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3월 16일 웹 우리 동포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9권

명령은 무조건 끝까지 관철해야 한다

  오  백  룡                     

 

혁명조직과 상부의 명령, 지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끝까지 관철하는 혁명적기질은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히 간직하여야 할 품성이다.

아무리 좋은 결정이나 방침이 채택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집행하는 일군들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정확하게 끝까지 관철하지 않는다면 그 결정과 방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오직 혁명전선의 모든 단위에서 투쟁하는 모든 일군들이 어떤 어려운 정황이나 조건에서도 높은 책임성과 완강성을 가지고 혁명임무를 철저히 관철할 때에만 혁명의 승리를 쟁취할수 있는것이다.

지난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사령부의 명령과 조직의 지시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언제 어떠한 조건에서도 반드시 그를 어김없이 실천하는 혁명적기풍을 견지하고 싸워왔다.

일제의 강대한 무력을 상대로 싸워온 항일유격대원들은 오늘의 조건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곤난과 애로를 헤치면서 하나하나의 혁명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만약 그때에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지기를 바라거나 쉽고 헐하게 일해보자는 안일한 생각에 조금이라도 사로잡혔다면 혁명에 나서기는커녕 혁명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것이며 혁명의 길을 걸을수도 없었을것이다.

우리는 혁명임무를 수행하는데서 조건이나 능력을 앞세워 생각한것이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며 또 할수 있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항상 이악하게 달라붙어 어떤 난관도 물리치며 맡은 임무를 끝까지 정확하게 실천하군 하였다.

1940년 가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우리 부대앞에는 겨울을 날 량식을 마련해야 할 과업이 긴급하게 나서고있었다. 이것은 적의 집중공격으로부터 부대의 력량을 보호할뿐아니라 이 겨울동안에 부대의 전투력을 군사, 정치적으로 더욱 강화하며 나아가서는 장차 일제에게 더욱 큰 타격을 주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사업이였다.

이 과업은 영예롭게도 우리 련대가 맡게 되였다.

이것은 적들의 《토벌》력량이 집중된 정황속에서 800여섬의 식량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이만저만한 과업이 아니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 《이 일은 부대의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꼭 실천해야 하오.》라고 당부하시며 자신께서 차고다니시던 《단모폴》싸창을 나의 손에 쥐여주시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는 맡은 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느끼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과업을 기어이 수행해내고야말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사령관동지로부터 우리는 출발에 앞서 행동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받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선 연길현 로두구근방 집단부락의 적을 쳐서 부대가 당장 먹을 식량을 마련해놓고 돈화, 안도쪽으로 나가서 겨울날 량식을 해결할데 대하여 그리고 그곳까지 어떻게 행군해가며 부락의 적은 어떻게 치며 또 겨울량식을 보관할 비밀장소는 어떻게 만들것인가 하는것 등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곧 련대를 인솔하고 연길현쪽으로 떠났다.

우리 련대는 행군을 다그쳐 로두구방향으로 나갔다. 그러나 행군은 예상했던것처럼 빠르지 못하였다.

당시 적들은 우리 혁명군부대를 《소멸》하자는 기도밑에 저들의 《토벌》력량을 이 지대에 집결시켜 산릉선들과 골짜기들을 타고 눌러앉아서 우리의 길목을 지키군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산중복을 타면서 놈들을 이리저리 피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렇게 되여 행군은 더디게 되고 날자도 곱절이나 걸리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대원들의 끼니가 문제로 되였다.

당장 식량을 마련하여 대원들의 기운을 돋우어가지고 가자면 목적지까지 가기도 전에 폭로될수 있었다.

굶더라도 부득이 그대로 로두구근방까지 가는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서로 부축하며 계속 행군해가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앞서나가던 4중대동무들이 하나둘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부득이 휴식명령을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인제는 전련대의 성원들이 일시에 누워버리는것이였다.

어떠한 힘으로 그들을 다시 일떠세울것인가를 생각하는 우리 지휘관들의 가슴은 미여지는것 같았다.

우리는 모여앉아 토론한 끝에 우선 련대의 식량부터 해결하기 위하여 가까운 곳을 한군데 치기로 하였다.

나는 부근에 있는 도로공사장의 적을 치자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기운이 빠져 누워있는 형편을 보고서는 선뜻 명령을 내리지 못하였다.

명령을 내리기 전에 우선 정치사업을 선행하는것이 중요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누워있는 대원들에게 다가가서 떠나올 때 사령관동지께서 하시던 말씀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면서 도로공사장의 적을 칠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결사대로 나갈 동무들은 일어나라고 호소하였다. 한사람, 두사람 비척거리며 일어나서 렬을 지었다. 나는 그들중 열다섯사람을 선발했다.

우리 열다섯사람은 풀죽으로 한끼를 에우고 곧 공사장을 향해 떠났다. 공사장 못 미친 고개마루에 수비대병실이 있었는데(그곳에는 50여명의 병력이 주둔하고있었다.) 우리는 은밀히 병실에 접근하여 포위하고 기관총으로 계속 위협사격을 하여 놈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대부분의 동무들은 공사장창고를 열고 쌀, 밀가루, 소금, 기름 등을 로동자들에게 지워가지고 철수하였다.

이렇듯 중로에서 우리는 많은 식량을 해결했다.

우선 밀가루로 가재탕을 끓여 누워서 일어못나는 동무들의 기운을 돋우는 한편 로획한 식량을 사령부로 보내였다.

이리하여 목전에 부딪친 위기를 타개하고 상당한 식량을 해결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반면에 우리의 행로가 적들에게 폭로되여 놈들의 력량이 이곳에 집중되게 됨으로써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치기가 매우 어렵게 된 정황이 조성되였다.

나는 련대의 군정간부들을 모아놓고 이를 타개할 방도를 토론하였다.

그런데 일부 동무들은 사령부가 지시한대로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칠 방도보다는 어떻게 하면 포위에 들수 있는 위험에서 빨리 벗어나겠는가를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그들은 도로공사장을 침으로써 식량을 해결했으니 사령부의 명령은 집행된셈이라고 하면서 어물어물하지 말고 멀리 빠져나가야 한다는것이였다.

얼핏 생각하면 이러한 의견이 타당한것 같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런 의견에 찬성하는 동무들도 적지 않았다.

련대지휘관들속에서 이런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는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였다.

어떠한 복잡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상급의 명령을 어김없이 정확히 집행하는것은 혁명조직의 규률인것이다. 더구나 혁명군대에서 명령에 대한 어떠한 자의적인 해석도 자의적인 변경이나 대치도 절대로 용허될수 없는 일이다.

만일 저마다 자의적으로 상급이 제시한 공격목표나 시간과 행군경로를 도중에 함부로 고치려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그 사업자체를 그르치게 하는것은 물론 혁명조직자체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리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올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어떠한 조건에 부닥치든지간에 명령은 한치의 어김도 없이 집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도로공사장의 적을 치고 다소의 식량을 해결했다고 해서 그것으로써 결코 사령부의 명령집행을 대치할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령을 집행하기 위하여 부득이 취해진 하나의 보조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은것이였다.

그러나 일부 지휘관들은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치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한낱 식량의 해결을 위한 방도로서만 리해하고있었다.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치라는 사령관동지의 명령가운데는 식량의 해결과 함께 적들의 력량을 그곳에로 끌어냄으로써 우리가 활동하는 지역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게 하자는 전술적인 의도가 담겨져있는것이였다.

나는 바로 이점을 련대지휘관들에게 설득시켰다. 이리하여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쳐야 한다는 명령은 자의로 변경할수 없는 임무라는것을 모든 사람이 깊이 인식하였다.

우리들은 도로공사장의 적을 친데로부터 조성된 적정을 검토하고 그 대책을 신중히 토론했다. 그리하여 다시금 하나의 복잡한 보조적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치기 곤난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것은 이 지구로 집중된 적《토벌》력량을 다른데로 유도하는 문제였다. 이를 위하여 련대의 한개 소부대력량은 적을 딴 방향으로 끌고가게 하고 주력은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치기로 하였다.

우리의 작전계획은 적중했다.

우리 유인대의 유인전술에 속아넘어간 적들은 미친듯이 총질하며 우리가 예정한 방향으로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우리 련대의 주력은 이 기회를 리용하여 은밀히 빠져서 반대방향으로 행군해갔다.

그날밤으로 우리는 로두구근방산기슭에 이르러 휴식하면서 집단부락의 적을 칠 만단의 준비를 하였다.

로두구근방집단부락으로 말하면 적들의 《토벌근거지》로서 견고하게 꾸려진 곳이였다. 두리에는 높고 견고한 토성을 쌓고 그 3m밖으로는 4m 너비에 2m 깊이를 가지는 큰 물도랑을 파놓았었다.

적들은 토성 네귀와 부락중심에다는 높은 포대를 쌓아놓고 여기서 주야로 보초를 서고있었다. 우리는 성밖에 나와 밭김을 매는 농민을 통하여 때마침 그곳에 주둔해있던 경찰놈들이 《토벌》에 다 동원되고 불과 열대여섯놈이 남아서 성을 지킨다는것을 알았다.

우리는 대담하고 날쌘 대원들로써 돌격대를 조직하는 동시에 긴 사다리 세개를 만들어가지고 그날밤 집단부락토성밑으로 접근해갔다.

주력은 성문앞에 매복하고 돌격대원들은 포대와 포대사이의 공간으로 은밀히 접근해들어갔다.

그들은 물도랑에 사다리를 놓고 건는 다음 다른 한조의 사다리를 토성에 기대고 기여올랐다. 어떻게 감쪽같이 행동했던지 적들은 성문보초가 무장해제를 당하고 우리 주력이 부락에 돌입할 때까지 아무런 기미도 못차리고있었다.

우리는 총 한방 쏘지 않고 15명의 경찰을 무장해제하고 놈들의 창고를 헤쳐서 많은 쌀과 부식물을 로획하였고 《민회》소 60여마리를 끌어내였다. 마침 이곳은 도로공사의 본거지로서 많은 물자가 저장되여있었다.

우리는 있는 수송수단을 다 동원하여 힘껏 싣고 지고 부락에서 철수하였다.

이곳 인민들도 우리의 식량운반을 적극 도와나섰다.

나는 사령부의 명령대로 로두구근방집단부락의 적을 치고 승리의 개가 드높이 사령부로 돌아오던 때의 그 기쁨을 오늘도 가슴흐뭇이 회상한다. 명령을 어김없이 실천해낸 다음에 맛보는 기쁨이란 그 무엇에 비할수 없이 보람차고 자랑스러운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련대의 활동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특히 그이께서는 사령부에서 지시한대로 집단부락의 적을 친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바로 이 작전이 단순히 당면한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앞으로 부대의 활동과 더 많은 량의 식량을 마련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고 치하하시였다.

우리는 이미 얻은 성과에 자만하지 않았다. 우리는 보다 큰 새로운 임무의 수행으로써 그이의 높은 신임에 다시금 보답하리라는 굳은 결심을 다지였다.

식량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였다. 사령관동지로부터 우리 련대에 안도지방에 진출하여 식량을 공작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였다.

그이께서 현명하게 예견하신대로 적의 《토벌》력량은 연길쪽으로 쏠리고 안도쪽은 텅 비여있었다. 우리 련대는 이 약점을 리용하여 대전자, 푸르허쪽으로 재빨리 진출하였다. 우리는 소부대들을 화룡현경쪽으로 파견하여 적들의 동태를 살피며 이리저리 적들을 유인하는 동시에 산간지대인민들과 련계를 가지고 강냉이, 밀 등을 닥치는대로 사들여서 비밀장소에 묻군 하였다.

밀은 이미 수확기가 지났으므로 농민들로부터 가루로 사들여서 묻었지만 강냉이, 수수, 콩 등은 밭에서 산채로 산 다음 직접 우리 손으로 가을을 해들여 묻었다. 이 사업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적들의 력량이 우리에게로 쏠리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더욱더 힘들어졌다.

원쑤들은 연길현 로두구일대에 몰려가서 우리의 종적을 찾다가 허탕을 치게 되자 이번에는 화룡, 안도일대에 퍼져가지고 산발과 골짜기들을 참빗으로 훑듯이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비행기를 띄우고 삐라를 뿌리며 미쳐날뛰였다.

《너희들은 바다의 좁쌀알과 같다. 무모한 반항을 말고 귀순하라!》느니, 귀순한 아무개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있다느니 하면서 삐라를 얻어가지고 오는 사람이면 살려준다고까지 떠들어대고있었다. 놈들은 갖은 방법으로 우리 대렬을 와해해보려고 발악했다.

밤이면 적《토벌대》들이 피우는 우등불이 골짜기마다에 환히 타오르군 하였다.

적들이 이렇게 기승을 부릴수록 우리들은 더욱 용기를 내여 식량공작을 다그쳤다.

몇사람씩 소부대로 나뉘여 적들의 우등불사이로 솔솔 빠져다니며 밭에서 강냉이를 따서는 감쪽같이 묻군 하였다.

그러자니 곤난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때로는 놈들의 보초에 걸리여 밤새워 싸우며 빠져나오기도 하였고 어떤 날 밤에는 가을걷이 해가지고오던 량식을 송두리채 잃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싸움은 어려워지고 적의 발악은 날이 갈수록 심해갔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였을 때 대렬내에서 타락분자가 생기고 적의 간교한 술책앞에서 동요하는자들이 생기지 않는다고 단언할수 없는 일이다.

하루는 천막안에서 자다가 깨여보니 내옆에 누웠던 한 대원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변소에 갔으려니 하고 심상하게 생각하였다. 적지 않은 시간이 경과해서도 그는 천막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의심이 생기여 두루 천막안을 찾아보니 그의 배낭도 없을뿐아니라 걸어놓았던 기관총이 온데간데 없었다. 모두 떨쳐나 숙영지부근을 찾아보았으나 그 종적을 알수가 없었다.

이자는 원래 산림대에서 넘어온자로서 혁명적단련이 부족하였고 평소부터 의지가 굳지 못한자였다. 더구나 우리 부대에 넘어온지가 얼마 안되여 혁명적영향을 적게 받았고 우리도 짜고들어 그를 교양개조하지 못했던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그는 정세가 날로 험악해지고 적들의 기만선전도 강화되자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고 마침내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곤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앞에 투항해간것이였다.

비겁분자의 투항은 련대앞에 말할수 없는 곤난을 덮씌웠다. 그것은 그자가 우리의 활동지역과 근거지를 알고있으며 우리의 활동방법까지 속속들이 꿰들고있었기때문이다. 적들이 당장에라도 그놈을 앞세우고 우리를 생포하려고 달려들것이 명백해진 이상 우리는 그자리에서 한시라도 지체할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피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식량을 마련하는 일이 틀어지고마는것이 문제였다.

이미 절반이상이나 성사를 본 일을 중도에 그만둘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때 정황으로 보아 다른 곳에서는 식량을 마련할 가망이 전혀 없는 형편이였다.

하물며 여기를 뜬다는것은 사령부의 명령을 관철하지 못한다는것을 의미하며 전부대가 식량없이 설한풍속에 나눕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고 생각하니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나는 변절자가 도주한 그 즉시로 숙영자리를 옮긴 연후에도 난처한 립장에서 모대기고있었다.

이런 정황에서 명령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사령부로 돌아간다 해도 크게 탓하지 않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명령을 집행했다고는 결코 볼수 없는것이다.

더구나 전체 부대가 엄동설한에 식량이 없이 겨울을 나게 된다는것은 어느 한 지휘관의 단순한 책임문제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혁명앞에 무엇으로도 보상할수 없는 엄중한 죄를 짓는것으로 되는것이다.

전부대가 위험에 처하는것을 어찌 참을수 있겠는가.

원쑤들이 우리 혁명의 사령부를 없애보려고 발광하고있고 우리의 전대오를 와해해보려고 덤벼드는 때에 목숨바쳐 사령부를 보위하고 혁명대오를 수호하는것은 우리의 혁명적량심이며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지상명령이 아닌가.

우리는 끝까지 이곳에 남아서 사령부의 명령을 관철하리라 굳게 결심을 다지였다.

물론 그것은 련대를 위험속에 밀어넣을수도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자기 련대의 안전만 생각하고 전부대의 운명이 걸려있는 사령부의 명령을 어긴다면 그것이 무슨 혁명가의 행동이겠는가.

문제는 어떠한 전술로 적들을 유인하고 혼란시키여 있을수 있는 희생과 손실을 적게 내면서 명령을 재빨리 관철하는가에 달려있었다.

예견한바대로 엄중한 위험은 곧 우리에게 들씌워져왔다.

변절자는 원쑤들을 달고와서 우리의 활동구역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부근마을의 농민들까지 모조리 강제동원해가지고 산에다 불을 놓으며 우리를 찾아 돌아갔다.

산과 골짜기마다 화광이 충천하고 연기는 하늘을 덮었다. 놈들은 생명 있는 모든것을 다 태워버리자는 속심인듯 했다.

산짐승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이리저리 들판으로 내달리는 이 무서운 불길속에서 어찌 사람이 견디여 내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서 견디여낼뿐아니라 사놓은 곡식들을 거두어들여야만 하였다.

우리들은 놈들이 산에 불을 놓으면서 달려들 때는 야산 물홈에 엎디여 까딱 움직이지 않으면서 별동대를 조직하여 안도-화룡현계에 나가서 곡식밭을 가을하는척 부산을 피우고 돌아가게 하였고 화룡현마을들에도 나타나서 복새를 놓게 하였다.

아무리 불을 지르고 야단을 쳐야 기척이 없으니 공산군이 타곳으로 빠져나간 모양이라고 짐작하고있을 때에 화룡쪽에서 《공산군 대부대가 밭에서 가을걷이를 한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놈들도 속아넘어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리 별동대는 이렇듯 적을 교묘하게 유인하여 이리저리 끌고다니면서 근방을 뱅뱅 돌아갔다.

그러다가 적들의 공격이 좀 약해지면 다시한번 부락의 적들을 치군 하였다.

적들이 이와 같이 우리 별동대에게 끌려돌아다니는동안 부대의 주력은 력량을 집중해서 재빨리 대전자, 푸르허쪽에서 가을걷이를 다그쳤다.

그러나 밤마다 수십섬씩의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무리 감쪽같이 한대도 드러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적들도 이것을 모를리는 없었다.

적들은 다시 우리 활동구역에 나타나서 악착스럽게 따라다니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이번에는 산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아직 가을걷이를 하지 않은 밭들을 지키기 시작했다.

일은 자못 어렵게 되였다. 그렇다고 거의 끝나가는 식량공작을 중둥무이할수는 없었다.

우리는 밭을 지키는 적들을 한편으로 유인하고 뒤로 돌아가서 강냉이가을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의 보초선을 피해가며 식량포대를 나르기도 하였다.

밭 하나를 두고, 강냉이 한포대를 놓고 피어린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니 곤난은 헤아릴수 없이 막심하였고 희생도 없을수 없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강냉이포대를 끌고 들어서는 동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였다.

강냉이포대를 부둥켜안은채 밭머리에서 목숨을 거둔 대원인들 어찌 한두명뿐이며 중상을 입고 적의 손에 잡힌 동무인들 어찌 없었겠는가.

피로써 엮어지는 나날은 갈수록 우리에게 곤난과 희생을 더 들씌웠다.

그런데 엎친데 덮치는 격으로 가장 어렵고 엄혹한 시기에 나는 공교롭게도 열병에 걸리고말았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오장륙부가 마치 전류에 감전된것처럼 저리고 떨리였다. 나는 쓰러지면서 뒹굴면서 안도의 물곬을 헤매였다. 동무들은 나의 병을 치료하려고 나를 안전한 곳에 보내자고 하였다. 그러나 어찌 혁명전사가 명령을 관철하지 못한채 초소를 떠날수 있겠는가.

나는 깜박깜박 정신이 흐려질 때는 도랑에 굴러들어가서 랭수를 잔뜩 마시고는 정신을 다시 차리면서 열병과 싸웠다.

열병에는 랭수가 금물이라 하지만 깜박깜박 정신이 흐려질 때에는 그런것을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다.

내 머리를 완강하게 틀어잡고있은것은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였다.

이것은 다만 내가 삶에 대한 지나친 애착에서나 죽기를 두려워하는 심정에서가 아니였다. 우리 련대에 맡겨진 혁명임무인 식량공작을 완수할 때까지는 죽어서는 안된다는 일념때문이였다. 물론 죽음은 나를 이 참기 어려운 고통과 아픔에서 해방해줄것이지만 죽었다고 해서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수는 없는것이다. 혁명전사가 혁명이 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수치야말로 그 어떤것으로도 씻을수 없는것이다.

나는 악을 쓰고 기여다니면서 대원들을 임무수행에로 추동하였다.

그러나 곤난은 적의 악착스러운 공격과 질병 그리고 힘겨운 식량공작뿐이 아니였다. 그보다 더 고통스럽고 가슴아픈것은 우리 대렬내에서 변절자들이 나타나는것이였다.

가렬처절한 싸움에서 해가 지고 날이 밝던 1938~1939년 그 고난의 행군의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며 싸워온 우리 부대의 견실한 동무들만은 어떤 곤난속에서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림대에서 넘어온 일부 대원들은 정세가 어려워지고 곤난이 심해지자 신심을 잃고 동요하고 마침내 도주하고말았다.

혁명의 대오에서 변절자가 생긴다 하여 우리는 결코 락심하지 않았다.

변절자의 말로란 얼마나 비굴하고 더러운것인가.

인간의 존엄도 의리도 량심도 저버리고 더러운 목숨을 잇기 위하여, 한몸의 일시적안일을 위하여 원쑤들의 노복이 되고 개가 되여 살면 무엇을 하겠는가.

사람이란 한순간을 살아도 량심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하며 더우기 혁명가라면 오직 혁명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끝까지 혁명적지조를 지켜 싸울 때에만 삶의 보람이 있고 후대들앞에서도 떳떳한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고 혁명가요를 소리높이 웨치며 전진하였다.

투항분자들이 늘어갈수록 우리의 공작에서는 곤난과 시련이 더하여져갔다.

적들은 내가 열병에 걸려 운신도 못한다는것까지 알고 기를 쓰고 련대지휘부로 달려들군 하였다.

우리는 적《토벌대》들의 악착스러운 추격과 포위를 피하면서 산중복과 골짜기들을 빠져다니군 하였다.

련대지휘부에서도 점점 사람의 수효가 줄어들었다. 적탄에 쓰러지고 병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도 락심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정세가 복잡해지고 곤난이 심해질수록 더욱 불굴의 혁명정신을 가다듬고 이악스럽게 달려들어 식량공작을 다그쳤다.

그때 우리들은 일편단심 오직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철저히 집행하리라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낮에는 적들이 감히 짐작도 못할 야산밑의 물곬에 숨어있다가는 밤이 되면 적의 주위가 덜 돌려지고있는 평지밭으로 내려가서 가을해들여다 묻고는 그날밤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군 하였다.

나는 계속 열병에 몸을 덜덜 떠는 몸이였지만 끝내 넘어지지 않고 버티여갔다. 사실 사람의 의지력이란 무서운것이다.

그때 만일 내가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기만 했더라면 그자리에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을것이다.

마침내 우리 련대 전체 동무들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눈이 빠지기 전으로 800여섬의 식량을 대전자, 푸르허 깊은 골안의 안전한 곳에 저장하여놓고야말았다.

그때의 우리의 기쁨이란 이루 다 말할수가 없었다. 나는 이 소식을 사령부에 띄우고나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강한 의지로 지탱해나가고있는 동안은 감히 나를 어쩌지 못하던 병마가 명령을 집행했다는 안도감으로 하여 이제까지 자기 몸을 지탱해오던 강의성이 풀리는 틈을 타서 나를 쓸어눕혔던것이다.

만일 이때 최희숙, 김철만동무들의 극진한 간호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다시 살아나지를 못했을것이다. 그러나 설사 죽었더라도 나는 유한이 없었을것이다. 그것은 내가 사령부의 명령을 완수한 자랑속에서 숨을 거두었을것이기때문이다.

혁명전사에게 있어서 조직의 지시, 사령부의 명령을 빛나게 완수했다는 긍지는 참으로 크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그토록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고 그토록 가슴미여지는 동지들의 희생을 거쳐서 혁명임무를 수행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혁명적기풍이란 첫째가 당정책을 관철하려고 하는 불요불굴의 투쟁, 강한 의지로써 이악스럽게 투쟁하는 정신을 소유하는것을 의미합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혁명과업을 끝까지 철저히 관철하는 완강한 혁명적기풍은 우리 당의 주체적인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깊은 확신, 당과 생사운명을 끝까지 같이하려는 철석같은 혁명적각오의 표현이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정황이나 역경속에서도 당과 수령을 철옹성같이 보위하고 당의 로선과 정책을 견결히 옹호관철하며 당과 수령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여들어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투사가 되여야 한다.

우리는 또한 당, 행정, 군사의 모든 부문에서 당의 결정과 지시라면 한치도 드팀없이 철저히 관철하는 강한 혁명적규률을 세워야 한다.

어떤 부문, 어떤 단위에서 일하거나 오직 이러한 철저한 혁명적사업기풍을 확립하며 사업과 생활에서 그것을 습성화함으로써만 우리는 조국의 부강발전과 인민의 자유행복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 혁명가로서의 숭고한 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