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3월 12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장군님을 보위하기 전에는 누구도 죽을 권리가 없다

혁명투사 한흥권동지의 한생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을 보위하여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고 사령관동지의 명령관철을 위하여 적진속에도 주저없이 뛰여들며 필요하다면 생명도 아낌없이 바친 항일혁명투사들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모두가 본받아야 할 귀감입니다.》

우리 인민이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어떻게 받들어모셔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준 조선의 첫 세대 혁명가들가운데는 수령결사옹위전위투사로 영생하고있는 항일혁명투사 한흥권동지도 있다.

한흥권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된것은 그가 유격대에 입대한지 1년이 되여오던 주체22(1933)년 봄이였다.

이무렵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온성을 비롯한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일대에로 자주 진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중대를 친솔하군 하시였다.

그때 2중대 대원이였던 한흥권동지는 여러차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투쟁하는 영광을 지니였다.

그 나날에 한흥권동지는 비범한 예지와 세련된 령도, 고매한 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심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그이만 계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억척불변의 신념을 가슴에 새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충실성과 혁명적열정이 남달리 높은 한흥권동지를 소대장으로 임명하신데 이어 신설중대의 중대장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은 한흥권동지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관철하는 길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며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싸웠다.

주체23(1934)년 6월에 진행된 라자구전투때였다.

서산포대에 있는 적들의 발악적인 저항으로 하여 전투는 며칠째 가렬하게 진행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을 한목숨바쳐 관철할 일념 안고 앞장서 내달리던 한흥권동지는 적의 흉탄에 창자가 쏟아져나오는 치명상을 당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하고 과단성있는 지휘밑에 서산포대는 점령되고 전투는 승리로 결속되였지만 한흥권동지의 가슴은 아프기 그지없었다.상처의 아픔보다도 적탄이 비발치는 치렬한 격전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하고 그이께서 제일선에서 돌파구를 여시지 않으면 안되게 한 자책의 아픔이 몇곱절이나 더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총화에서 한흥권동지를 높이 평가하시고 그를 급히 후송하여 치료하도록 대책을 취해주시였으며 귀중한 보약재들과 영양제들을 마련하여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런 은정깊은 사랑이 있어 한흥권동지는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 불같은 동지애의 세계에 매혹되고 수령님이시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시라는 고귀한 진리를 심장깊이 체득하였기에 한흥권동지는 제1차 북만원정의 길에서 혁명의 수령을 어떻게 결사옹위하여야 하는가를 산모범으로 보여줄수 있었다.

주체24(1935)년 1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원정대가 북만에서 돌아오고있었다.

대오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북만의 생눈길을 헤치며 하루에도 4~5차례씩 피어린 전투를 벌리면서 천교령부근에 이르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만 촉한으로 몸져눕게 되시였다.

한흥권동지는 곧 대원들과 함께 발구를 만들고 거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였다.

혼미한 의식속에서도 의지를 가다듬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반일전가》를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반일전가》의 노래소리는 지칠대로 지친 대원들을 끝없이 고무하였고 그들의 가슴속에 필승의 신념과 의지를 안겨주었다.

뒤따르는 적들을 물리치면서 겹쳐드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어느 한 목재소에 이르렀을 때 대오는 다시금 적의 포위속에 들게 되였다.

한흥권동지는 대원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나갈 방도를 토론하였다.

한 소대장이 결사전으로 적의 약한 고리를 때리고 빠져나갈것을 제기하자 대원들모두가 동의하였다.

그때 한흥권동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들, 결사전으로 사선을 헤치고 돌아오지 못한 동무들이 얼마요.지금 우리들의 작은 두어깨에는 2천만 조선민족을 대신해서 조국의 운명이 떠받들려있소.조국의 운명, 조선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엄숙한 이 시각에 장군님을 보위하기 전에는 누구도 죽을 권리가 없다는것을 똑똑히 명심해야 하오.》

이렇듯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지닌 한흥권동지였기에 조선혁명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던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위할수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흥권동지의 불타는 충실성은 그후에도 언제 어디서나 변함이 없었다.

한흥권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신임에 의하여 북만부대에 파견되여 지대장의 중책을 지니고 활동하였다.

그때로부터 한흥권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사령부와 멀리 떨어져 활동하였으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지니고 수령님의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방침을 끝까지 관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그때를 추억하시며 이렇게 쓰시였다.

《북만지방의 유격운동을 심화발전시키는데서 간도출신 투사들이 준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고 말할수 있다.동만에서 실천투쟁을 통하여 충분히 검열되고 단련된 김책, 한흥권, 박길송, 안영, 최일, 전창철 등의 투사들은 북만에 가서도 적극적인 조직자, 선전자, 지도자가 되여 항일전쟁의 어려운 돌격로를 헤쳐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항일혁명투사 한흥권동지, 그의 생은 비록 길지 않았으나 조선혁명사에 아로새겨진 그의 위훈은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수령결사옹위의 넋을 새겨주며 끝없이 빛나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