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월 22일 로동신문

 

혁명의 천리길과 더불어 빛나는
절세위인의 애국의지

 

위대한 당을 따라 력사의 만난시련을 승리적으로 헤쳐온 우리 인민이 성스러운 투쟁의 보폭, 정면돌파전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짚었다.

이 거세차고도 줄기찬 전진속에 맥맥히 흐르는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주, 자립, 자위로 빛나는 주체의 넋과 숨결이다.

주체의 기치높이 광명한 미래를 마중해가는 오늘의 벅찬 현실을 대할수록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혁명의 천리길이 조선혁명사에서 얼마나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인 로정이였는가를 깊이 새겨안는 우리 인민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가장 정확한 혁명로선과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제시하시고 탁월한 령도로 조선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현명하게 이끄시였습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4살 어린 나이에 혁명의 큰뜻을 품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의 길에 나선 위대한 지도자는 오직 수령님밖에 없다고 교시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시려 10대의 초엽에 혁명의 길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고절세의 애국자의 거룩한 행로를 더듬어보는 인민의 추억은 뜨겁다.

지금으로부터 95년전인 주체14(1925)년 1월 2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독립의 큰뜻을 품으시고 고향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가셔야 할 천리길중 절반이상은 무인지경이였다.

그 길에는 새 고개가 연방 나타나는 험산준령,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북방의 산악지대, 무쇠다리를 가졌다는 강계포수들도 오르기 저어하는 눈덮인 오가산과 수많은 높은 령들이 있었다.

이런 위험천만한 길을 떠난다는것은 담대한 배짱과 강의한 의지가 없이는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모진 추위와 눈덮인 험한 산악도 우리 수령님의 발걸음을 멈춰세울수 없었다.

2년전에 걸으신 그 길이 조국과 민족을 더 잘 알기 위한 배움의 천리길이였다면 이날에 나서신 길은 나라찾는 민족사적위업을 기어이 실현할 비장한 맹세를 안고 걸으시는 광복의 천리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두고 조국을 한시바삐 되찾고 그 모든것을 영원한 우리의것, 조선의것으로 만들고싶은 념원이 불길처럼 자신의 가슴속에 타번지였다고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길에 다시 오르시면서 수난당한 우리 민족의 얼어든 가슴에 투쟁의 불길을 지펴 일제를 쳐물리치고 기어이 조선을 되찾으려는 결심과 의지를 굳게 가다듬으시였다.

만경대를 떠나 열사흘째 되는 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평에 도착하시였다.

나루터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차 압록강을 건느지 못하시고 강뚝에 서계시였다.

팔도구로 건너가시자니 지나온 조국산천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당기고 고향을 떠나실 때 사립문밖까지 따라나오면서 자신의 손을 쓸어주고 옷깃을 여며주고 눈보라를 걱정해주며 눈물짓던 할아버님, 할머님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발걸음을 옮길수가 없으시였던것이다.

이제 뚝을 넘고 강만 건느시면 눈물이 마구 쏟아져나와 견디지 못할것만 같으시였다.

찬바람이 불어대는 두 나라 지경에서 신음하는 조국산천을 돌아다보시느라니 사랑하는 고향으로, 고향집으로 다시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에서 보내신 세월은 비록 두해밖에 안되였으나 그 기간은 참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신 나날이였다.

가장 귀중한 체험은 우리 인민이야말로 소박하고 근면하고 용감하고 강의한 인민이며 이런 인민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킨다면 반드시 이길수 있다는것 그리고 일제야말로 우리 인민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가장 흉악한 교살자이며 우리 인민에게 참을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을 강요하는 악독한 착취자, 략탈자라는것, 조선민족은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일제를 몰아내고 독립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신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평나루터아래쪽으로 좀더 내려가 여울목에서 압록강얼음판에 발걸음을 무겁게 내디디시였다.

폭이 백자도 되나마나한 이 강만 건느면 팔도구시가이고 그 강안거리에 사랑하는 어머님과 동생들이 있는 집이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하직하면 언제 다시 이 강을 건너보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여 선뜻 강건너쪽으로 발을 옮겨놓을수가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뚝우에 나딩구는 조약돌을 하나 집어들고 손바닥에 감싸쥐시였다.

조국의 표적이 될수 있고 조국을 추억할수 있게 하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지고가서 소중히 간수하고싶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며 천천히 강건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받치는 설음과 비분을 안고 조국산천을 몇번이고 돌아보시였다.

퍽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의 심정을 회고록에 이렇게 쓰시였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하고 생각하였다.이런 생각을 하니 어린 마음에도 비감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그때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눈앞에 그려보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였다.》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 맹세속에 어떤 일이 있어도 기어이 나라를 찾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신념이 맥박치고있었다.

조국과 인민앞에 다지신 그날의 맹세를 지켜 위대한 수령님께서 헤쳐오신 혁명의 천만리길은 얼마나 간고하였던가.

바로 그 맹세를 지키는 길이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보라만리, 혈전만리를 꿋꿋이 헤치시며 기어이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안아오시였다.

조선혁명의 개척자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절세의 위인상과 더불어 길이 빛날 혁명의 천리길은 빨찌산의 아들이신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장엄한 진군길로 변함없이 이어져왔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이으시여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새로운 진군활로를 과감히 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

그이께서 계시여 우리 조국은 주체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강국의 그날을 향하여 질풍노도쳐 내달리고있다.

희세의 위인을 높이 모시여 끝없이 휘황찬란할 우리 조국의 미래를 확신하며 천만의 심장은 세차게 고동친다.

글 본사기자 김일권
사진 본사기자 리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