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19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한별, 그이는 조선의 위대한 태양!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한생에서

 

외세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2천만겨레가 망국노의 치욕을 강요당하던 민족수난의 그 암담하던 시기 조선의 새 세대 혁명가들은 어떻게 되여 불패의 통일단결이라는 위대한 력사적성업을 이룩할수 있었는가.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혁명투사 차광수동지의 혁명가적한생을 통하여 이에 대한 웅변적인 대답을 찾아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길림시절을 회상할 때면 잊을수 없는 얼굴들이 수없이 떠오르군 한다.그 얼굴들의 전렬에는 항상 차광수가 서있다.》

차광수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뵙게 된것은 주체16(1927)년 봄이였다.

그 나날의 인상깊은 상봉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속을 터놓고 사귀여보니 차광수는 대단한 멋쟁이였다.…

그는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했지만 마음씨가 무한정 좋아서 청년들을 많이 끌었으며 맑스주의전문가로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차광수의 출현으로 하여 《ㅌ.ㄷ》의 핵심력량은 새롭게 보강되였다.우리의 운동권에는 조선공산당 상층부의 거물들과도 실력을 겨룰수 있는 쟁쟁한 리론가가 등장한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감회깊이 회고하신것처럼 차광수동지는 활달한 성격과 뜨거운 인정미를 지닌 열혈청년이였을뿐아니라 쟁쟁한 리론가, 보기 드문 재사였다.

이러한 차광수동지가 어떻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의 심장을 통채로 맡기고 그이를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민족재생의 유일한 구성으로 충직하게 받들어모실수 있은것인가.

일찌기 청운의 뜻을 품고 이국땅에 건너가 온갖 고역을 치르며 지식의 탑을 쌓았으나 투쟁의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의 길을 헤매이지 않으면 안되였던 차광수동지였다.

그 길에서 차광수동지가 수없이 목격한것은 3인1당, 5인1파식으로 갈라져 파벌싸움에 피눈이 되여 테로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종파분자들의 너절한 행위였다.

남의 나라 땅에서까지 파쟁과 범죄행위를 일삼는 종파분자들에게 환멸을 느낀 차광수동지는 시골훈장이 되여 아이들의 머리에 민족의 정기나 넣어주며 조용히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게 된 차광수동지는 그이께 온넋이 자석처럼 끌리게 됨을 금할수 없었다.

특히 차광수동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것은 모든 문제를 조선의 구체적현실에 기초하여 판단하시며 공리공담이 아니라 혁명실천을 중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자주적립장, 주체적이며 혁명적인 사고방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자신이 걸어온 쓰라린 인생길을 스스럼없이 터놓던 차광수동지는 이국땅에서 찬비를 맞으며 걸어갈 때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줄수 있는 옳바른 투쟁로선과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렸노라고 심장의 고백을 터치였다.

갈길몰라 끝없이 방황하던 차광수동지가 비로소 운명의 닻을 내린 포구,

그것은 민족수난의 암담하던 세월 애국으로 피끓이던 이 나라의 열혈청년들모두가 목마르게 찾고찾던 절세위인의 품이였으니 한없이 위대하고 자애로우신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긴 차광수동지의 행복과 환희는 그 얼마나 가슴벅찬것이였던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혁명투쟁의 길을 걷던 나날 차광수동지는 자기가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혁명의 령도자로 모신 행운아인가를 심장으로 절감하군 하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광수동지에게 한 마을을 혁명화할데 대한 과업을 맡기신적이 있었다.

그때 차광수동지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시골에 있다가 운동선을 찾아 모처럼 올라온 사람을 왜 도로 시골로 보내는가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차광수동지를 이렇게 일깨워주시였다.

지금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우로만 올라가고있다.시골에서 고을로, 고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국제당으로, … 우로 올라가야 축에도 들고 그 무슨 인정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고있다.무산대중을 위한 혁명을 한다면서 대중을 떠나 자꾸 우로만 올라가면 어떻게 하는가.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자.아래에 내려가 로동자, 농민들속으로 들어가자.

그 어느 고전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심원한 진리가 담겨진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차광수동지는 참으로 신통한 발견이라고 하면서 격동된 심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이처럼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삶의 걸음마다 페부로 절감하였기에 차광수동지는 오로지 수령님만을 조선혁명의 지도자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불같은 충성심을 억척의 신념으로 간직할수 있은것이다.

여기에 차광수동지가 지닌 충성심이 얼마나 강렬한것이였는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1930년 가을 어느날 조선혁명군 성원들의 모임이 진행되던 자리에서였다.차광수동지는 중대한 제기를 하겠다고 하면서 오가자의 온 마을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칭송하고있으며 이것은 오가자만이 아닌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이라는데 대하여 절절히 토로하였다.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긍지높이 선언하였다.

《온 겨레가 우러러따르는 위대한 한별동지를 어찌 새별에만 비기겠소.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한 일자, 별 성자대신 날 일자에 이룰 성자로 하여 김일성동지로 할것을 제기하오.》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드린 태양의 존함!

이는 정녕 자기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숭배와 열화같은 흠모심이 낳은 최대의 경의, 수령칭송의 정화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지닌 차광수동지는 언제나 수령님의 신변안전보장에 최대의 주의를 돌리였으며 동지들에게도 늘 이렇게 강조하군 하였다.

《우리의 지도자 한별동지를 옹호보위하는것은 조국과 혁명앞에 지닌 우리들의 최대의 의무요!》

이렇듯 자기 령도자에 대한 충실성을 가장 진실하게, 가장 견결하게, 가장 열렬하게 지닌 차광수동지였기에 불의에 달려든 적들과의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마지막시각까지 위대한 한별정신으로 억세게 싸울수 있은것이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혁명의 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차광수동지의 고귀한 한생,

그것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수령의 위대성에 대한 끝없는 매혹과 흠모심에 기초한것이라야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으며 충성의 신념으로 불타는 혁명가의 발걸음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천만의 가슴마다에 억척으로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장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