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16일 로동신문

 

인민을 한평생 떠받드신 자애로운 어버이

 

이민위천!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한평생이 함축된 이 네 글자에 얼마나 심오한 철학이 있고 거대한 력사가 집약되여있는것인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우리는 지금 어버이수령님의 리상이 숭엄한 화폭을 펼친 수도의 한복판 김일성광장에 서있다.

남산재의 높은 자리에 하늘높이 조선식지붕을 떠이고 웅장하게 서있는 인민대학습당, 그옆 낮은 자리에 자리잡은 중요국가기관청사들,

이 대조적인 건물배치를 음미해볼수록 오늘도 우리의 귀전에 쟁쟁히 들려오는듯싶다.

우리는 광장에 정무원청사를 하나 앉혀놓았는데 그것도 중앙에 앉힌것이 아니라고, 중앙에는 인민을 위한 인민대학습당을 앉히고 그옆에 정무원청사를 앉혔는데 그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의 심부름을 많이 하라고 앉힌것이라고 교시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음성이.

이렇듯 평양시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전민학습을 위한 대전당을 짓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김일성도서관》으로 부르자고 할 때에도 자신의 존함대신 《인민》이라는 두 글자를 넣도록 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며 자신의 하늘로 떠받드신 인민은 그 어떤 초인간적인 존재나 특수한 몇몇 사람들의 집단이 결코 아니였다.

기나긴 세월 정치적무권리속에 살아가던 사람들, 공장과 농촌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로동자, 농민들 그리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바로 그이의 인민이였고 하늘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세상 전부를 대표한다고도 할수 있는 인민이라는 거대한 집체는 항상 력사의 수레바퀴를 진두에서 성실하게 굴려왔다고, 그 력사에 거북선이 필요하면 거북선을 만들었고 피라미드가 필요하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고, 시대가 피를 요구할 때 인민은 육탄이 되여 서슴없이 화구앞으로 죽음을 맞받아나갔다고 뜨겁게 회고하신것이다.

인민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 보아오던 온갖 그릇된 사고방식을 뒤집어엎으시고 인민이야말로 선생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이라는것을 확고한 신조로, 좌우명으로 삼으시였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장 수십성상에 달하는 혁명령도의 나날을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인민적령도로 수놓으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당도 국가도 인민을 위하여 세우시고 군대도 인민을 위하여 창건하시였다.그래서 우리 당은 인민의 리익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로동계급의 당으로, 국가정권도 인민의 요구를 실현하는 정치적무기로, 혁명무력도 우리 인민의 자주권과 안녕을 철옹성같이 수호하는 강위력한 무장력으로 건설되였고 우리 사회주의도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로 솟아난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시작도 끝도 인민이였다.인민으로부터 출발하고 인민으로 일관되여 끝없이 펼쳐진것이 곧 그이의 거룩한 사색이였고 위대한 활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소에 간직하고계신 제일 크고도 일관한 념원은 우리 인민들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살게 하는것이였다.

인민의 행복이자 우리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목적이였고 기쁨이고 락이였으며 유일한 안정이고 휴식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희귀한 닭 한마리를 보게 되시였다.발뒤축에 여러가지 색갈의 털이 길게 나있는 그 닭은 정말 보기에도 깜찍한것이였다.

흥미가 동하시는듯 닭을 유심히 바라보시면서 일군에게 그 닭이 1년에 알을 얼마나 낳는가를 알아보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실망을 금치 못하시며 서운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닭이야 알을 많이 낳아야지 보기나 좋아서 무얼 하겠는가, 자신께서는 아무리 보기 싫게 생겨도 알을 많이 낳는 닭이 있으면 매일 보러 나오겠다고 하시며 나는 1년에 알을 한 400알 낳는 닭이 있으면 좋겠소, 그러면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알을 공급할게 아니요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모든 가치평가의 절대적기준은 오직 인민의 리익이고 행복이였다.아무리 현란하고 새로운것이라 할지라도 인민들에게 실제적인 덕을 줄수 없는것이라면 전혀 무의미하다는것이 바로 우리 수령님의 평가기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전 과정에 초인간적인 정력을 지니시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것을 구상하고 설계하시였으며 실천하시였다.

순간의 멈춤도 없이 한생토록 끝없이 펼쳐진 그이의 위대한 사색과 실천에서 인민을 떠난것이란 있어본적이 없었다.

주체47(1958)년 8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대동강의 반월도앞에 이르시였다.배를 세우시고 기슭에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바위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손을 드시고 저 바위가 옥류벽인데 집터로는 아주 좋은 자리라고, 바로 저기에 대동강풍경에 어울리면서도 마치 물에 떠있는것처럼 보이는 조선식료리집을 번듯하게 건설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안겨주자고 하시였다.

천하의 절승경개를 자랑하는 옥류벽우의 명당자리에 푸른 추녀 나래를 편 조선식건물로 된 인민을 위한 식당을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이름도 몸소 《옥류관》이라고 지어주시였다.

정녕 오로지 인민만을 생각하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온갖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무슨 말로 다 전할수 있으랴.

지금도 만경대갈림길에 서면 꿈결에도 그리시던 고향을 지척에 두시고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아가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뵈올듯, 농촌에 가면 멍석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농민들이 잘살 방도를 의논해주시던 그이의 정깊은 음성이 들릴듯…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다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진펄에 빠진 승용차를 한치한치 미시며 북방의 농촌마을을 찾으신 이야기며 한낮이 기울 때까지 여러 농장포전을 돌아보시고 풋강냉이로 때늦은 점심식사를 대신하신 사실을 비롯하여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가 이 땅 그 어디에나 뜨겁게 새겨져있다.

인민과 잠시라도 떨어지시면 귀중한것을 놓친듯 허전해하시고 인민들과 만나실 때면 이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순간이 없으신듯 그토록 기뻐하시며 환히 웃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세상에 인민을 위한다는 령도자나 정치가는 많았어도 우리 수령님처럼 이민위천의 좌우명을 한평생 간직하시고 인민을 위해 사색하시며 인민과 함께 혁명의 먼길을 걸으시면서 인민의 어버이가 되신 령도자, 정치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녕 이민위천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과 고락을 같이하시고 인민을 하늘높이 떠받드시는 과정에 체질화하신 지론이였다.

우리 다시금 숭엄한 마음으로 위대한 태양의 모습을 삼가 우러른다.

오늘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온 누리를 밝히는 태양의 미소로 자신께서 한평생을 다하여 하늘로 떠받드신 인민에게 끝없는 축복을 보내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인민이라는 하늘의 태양으로 영생하신다.

본사기자 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