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20일 로동신문

 

혁명선배들을 존대하는 훌륭한 기풍

만수대창작사 일군들과 종업원들

 

나라의 국보적인 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에서 숭고한 도덕의리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꽃펴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선배를 존대하는것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어길수 없는 혁명적의리입니다.》

세해전 여름 통천군 바다가에는 만수대창작사 휴양소가 훌륭하게 일떠섰다.

종업원들이 즐거운 바다휴양을 하게 되였다고 기쁨을 금치 못할 때 창작사일군들의 마음은 이미 년로보장을 받은 창작가들에게로 달렸다.

우리 당의 뜻을 받들어 주체미술의 보물고를 풍만히 하는데 많은 공적을 쌓은 공로자들, 그들이 일할 때 벌써 휴양소를 건설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이윽하여 초급당일군의 사무실에는 이런 목소리가 울렸다.

《종업원들만이 아니라 년로보장을 받은 공로자들도 함께 휴양소에 보냅시다.》

뜻밖에 동해바다휴양을 가게 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공로자들의 충격은 컸다.

이미전부터 창작사에서는 년로보장을 받고 집으로 들어간 그들의 건강과 생활을 늘 깊이 관심하고 따뜻이 돌봐주고있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창작사의 책임일군들부터 앞장서서 공로있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명절을 축하하고 지성어린 물자들도 안겨주군 하였다.혁명선배들을 존대하는 그 기풍이 어느덧 창작사의 모든 종업원들의 생활로 되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로자들의 생활과 건강상태를 알아보고 땔감을 마련해주고 병치료에 쓸 약재를 안겨주는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이제는 일터를 떠난지도 오랜 자기들을 새로 일떠선 휴양소에까지 불러주니 어찌 놀랍고 감동되지 않을수 있으랴.

일군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새 세대 종업원들의 존경속에 꿈같이 흐른 공로자들의 휴양생활은 해마다 변함없이 이어져 오늘은 그것이 례사로운 일로 되였다.

지난 11월 17일 만수대창작사는 창립 60돐을 맞이하였다.

이날을 경축하는 뜻깊은 공연무대에는 창작사의 오랜 창작가들이 출연하는 합창 《인생의 영광》이 올랐다.

은은한 선률이 흐르는 속에 무대자막에는 붉은 당기폭을 배경으로 창작사의 60년력사에 빛나는 자욱을 남긴 렬사들의 모습이 새겨졌다.

순간 관람석의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목메인 흐느낌…

모임에는 창작사에서 일하다가 년로보장을 받은 공로자들과 함께 이미 떠나간 렬사들의 유가족들도 참가하였던것이다.

그 자리에는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최하택선생의 안해인 백유란녀성도 있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만수대창작사 일군들과 종업원들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정의 분출이였다.

남편이 그들의 곁을 떠나간지도 어언 10년이 넘었건만 공로있는 창작가로, 보배로 내세워주는 일군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던것이다.

여러해전의 가슴뜨거운 일도 감회깊이 되살아났다.

그날 창작사일군들이 환한 얼굴로 그의 집에 들어섰다.

《기뻐하십시오.최하택선생이 20년전에 남긴 작품을 찾았습니다.》

영문을 몰라하는 백유란녀성에게 일군들이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얼마전 만수대창작사의 창작가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게 되였다.

그들이 어느 한 나라에 이르렀을 때 그 나라에 주재한 우리 나라 대사관에서 뜻밖에도 최하택선생의 수표가 있는 풍경화를 보게 되였다.

대표단을 책임지고갔던 창작사의 당일군은 그 작품을 보는 순간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최하택선생은 한생토록 절세위인들의 영상미술작품창작에 심혈을 다 바쳐온것으로 하여 일반작품이 별로 없는것으로 알려져있었던것이다.그런데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그가 남긴 훌륭한 작품을 보게 될줄을 어찌 알았으랴.

일군은 대사관성원들에게 절절히 말하였다.

《…이것만은 꼭 가져가야 하겠습니다.》

자기 단위 창작가의 재능과 심혈이 깃든 작품을 한없이 소중히 여기는 당일군의 진정이 대사관성원들의 마음을 울렸다.

최하택선생의 유고작, 길이 수m나 되는 그 대형작품을 대표단성원들은 여러 나라에 대한 방문기간 늘 소중히 간수하고다니였다.

창작사의 미술작품전시관에 주체미술발전에 공헌한 이름있는 창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사연깊은 그 풍경화가 전시될 때 최하택선생의 가족만이 아닌 창작사의 수많은 창작가들이 눈굽을 적시였다.

창작사에는 정동혁, 우철룡, 최경미동무를 비롯하여 주체미술발전력사에 빛나는 자욱을 남긴 부모들의 뒤를 이어 창작활동을 하고있는 미술가들이 적지 않다.

새 세대 미술가들모두가 부모들이 그러했던것처럼 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 주체미술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고있는데도 창작사일군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있다.

여든살이 되여오는 오늘까지 조선화창작의 붓을 멈추지 않고있는 인민예술가 리경남선생은 말한다.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내세워주는것을 그 어떤 특정한 사업으로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기풍으로 여기는 창작사일군들의 뜨거운 진정이 있기에 저와 같은 로창작가들은 인생의 황혼기에도 로당익장하여 삶을 빛내여가고있습니다.》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훌륭한 기풍, 만수대창작사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보여준 모범에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누구나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하며 심장에 손을 얹고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혁명선배들에 대한 도덕의리를 다하고있는가.

본사기자 허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