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17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수령옹위에 전사의 참된 삶이 있다

혁명투사 리권행동지의 한생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생명의 은인들중에는 리권행이라는 10대의 애젊은 경위대원도 있었다.그는 나를 친형처럼 따르고 존경하였다.》

조선혁명박물관에는 항일혁명투쟁시기 리권행동지가 후방병원에서 쓴 편지가 전시되여있다.

《존경하는 사령관동지!

그동안 험한 길, 위험한 전투에서 얼마나 고생하고계십니까?

저는 사령관동지의 깊은 사랑속에서 오늘도 병치료에 전력을 다하고있습니다.병석에 누우니 사령관동지의 품속에서 배우며 자라던 지난날이 생각나 잠들수 없습니다.

어려서 원쑤들에게 부모를 잃고 사령관동지의 품에서 자라며 부모의 원쑤를 갚고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해서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배운 제가 손에서 총을 놓고 누워있게 되였으니 가슴에서는 불이 일어나는것만 같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불같은 그리움이 어린 글줄들에는 당시 19살밖에 되지 않던 리권행동지의 한생이 담겨져있다.

리권행동지의 생애가 함축된 길지 않은 편지, 여기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일제《토벌대》놈들에게 하루아침에 온 가족을 몰살당한 리권행동지는 13살 나던 해인 주체23(1934)년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안고 치렬한 전투마다에서 용감하게 싸운 리권행동지가 사령부전령병으로 활동하기 시작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5(1936)년 4월 새 사단을 편성하실 때였다.

리권행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곧 혁명의 품이였으며 어버이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령부에 한장밖에 없는 모포를 덮어주시고 추울세라 자신의 품에 꼭 안아주실 때, 고난의 행군시기 한홉의 미시가루를 자신의 몫은 내놓지 않으시고 나누어주실 때 리권행동지는 부모보다 더한 육친의 사랑과 정을 뜨겁게 느꼈으며 가장 숭고한 동지애를 체험하였다.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했던 리권행동지에게 우리 글은 물론 혁명리론과 군사지식을 배워주시고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으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은 계급의 눈, 혁명의 눈을 하나하나 틔워주신 자애로운 스승이시였다.

참된 혁명가로 성장의 키를 자래우는 과정에 리권행동지가 간직한 충성심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나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던가.

어느해 겨울이였던지 추격해오는 적들을 꼬리에 달고 강행군을 할 때에 있었던 일이다.겨울치고는 아주 지독하게 추운 날이였다.그런데 아무리 눈속을 헤치며 행군을 계속해도 발이 얼어들지 않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발을 벗어보시였다.바닥에 솜처럼 보드랍게 다져진 울로초가 차분히 깔려있었다.전령병들은 리권행동지의 소행이라고 위대한 수령님께 가만히 귀띔해드리였다.

진펄에만 돋는 그 풀을 발견할 때마다 한줌두줌 뜯어 배낭속에 간수하였다가 자신의 신발바닥에 깔아드린 리권행동지의 그지없이 소박하고 진실한 지성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더워지는 마음을 금치 못하시였다.

주체28(1939)년 3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13도구전투후 부대가 부후물쪽으로 행군할 때 뒤에서는 적들이 따르고 앞에서는 알지 못할 부대가 맞받아오고있는 위급한 정황이 조성되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앞에 나타난 부대가 어떤 부대인가를 정확히 알아올데 대한 명령을 받은 리권행동지는 자기를 겨눈 수많은 총구를 마주 향해 주저없이 단신으로 달려나갔다.

삶과 죽음이 어느 순간에 결정될지 알수 없는 무시무시한 긴장과 공포속에서 발휘된 리권행동지의 용감성은 오직 수령의 안녕과 전사의 생명을 하나로 결합시킨 충신만이 발휘할수 있는것이였다.

이러한 체질화된 충성심을 지니였기에 리권행동지는 그때로부터 한달후인 주체28(1939)년 4월 26일에 있은 장백현 15도구전투에서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여 적탄을 막고 위대한 수령님을 목숨으로 보위하는 영웅적위훈을 세울수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위대한 수령님의 무사하신 모습을 뵈옵는 순간 리권행동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사령관동지, 저는 죽지 않습니다.제 걱정은 말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

총상으로 피투성이가 된 온몸에 엄습하는 참기 어려운 고통속에서도 오히려 위대한 수령님을 위로해드린 리권행동지,

위대한 수령님을 떠난 자기자신을 생각해본적이 없고 오직 수령님을 위하여 살며 싸우는것을 가장 값있고 보람있는 삶으로 여긴 리권행동지였기에 후방병원에서 치료받는 자기의 심정을 편지에 이렇게 썼다.

《…가장 값있고 보람있는 위대한 사업인 조선혁명의 승리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에 이 몸을 다 바치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은 참으로 참기 어렵습니다.

한시바삐 완치되여 사령관동지에게로, 혁명대오로 돌아가고싶습니다.…》

자신의 온넋과도 같고 온 생애가 집약되였다고도 할수 있는 이 편지를 리권행동지는 적들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불속에 집어넣었다.

사령부의 안전을 위함이라면 그 편지처럼 19살의 청춘도 불속에 아쉬움없이 던질수 있고 또 그것을 가장 고귀한 영예와 행복으로 여긴 불굴의 투사가 바로 리권행동지였다.

주체29(1940)년 6월 14일 사형장에 나선 리권행동지는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

생명의 마지막순간에조차 수령만세를 부르는 19살 청춘의 불가항력적인 모습에 적들은 전률하였다.

투사의 간절한 그리움은 불길로도 태울수 없는것이였다.주체42(1953)년 우리 나라의 혁명전적지답사단에 의해 타다남은 편지의 일부가 흙속에 묻힌채로 발굴되였다.

오늘도 대성산혁명렬사릉에서 금수산태양궁전을 영원한 그리움속에 바라보고있는 리권행동지는 후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는듯싶다.

혁명의 수령을 목숨바쳐 옹위하는 길에 전사의 삶이 있고 주체혁명위업의 영원한 승리가 있다고.

본사기자 한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