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26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우리의 힘은 단결, 단결의 중심은 한별

혁명투사 최창걸동지의 한생에서

 

혁명의 수령을 어떻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가를 가장 숭고한 귀감으로 보여준 조선의 첫 세대 혁명가들,

위대한 한별정신으로 온넋을 불태우며 그처럼 간고한 조선혁명의 초행길을 피로써 개척한 통일단결의 선구자, 열혈충신들의 전렬에는 혁명투사 최창걸동지도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최창걸동무는 우리가 혁명투쟁을 시작한 첫 시기부터 손잡고 함께 싸워온 잊을수 없는 혁명전우입니다.》

최창걸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투쟁의 첫 자욱을 내짚으시던 화성의숙시절에 가장 가깝고 미더운 동지로 뜻과 정을 나누신 독립군출신의 애국청년이였다.

최창걸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된것은 주체15(1926)년 6월 화성의숙에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여 첫 수업을 받으신 날 최창걸동지는 10여명의 의숙생들과 함께 수령님을 찾아뵈왔다.

그날의 상봉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의 말투나 몸가짐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서글서글한 멋이 있었다.첫 대면에서 그는 벌써 내 마음속에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겨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활속에서 최창걸동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시였다.

최창걸동지의 아버지는 자그마한 려관을 하나 경영하면서 아들이 자기를 도와 영업에 종사할것을 바라고있었다.하지만 최창걸동지는 나라를 독립시키겠다고 집을 뛰쳐나와 독립군에 입대하였다.그가 독립군생활을 할 때 그의 할머니가 손자의 마음을 돌려세워보려고 여러차례 찾아왔지만 최창걸동지는 매번 나라가 망한 판에 지금 어디 제 집 려관이나 지키고있을 때인가고 하면서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렇듯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불같은 마음을 안고 독립군의 총을 멘 최창걸동지였으나 나라찾을 똑똑한 방략도 없이 자리다툼만 일삼고 군자금이나 모아 탕진하는 독립군의 실태는 그에게 실망과 환멸만을 주었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게 된것은 최창걸동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고 영광이였다.

화성의숙시절 최창걸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예지와 해박한 식견, 넓으신 도량과 소탈한 인품, 불같은 동지애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절감하군 하였다.

어느날 학과토론시간에 우리 나라에서 독립후 어떤 사회를 세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론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학생은 자본주의길로 나가야 한다고 대답하였고 또 어떤 학생들은 우리 나라에 봉건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독립도 되기 전에 자본주의냐 왕조복귀냐 하는것은 싱거운 일이라고 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숙생들의 잘못된 견해와 관점을 이렇게 일깨워주시였다.

자본주의나 봉건사회는 다같이 돈많은 놈들이 근로대중을 착취하여 호강하는 사회이다.독립된 후 조선에 이런 불공평한 사회를 세울수는 없다.기계문명의 발전만 보고 자본주의의 병집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봉건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것도 당치않은 소리이다.…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이 잘사는 그런 사회를 세워야 한다.…

너무도 사리정연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의숙생들은 한결같이 박수를 터치였다.

그날의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최창걸동지는 수업이 끝나자바람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달려와 그이의 두손을 꼭 잡고 정말 좋은 토론을 했다고, 공산주의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공산주의사상을 멋있게 들이먹이더라고 흥분된 심정을 터놓았다.

이렇게 의숙생활의 매일, 매 시각 위대한 수령님의 출중하신 인품에 매혹될수록 최창걸동지는 수령님이시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실 위대한 성인, 조선의 모든 애국자들이 따르고 받들 혁명의 탁월한 령도자이심을 더욱 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주체15(1926)년 10월 17일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되던 날 최창걸동지는 조직앞에 위대한 수령님을 타도제국주의동맹 책임자로 높이 모실것을 정중히 제의하였다.이것은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 한분만을 굳게 믿고 따르며 받들려는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의 강렬한 분출이였다.

주체17(1928)년 4월 류하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하는 모임에서 최창걸동지가 한 말은 참가자들모두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우리의 힘은 단결에 있고 단결하자면 그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2천만겨레가 하나로 뭉칠 단결의 중심은 바로 우리의 지도자 김성주동지이십니다.우리가 갈길은 오직 김성주동지를 따르는 길뿐입니다.

동무들! 우리모두 반제청년동맹에 뭉치여 김성주동지의 령도따라 피끓는 청춘의 열정을 조국해방의 성전에 바쳐갑시다.》

이처럼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을 삶과 투쟁의 확고부동한 신조로, 생명으로 간직하였기에 최창걸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결사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였다.

그는 국민부반동파들의 책동으로 하여 시시각각 위험이 뒤따르는 살벌한 환경속에서 활동하였지만 언제나 대담하고 능숙하게 사업을 전개해나가면서 혁명앞에 참으로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카륜회의에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을 받들고 남만의 광대한 지역에 당조직들을 내오고 각종 대중단체들을 확대하며 조선혁명군의 한개 대를 지휘하면서 상비적인 혁명무력건설에 필요한 인적, 물적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맹렬히 활약하던 최창걸동지는 국민부우파놈들에 의하여 희생되였다.

최창걸동지가 희생되였다는 뜻밖의 비보에 접하시였던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나는 너무나 분해서 말도 할수 없었고 눈물도 흘릴수 없었다.

언제나 한모습으로 변함없이 열에 끓고 정에 넘치던 《ㅌ.ㄷ》의 건아가 어쩌면 그렇게도 속절없이 우리곁을 떠날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해하시며 혁명생애의 나날 뜨겁게 추억하신 최창걸동지, 그는 항일혁명의 첫 기슭에서 우리곁을 떠나갔지만 위대한 수령님을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한 변함없는 충신의 모습으로 우리 당과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본사기자 장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