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18일 로동신문
조국에 빛을 더해주는 등불 나라의 전력문제해결을 위해 뚜렷한 생의 흔적을
력사에 특기할 그날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준엄했던 고난의 행군시기였다.김성호동무는 나라의 전력문제를 푸는데서 관건적의의를 가지는 발전기의 효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사업을 시작하였다. 어느날 안해인 윤애숙녀성은 바재이는 어조로 물었다고 한다. 《여보, 정말 성공할수 있나요?》 그것은 김성호동무의 마음속에 무거운 납덩이마냥 매달리는 의미심장한 물음이였다.당시 사리원시의 어느 한 대학의 교원이였던 그는 불안과 기대가 엇갈려 초불처럼 타오르는 안해의 눈을 착잡한 심정으로 마주보았다. (내가 정말 성공할수 있을가?) 그때 전기공학부문의 어떤 학자들은 이 30대의 젊은 학사(당시)가 기술적난문제가 허다한 그 연구에서 꽤 성공할수 있겠는가고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하였다.더우기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것은 풀죽과 삶은 통강냉이로 끼니를 에워야 하던 그 어려운 시기에 집안일을 통채로 섬약한 몸에 걸머진 안해에게서 때때로 보게 되는 지친듯 한 기색이였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수 없었다. 《당신도 잘 알지 않소.이 길에서 주저한다면 내 어찌 당의 품속에서 성장한 과학자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겠소.》 김성호동무는 평범한 보건일군가정에서 8남매중 다섯째로 태여났다.그의 어머니는 경사스러운 명절때마다 자식들모두에게 가슴가득 안겨지는 교복과 학용품, 당과류를 눈물에 젖은 손으로 쓸어보며 어머니당의 은덕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늘 외우군 하였다. (어서 커서 이 사랑, 이 은정에 보답하리라!) 이런 불같은 마음으로 성장해온 김성호동무였기에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평양전기단과대학(당시)을 전과목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자기가 공부하던 대학에서 교육사업에 티없이 순결한 마음을 바치였으며 국가적인 조치에 따라 대학이 사리원시로 옮겨가게 되였을 때에는 남먼저 가족을 이끌고 나서자란 수도를 떠나 그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였다. 어느날 강습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올라왔던 그는 어둠에 잠긴 수도의 거리를 가슴허비는 괴로움속에서 거닐었다. 왜서인지 어머니가 생각났다.불꺼진 방에서 손더듬으로 성냥을 찾아 등잔불을 켜던 어머니… 어째서 어머니의 그 모습이 아들의 가슴에 예리한 못처럼 아프게 박히는걸가. 그렇다.바로 우리 어머니처럼 조국이 지금 시련의 어둠을 가셔낼 밝은 빛을 애타게 고대하고있다.
불현듯 그의 눈앞에는 살을 에이는 강추위속에서도 자강도인민들이 새로 건설한 중소형발전소들과 전기덕을 보는 마을들을 돌아보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좋은 날에나 어려운 날에나 어머니는 오직 자식들의 락을 위해 험한 진펄길과 가시밭도 웃으며 헤쳐나간다.이렇듯 어머니의 선택은 언제나 자식들을 위한 길에서 변함이 없는데 어째서 어떤 자식들의 선택은 어머니를 위한 그 길에서 벗어나군 하는것인가.어머니조국이 고난의 언덕을 넘고있는 이때 일부 사람들처럼 먹을알있는 일거리나 찾아다니고 쉽게 명예를 얻을수 있는 일만 선택한다면 과연 누가 고생많은 어머니에게 밝은 빛을 주고 차디찬 랭기를 몰아내는 열을 주고 전진의 활력을 더해주겠는가.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머니의 선택이 불변하듯이 우리 자식들의 선택도 어머니를 위한 한길에서 드팀을 몰라야 한다.만일 그 길에서 벗어나 자기의 안락만을 위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의 자식이 아니며 이 땅의 공민이 아니다.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여는 전력문제해결의 제1선참호에 김성호, 내가 있어야 한다.어머니조국이 밝은 불빛으로 나의 앞길을 밝혀주었다면 오늘은 내가 이 한몸을 깡그리 불태워서라도 조국의 전진로를 더 밝게 비쳐드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김성호동무의 마음속에 간직된 불같은 삶의 지향이였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잠자리에 들고 언제 휴식하는지 알지 못했다.늘 충혈진 눈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였고 강의가 끝나면 또다시 정력에 넘쳐 발전기연구에 달라붙었다. 김성호동무는 평양에 있는 과학연구단위들에 새로운 기술자료가 들어왔을 때에는 새벽이건 밤중이건 가림없이 자전거를 타고 사리원에서부터 평양까지의 먼길을 오고가군 하였다.그때마다 극심한 피로에 신경통까지 겹쳐 이튿날에는 겨우 걸음을 옮기군 하였다.그러는 남편을 보며 안해가 눈물을 훔칠 때면 김성호동무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절절히 말하였다.
《여보, 우리가 아무리 고생한다고 해도 온 나라 아들딸들을 돌보시느라 어느 하루 쉬지도 못하시는 우리
김성호동무의 그렇듯 고결한 진심에 끌려 대학에서 함께 일하던 서경춘동무는 그의 진실한 방조자, 가장 믿음직한 조수가 되였다. 지금도 서경춘동무가 감회깊이 외우는 이야기가 있다. 며칠밤을 꼬박 밝히다싶이 하며 서경춘동무와 함께 자기 집 웃방에서 손이 베여지는것도 모르고 규소강판을 자르고 손바닥에 떡살이 배기도록 선을 감기도 하면서 김성호동무는 드디여 자기가 세운 기초리론대로 발전기를 만들고 첫 실험을 하게 되였다. 그의 집 웃방에는 두대의 자그마한 발전기들이 설치되였다.자전거바퀴축에 회전자를 설치하고 그것을 원통모양의 고정자로 감싼것이였는데 발디디개를 돌리면 전기가 나오게 되여있었다.하나는 기성의 리론대로 제작한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김성호동무와 서경춘동무가 새롭게 만든것이였다. 《시작합시다.》 김성호동무는 차수리소에서 빌려온 전조등들을 발전기들에 련결하였다.실험은 성공적이였다.기성의 리론대로 만든 발전기에 전조등을 설치하고 발디디개를 돌리였을 때에는 불이 뿌옇게 켜졌지만 그가 만든 실험용발전기에서는 환한 빛이 눈부시게 쏟아져나왔다. 《이게 정말 우리가 만든거요? 맞긴 맞소?》 김성호동무는 선뜻 믿어지지 않는듯 눈을 크게 떴지만 주름진 눈가에서는 맑고 뜨거운것이 번쩍이였다. 그날 밤, 김성호동무는 서경춘동무와 함께 첫 성공의 기쁨을 나누며 한편의 시를 조용히 읊었다.그가 가장 사랑하는 시였다.남편의 절절한 목소리가 윤애숙녀성의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게 했다. … 무엇을 아끼랴 그 무엇을 서슴으랴 그대 숭엄하고 존엄높은 모습에 한줄기 빛이라도 더해드릴수 있다면 … 김성호동무는 장애물도 많고 견디기 힘든 생활난이 발목을 붙잡기도 하였지만 자기의 연구사업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확신에 넘쳐있었다. 이런 신심을 더 깊이 심어준 계기가 있었다. 80고개에 이른 어머니 윤선희로인은 김성호동무가 연구사업에서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생일상을 받을수 없다며 자식들이 일체 그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김성호동무는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10년전에도 생일상을 차려드리자고 자식들이 극성을 부렸지만 어머니는 다섯째인 성호의 연구가 성공할 때라야 큰상을 받겠다며 끝끝내 사양하였다.그리고는 평양시 중구역의 아담한 집을 떠나 그의 집으로 왔다.어머니는 연구사업을 하는 아들이 집걱정을 하지 않게 하려고 며느리와 함께 살림살이를 돌보고있었다. 김성호동무는 이번에는 꼭 여든살이 된 어머니에게 큰상을 차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윤선희로인앞에 나섰다. 그런데 결과는 또 어떻게 되였던가.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는 온후한 미소를 지으며 자그마한 봉투를 그의 손에 쥐여주는것이였다. 《이건 네 형제들이 나에게 큰상을 차려주겠다고 준비했던 돈이다.다 토론이 있었다.온 가족의 성의로 알고 네 연구사업에 보태쓰거라.》 《어머니!》 김성호동무는 끝내 뜨거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따뜻이 어루쓸었다.
《네 연구가 성공하여 우리
김성호동무는 결연히 고개를 들었다. 《꼭 성공합니다.어떤 사람들한텐 그것이 불가능해보일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당에 대한 충성의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불가능이라는게 없습니다!》 당에 대한 충성의 마음만 억척불변하면 뚫지 못할 난관이 없고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 이런 신념을 뼈에 새긴 김성호동무였기에 20여년세월 멀고도 험난한 탐구의 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은것이다.
김성호동무는
우리는 안주지구탄광련합기업소에서 김성호동무를 만나게 되였다.58살이지만 그의 다부진 몸에서는 정력이 흘러넘치고있었고 진중하고 사색적인 눈빛에는 자기 사업에 대한 긍지도 어려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김성호동무와 함께 10년가까이 전국각지의 발전소들과 공장, 기업소들을 찾아다니며 새 기술을 도입해온 은파군의 어느 한 발전소 책임자 김종일아바이도 만나게 되였다. 《난 저 성호동무에게 반해서 오늘까지 이 길을 함께 가고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 6월 먼지오른 자전거를 끌고 피로한 기색을 한 두명의 사나이가 발전소로 찾아왔다.김성호동무와 서경춘동무였다.발전기의 효률을 높이기 위한 새 기술의 첫 시험도입을 이 발전소에서 하고싶다는 성호동무의 말에 김종일아바이의 생각은 착잡하였다.아직은 파악도 없는 기술을 믿고 귀중한 발전설비를 선뜻 맡길수 없어서였다. 그의 망설이는 기색을 보고 김성호동무는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세계적수준에서 볼 때 일부 발전소들의 생산능력은 응당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있습니다.헌데 저마다 보신주의울타리를 치면서 이 일에 발벗고나서지 않는다면 나라의 전력문제는 언제 해결하겠습니까.》 김종일아바이는 그의 진심을 믿고 발전기를 맡기기로 했다.그러나 과학은 성공의 대문을 쉽게는 열어주지 않는다.김성호동무는 실패하였다.김종일아바이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락심하지 말고 꼭 성공하게.그래서 빨리 우리 발전소에 다시 오라구!》 그때로부터 10년세월이 흘렀다.강산이 변한다는 그 기간에 대학에서 일하던 김성호동무는 황해북도과학기술위원회로 소환되여 연구사업을 꾸준히 이어갔으며 2012년 5월 또다시 발전소를 찾아와 새 기술의 시험도입을 하게 되였다. 드디여 김성호동무는 성공하였다.발전소의 전기덕을 보게 된 마을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정말 고맙다고, 그전보다 불이 더 밝아져서 좋고 전압이 높아 한꺼번에 밥도 짓고 랭동기와 세탁기도 왕왕 돌리니 생활이 더 문명해져서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축하해줄 때 김성호동무는 어줍은듯 고개를 떨구며 웃었지만 금시라도 눈물을 쏟을듯 한 기색이였다. 김종일아바이는 그를 여겨보며 생각에 잠겼다. (쉽지 않은 사람이다.강물은 맑아도 그 깊이를 쉽게 헤아릴수 없는 법이다.나도 저 사람과 함께 여생을 나라의 전력문제를 푸는 일에 바치리라.) 그때로부터 김종일아바이는 김성호동무와 함께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며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애국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있다. 우리는 안주지구탄광련합기업소에서 자강도과학기술위원회 일군인 김욱동무도 만날수 있었다.그도 김종일아바이처럼 김성호동무의 애국심에 끌려 그 길에 나선 사람이였다.김욱동무는 멀리 뻗어나간 송전선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성호동지가 뭐라는지 압니까.전류는 단순히 전하들의 질서있는 흐름만이 아니라는겁니다.》 김성호동무에게 있어서 전류는 뜨거운 혈류와도 같았다.온 나라 방방곡곡에 혈류와도 같이 전기가 줄기차게 흘러야 조국이 날을 따라 더욱 부강해지기에 그는 위험한 실험에도 주저없이 나섰고 발바닥에 물집이 지고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면 동지들과 서로 부축을 해가며 전국각지의 발전소들과 공장, 기업소들을 쉬임없이 찾아갔다. 김성호동무와 새 기술을 도입하는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가운데는 황해북도과학기술위원회 부원 황봉희동무도 있다.가정부인의 몸으로, 그것도 맡은 사업으로 하여 분망한 그였지만 김성호동무며 김종일아바이와 함께 어이하여 그 헐치 않은 길을 웃으며 택하게 되였는가. 몇해전 어느날이였다.황봉희동무는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아들 광진이의 대학입학문제때문에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다.남편과 거듭 토론해보았지만 어느 대학에서 공부시킬지 딱히 확정할수 없어 그는 김성호동무를 찾아왔다. 오래전부터 생각해본 문제인듯 김성호동무는 인차 대답했다. 《지금 나라엔 황금보다도 인재가 필요하오.그래서 광진이를 과학자로 키웠으면 하오.리과대학에 보내라구.》 이렇게 되여 황봉희동무는 아들을 리과대학에 보내게 되였다. 김성호동무는 평성시에 출장갈 때면 꼭꼭 시간을 내여 대학공부를 하는 광진이를 찾아가군 하였다.
《출세를 위해서 공부하는건 나라의 은덕을 저버리는 배은망덕한짓이다.우리
김성호동무의 인간됨을 너무도 잘 알게 된 황봉희동무는 그가 가는 길이 참다운 애국의 길임을 절감하였고 비록 전공은 아니였지만 그의 새 기술도입사업에 적지 않은 방조를 주게 되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이 나타났다.일부 사람들은 김성호동무가 연구한 기술안을 두고 이러저러한 의견을 제기하면서 인정할수 없다는 주장을 완강하게 내세웠다. 황봉희동무는 아연해졌다.그는 김성호동무가 연구내용들을 심도있게 체계화하여 박사론문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면 말공부쟁이들도 입을 다물게 아닌가.… 《괜한 시간랑비요.그런데 신경쓸새가 있소?》 김성호동무는 박사론문을 쓰라는 그의 권고에 흔연히 웃으며 대답했지만 황봉희동무는 안타까운 마음을 쉬이 달랠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그들은 평안남도당위원회 일군들의 각별한 관심과 진심어린 방조속에 순천시의 여러 공장, 기업소에 있는 발동발전기들의 효률을 높이는 사업에 달라붙게 되였다.김성호동무는 김종일아바이며 황봉희동무와 함께 순천시음료공장에 있는 무연탄가스발동발전기에도 새 기술을 성과적으로 도입하였다. 이전보다 질좋은 전기가 흘러나와 생산성도 훨씬 높아지고 탄도 절약하게 되였다며 공장지배인은 김성호동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선생은 정말 나라의 보배입니다! 고맙습니다.》 김성호동무는 눈시울이 불깃해졌다. 로동자들이 향기그윽한 꽃다발을 그에게 가슴가득 안겨주었다. 그날 저녁 황봉희동무는 그와 함께 공장의 구내를 거닐었다. 《오늘에야 알았습니다.성호동지가 왜 박사론문을 쓰지 않는지.》 김성호동무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나라고 왜 손녀앞에 박사할아버지로 나서고싶지 않겠소.하지만 인민이 덕을 보고 조국에 보탬이 되는 창조물을 내놓으면 더 바랄것이 없소.동무나 나나 우리
바로 이것이 김성호동무가 간직하고있는 삶의 지론이며 철칙이라고 할수 있다. 자연의 불은 세찬 바람과 눈비에도 꺼질수 있다.허나 한몸이 그대로 애국의 등불로 타오르는 인간에게서 발산되는 빛과 열은 그 어떤 풍파속에서도 꺼지지 않으며 식지 않는다.어머니조국의 앞길을 더 밝게 비쳐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온갖 시련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게 하는 용기와 의지를 더 굳게 다져주는것이다. 진정 김성호동무와 같은 참된 애국의 등불, 충직한 전사들이 많아 우리 당이 장장 75성상 승리와 영광의 빛나는 력사를 자랑차게 아로새겨올수 있은것 아니랴. 최문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