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30일 로동신문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자력갱생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기행

자기 고장의 특성을 살려 산에서 보물을 캐는 사람들

우시군을 돌아보고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는데 가보십시오.도에서 제일 끝에 자리잡고있는 산골군이지만 자랑이 많습니다.》

자강도당의 한 일군이 우시군을 두고 우리에게 한 말이였다.그의 말을 듣고보니 호기심이 부쩍 동했다.

최근년간 모범지방공업군, 지방예산제모범군칭호를 수여받은 우시군이 정면돌파전이 힘있게 벌어지는 오늘날 어떤 새로운 모습을 펼쳐보일것인지.

무척 기대되는 고장이여서 취재길에 오른 우리의 마음은 걸음보다 앞서달리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것도 많고 없는것도 적지 않지만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면 뚫지 못할 난관이 없으며 점령 못할 요새가 없습니다.》

우리를 태운 뻐스는 우시군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강계에서 우시까지는 수백리길, 한고개를 넘으면 또 한고개, 겹겹이 가로놓인 높고 험한 령들…

우시라는 지명은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 기우제를 지내던 고장이라는데로부터 유래된것이라고 한다.그만큼 우시땅은 척박하여 예로부터 사람 못살 고장으로 일러왔다.

오죽하면 옛날 벽동군수와 초산군수가 우시지방에는 서로 가기도 싫고 관리하기도 시끄러워 투전을 해서 지는 사람이 가지기로 했다는 이야기까지 생겨났겠는가.

자강도의 한끝, 그 옛날 그처럼 버림받던 고장이 오늘은 사회주의의 전진기상을 힘있게 떨치며 행복의 재부를 나날이 늘여가고있는것이다.

우리가 탄 뻐스가 초산군과 우시군사이에 있는 해발790여m의 탄령을 넘어 우시땅에 도착한것은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무렵이였다.

깊고깊은 산골이지만 산중의 작은 도시를 방불케 하는 군의 전경은 퍼그나 인상적이였다.

충만강과 우룡천기슭에 즐비하게 늘어선 각이한 모양과 색갈의 아담한 살림집들, 틀지게 들어앉은 국수집이며 읍거리를 장식한 불장식들, 가로등이 환한 공원…

두메산골군에 펼쳐진 이채로운 풍경앞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읍지구를 감돌아흐르는 우룡천의 맑은 물소리도 우시땅에 흘러넘치는 약동의 숨결로 안겨왔다.

밤은 깊어가고있었으나 우리의 눈앞에는 당의 뜻대로 자기 고향땅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살기 좋은 고장으로 훌륭하게 꾸려가는 미더운 주인공들의 모습이 삼삼히 어려왔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군목재가구공장이였다.

우리와 동행한 군의 일군은 이 공장의 제품들이 군내를 벗어나 다른 고장의 주민들속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말하였다.자기의것에 대한 자부심이 은근히 내비치는 말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들어선 제품창고에는 이불장, 옷장, 찬장, 책상, 의자 등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가구제품들이 꽉 차있었다.

공장의 일군은 이 제품들이 모두 자기 고장에 흔한 목재를 리용하여 만든것이라고 하면서 나무 한대를 베여쓰면 백대를 심는 원칙에서 해마다 목재림을 늘여가니 원료걱정은 없다고 자랑삼아 말하였다.

나무 한대를 베여쓰면 백대를 심는 원칙에서.

그의 말을 곱씹을수록 오늘만이 아니라 래일을 내다보며 애국의 자욱을 새겨가는 이곳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더욱 돋보였다.산이 많은 자기 고장의 특성을 발전의 밑천으로, 훌륭한 자랑으로 만들어가고있는것이다.

우리에게 보다 깊은 감흥을 준것은 자력갱생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나아가는 공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의 일본새였다.

우리가 압착성형장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있는 현장에 들어섰을 때였다.

공장의 일군이 한 설비를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공장에서 자체의 힘으로 개조한 성형기라고 설명하였다.그는 성형기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개조하던 나날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마음먹고 달라붙으니 불가능하게만 여겨지던 일도 종당에는 성공의 빛을 보게 되였다고 말하는것이였다.

자기 힘을 믿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며 번영의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만이 터칠수 있는 희열의 고백이였다.

우리는 한 목재가공품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한창 연마작업에 열중하고있는 한 로동자에게 이 제품의 재료가 무엇인가고 물었더니 어디 한번 알아맞혀보라고 하는것이였다.종시 대답을 찾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 제품은 목재가공과정에 나오는 자투리로 만든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남들같으면 무심히 스쳐버릴 작은 자투리도 가구제품들을 만드는데 리용하고있었던것이다.재자원화실현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는 오늘날 이들에게 있어서 목재가공과정에 나오는 작은 나무쪼각은 또 하나의 자원이였고 생산정상화의 귀중한 예비였다.

재부란 자그마한것도 귀중히 여기는 이런 소중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우리의 뇌리를 쳤다.

깊어지는 생각을 안고 이 공장을 나선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군식료공장이였다.

정갈하고 아담하게 꾸려진 공장구내에 들어서니 대번에 공장애가 흘러넘치는 일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생산정상화의 동음이 울리는 여러 현장을 돌아보았다.

국산화된 설비마다에서 쏟아져나오는 당과류들과 음료들…

그 생산품들이 군안의 주민세대들에 정상적으로 공급된다고 한다.아직은 질과 눈맛에서 중앙제품들과 어깨를 당당히 겨룰수는 없지만 거기에는 자기의 손으로 행복한 래일을 가꾸어가려는 강렬한 지향이 깃들어있었다.

아마 이 공장의 가장 큰 자랑은 원료창고라고 해야 할것이다.

키높이 쌓여있는 도토리마대들, 통마다 가득차있는 머루, 다래를 비롯한 산열매들…

이 공장뿐만이 아니라 군안의 여러 공장, 봉사기관에서도 산열매들을 가공하여 주민들의 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니 어찌 이곳 사람들속에서 황금산타령이 절로 흘러나오지 않을수 있으랴.

군에서는 군중적인 운동으로 해마다 많은 산열매를 채취하여 실지 인민들이 덕을 보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근기있게 내밀고있었다.그 사업의 일환으로 전개하고있는것이 지방공업공장들의 현대화였다.

그래서인지 지배인의 일욕심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였다.그는 우리에게 해놓은 일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하면서 당창건 75돐을 맞는 올해에 공장을 보다 훌륭하게 개건함으로써 하나하나의 생산품들이 인민들의 호평을 받는 명제품으로 되도록 하겠다고 자기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그의 결심을 믿어의심치 않으며 공장을 나서는 우리의 머리속에 맴도는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군에서 날로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어떻게 해결하고있는가 하는것이였다.

지방공업공장들의 만가동, 만부하는 물론 주민세대들의 생활상편의를 위해서도 전기문제가 선차적으로 나서기때문이였다.

우리의 의문을 풀어주겠다며 군일군이 안내한 곳이 읍지구에 건설된 우시1호발전소였다.

산골군의 특성에 맞게 충만강의 흐름을 막아 건설한 발전소는 무척 호감을 자아냈다.

우리를 안내한 일군의 말에 의하면 이 발전소는 군자체의 힘으로 10여년전에 건설한것이라고 한다.우시군에서는 당정책의 요구대로 중소형발전소건설을 힘있게 내민 결과 그 덕을 단단히 보고있다는것이였다.

몇해전에는 우시2호발전소가 또 완공됨으로써 여기에서 나오는 전기로 군안의 지방공업공장들은 물론 군내 주민세대들에 대한 전력공급을 보장하고있었다.

군에서는 올해중으로 추진중에 있는 우시3호발전소의 언제쌓기를 끝낼 계획이다.우시3호발전소까지 건설되면 주변의 여러 리에 대한 전기공급이 원만히 실현되게 된다.이밖에도 별하리와 하창리에는 이미전에 소형발전소들이 일떠서 그 능력을 발휘하고있다.지금 군에서는 자연에네르기를 적극 리용하기 위한 면밀한 작전을 세우고 이 사업을 힘있게 추진하고있다.

《어제날의 성과에 만족을 느끼며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그것은 벌써 후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속에는 명백한 설계도와 확고한 자신심을 가지고 행복한 래일을 앞당겨가는 이 고장 사람들의 밝은 모습이 비껴있었다.

그 말을 증명이나 하듯 발전기실에 들어서니 기운차게 돌아가는 발전기의 동음이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렸다.자력갱생행진곡마냥 울리는 발전기의 동음은 그대로 우시군일군들과 근로자들의 힘찬 발걸음소리인듯 하였다.

우리의 감동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군산림경영소를 찾은 우리에게 김영일지배인은 군에서는 많은 유모란밭을 조성해놓았다고 하면서 머지않아 군인민들의 생활은 한계단 더 향상될것이라고 확신성있게 말하는것이였다.

군에서 꾸려놓은 유모란밭, 결코 작은 면적이 아니였다.

유모란으로 말하면 한번 심어서 수십년동안 열매를 수확할수 있는 여러해살이떨기나무로서 정보당 열매생산량과 기름생산성이 콩보다 훨씬 높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모란기름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고있으며 유모란씨앗을 원료로 하여 고급식용기름뿐아니라 보건식료품, 고급화장품, 의약품 등 여러가지 새 제품도 개발되고있다고 한다.

이처럼 경제적가치가 높은 작물이여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돌리고있다지만 이곳에서처럼 유모란밭을 통이 크게 조성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우리들이였다.

활짝 핀 유모란을 직접 보지 못하는것이 참 아쉬웠다.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 산림경영소의 일군이 유모란꽃을 찍은 사진을 내보이는것이였다.소담하면서도 아름다운 유모란꽃의 향기가 페부에 흘러드는것만 같았다.

지배인은 지금은 마치 옛말을 하는것 같지만 사실 유모란재배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애로가 참 많았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든 산들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데 대한 당정책을 심장에 새기고 어떻게 하면 자기 고장의 실정에 맞게 군살림살이를 더 윤택하게 할수 있겠는가를 모색하던 끝에 군의 책임일군이 유모란재배를 결심한것은 몇해전이였다.

그러나 결심이 곧 실천으로 되는것은 아니였다.

종자구입은 물론 적지를 찾아 씨를 뿌리고 싹틔우기까지의 한공정한공정은 순탄치 않았다.유모란재배에서 나서는 기술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걷고 또 걸으며 밤을 꼬박 새운적은 그 몇번인지 모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모란재배의 성공문제를 놓고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군일군들은 대중의 창조적지혜와 열의를 적극 발동하여 이 사업을 줄기차게 밀고나갔다.그 과정에 군의 일군들과 산림경영소의 종업원들은 유모란재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종자선택을 잘하는것이라는 귀중한 경험도 찾게 되였다.

유모란종자를 심은 포전에서 드디여 첫 꽃이 폈을 때 군의 일군들과 주민들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피여올랐다.

활짝 피여난 유모란꽃, 그것은 제힘을 믿고 일떠서는 여기에 흥하는 길이 있다는것을 실증해주는 뚜렷한 증표였다.

군에서는 이 성과에 기초하여 유모란밭을 더 조성하기 위한 대담한 목표를 세웠다.

군내인민들의 기름문제를 원만히 풀고 수입을 높일수 있는 유모란재배는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였고 우시군에서는 유모란밭개간전투가 성과적으로 결속되게 되였다.

그 나날은 단순히 군경제발전을 위한 밑천을 마련해가는 과정만이 아니였다.대중의 가슴마다에 모든 산들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데 대한 당정책을 결사관철하는 여기에 번영의 길이 있다는것을 다시금 깊이 새겨준 중요한 계기였다.

가까운 앞날에 군에서는 새로 조성한 유모란밭에서 첫열매를 거두어들인다고 한다.하기에 우시군사람들의 화제는 자연히 풍요한 수확의 계절에로 이어진다는것이였다.

참으로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이야기였다.

이제 유모란밭에서 주렁질 열매들과 더불어 보다 윤택한 생활을 누리게 될 우시군인민들의 밝은 래일이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았다.

정녕 군안의 그 어느 단위에 들려보아도, 그 누구를 만나보아도 제힘으로 번영의 길을 열어가려는 불같은 일념이 맥박치고있었다.

자강땅의 두메산골군인 우시군에 펼쳐진 전변의 모습은 그대로 자력갱생을 보검으로 틀어쥐고나갈 때 뚫지 못할 난관이 없으며 어느 고장이든 능히 번영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화폭이였다.

오늘도 좋지만 더욱 살기 좋은 고장으로 변모될 우시군의 래일을 그려보며 이곳을 떠나는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자기 힘을 굳게 믿고 자기 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는 바로 여기에 흥하는 길이 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일권
장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