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2월 22일 로동신문
로동신문사 기자, 편집원들의
생눈길을 헤치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이 시작되여 벌써 여러날 흘렀다. 행장을 차리고 답사숙영소앞마당에 나서니 백두산바람에 펄럭이는 붉은기가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는듯싶었다. 답사행군의 나날에 어느덧 정이 든 이깔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들도 새날의 행군길에 오른 우리를 바래우는듯 아지들을 가볍게 흔들고있었다. 사기충천한 대오는 《베개봉숙영지는 베개봉숙영지는 해발 1600여m를 헤아리는 베개봉기슭의 천연수림속에 자리잡고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숙영지에 들어선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회의를 지도하시는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정녕 그것은 원쑤의 백만대군이 밀려들고 천겹만겹의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오직 맞받아 뚫고나가는 정면돌파전의 백두의 공격정신으로 부닥치는 모든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자! 이러한 신념과 의지가 베개봉숙영지를 돌아보는 우리의 가슴속에 용암마냥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우리의 결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베개봉숙영지에 대한 답사를 마치고 큰길에 나서니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했다.답사행군대는 큰길이 아니라 항일유격대원들이 줄기차게 헤친 생눈길을 택하였다.무릎치는 눈길이였다. 말이 쉽지 한걸음한걸음 정녕 쉽지 않은 길이였다.잠간사이에 목에서는 겨불내가 났다.그래도 처음 얼마동안은 질서있게 행진해가던 대오가 둔덕 하나를 넘어서기도 전에 행군속도가 떠지기 시작하였다. 서로 손을 부여잡으며 끌어당기고 떠밀어주며 한치한치 전진해가는 우리의 마음은 항일전의 그날의 행군대오에 선듯 한 심정이였다.《휴식!》구령이 내려지기 바쁘게 너도나도 눈우에 펄썩펄썩 주저앉았다. 뜨뜻한 방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고 든든히 차비를 한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투사들은 적들의 끈질긴 추격속에서 끼니를 번지며 키를 넘는 생눈길을 무슨 힘으로 헤쳐갔을가. 불현듯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고난의 행군》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가야 한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기어코 조국으로 가야 한다. 비록 앞을 막아나서는 시련과 난관이 산같고 바다같다 한들 한태혁이가, 정지성이가, 김재영이가 불행에 우는 우리 겨레를 구원하고 변주사같은 무리들에게 보복하는 이 행군을 마다할것인가. …우리의 모든 혁명전사들이 강철처럼 굳센것은 이미 계급해방의 갈증으로 하여 저도모르게 생눈을 입에 넣으니 항일전의 그날 밥이나 빵대신 자기들이 삼키는 눈속에 영양소가 있을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고 그 가설에 대한 론쟁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던 투사들의 강의하고 락천적인 모습이 떠올라 눈굽이 뜨거워났다. 대오를 정돈하고 또다시 행군해가는데 이번에는 앞서가던 한 동무가 눈속으로 쑥 빠져들었다.생눈길이란 겉만 보고 걸어갈수 없는것이였다. 세찬 눈보라가 웅뎅이도, 골짜기도 온통 번번하게 메워버렸는데 이런 곳에서는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수 있다고 한다.다행히도 그리 깊지 않은 웅뎅이여서 여러명이 힘을 모아 눈속에 빠져들어간 동무를 끌어내올수 있었다. 생눈길, 정녕 그 길은 투철한 신념과 진정한 동지가 없이는 한치도 갈수 없는 간고한 길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안고 우리가 걸어온 자욱을 뒤돌아보느라니 피어린 생눈길을 헤치며 투사들이 겪었을 무수한 고난과 시련, 그들이 발휘한 초인간적인 투지와 영웅성 그리고 력사에 류례없는 그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이 가슴마다에 깊이 새겨졌다. 마침내 눈길행군을 성과적으로 마친 행군대오는 주체26(1937)년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부대가 여기에서 류달리 우리의 눈길을 끈것은 홈을 파놓은 나무였다. 천막자리나 우등불자리, 밥지은 자리와 껍질벗긴 나무들은 여러 혁명전적지에서 많이 보아왔지만 이런 나무는 처음이여서 모두가 눈여겨 살펴보았다.그러는 우리에게 강사는 투사들이 꿈결에도 그리던 사랑하는 조국땅을 밟게 된 기쁨과 격정을 무엇으로든 기념하고싶어 키높이 자란 나무에 도끼로 홈을 파놓은 자리라고 설명해주었다. 수십년전 항일유격대원들이 조국진출기념으로 새긴 아름드리나무의 수수한 홈, 비록 그 어떤 뜻깊은 글자도 멋진 그림도 아니였지만 그것이 우리의 가슴속에 그렇듯 세차게 파고든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조국에 대한 항일혁명선렬들의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였다. 그 열화같은 조국애에 떠받들려 이 땅우에 조국해방의 새봄이 찾아오고 인민의 행복한 새 생활이 꽃펴난것이 아니던가.
밀림이 설레인다
우리의 발걸음엔 나래가 돋친듯 하였다.적의 포위환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가 백일대로행군을 단행하여 무산지구로 진출한 길우에 올라서니 누군들 흥분하지 않겠는가. 눈을 감으면 이 길을 따라 보무당당히 행진해가던 항일유격대원들의 모습이 삼삼하고 눈을 뜨면 이 길 어디선가 빨찌산의 생생한 발자취를 발견할것만 같은 우리들이였다. 혁명가요를 부르며, 빨찌산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대오가 길을 절반정도 축냈는데 바람결이 점차 세차졌다.날려오는 눈가루가 뺨을 때리고 대오의 기발은 더욱 세차게 펄럭이는데 우리의 머리우에서 밀림이 설레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 하늘을 찌르고선 백두의 밀림이 내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빨찌산이 부르던 힘찬 노래소리가 세월의 언덕넘어 울려오는가, 아니면 일껏 닦아놓고 준공검사를 기다리던 국경경비도로로 시퍼런 대낮에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가 행군해갔다는 소식을 듣고 《미증유의 괴사》라고 아우성치던 놈들의 통쾌한 비명소리를 전해주는가. 우리는 숨소리마저 삼가하며 밀림의 목소리를 들었다. 투사들의 령혼을 고이 지키며 백두대지에 뿌리박은 나무들, 백두산에 넋을 얹고 사는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주고도 못 바꿀 재보로 귀중히 여기는 그 나무들이 말하고있었다. 삼지연을 거쳐 무산지구로 행군해가는 유격대원들의 얼굴이 온통 붉게 보일 정도로 가득 피였던 조국의 진달래에 대하여, 얼마나 아름다운 산천을 일제에게 강탈당했는가를 사무치게 새겨주었던 수십년전 그날의 행군에 대하여 밀림은 이야기하는듯싶었다. 대오는 어느덧 무포숙영지에 도착하였다. 강사는 이곳에서 당시 무포지구는 개활지대였고 멀지 않은 곳에 적들이 도사리고있어 유격대원들은 천막을 치지 않고 숙영하였다고 한다.원쑤들이 총구를 겨누고있는 곳에서 가랑잎을 깔고 한밤을 보냈을 투사들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는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15성상을 그렇게 따뜻한 온돌도 없이, 두툼한 이불도 없이 한지에서 보낸 투사들, 북방의 5월이라면 쌀쌀한 바람이 군복자락으로 새여들고 선뜩한 습기가 가랑잎새로 스며들어 쉬이 잠들지 못했으리라. 나라를 찾겠다고 무장을 잡고나선 장한 아들딸들, 불굴의 혁명가들에게 조국의 밀림은 나무껍질과 가랑잎밖에 안겨줄것이 없었다. 참으로 항일전장을 누비며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조국을 찾아준 혁명의 1세들에 대한 추억은 가장 숭엄한 추억인 동시에 가장 감동어린 추억이였다. 사령부자리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몸소 밥을 지으신 자리, 우등불자리, 껍질벗긴 나무 등을 주의깊게 돌아본 우리는 이깔나무그루터기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무산지구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한 항일의 대오가 바로 그 이깔나무를 찍어 가로놓아 두만강을 건너갔다고 한다. 많고많은 사연을 돌기돌기 년륜과 함께 안고있는 이깔나무그루터기, 무포땅에 새겨진 빨찌산의 자취를 영원히 력사에 남기고저 그날의 년륜을 고이 간직하고있는듯 한 그루터기앞에서 우리는 보았고 들었다. 투사들의 가슴에 끓던 신념의 맹세, 떠나며 바래우며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두볼에 흐르던 뜨거운 눈물, 그 모든것을 한품에 안고 사품쳐흐르던 두만강의 물소리를.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는 무포의 낚시터도 돌아보았다. 혹한의 두터운 얼음으로 하여 그 일부분만이 보이는 바위, 평범한 그 바위가 전하는 사연이야말로 청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의미를 가지고있는것이다.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나갈 철석의 의지를 안으시고 주체사상을 답사행군대원들은 그 바위곁에서 뜻깊은 사진을 남기였다. 걸음을 옮기는 우리에게 얼음과 눈속을 헤치고 흘러흐르는 강물은 이렇게 속삭이는것 같았다. 력사의 땅 무포를 잊지 말라고, 두만강기슭에 새겨진 절세위인들의 발자취를 영원히 안고 살라고.
오늘도 울려오는 항일전의 메아리
어느덧 우리는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앞에 섰다. 태고연한 밀림속에 자리잡은 대홍단벌, 항일전의 그날 이깔과 철쭉으로 뒤덮였던 무인지경에 오늘은 승리의 기념탑이 우뚝 솟았다. 《백두산대학》이야말로 총탄이 비발치던 항일의 격전장을 직접 걸으며 공격전의 혁명강의, 빨찌산전법의 혁명강의를 받는 뜻깊은 교정이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은 마냥 달아올랐다. 봄이면 철쭉꽃이 온 벌을 붉게 물들인다는 여기, 더듬으면 눈속에 묻힌 덤불속에서 그날의 탄피를 주을수 있을것만 같았다.항일의 옛 전구를 주름잡아 달리신 백두령장의 군마의 발굽소리도 금시 들려오는것 같기도 하였다. 신사동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을 벌리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와 항일유격대원들, 인민들의 모습을 형상한 부각군상을 돌아본데 이어 대홍단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꾸려주신 령활한 유인매복전으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긴 그날의 빛나는 승리를 한눈에 안아볼수 있는 지휘처, 적들의 총구가 번뜩이던 세그루의 이깔나무부근으로부터 불과 수십보 되나마나한 거리에 자리잡은 지휘처에서 우리는 언제나 총포성울리는 가렬한 격전장에서 항일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신 백두산청년장군의 담력과 지략을 가슴뜨겁게 안아보았다. 지구의 동쪽에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고 서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박두하고있던 당시의 환경속에서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는 악선전으로 우리 인민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대부대를 거느리시고 천만대적의 포위진을 뚫고 여기 대홍단벌에서 멸적의 총성을 높이 울리신 그날의 전투에 대하여 지휘처에서 울린 사격명령에 따라 수백정의 총들이 일시에 불을 뿜는 벅찬 광경을 상상해보며 오래도록 지휘처를 떠나지 못하던 우리는 세그루의 이깔나무앞으로 다가갔다. 빨찌산의 후손들에게 백두고원의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부디 오래도록 서서 이 땅을 찾고찾는 사람들에게 항일전의 이야기를 전해주라고, 흰눈덮인 항일의 전구를 달리시던 우리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대홍단전투에서 유일하게 희생된 김세옥동지의 반신상앞이였다. 7련대를 따라온 목재소로동자들을 안전구역으로 피신시키다가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24살을 일기로 불같은 생을 조국위해 바치고 떠나간 투사의 반신상앞에 우리는 삼가 꽃다발을 놓았다. 아직도 열정에 불타는듯 한 투사의 눈길을 마주하고 우리는 오래도록 생각을 이어갔다.몇년후면 그토록 바라던 조국해방을 볼수도 있은, 살아있었더라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며 일하고 또 일했을 김세옥동지. 우리는 입속으로 시 한구절을 조용히 읊어보았다. … 조국이여, 진정 너는 무엇이기에 너의 한치 땅을 위해 애어린 청춘들 웃으며 꽃처럼 졌고 쓰러지면서도 못 잊어 두팔가득 너를 그러안고 갔더냐 … 숨지면서도 눈동자에 고이 안고갔을 조국땅, 투사가 영원히 안긴 이 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사무치게 우리의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선렬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게 살아갈 맹세를 대홍단벌에 남기고, 열번이고 백번이고 이 전구를 다시 찾아 혁명열, 투쟁열을 배가해갈 결심을 다지며 우리는 답사로정을 이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