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4일 로동신문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자력갱생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저열탄으로 질좋은 세멘트를 생산하여 부흥의 큰걸음을

전천군세멘트공장을 돌아보고

 

강계정신이 창조된 자강도에는 제힘으로 걸어나가는 자력갱생단위들이 많다.전천군세멘트공장도 그러한 단위들중의 하나이다.

지난 시기에는 군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그마한 공장이 오늘은 없어서는 안될 보배공장으로 되였다.

얼마전 우리는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이 공장을 돌아보고싶어 취재길에 올랐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력자강의 정신을 가져야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뚫고나갈수 있으며 최악의 조건에서도 최상의 성과를 이룩할수 있습니다.》

강계시에서 전천군까지는 백수십리길이였다.

봄기운이 완연한 협동전야와 아슬하게 깎아지른 절벽을 언뜻언뜻 스쳐보내며 취재차는 앞으로 내달렸다.

전천군 읍에서도 10여리 떨어진 양지바른 산기슭에 들어섰을 때였다.한폭의 그림인양 구색이 맞게 꾸려진 공장전경이 비껴들었다.정문앞에 이르니 《자력갱생》, 《증산절약》, 《자급자족》이라고 씌여진 글발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찾아온 사연을 알게 된 공장의 한 일군은 반기며 우리를 저탄장으로 안내하였다.저탄장에는 몇달은 실히 쓰고도 남을 석탄이 그득히 쌓여있었다.

《아시다싶이 우리 자강도에는 고열탄이 나오는 곳이 없습니다.석탄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지요.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군에서 나오는 저열탄으로 질좋은 세멘트를 생산하고있습니다.말하자면 자기 땅에 발을 든든히 붙인셈이지요.》

목소리는 높지 않았어도 불가능을 모르는 자력갱생강자들의 배심이 느껴졌다.

(저열탄으로 세멘트를!)

흥미가 동하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바싹 끌어당겼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공장의 저탄장에는 석탄이 쌓여있어볼새가 없었습니다.》

힘겨웠으나 긍지와 보람도 컸을 잊을수 없는 그때를 돌이켜보는듯 동안을 두었던 그는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무슨 일이든지 해놓고보면 별치않게 여겨지지만 생소한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아득히 높은 산처럼 오르기 힘들어보이기마련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10여년전 추억의 세계에로 우리를 이끌어갔다.

당시 공장에서는 수백리나 되는 곳에서 석탄을 실어오고있었다.대포를 쏘아 참새를 잡는 격이였다.그러다보니 생산원가는 높아져 경영활동은 물론 종업원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였다.더욱 안타까운것은 일부 종업원들이 일터에 대한 애착심을 잃고 다른 단위를 넘겨다보고있는것이였다.

공장은 갈림길에 서게 되였다.

하나는 군의 방조속에 지금처럼 비칠거리면서 자리지킴이나 하는 길이요, 다른 한길은 비록 힘겹고 고생스러워도 제힘으로 공장을 활성화하는 길이였다.

한원명지배인을 비롯한 일군들은 주저없이 후자의 길을 택하였다.자기 고장에서 나오는 연료에 의거하여 생산을 추켜세워야 한다는 각오를 안고 모두가 분발해나섰다.

일군들과 기술자들은 세멘트생산과 관련한 여러 분야의 도서들을 열심히 탐독하였다.이 과정에 저열탄에 의한 세멘트생산방법에 주의를 돌리게 되였다.

저열탄에 의한 세멘트생산공정을 확립하면 원가를 낮추면서도 생산에서의 실리를 보장할수 있었다.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수직소성로에서 저열탄으로 세멘트를 생산하는것은 불가능한것으로 되여있었다.

일군들과 기술자들은 거듭되는 실패와 난관앞에서도 주저없이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초행길을 끝끝내 개척하여 마침내 자기 지방에 흔한 저열탄으로 강도가 높은 세멘트를 생산해내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일군의 이야기는 길지 않았으나 여운은 컸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최상의 성과를 이룩해나가려는 정신이 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심장속에서 세차게 맥동치고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소성로앞에 이르렀다.

《올해에 공장에서는 설비를 개조하여 세멘트의 질을 더 높였습니다.지금 우리가 생산하고있는 세멘트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늘어나고있습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우리에게 작업반장은 설비개조도 공장자체의 힘으로 해냈다고 자랑하는것이였다.

외진 산골에서 소문없이 군지방공업공장들의 현대화와 주민들의 문명한 생활터전을 다지는데 기여할 큰일을 하고있다고 생각하니 작아도 큰 몫을 찾아하는 보배공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자기 땅에 있는것을 가지고 실현가능한 자기식의 발전전략을 찾아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시킨데 생산활성화의 비결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소성로우에 올라서니 산골특유의 경치와 어울려 규모있게 들어앉은 공장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저기 보이는 생산건물들과 구내포장도로, 배구장과 휴식터들도 우리 손으로 꾸린것들입니다.》

계속하여 그는 숙성장을 3배로 확장하고 작업반휴계실들과 종업원식당, 과학기술보급실을 비롯한 땀배인 창조물들이 하나하나 늘어나니 공장애도 그만큼 높아지는것 같다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자기 일터에 대한 애착, 그것은 성실한 애국의 땀을 바쳐 물질적부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에 움트고 자라나게 되며 자력갱생의 값진 재부들을 더 많이 창조할수록 커진다.

이런 의미에서 자력갱생과 공장애는 비례관계에 있다고 할수 있었다.

즐거운 마음 안고 우리는 증산의 동음 드높은 원료작업반을 거쳐 운수작업반과 부속품창고도 차례로 돌아보았다.

창고에는 세멘트생산에 필요한 베아링, 피대, 용접봉으로부터 주물품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속품과 자재들이 꽉 들어차있었다.자체의 수리기지를 튼튼히 꾸려놓고 현행생산에 필요한 크고작은 백수십가지의 부분품과 부속품들을 마련해놓은것만 보아도 자력으로 흥하는 공장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었다.

우리가 위생문화적으로 꾸려진 구내식당에 들어섰을 때였다.구수한 냄새가 풍겨오는데 식탁에는 보기만 해도 구미가 동하는 남새국과 닭알볶음, 신선한 부루며 쑥갓이 놓여있었다.

이 모든것이 공장의 태양열온실과 축사에서 생산한것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태양열온실과 축사를 돌아보고싶은 충동을 안고 그곳으로 걸음을 돌리였다.

정문앞 양지바른 산기슭에 동화속의 그림처럼 안겨오는 건물들이 축사와 온실이였다.

태양열온실에 들어서니 무더운 여름철인양 더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푸르싱싱한 온실남새를 볼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축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알고보니 북부지대의 특성에 맞게 독특하게 설계된 온실식축사였다.돼지우리마다에는 피둥피둥 살진 돼지들이 드러누워있었는데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90kg이상은 실히 될것 같았다.그우의 2층으로 된 닭장에는 닭들이 방금 낳은 닭알들이 주런이 놓여있었다.

거기에서는 또한 부루며 파 등 갖가지 남새가 푸르싱싱하게 자라고있었다.

추운 겨울철에는 온실안의 온도를 어떻게 보장할가 하는 의혹이 생기였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본듯 녀성관리공은 방끗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보시다싶이 우리 공장 온실은 땔감을 전혀 쓰지 않는 에네르기절약형의 온실이랍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해전 지배인이 태양열온실을 건설하자고 하였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리머리를 저었다고 한다.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북방의 한겨울에 석탄을 때도 밤에 온실안의 온도를 보장하기 힘든데 과연 할수 있을가 하는것이 그들의 생각이였다.

그러나 지배인이 내놓은 방안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온실벽체를 따라가면서 일정한 두께로 진흙을 쌓아주고 그뒤에 탄재를 넣어주는 식으로 2중보온벽을 만들자는 기발한 착상이였다.지배인의 발기대로 2중보온벽으로 된 태양열온실을 짧은 기간에 일떠세웠다.

추운 계절에도 온도를 보장할수 있게 태양열온실을 건설하여 한쪽에서 닭과 돼지를 기르고 다른쪽에서는 온실남새를 계단식으로 재배하고있었다.닭배설물을 균처리하여 돼지에게 먹이고 물거름으로 지력을 높이니 실리가 크다는것은 더 말할나위가 없었다.

온실남새재배와 축산을 통해서도 제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자기식으로 일해나가는 이 공장 사람들의 일본새를 엿볼수 있었다.

녀성관리공은 태양열온실곁에 아담하게 지은 축사에로 우리를 이끌었다.아래층 보금자리에는 게사니들이, 웃층에는 토실토실 살진 종자토끼들이 있었다.

축산자랑은 이뿐이 아니였다.풀과 고기를 바꿀데 대한 당의 축산정책을 높이 받들고 공장에서는 염소도 100여마리나 기르고있다니 대단하였다.

축사에서는 토끼가 먹던 풀과 닭배설물을 발효시켜 돼지사료로 리용하고있었다.알곡먹이비중을 낮추면서도 해마다 많은 고기와 수만개의 알을 생산하고 집짐승배설물은 거름으로 리용한다고 하니 원가를 낮추는 측면에서도, 생산물을 늘이는데서도 좋았다.

축산과 온실남새생산을 불과 2~3명의 로력으로 진행하고있었다.그야말로 원가절약형, 로력절약형의 후방토대라는 생각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조건이 불리할수록 자기 힘을 굳게 믿고 드높은 혁명열, 투쟁열에 넘쳐 끝없이 일감을 찾아 이악하게 노력한다면 왜 지방공업공장이라고 일떠서지 못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헤여지기에 앞서 한원명지배인을 만났다.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한개 단위가 전진하는가 못하는가는 전적으로 그 단위 책임일군들에게 달려있다고 봅니다.앞으로 공장을 당정책관철에서 앞장선 본보기단위로 만들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배인의 결의에서 자력갱생으로 흥하는 공장의 더욱 좋아질 래일을 그려보며 이곳을 떠났다.

글 본사기자 윤용호
특파기자 전명일
사진 본사기자 장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