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5월 4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싸운 열혈전사

혁명투사 권영벽동지의 한생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늘 마음속에 새겨두시고 뜨겁게 추억하신 열혈투사들중에는 권영벽동지도 있다.

그는 우리 혁명의 가장 준엄한 시기에 오직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 한분만을 변함없이 믿고 따르면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일편단심 사령관동지께 무한히 충직한 참된 혁명가였다.

《나를 낳아준것은 어머니이고 혁명투쟁에서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준 사령관동지는 나의 스승이며 어버이이시다.나는 일편단심 사령관동지께 충성을 다하리라.》

그의 수첩에 적혀있던 이 글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혁명의 수령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그이께서 이끄시는 혁명위업에 한생을 바치는것을 드팀없는 인생관으로 삼은 권영벽동지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비껴있다.

권영벽동지는 주체24(1935)년 3월초 요영구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되였다.

그날 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 이렇게 말씀올렸다.

《나는 적들과의 결전에서 뒤자리에 설 생각이 없습니다.아버지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맨 앞자리를 차지할 작정입니다.선두에서 결사전을 벌려야 할 이 몸이 어찌 살아날 생각부터 하겠습니까.그런 우연은 바라지 않습니다.》

권영벽동지는 그날의 맹세를 지켜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운명의 어버이로, 자애로운 스승으로 우러러모시고 높이 받들었으며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명령지시를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철저히 관철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그는 자기가 한다고 말한것은 몸이 열쪼각이 나도 기어이 해내는 사람이였다.언행의 일치, 아마 그것이 권영벽의 사람됨을 단마디로 규정지을수 있는 특징이며 인간적매력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1930년대 후반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을 장백과 국내의 여러 지역에 파견하여 당조직을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들가운데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선전과장으로 사업한 권영벽동지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해같은 믿음을 목숨보다 귀중히 간직한 권영벽동지는 공작지에 나간 첫날부터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웠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주체26(1937)년 초봄까지 장백현의 거의 모든 중심부락들에 수많은 당소조들과 조국광복회 지회, 분회들이 조직되게 되였다.

그는 김일성장군님의 로선과 방침을 군중이 알게 하는것은 우리들의 가장 선차적인 과업이며 이 과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습을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회들에 나가지 않는 날 밤이면 그밤대로 조국광복회 회원들이 학습에 리용할 교양자료를 집필하였고 그것을 한자한자 원지에 옮겨 등사기로 찍어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걸음 위험이 뒤따르는 적구에서 용의주도하고 능숙하게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고있는 권영벽동지를 더없이 미덥게 생각하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곁으로 몸소 불러 세심한 지도를 주시고 뜨거운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그럴 때마다 권영벽동지는 자기를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으로, 어엿한 혁명가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을 더욱 불태웠다.

주체26(1937)년 5월 어느날 권영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보천보시내와 적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정찰자료들을 수집할데 대한 과업을 받아안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구로 떠나는 그에게 회중시계를 선물로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고귀한 사랑을 또다시 받아안은 권영벽동지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직접 보천보시가를 정찰하여 사령부에 보고하였고 조국진군에 오를 부대의 길안내도 맡아 수행하여 전투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권영벽동지는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라면 무조건 끝까지 책임지고 수행하는 투철한 혁명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임무에 대한 결사관철의 정신을 지니고 영용하게 정치공작활동을 벌려나가던 권영벽동지는 주체26(1937)년 10월 일제경찰놈들에게 체포되였다.

권영벽동지가 조국광복회의 주요인물이라는것을 알게 된 일제교형리들은 그를 굴복시키려고 미친듯이 날뛰였다.

놈들은 그를 체포한 첫날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의 위치와 혁명조직을 대라고 하면서 악착스러운 고문을 들이대였다.

권영벽동지는 고문으로 받는 아픔보다도 자기자신과 동지들이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꾸려놓은 조직들이 파괴되는것이 더 가슴아팠다.

그는 감옥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 최선의 길은 다문 한사람이라도 더 살려내서 조직을 지키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그는 《모든것을 나에게 밀것!》이라고 적은 백글(손톱으로 쓴 글)쪽지를 리제순동지에게 보내였다.그리고 모든 일은 다 자기가 했다고 하면서 조직성원들을 보호하였으며 감방안에서 잠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 옥중에서 투쟁을 벌리던 권영벽동지는 주체34(1945)년 3월 10일 일제야수들의 교수대에서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혁명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권영벽동지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다한 그의 투쟁과 위훈은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서 빛을 뿌리고있다.

본사기자 라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