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4월 19일 로동신문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숭고한 동포애의 정화

 

백화만발하는 화창한 4월에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또다시 받아안은 재일동포사회가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이고있다.

대를 이어 끝없이 흘러드는 사랑의 생명수에 몸과 마음을 적시며 재일동포들 누구나 뜨거운것을 삼키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후대관을 받드시여 이역만리에 있는 아들딸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부어주고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추억의 물결은 첫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받아안던 63년전의 그 기슭으로 파도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주체46(1957)년 4월 19일, 바로 이날로부터 해외동포들의 운명과 미래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없이 뜨거운 민족애와 동포애, 어머니조국의 은혜로움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구가하며 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흘러왔다.

예로부터 교육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한 성스러운 사업이라고 일러왔다.하지만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박해, 집요하고 악랄한 동화책동이 국책으로 감행되고있는 일본땅에서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말그대로 존망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이역땅에 끌려가 민족적멸시와 학대, 가난과 무권리속에서 살아온 재일동포들이였다.일제의 조선민족우민화정책의 혹심한 피해자들도 바로 그들이였다.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은 조국이 해방된 후 어려운 형편에서도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각지에 학교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 토대는 너무나도 빈약하였다.재정난이 가장 큰 문제였다.원래 교육사업자체가 많은 자금이 드는 사업인데다가 일본반동들의 극심한 민족차별정책으로 하여 끼니도 에우기 어려운 동포가정들이 많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게다가 일본반동들은 재일조선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것을 말살하기 위해 총칼탄압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엄혹한 실정을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

주체46(1957)년 1월말 평양에서는 국가예산초안을 토의하는 내각회의가 열리였다.전쟁의 상처가 아직 채 가셔지지 않았던 때여서 해야 할 일은 방대하였지만 재정실태는 엄혹하였다.한푼두푼 쪼개가며 세운 예산초안의 세부항목까지 일일이 따지는 이 회의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어느 부분에 넣었는가고 물으시였다.나라의 재정형편이 너무 긴장하여 국가예산에는 반영하지 않고 별도로 림시외화계획에 넣으려 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아닙니다.보내주어야 합니다.당장 보내주어야 합니다.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장학금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두어서는 안되며 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뜻이였다.

이렇게 되여 세상에 없는 예산항목이 태여나게 되였다.

당시 나라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전쟁으로 페허가 된 공장과 마을들을 복구해야 했고 학생들에게 해빛밝은 교실을 안겨주어야 했으며 아이들의 발에서 아버지들의 지하족도 벗겨주어야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살림이 어렵고 우리 아이들도 곤난한 속에서 공부하고있다 해도 이역에서 고생하는 동포자녀들을 위해 꼭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결심이였다.

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들도 지덕체를 갖추어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기를 바라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우리 수령님의 그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 재일동포들은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였다.

소생의 빛발은 민족교육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전총련적으로 민족교육바람이 더욱 세차게 일어번지였고 동포들의 애국열의도 비할바없이 높아졌다.

총련 오사까조선고급학교의 건설과정만 놓고보아도 그렇다.이곳 동포들은 교사건설에 쓰라고 조국에서 보내준 사랑의 교육원조비가 있었지만 그 귀중한 돈은 오직 아이들의 교육교양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고 하면서 기어이 자기들의 힘으로 문화회관까지 갖춘 현대적인 교사를 덩실하게 일떠세웠다.일본땅 곳곳에 일떠선 이런 학교들에서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려퍼지고 자기 수령 , 자기 조국을 알고 민족의 륭성번영에 한몸바칠줄 아는 애국의 미더운 역군들이 억세게 자라났다.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총련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가 자리잡고있었다.공장과 농촌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늘 재일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며 그들에게 해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자고 하여도 생산을 더 늘여야 한다고 우리 일군들과 근로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군 하시였다.

노래가사에도 있듯이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참으로 산이나 바다에 비길수 없이 높고 큰 사랑이였다.정녕 우리 수령님은 온 나라 청소년들뿐아니라 이역의 동포자녀들의 성장까지도 걸음걸음 보살펴주신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학부형이시였다.

재일동포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마음이자 우리 장군님의 마음이였다.총련민족교육력사의 갈피갈피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뜨거운 동포애, 숭고한 후대관을 노래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수놓아져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늘 우리 일군들에게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인민경제부문에 투자하는것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이라고, 이 문제를 가지고 흥정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간곡히 이르군 하시였다.그 불보다 뜨거운 후대사랑은 민족최대의 국상을 당하고 온 나라가 전대미문의 고난을 헤쳐나가던 엄혹한 시기에도 변함없이 이역만리에로 굽이쳐갔다.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단순한 재정적문제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키고 수령님께 의리와 도리를 다해나가는 중대한 사업이라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드팀없는 신념이고 의지였다.

60여년세월 거치른 이역땅에서 민족의 혈통, 애국의 넋이 꿋꿋이 이어지게 하는 사랑의 젖줄기, 정신적자양분으로 되여온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웅심깊은 사랑속에 어엿하게 성장하였던가.총련민족교육의 화원에서 배움의 첫걸음마를 떼고 희망을 활짝 꽃피운 그들의 가슴속에는 교육원조비, 장학금이라는 이 여덟글자가 소중히 간직되여있으며 이역의 어지러운 바람이 스며들지 못하는 해빛밝은 교정에서 성장하던 못 잊을 그 나날이 새겨져있다.

조선학교를 참관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것이 있다.재일조선학생들의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보면 마음이 절로 개운해진다는것이다.자기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고상한 정신세계와 진지한 학습태도, 굳센 단결력과 례절바른 도덕품성, 교정에 흘러넘치는 혈육의 뜨거운 정 등 총련의 민족교육만이 펼칠수 있는 놀라운 현실은 모두를 감동시키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체취가 뜨겁게 어려있는 민족교육의 이 아름다운 화원을 굳건히 지켜주고계신다.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더욱 뜨거워지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어버이사랑을 길이 전하며 이역의 아들딸들은 감사의 노래, 경모의 노래를 목메여 부른다.

재일조선인운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을 주체의 피줄기로 꿋꿋이 이어주는 사랑의 생명수인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있어 민족교육의 화원은 영원히 만발할것이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이역의 사나운 돌풍속에서도 일편단심 보답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갈것이다.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