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5월 28일 로동신문
농업전선을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으로 정한 당의 의도를 심장에 만장약하고 비상한 열의로 떨쳐나선 이 나라 농업근로자들의 가슴에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는 애국농민들의 군상이 숭엄히 빛나고있다.
당창건 75돐을 맞는 올해에 알곡생산에서 승리의 통장훈을 불러
김제원, 림근상, 안달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국농민, 농민영웅의 상징으로 숭고한 의리의 절정에서 영생하는 김제원,
그의 애국적모범을 따라 재령군농민들이 떨쳐나서 수천가마니의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
이에 못내 감동을 금치 못하신
국가의 식량사정이 곤난한 오늘 자기의 애국적증산투쟁으로써 높은 수확을 거두고 국가에 애국미를 헌납한 김제원동지를 비롯한 황해도 재령군농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바이라고 하신
《김제원동지와 같은 농민은 참말로 오늘 새 조선의 농민입니다.》
다음날
오늘 우리의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근로대중은 나라의 주인이 된 긍지와 인민정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안고 건국사업에 헌신하고있으며 민주건국을 위하여 무엇이든 아낌없이 나라에 바치고있다.이번에 애국미헌납운동을 발기한 황해도 재령군 김제원농민의 미거는 건국열의로 불타는 새 조선의 진정한 애국자의 모범적소행이다.그는 해방전에 피눈물나는 소작살이를 하다가 해방후 3 300평의 토지를 분여받은 평범한 농민이다.토지개혁의 혜택으로 제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려던 평생소원을 풀게 된 김제원농민은 1년내내 남보다 열성적으로 일하여 첫해농사에서 많은 소출을 내고 남먼저 농업현물세를 완납하였을뿐아니라 30가마니의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이것은 우리 당의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정신을 깊이 체득한 로동당원의 애국충정의 발현이다.…
그 이듬해 4월 어느날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지주집머슴으로, 소작살이로 짐승보다 못한 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그였다.손에는 열손가락이 성해도 입에 풀칠도 할수 없던 그에게 있어서 땅의 주인이 되는것은 하늘에 닿은 소원이였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부강조국을 건설하자는
그의 이러한 소행을 상기하신
로인과 자리를 같이하신
무릎을 마주한 담화는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진행되였다.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지어 알곡생산을 증대시킬데 대한 문제,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어야 나라의 긴장한 식량문제를 해결할수 있고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킬수 있으며 민족공업도 발전시킬수 있다는 간곡한 가르치심, 토지를 개량하고 잘 걸구어 옥토로 만들데 대한 문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로인은
로인이 분여받은 토지가 나무리벌에서는 좋지 못한 땅이였지만 거기에 질좋은 두엄을 많이 내고 땅에 염기가 올라오는것을 막아 그 전해에 비하여 근 2배의 알곡소출을 낸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본다고, 우리 나라 속담에 《부지런한 농사군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로인과 같은 농민을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고, 로인은 알곡소출을 높인 좋은 경험을 이 고장 농민들에게는 물론 다른 리의 농민들에게도 알려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며 새땅을 많이 찾을데 대하여 하시는 그이의 크나큰 고무는 로인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는 황홀한 심정으로
그해 10월 24일 만경대혁명학원 새 교사준공 축하연회에서 하신 연설에서도
김제원리, 반신상, 신미리애국렬사릉…
이처럼
옥도땅의 실농군이였던 림근상영웅도
주체83(1994)년 3월 1일
사회주의농촌테제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의 길을 깊은 추억속에 더듬으시며 나라의 농업발전에 이바지한 농업근로자들과 뜨겁게 인사를 나누시던
《나는 림근상이 살아있을 때는 온천쪽으로 갈 때마다 옥도협동농장에 들리군 하였는데 그는 늘 포전에 나와 일하면서 나를 기다리다가 맞이하군 하였습니다.》 머슴군가정에서 태여나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한 그였다. 9살때 지주집아이보개,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간 후 12살에 머슴, 20살때부터 소작살이… 이것이 피눈물나는 해방전 그의 경력이였다.
이러한 그를
그가 뜻깊은 대회에 고심하여 만든 파종기를 가지고 참가하였다는것을 아신
북두갈구리같은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신
어버이의 손길을 온몸으로 뜨겁게 받아안는 순간 그는 격정이 북받쳐올라 쏟아지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온천지구의 물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전국농업대회때마다 그를 만나주시고
어느해 가을에도
차에서 내리신
이어
그는 끝내 흐느끼고야말았다.
혁명가가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는
나라의 농사문제가 제기될 때면 그와 허물없이 의논하군 하시였으며 그의 소박한 생각도 귀중히 여겨주신
병중에 있는 그에게 문안의 말씀을 보내주시고 불치의 병에서 기어이 소생시키시려고 권위있는 의사와 값비싼 의약품까지 친히 보내주시며 할수 있는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신 우리
그러던 그가 끝내 병석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영영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옥도리를 지나실 때면 의례히 길가에 차를 세우시고 마을을 바라보시며 이 고장 산천만 보아도 림근상동무와 함께 포전길을 거닐며 농사를 의논하던 일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프다고 외우군 하신
《그전에는 내가 온천군에 갈 때마다 옥도협동농장에 들려 관리위원장을 하던 림근상동무를 만나보군 하였습니다.그는 내가 온천군에 갈 때마다 길가에 나와서있다가 나를 마중하군 하였습니다.그러던 그가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몇해전에 나는 림근상동무생각이 나서 그가 일하던 협동농장에라도 가보자고 생각하고 온천군으로 가던 길에 옥도협동농장에 들렸습니다.내가 차를 타고가면서 보니 림근상동무와 모색이 비슷한 사람이 논판을 돌아보고있기에 차를 세우고 동무가 림근상동무의 아들이 아닌가고 물어보니 옳다고 하였습니다.그가 지금 옥도협동농장에서 관리위원장사업을 하고있습니다.》 세월의 언덕을 넘어 신미리애국렬사릉에서 영생하는 농민영웅,
림근상영웅에 대한
9살때부터 머슴살이와 품팔이군으로 20여년, 그의 경력도 이 나라 농민들과 다를바 없었다.
그후 어느 한 대회에 참가하였던 그는 대회휴식시간에 뜻밖에도
무작정 품에 안기는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
너무도 황송하여 그가 의자를 옮겨놓으려고 하자
이제는 다리가 좀 어떠냐고 재차 물으시며 손수 다리를 만져주시는
이런 정과 열로 소박하고 순박한 한 농촌일군을 극진히 위해주시고 보살펴주신
논벼가 아지를 치며 무럭무럭 자라고있던 어느해 6월이였다.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그는 큰길에 나가 검부레기가 있을세라, 먼지가 일세라 깨끗이 쓸고 물을 뿌리며
그의 이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줄 어이 알았으랴. 평양과 잇닿은 큰길가에 여러대의 승용차가 나타나더니 눈부신 아침해살에 차창을 번쩍이며 마주 향해오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는 급히 옷깃을 여미고 서있다가
그런데 지나칠줄로만 알았던 차가 저만치에서 천천히 멎어서는것이였다.
이어 문이 열리더니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담으신
황황히 달려가는 그의 두볼로는 감격의 눈물이 줄줄이 흐르고있었다. 《안달수동무, 잘 있었소?》
푸르싱싱한 논벼며 길가의 수삼나무들도 기쁨에 겨워 설레이는듯 하였다.
농장살림살이며 농사일을 의논해주시느라
이윽고
가없이 맑은 하늘아래 즐비하게 일떠선 문화주택들과 눈뿌리가 모자라게 펼쳐진 벌, 키높이 자란 수삼나무들을 배경으로 그를 큰길가에 세워주시고 얼굴에 그늘이 질세라 해빛을 마주하도록 바로잡아주시기를 그 몇번,
몸소 그의 팔을 다정히 끼시고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신 불멸의 화폭을 남겨주신
너무도 행복하여 그는 그냥 뜨거운것을 삼키기만 하였다. 일군들모두도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감격의 눈물을 머금었다.
이렇게 그와 헤여진 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건강하여 일한다고 말씀올리자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이처럼
지금으로부터 27년전 3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황해남도, 황해북도, 개성시농업부문 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던
애국농민, 참으로 고귀하고 값높은 칭호이다.
한평생 이 나라 농민들을 품에 안으시고 헌신의 수만리를 수놓으신
고난의 나날 90년대의 김제원이 되자고 호소하며 애국미를 바친 황해북도 은파군 양동협동농장 제7작업반 농장원들, 재령군 김제원협동농장, 황주군 룡천협동농장의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
해마다 다수확으로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조국과 인민은 전세대 애국농민들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읽는다.
본사기자 량 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