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1월 24일 로동신문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건축문화유산을 재가루로 만든 죄악
일본은 1592년-1598년 임진조국전쟁시기와 20세기초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40여년간 가는 곳마다에서 조상대대로 내려오며 창조하여온 우리 민족의 귀중한 력사유적과 유물들을 수많이 파괴하고 략탈해갔다. 일본의 과거 문화재파괴략탈책동은 단순한 강탈행위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준비되고 감행된 국가적범죄행위였으며 조선민족의 오랜 력사와 문화, 전통을 말살하여 그 존재자체를 력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한 천추에 용납 못할 반인륜적범죄였다. 일본이 과거에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 및 략탈범죄를 어떻게 감행하였는가를 온 세상에 다시한번 폭로하기 위해 이 련재물을 내보낸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은 평양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귀중한 건축문화유산들을 닥치는대로 파괴방화하였다. 1592년 4월 조선남해의 관문인 부산에 대한 침공으로 전쟁을 개시한 침략군은 한성(서울)을 강점한 후 동대문을 불사르는 등 온갖 파괴행위를 대대적으로 감행하였다.조선군대의 드센 공격으로 한성에서 쫓겨갈 때에는 건축물들에 불을 놓아 온 성안을 재더미로 만들어놓았다. 일본침략군의 만행에 의하여 오랜 력사를 자랑하던 조선봉건정부의 경복궁과 창덕궁이 불타버리고 홍인문을 비롯한 한성의 모든 성문이 다 파괴되였다. 그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마련해놓은 귀중한 모든것이 하루아침에 재가루가 되고말았던것이다. 성균관은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을뿐아니라 인재들을 육성하는데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최고교육기관이다. 이러한 성균관이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의 파괴방화만행으로 건축물들중 대부분이 불타없어졌으며 단지 남은것은 성전협문 및 전사청뿐이였다.성전앞의 비석은 세동강이 났으며 거북모양의 받침돌 또한 뽑혀져서 깨여진채 나딩굴고있었다고 한다. 그로 하여 임진조국전쟁후 우리 나라에서는 인재를 키우는 사업이 일시 중단되게 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불교사원들도 파괴하였다.경주를 강점한 가또 기요마사는 불국사의 건물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였다. 1593년 5월 불국사에 침입한 침략무리들은 사원에 있던 승려들을 죽이고 방들을 불태웠다.그때 란을 피해 장수전에 가있던 담화대사가 제자들을 이끌고 달려왔을 때에는 이미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등이 모두 불타버린 뒤였다. 일본침략군은 봉건사회에서 력대 신주를 두는 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불태워버리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서울을 강점한 침략군두목 우끼다 히데이에는 종묘에 지휘처를 정하고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사졸들이 련이어 죽게 되자 그곳을 거리낌없이 불태워버리고말았다. 1593년 9월 한성으로 돌아온 한 관리는 왕에게 올려보낸 서면제의에서 《신이 처음 수도에 도착하여보니 종묘사직과 궁궐은 여지없이 불에 타버리고 권력있는 집안들과 백성들의 집은 거의다 허물어졌으며 온통 연기와 그을음으로 어수선한데 백골이 가로세로 널려있었으며 산천은 그전대로 있었지만 거리는 벌써 변하였습니다.》고 울분을 터놓았다. 일본침략자들은 종묘뿐아니라 무덤에 묻힌 부장품을 노리고 왕릉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행위도 저질렀다. 일본침략자들은 1592년 9월 왕릉인 선릉(조선봉건왕조 9대 왕인 성종왕의 무덤)과 정릉(조선봉건왕조 11대 왕인 중종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부장품들을 다 훔쳐내고는 그안에 불을 지르는 흉악무도한짓을 감행하였다. 1592년 12월에는 강릉(조선봉건왕조 13대 왕인 명종왕의 무덤)과 태릉(조선봉건왕조 11대 왕인 중종왕의 셋째 왕비의 무덤)을 파헤쳤는데 굳어진 석회로 하여 허물지 못하였다. 당시 부장품들을 꺼내려고 무덤들을 모조리 파헤치는 바람에 일본침략군이 강점하였던 지역의 그 어디에서나 무덤을 도굴하는 소리가 울리는 형편이였다고 한다. 그때의 상황에 대하여 력사기록에는 《흉한 오랑캐들이 불순한짓을 하여 종묘를 빈터로 만들었을뿐아니라 지어는 선대임금의 릉에까지 루를 미쳤으니 귀신과 사람들의 원한이 여기서 극도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강점지역마다에서 궁전이나 사원은 물론 선조의 유골이 있는 릉묘도 모조리 파괴하고 방화한 일본침략자들의 야수적만행은 동서고금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반인륜적범죄였다. 본사기자 정원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