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3월 21일 로동신문

 

자력갱생으로 승리떨쳐온 력사를 돌이켜보며

비상한 애국적열정과 견인불발의
투쟁본때로 창조한 《비날론속도》

 

주체50(1961)년 4월 흥남지구의 비날론공장건설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설자들이 많은 일을 해놓았다고 만족해하시면서 사실 이 공사는 작년 8월에 내가 왔다간 뒤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였다고, 돈받는것도 아니고 오직 애국심으로 해냈다고, 이제는 《평양속도》를 릉가하여 《비날론속도》가 창조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하다면 세상을 놀래운 《비날론속도》는 어떻게 창조되였는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력자강의 정신이 강하면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투쟁하여 화를 복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며 기적을 창조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묵은해의 잡초들이 무성하던 룡흥벌의 진펄길을 걸으시며 공장부지를 잡아주신 때로부터 중간공장건설을 비롯한 준비단계를 거쳐 비날론공장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된것은 주체49(1960)년부터였다.

사실 비날론공장건설문제가 일정에 올랐을 때 일군들속에서는 그 생산능력을 년산 2 000t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3 000t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6 000t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은 론의의 대상도 되지 못하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당시까지만 하여도 비날론연구집단의 피타는 탐구와 노력에 의하여 하루 20kg생산능력의 시험공장에서 첫 시제품이 생산된데 불과하였던것이다.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비날론공장을 힘들게 건설하느니 그 돈으로 다른 나라에서 화학섬유를 사다쓰는것이 경제적으로 타산이 맞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가난하고 헐벗은 우리 인민들에게 어서 빨리 좋은 옷감을 마련해주기 위한 이 거창한 사업을 어떻게 순전히 돈으로만 타산하겠는가고 하시면서 비날론공장건설규모를 년산 1만t으로 잡게 하시였다.

우리 과학자들과 로동계급은 기어이 해낼것이라는 크나큰 믿음과 우리 인민을 위하여서는 아까울것이 없다는 숭고한 사랑은 기적을 낳았다.

《모든것을 비날론공장건설에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이 전투적구호를 높이 받들고 전후 수많은 공장들을 훌륭히 복구건설한 어느 한 건설사업소를 중심으로 하는 위력한 건설력량과 인민군군인들 그리고 평남관개공사에서 이름떨친 3 000여명의 제대군인들이 룡흥벌로 달려왔다.

건설은 처음부터 수많은 난관에 부닥쳤지만 건설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높았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펄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면서도 1년이상 걸린다고 하던 합성, 정류, 빙초산, 중합, 점화직장의 기초굴착작업을 건설자들은 석달동안에 해제꼈다.건설장에 이런 구호가 나붙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들에게 질좋고 아름다운 옷감을 풍족히 공급하기 위하여 비날론공장건설을 더욱 촉진시키자!》

《이 공장을 어서 지어 아버지, 어머니, 누나에게 더 많은 옷감을 보내자!》

조금도 꾸밈없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 구호는 군인건설자들의 심장에서 나온것이였다.사랑과 믿음의 힘은 실로 컸다.

다음해 5.1절까지 비날론공장건설을 기어이 완공할것을 맹세한 군인건설자들은 8.28돌격대, 2.8돌격대 등 많은 돌격대를 조직하고 치렬한 경쟁을 벌렸다.

하루밤사이에 1만㎥의 토량을 퍼내고 5백여㎥의 콩크리트를 다졌으며 10만장의 벽돌을 쌓았다.

건설에 참가한 한 병사는 자기의 수첩에 이런 글을 적어넣었다.

《나는 두메산골에서 자랐다.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는 대를 이어오면서 베옷에 초신을 신고 살았다.하루속히 비단천을 짜서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옷감을 풍족히 공급하기 위해 내 어찌 노력하지 않겠는가.

비날론이 폭포처럼 쏟아질 그날까지 300%의 작업능률을 내기 전에는 병실에 들어가지 않겠다.》

이것은 한 병사, 군인건설자들의 마음만이 아니였다.

주체49(1960)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날론공장건설장을 찾으시였다.그때 공사장에서는 건설자들의 열의에 비해 자재, 설비보장이 따라서지 못하여 건설을 더 다그치지 못하고있었다.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완공을 예정기일보다 한달쯤 늦추어야 하겠다는 의견까지 나오고있었다.

공사장을 돌아보시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계부문 일군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 룡성기계공장(당시)의 한 부직장장은 일군들이 수입해야 할것으로 보던, 비날론공장의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 어려운 설비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 림산사업소의 혁신자는 통나무는 걱정말라고 하면서 베여놓은 통나무를 철도에서 빨리 실어내달라고 제기하였다.그러자 철도일군이 일어나 비날론공장건설장에 들어오는 물동은 일체 특수로 취급하며 건설자들도 다 특수공무로 취급하여 차표를 우선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즉시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결국 회의가 관계부문 열성자들의 궐기모임으로 되여 무거운 마음으로 참가했던 일군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였다.

이 나날에 있은 하많은 이야기들을 어찌 다 꼽을수 있겠는가.

비날론공장의 설비를 짧은 시일안에 생산보장하기 위하여 기계공장들과 함께 50여개의 큰 공장, 기업소, 탄광, 광산의 공무직장들이 비날론설비생산과제를 맡아안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건설자들은 겨울철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으나 전진속도를 더욱 높여 주체50(1961)년 5월에는 드디여 준공의 날을 안아왔다.

그 어떤 곤난과 역경에 처한대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의도하시고 인민이 바라는것이라면 조금도 굽힘없이 전진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비날론로동계급과 군인건설자들의 애국의 열정은 그렇듯 훌륭한 《비날론대도시》를 펼친것이다.

참으로 1년 남짓한 기간에 대화학섬유공장을 자체의 힘으로 건설한것은 기적과도 같은 속도가 아닐수 없었다.

준공식이 있은 다음날 비날론건설자들과 혁신자들을 위한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축포를 올릴 시각이 되자 비날론공장건설에서 승리한것처럼 우리의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승리를 위하여 축배를 들것을 제의한다고 하시였다.

이윽고 함흥시의 밤하늘에 축포가 터져올랐다.그것은 자체의 힘으로 주체섬유, 주체비날론공업을 창설한 우리 인민에 대한 뜨거운 축하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신대로 앞으로만 전진하는 부강조국의 밝은 앞날에 대한 축복이였다.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