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24일 로동신문

 

자력갱생으로 승리떨쳐온 력사를 돌이켜보며

전례없는 건설속도로 완공된
관개용저수지-은파호

 

주체66(1977)년 11월초 관개용저수지인 은파호가 완공되여 자기의 완연한 모습을 드러냈다.결과 이미 이룩된 수리화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여 재령나무리벌과 어러리벌을 비롯한 서해안의 넓은 지대에 생명수를 보내주게 되였으며 해주지구의 공업용수를 보다 원만히 해결하고 재령강일대의 큰물피해를 막아낼수 있게 되였다.

은파호는 당시로서 우리 나라 최대규모의 관개용저수지였다.이 거창한 창조물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전례없는 건설속도로 저수지공사를 짧은 기간에 완공한 관개건설자들의 빛나는 로력적위훈에 대하여 뜨겁게 추억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기간 우리의 영웅적로동계급은 사회주의건설에서 어렵고 방대한 과업이 제기될 때마다 언제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그것을 어김없이 수행하였습니다.》

주체63(1974)년 10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탄저수지준공식이 진행된 후 공사에 참가하였던 일군들을 친히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감격과 흥분에 휩싸여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들에게 황해관개건설종합기업소는 나라의 수리화에서 매우 큰 공로를 세웠다고 높이 치하해주시면서 재령강저수지공사를 맡겨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오래도록 자리를 같이하시고 건설을 1977년까지 끝낼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공사방향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또다시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산악같이 일떠섰다.

공사량은 방대하였다.종래의 속도로 건설을 추진해나간다면 10년이 걸려야 한다는 공사를 3년동안에 완공한다는것은 실로 아름찬 일이 아닐수 없었다.

통이 크게 작전하고 대담하게 일판을 벌리자.

이런 배짱을 가지고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공사순위에 따라 한공정씩 먹어들어가던 종래의 시공방식에서 벗어나 전반적공사를 동시에 힘있게 밀고나갔다.

그러던 어느해 가을이였다.이들앞에 물을 빨리 잡아두었다가 다음해 모내기때부터 관개용수를 보충해줄데 대한 과업이 나섰다.이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자면 당장 언제마감물막이공사를 하여 가을부터 저수지에 물을 잡아두어야 하였다.그런데 공사를 종래의 방식대로 가물막이공사를 한 다음에 하자면 적어도 3개월이상은 걸리였다.그렇게 되면 겨울동안에 많은 량의 물을 저수지에 채워둘수 없었다.문제는 언제마감물막이공사와 그를 위한 가물막이공사를 최단기간내에 끝낼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는데 있었다.

거듭되는 토의가 벌어지는 속에 큰 규모의 가물막이공사를 하지 않고 돌과 모래를 넣어 물을 막는 방법으로 공사를 대신하면서 동시에 언제마감물막이를 위한 기초공사를 순식간에 해치우자는 대담한 안이 나왔다.

그에 따라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자기 위치를 차지하였던 건설자들과 함께 수십대의 기계수단이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일시에 수백㎥의 돌과 모래를 10분이내에 들이밀었다.이렇게 하여 세차게 흐르는 물을 막고 그뒤에서 언제마감물막이를 위한 기초파기를 들이댔다.

허나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흐름이 막힌 물은 계속 불어나면서 뚝을 위협하였고 많은 량의 물이 돌과 모래짬으로 슴새여나와 기초파기에 지장을 주었다.거기에다 기초를 파야 할 바닥에는 허리를 치는 감탕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건설자들은 주저나 동요를 몰랐다.수십대의 기계수단으로 돌과 모래를 계속 밀어올리며 뚝을 높이는 한편 물주머니에 설치된 양수기들로 슴새는 물을 쉼없이 퍼냈다.불도젤이 감탕을 밀어내면 련속발파를 들이대면서 기초공사를 하였으며 뒤따라 성토를 해나갔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전투가 벌어져 석달이상 걸려야 한다던 이 공사를 단 며칠만에 끝내고야말았다.

언제마감물막이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낸 건설자들은 지체없이 마감물막이공사에 착수하였다.

건설자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떨쳐나 대담하게 공사를 벌려나갔다.단숨에 돌로 류입수로를 막아버리자 결사대를 무은 로동자들이 목까지 치는 물속에 뛰여들어 바닥을 가셔냈다.4대의 양수기로 물을 퍼내였으나 물은 계속 새여들었다.모두가 한덩어리가 되여 밀려드는 물을 몸으로 막았지만 강한 수압으로 몸이 밀렸다.그래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타입작업을 계속하였다.결과 한주일나마 걸려야 할 공사를 불과 5시간동안에 끝내고 재령강의 흐름을 영원히 막아버리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공사속도는 치렬한 경쟁속에서 더욱 높아졌다.사회주의경쟁은 건설대들사이, 작업반들과 개인들사이 그리고 기대간에도 벌어졌다.수송경기, 장석쌓기경기, 콩크리트타입경기가 벌어져 어데서나 승부를 겨루었다.

기술이 끊임없이 혁신되고 날마다, 시간마다 새 기록, 새 기준이 창조되였다.

당시 모래와 자갈을 가지고 겨울에는 언제성토를 하지 못하는것으로 되여있었다.그러나 건설자들은 이 전례를 마스고 겨울에도 성토를 할수 있는 기술적방도를 찾고 실험을 거듭하여 마침내는 성공하고야말았다.

흙과 자갈과 모래원천을 될수록 가까운 곳에서 찾아내는것은 언제쌓기속도를 높여 경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중요한 고리의 하나였다.모두가 머리를 쓰고 지질탐사를 벌리던 끝에 10리밖에서 가져오게 되여있던 흙을 4~5리구간에서, 30리밖에서 실어오게 되여있던 자갈도 가까운 곳에서 해결할수 있게 되였다.

언제쌓기속도를 보다 높일수 있는 모든 조건이 마련되고 운전사들속에서는 증송경쟁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하루에 50탕씩 뛰던 운전사들이 짐을 더 싣고도 106탕까지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보다 더 많이 뛰였다.수송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하루에 최고 1만 5천㎥의 성토를 보장하는 전례없는 위훈이 창조되여 언제는 비상히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언제안벽의 장석공사가 제기되였을 때 로동자들속에서 무넘이바닥의 돌로 장석공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제기에 모두가 찬성하였다.

무넘이바닥에서 돌을 까내기 위한 작업이 불꽃튀는 경쟁속에서 벌어졌다.착정기에만 의존하던 방법을 버리고 대중소발파를 옳게 결합하면서 련속적으로 발파를 들이댔다.그런 가운데 한발파에 최고 1만 2천㎥까지의 돌이 떨어져나왔다.

그런데 돌을 운반하는 속도가 여기에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현장에서는 건설지휘경기가 벌어졌다.지휘성원들이 현지에 나가 작업조직을 개편하고 걸린 고리들을 기동적으로 풀어주면서 지휘를 패기있게 진공적으로 하였다.

굴착기를 축으로 하고 여기에 수송기재들이 배합되여 수송조가 무어졌다.그리고 수송조간의 경쟁이 낮에 밤을 이어 벌어져 돌운반은 전에 비하여 비할바없는 속도를 기록하였다.하여 무넘이바닥에 깔려있던 8만㎥의 돌은 한달도 못되는 기간에 가신듯 없어지고 공사도 끝났다.

저수지건설은 황해북도와 황해남도안의 근로자들의 힘있는 지원에 의하여 더 빨리 추진되였다.

건설자들과 지원자들의 대중적영웅주의와 창의창발성, 애국적헌신성에 의해 대규모의 저수지공사는 3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드디여 완공되였다.

이렇듯 건설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을 하루빨리 현실로 꽃피울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며 대담하고 통이 크게 작전을 벌리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면서 우리 식의 시공방법과 새로운 기술혁신안을 널리 받아들여 공사기일을 훨씬 앞당기고 저수지건설을 전례없는 속도로 완공함으로써 관개건설력사에서 새로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사가 완공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저수지의 이름을 친히 《은파호》 라고 지어주시였다.

로동당시대의 또 하나의 만년대계의 기념비적창조물인 은파호는 당의 웅대한 대자연개조구상을 높이 받들고 산악같이 떨쳐나선 우리 로동계급의 불타는 충성심과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이 낳은 빛나는 결실이였다.

본사기자 김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