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2월 18일 로동신문

 

론설

근로대중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반인민적인 사회

 

언제인가 미국의 시카고종합대학 사회학교수가 《축출》이라는 제목의 도서를 집필한바 있다.도서에서 필자는 자본주의세계에서 근로대중이 처한 렬악한 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축출을 현대자본주의의 특징의 하나로 규정하였다.그에 의하면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절대다수 빈곤한 근로대중이 집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축출당하고 생존유지의 한계선밖으로 내몰리고있다.

필자는 이러한 축출현상을 통해 현대자본주의의 큰 병페라고 할수 있는 사회적불평등이 얼마나 극도에 달했는지 알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적불평등은 자본주의사회의 본질로부터 산생되는 필연적결과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의 주인은 자본가계급이다.자본가계급은 저들의 수중에 장악되여있는 국가주권과 생산수단을 근로대중에 대한 착취와 압박의 수단으로 리용하고있다.이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은 정치적으로 무권리하며 비참한 경제생활을 강요당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은 정치생활, 국가관리에서 완전히 배제되고있다.

사람의 자주적권리는 정치생활, 국가관리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사람이 참다운 자유를 향유하려면 무엇보다도 정권의 주인으로 되여야 한다.

국가주권은 정치적지배권이며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기본요인이다.사람의 지위와 역할은 국가주권을 쥐였는가 못 쥐였는가 하는데 따라 좌우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은 정권의 주인으로 되지 못하고있다.근로대중은 아무런 자유와 권리도 못 가지고 오직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정치는 독점재벌들을 비롯한 착취계급의 리익을 대변하는 반인민적인 정치이며 금권과 결합된 교활한 억압정치, 독재정치이다.

대통령선거, 국회선거때마다 정객들이 저마끔 나서서 《평등》과 《민주주의》, 《처지개선》 등의 달콤한 공약들을 람발하고있지만 결과적으로 근로대중의 처지에서 달라지는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법과 결정, 시책들은 하나같이 재벌들의 리해관계에 부합되고 그들의 리윤치부를 권력으로 보장해주는 방향에서 채택실시된다.

한 출판보도물은 미국의 정치실상에 대해 이렇게 폭로하였다.

《정치제도측면에서 미국의 정치는 실제상 부자들을 위한 정치 즉 부자들이 자기의 자본우세를 리용하여 정부에 부유층의 리익을 도모할것을 강요하는 정치이다.》

자본주의정객들은 날로 악화되는 경제위기의 출로를 근로대중에 대한 착취에서 찾으면서 긴축정책과 같은 반인민적정치를 강행하고있다.

근로대중은 물질적부의 창조자이다.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들의 생활처지는 날이 갈수록 령락되고있으며 물질적부에 대한 향유로부터 축출되고있다.

자본주의의 력사는 사회적부가 얼마 안되는 독점재벌들에게 집중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장성할수록 이러한 과정은 더욱 빨라지게 된다.

2017년에 한 국제기구는 세계의 8대부호가 세계인구의 절반이 가지고있는것과 맞먹는 자산을 가지고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바 있다.

기구는 보고서에서 부호와 빈곤자간의 모순이 이전에 사람들이 우려하던것보다 더욱 깊어졌으며 자산이 부호들에게 집중되고 그로 인하여 대가를 치르는것은 다름아닌 사회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하였다.

영국의 한 종교인은 자본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무자비한 리득을 추구한다고 비난하면서 《시장경제는 인간의 탐욕에 의해 지배되는 체계》라고 비판하였다.

자본가계급의 치부욕에는 한계가 없다.억대의 자본을 깔고앉아있으면서도 근로대중의 땀에 절은 푼전마저도 깡그리 빼앗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여짜는것이 자본가계급이다.

도이췰란드의 한 철학자는 자본가계급의 끝없는 탐욕을 두고 재산은 바다물과 같은것으로서 많이 먹으면 먹은것만큼 갈증을 느낀다고 신랄히 야유조소한바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많은자들은 억만금을 뿌려가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사치와 향락에 물젖어있지만 절대다수 근로대중은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속에서 살아가고있다.

얼마전 영국의 한 잡지에 《〈환대〉받는 애완용개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자본주의사회의 부패상에 대해 까밝힌 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 도꾜에는 애완용개들을 위한 운동시설이 여러개나 세워져있는데 여기서는 개들이 수영수업을 받고있다.

도꾜에서는 유모차에 애완용개를 태우고 버젓이 다녀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애완용개들에 대한 장례를 전문화하는 기업들까지 줄줄이 생겨나고있다.》

한쪽에서는 돈이 없어 병이 나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배우고싶어도 학교에 가지 못할 때 자본가들은 저들의 저속하고 변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데 천만금을 아끼지 않고있으니 자본주의사회가 과연 누구를 위한 사회이고 누구에게 필요한 사회인가를 잘 알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불평등은 언제 가도 해결될수 없으며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있다.

미국의 한 언론인은 《자본주의제도에서 불평등현상은 피할수 없는것이다.》고 하면서 자본주의의 반인민적정책이 불평등현상을 더욱 격화시킨다고 까밝혔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량극분화, 빈부격차는 곧 사회적모순과 대립의 격화에로 이어지고있다.오늘 자본주의에 대한 근로대중의 반감은 계속 커가고있다.

2016년에 하바드종합대학의 정치연구소가 18~29살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데 의하면 응답자의 과반수가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였다.

올해에만도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나라들에서 근로대중을 억압하고 그들의 생존권을 유린하는 당국과 재벌들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파업과 시위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세계곳곳에서 삶의 막바지에 이른 수많은 근로대중이 떨쳐일어나 《우리는 99%이다!》,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웨치고있다.

이것은 곧 반동적인 자본주의사회제도에 대한 울분이고 항거이다.

착취와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기마련이다.

력대로 반인민적인 사회제도는 근로대중의 배척을 면치 못하였다.자주적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근로대중의 투쟁에 의해 노예제도가 멸망했고 봉건사회가 력사의 내리막길을 걸었다.

자본주의의 운명 역시 달리 될수 없다.

리철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