히 연구제작한 그날 김선실동무는 눈물을 흘리며 사업수첩에 지난 시기에 쓸모없이 버리던 물고기부산물을 리용하여 생산하는 여러가지 나노제품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인기가 대단하다. 이룩한 성과에 만족을 모르고 계속혁신, 계속전진하며 부단히 새것을 창조하고 더 높이 비약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뚜렷한 실천의 자욱을 남길수 있다. 신천군 복우협동농장 작업반장 박용직동무가 바로 그런 실천가이다. 그가 작업반장으로 일하게 된 작업반은 이미전에 2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한 단위였다.작업반원들을 만나보니 우리 작업반은 현상유지만 잘하여도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을것이라고 하면서 자부하고있었다. 당에서는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계속혁신, 계속전진할것을 요구하고있지 않는가.현상유지나 하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다가는 언제 뒤자리로 밀려날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박용직동무는 작업반앞에 있는 개울을 가로질러간 징검다리대신 콩크리트다리를 건설하는것으로부터 반원들의 사상관점과 일본새를 근본적으로 개변하기 위한 첫 자욱을 내짚었다.콩크리트다리가 번듯하게 일떠서니 반원들은 장마철이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멀리 에돌아다니였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고 좋아하면서 비로소 머리속에 지배하고있던 관념에서 깨여났다. 박용직동무는 대중의 앞장에서 작업반건물들을 번듯하게 일신시키고 식당과 탁구장, 각종 창고와 집짐승우리들을 건설하였으며 반원들의 살림집도 새 집처럼 변모시켰다.맨돌산으로 불리우던 작업반뒤산에 수백그루의 밤나무와 감나무도 심었다.작업반의 풍치가 달라지고 흙깔이를 하여 지력을 높인 포전들에서 알곡수확고가 훨씬 뛰여올랐다.자체로 만든 강냉이송치를 리용한 가스발동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로 살림집조명을 보장하고 전기밥가마로 밥을 지어먹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는 반원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박용직동무는 신들메를 더 바싹 조여맸다.작업반의 래일을 생각하며 반원들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시켜 기사, 기수들로 키웠고 남새온실과 버섯온실, 목욕탕을 일떠세워 농장원들이 그 덕을 단단히 보도록 하였다. 당의 의도와 시대의 요구에 따라서기 위해 부단히 사색하고 실천하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 작업반은 3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였다. 철산군 명암협동농장 제4작업반 반장 정상덕동무는 근 20년을 작업반장으로 일해오는 나날에 과학농사에 다수확의 지름길이 있다는것을 실천으로 증명하였다. 그가 작업반장으로 임명되던 해에 작업반의 농사실적은 정보당 1t도 못되는 너무도 뒤떨어진 상태를 기록하고있었다. 지난 시기 알곡생산에서 앞장선 농장, 작업반, 분조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던 그는 일군들과 농장원들의 과학기술수준에 따라 영농작업의 시기성과 질보장은 물론 정보당 수확고에서 차이가 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결국 과학기술수준의 차이이자 소출차이였다. 정상덕동무는 자신부터 과학농사의 기수가 되기 위하여 밤잠도 잊고 주체농법과 선진영농방법을 습득해나갔다.그리고 시험포전을 만들어놓고 선진영농방법과 기술을 하나하나 도입해보면서 원리적으로 파악한데 기초하여 그 우월성을 농장원들에게 깊이 인식시켰다.그는 포전별로 토양분석을 한데 기초하여 흙깔이를 진행하고 질좋은 거름을 충분히 확보하여 포전들에 실어내도록 하였다. 땅의 색갈이 달라지고 농작물의 생육상태가 좋아지는것이 확연히 알리였다.작업반의 알곡수확고는 해마다 뛰여올랐다.이와 동시에 분조장들은 물론 농장원들의 기술실무수준도 높아졌으며 모두가 앞선 영농방법도입에 적극적으로 떨쳐나서게 되였다.과학농사를 대하는 농장원들의 열의가 높아진데 맞게 정상덕동무는 작업반의 농업과학기술선전실을 잘 꾸리고 운영을 짜고들어 모두를 과학농사의 주인들로 키웠다.올해에도 정상덕동무는 농사를 과학적으로 짓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실천적모범으로 대오를 이끌어 작업반이 정보당 13t이상의 다수확성과를 이룩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실천으로 증명하라!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뜨거운 심장에서 울려나오는 이 신념의 웨침, 애국의 호소에 모두가 심장의 박동을 맞출 때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의 거대한 생활력은 더욱 뚜렷이 확증되게 될것이다.
정다운 부름-우리
사회와 집단, 조국과 인민을 위한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는 미풍, 이것은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또 하나의 사상정신적특질이다. 지난 11월초 창밖을 내다보는 혜산모란상점 점장 허경희동무의 눈앞에서는 한 종업원의 모습이 떠날줄 몰랐다. 여러해동안 말없이 언제나 맡은 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안고 축산기지에서 집짐승관리에 열정을 쏟아붓고있는 성실한 처녀, 그가 한 제대군인총각과 일생을 같이할것을 약속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허경희동무는 자기 일처럼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가 친부모된 심정으로 결혼식을 잘 치르어주자. 이런 마음으로 그는 일군들과 결혼식준비를 토론하기 위해 마주앉았다.결혼상에 놓을 물자들을 비롯하여 새살림에 필요한 갖가지 생활용품명세를 수첩에 적어놓고 그들은 하나하나 다시 검토하면서 빠진것이 없는가, 무엇을 더 도와줄수 없겠는가를 생각하며 뜨거운 마음을 합쳐나갔다. 그들은 명세에 몇가지를 더 보충하고서야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며칠후 많은 기념품을 가지고 찾아와 결혼을 축하해주는 허경희동무와 종업원들을 보며 신랑, 신부는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종업원들을 위하는 허경희동무의 진정은 이뿐이 아니다. 그는 온실과 축산기지를 건설할것을 발기하고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서 종업원들을 이끌어 짧은 기간에 건물들을 번듯하게 일떠세웠다.여기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남새와 고기를 정상적으로 공급받는 그리고 해마다 직장에서 차려주는 생일상앞에서 축하의 인사를 받는 종업원들의 행복에 겨운 모습을 볼 때마다 허경희동무는 복무자의 더없는 보람과 긍지를 한껏 느끼군 하였다.우리라는 정다운 부름을 소중히 새겨보며. 곡산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산하단위 일군인 김정순동무는 류달리 군복을 사랑한다. 그의 친정아버지는 전쟁로병이며 영예군인이였다. 나라잃은 설음속에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아오던 아버지는 하기에 그는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이 몰려왔을 때 용약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달려나갔다.목숨보다 귀중한 조국을 피로써 사수하기 위한 결사전에서 무비의 희생성을 발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영예군인이 되였지만 아버지는 마음속군복을 벗지 않고 생의 마감까지 복무의 자욱을 변함없이 새기였다. 조국이 있고야 가정의 행복도, 자식들의 밝은 미래도 있다는 전세대들의 당부는 김정순동무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배우자로 혁명의 군복을 입은 남자를 택하였고 네명의 자식도 중학교를 졸업하는 차제로 모두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웠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공민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일군으로 사업하는 지난 수십년간 그는 단위사업을 책임지고 일하는 드바쁜 속에서도 가정에서 많은 원호물자를 마련하여 초소의 군인들에게 보내주었다. 평범한 날에나 시련의 날에나 그는 변함없는 한길만을 걸어왔다.그 나날 전국원군미풍열성자대회에 참가하여 지난해 한 종업원의 자식이 인민군대에 입대할 때였다.그는 자기 아들을 초소로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절절히 당부하였다고 한다. 나서자란 정든 고향과 부모의 당부를 잊지 말고 군사복무의 나날을 위훈으로 빛내이라고. 사회와 집단,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삶을 빛내이자. 이런 지향을 지니고 증산은하피복공장 지배인 김인복동무도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애국의 자욱을 묵묵히 새겨오고있다. 지난 4월말 김인복동무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가정에서 마련한 많은 지원물자를 가지고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장을 또다시 찾았다.10여번째로 찾는 걸음이였다.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인복동무의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었었다.그럴수록 우리 인민들의 건강과 복리증진을 위해 그처럼 마음쓰시는 많은 지원물자를 가지고 찾아온것만도 고마운데 현장에서 일도 함께 하고 노래도 불러주어 정말 힘이 된다는 돌격대원들의 말을 들을 때면 보람과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조국의 부강번영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이렇듯 소중한 지향 안고 그는 지난 10여년간 삼지연군꾸리기건설장과 사회주의협동벌 그리고 많은 단위에 가족과 종업원들의 지성이 담긴 수십종에 수만점의 물자를 보내주었다. 그렇다.우리의 미더운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의 삶은 이렇듯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