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5월 17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사령관동지의 안녕은 조선혁명의 운명이다

혁명투사 김주현동지의 한생에서

 

김주현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혁명의 길에 나섰고 불굴의 혁명가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어엿한 지휘관으로 성장한 견결한 투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주현동지를 알게 되신것은 주체20(1931)년 흥륭촌에서 무장투쟁준비를 하고계실 때였다.그때 김주현동지는 대사하 고등창이라는 마을에서 농민협회와 반일동맹조직을 책임지고 지하활동을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는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부대의 보배였다.그의 혁명임무에 대한 강한 책임성과 높은 정치적자질, 능숙한 조직적수완, 로련한 사업방법은 모든 지휘관들이 귀감으로 삼을만 한것이였다.》

어느날 김주현동지가 독립군출신들을 반일동맹조직에서 몽땅 몰아낼 잡도리를 한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찾아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주현동지와 담화하시면서 혁명에서 통일전선이 가지는 의의와 반일애국사상을 가지고있는 독립군출신들에 대하여 그가 잘못 생각하고있는 점들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이런 일이 있은 때로부터 김주현동지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뵙고 가르치심을 받군 하였다.

이러한 김주현동지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며 그의 성장의 걸음걸음을 보살펴주시였다.

사령관동지의 한량없는 따뜻한 사랑이 가슴에 스며들 때마다 김주현동지는 그이의 참된 혁명전사로 영원히 살며 억세게 투쟁해나갈 충성의 맹세로 가슴끓이였다.

김주현동지라고 하면 우리 인민들은 항일유격대의 가장 대표적인 후방일군으로 머리속에 떠올린다.하지만 그는 후방사업에만 능한것이 아니였다.우수한 군사지휘관이기도 하였으며 유능한 정치공작원이기도 하였다.그처럼 간고했던 항일전의 나날 김주현동지가 정치공작에서나 후방사업에서 매번 큰 실적을 올리고 사령관동지께 늘 만족만을 드릴수 있었던것은 사령관동지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그이의 명령지시라면 자기 한몸을 깡그리 바치는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정신을 소유하고있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근거지창설을 위하여 선발대를 파견하실 때 김주현동지를 책임자로 임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받고 사령부를 나선 김주현동지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때 김주현동지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실 사령부귀틀집의 위치를 정하는 문제였다.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첫자리에 놓고 모든것을 대하는데 습관이 된 김주현동지였다.그는 험한 산발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마침내 사령부밀영을 앉힐 좋은 자리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사령관동지의 안녕은 조선혁명의 운명이며 사령부의 안녕을 지키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첫째가는 의무이다.여기에서는 한치의 드팀도 있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기가 직접 앞산에 올라가 지형의 유리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뒤산에 서서 살피기도 하였으며 높은 나무에까지 올라가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빈틈없이 따져본 다음에야 마음을 놓았다.

김주현동지는 헌신적인 활동으로 소백수골, 곰산, 사자봉을 비롯하여 백두산지구의 밀영후보지들을 마련하였으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국내와 서간도일대의 넓은 지역에 전파하기 위한 정치공작임무도 원만히 수행하였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주현동지로부터 그동안의 사업정형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선발대의 임무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것이였으나 사령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이렇듯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을 지닌 김주현동지였기에 일시 과오를 범하고 작식대원으로 일할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에게 내리신 처벌을 뜨거운 사랑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이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며 투쟁의 시련속에서 자신을 더욱 단련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사랑에 의하여 그후 김주현동지는 7련대장의 중임을 받아안고 무비의 헌신성과 희생성을 발휘하면서 용감하게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 한분만을 믿고 그이의 사상과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던 김주현동지는 주체27(1938)년 10월 몽강현 남패자의 수림에서 후방병원의 환자들을 위해 산꿀을 채취하다가 적《토벌대》의 불의의 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김주현동지가 전사한 후 전우들은 그의 유물로 남은 배낭을 헤쳐보았다.그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누구에게나 있어야 하는 예비신발조차 없었다.그전날 신발을 꿰뜨린 대원에게 주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주현이 남기고간 빈 배낭을 부둥켜안으니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쓰시였다.

《행복을 지향하는것은 인간의 본성이다.세상에는 황금만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김주현은 아무 재산도 없는 무산자였다고 할수 있다.그러나 나는 김주현이야말로 진짜 거부였다고 생각한다.그것은 그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억만금의 황금으로 살수도 없고 바꿀수도 없는 고결한 사상과 넋을 간직하고있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전사가 지녀야 할 혁명적본분으로, 최상의 의리로 간직하고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싸운 김주현동지,

그는 오늘도 항일전의 모습으로 영생하며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혁명대오의 맨 앞장에 서있다.

본사기자 라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