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5월 30일 로동신문
《당과
우리 혁명력사의 갈피에는
그들속에
《모든 간부들과 당원들은 대를 이어 계승되는 충실성을 지니고 우리 당에 영원히 충성다하여야 하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가야 합니다.》
혁명의 종국적승리는
이 세상 천지가 변한다고 해도 오직 그대로만 있는 우리 조국의 자랑스러운 가풍, 조선인민의 이름과도 같고 이 땅의 모든 생의 전부와도 같은 충실성의 고귀한 혈통이 어떻게 꿋꿋이 이어지고있는가 하는것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영광의 한생
주체108(2019)년 건군절이였다.
이날
《그는 인민군대에서 젊은 군단장들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그는 사업에서 정열적이였고 무슨 일을 맡겨주어도 맵시나게 해제끼군 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리성국 전 군단장은
이처럼 우리
지금으로부터 7년전 조국의 서남전선을 지키는 대련합부대장으로 리성국동지가 임명되였다.
47살의 젊은 나이에
주체87(1998)년 1월 31일, 자기의 생일인 바로 그날에 리성국동지는 한생토록 못 잊을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였다.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켜 끊임없는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꿈결에도 그리던 환희의 시각이 다가올수록 인민군대에 입대하던 날 총잡은 군인으로 한생을 살겠다는 그의 결심을 듣고 대견함을 금치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맙다.여러 자식을 키우며 당앞에 떳떳이 내세울 자식이 없으면 어쩌랴 하고 근심하였는데 네가 일생을 무장으로 당을 받들겠다니 이젠 마음이 놓인다.》
(아버지의 마음도 함께 담아
리성국동지가 이런 생각을 가다듬고있는데
씩씩하게 영접보고를 올리는 30대 초엽의 구분대 지휘관이 당의 기초축성시기 자신의 곁에서 일한 사랑하는 옛 전사의 아들이라는것을 알게 되신
순간 리성국동지는 《아버지!》라고 목메여 부르며 한없이 자애로운 그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잊을수 없는 옛 전사의 모습을 그리시는듯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는 리성국동지의 등을 다정히 어루만지시며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그날의 가르치심은 리성국동지의 심장속에 한생 총대로 우리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갈 결심을 더 굳게 새겨주었다.
그후 당의 믿음과 사랑속에 어느 한 인민군부대 부대장으로 임명받은 리성국동지는
이렇듯
리성국동지는 숭엄한 마음으로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렀다.
1년치고 집에 들어가 발편잠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하고 아글타글 애쓴 보람이 있어 그는 짧은 기간에 대련합부대의 싸움준비상태와 걸린 문제를 환히 꿰들게 되였으며
인민군대의 젊은 군단장인 그가 남달리 정열적이고 무슨 일을 맡겨주어도 본때있게 해제끼는것이 못내 대견하시여
많은 사람들이 지난 기간 영화문헌을 통하여 서남전선의 최대열점지역 섬방어대들로 크지 않은 배를 타시고 풍랑사나운 바다길을 헤쳐가시는
생전에
어느날 대련합부대관하 섬초소를 찾으신
초당 10m의 센 바람과 길길이 날뛰는 파도… 더우기 그곳으로 가는 길은 세찬 물곬이여서 배는 안전바줄이 끊어져나갈듯이 사납게 요동쳤다.
하지만 리성국동지는 항해시험을 멈추지 않았다.금시라도
하여 그는 얼마후
이날의 풍랑세찬 바다길에서 리성국동지는 마음속으로 조국의 바다와 일생 나누어야 할 대화를 다 나누었다고 한다. (바다야, 제발 조국과 인민의 념원을 알고 오늘의 력사적인 항해길을 무사히 보장해주렴.…)
그날 저녁 리성국동지는
《오늘은
하기에 그는
리성국동지는 노래 《말하라 선군길아》를 제일 사랑하였다.
어느 한 연회에 참가하였을 때 그는
이 아침 최전연 찾아오신
여기서 평양은 천리인데 그 언제 떠나셨을가 …
이 노래를 부르느라니 군관시절
그런데도
주체106(2017)년 8월,
《…경애하는
위대하신 그이를 만나뵈오면 무한한 행복감으로 시간가는줄 모르다가도 정작 그이곁을 떠나면 또다시 못 견디게 그리운 전사들의 절절한 심정을 그대로 담아 쓴 편지를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퍽 넘어서고있었던것이다.순간 그는 돌덩이같은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쾅 쳤다.
(이 무슨 죄를… 온 하루 정력적인 훈련지도로 피로가 겹쌓이시였을
크나큰 죄책감으로 그가 잠 못 들고 모대기던 그 시각
《군단장! 밤이 깊었는데 왜 아직 휴식하지 않소? 동무들의 결의편지를 받고보니 힘이 나오.고맙소.
2017.8.27》 자자구구 믿음과 정이 넘치는 절세위인의 회답서한을 받아안는 순간 리성국동지는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세상에 우리
《나의 심장이 고동치는 최후의 순간까지
내 만일 우리
우리 혁명의 중대한 시기 조국방선의 중요한 초소에서
그가
하지만 그의 한생이 길었는가 짧았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되지 않는다.우리 당을 어떻게 받들었으며
비록 짧았어도 생의 매 구간마다 한점의 후회나 공백이 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으로 꽉 차있어
순간순간
충실성의 억센 뿌리
리성국동지와 그의 아버지 리경선동지는 활동한 년대도, 맡고있은 직책도 서로 달랐다.하지만 그들은 우리 당력사의 갈피에 한결같이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으며 이 나라 애국충신들의 고결한 넋이 빛나는 영생의 언덕,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충성의 한모습으로 올랐다. 이에 대하여 그 어떤 유전적요인이나 우연적인 결과로 설명할수는 없다.충실성은 유전되지 않으며 부모가 혁명가라고 하여 자식들도 저절로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는것은 지나온 생활의 교훈이고 진리인것이다.
하다면 어떻게 되여 이들가정에서는 충실성의 대가 그처럼 꿋꿋이 이어졌으며 당과
리성국동지가 아버지의 슬하에서 산 날은 많지 않다.당의 은정속에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졸업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였으며 21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당과
리경선동지와 오래동안 함께 일한 일군들은 그에 대하여 남달리 박식하고 실력있는 일군이였다고 추억한다.
리경선동지의 높은 실력은 단순히 타고난 재능에 의한것이 아니라
《말로는 충성을 다할수 없고 당과
이와 같은 투철한 신조로 리경선동지는
그가 생활에서는 또 얼마나 청렴결백하고 고지식하며 원칙적인 일군이였는가 하는것은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사업하는 기간에 두 아들을 인민군대에 내보냈으며 딸들도 로동현장에 세운 사실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슬하에 여섯남매를 두었지만 그는 자식들의 전도를 두고 당에 제기하여 해결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기에
《리경선이 고지식한 사람이다보니 자식들의 전도문제에 대하여 나에게 제기한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자식들의 전망문제를 두고 단 한번이라도 제기하여 해결받은 일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가슴아프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옆으로 보나 한모습이였던 리경선동지, 그런 아버지의 순결하고 고지식한 모습이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겠는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선혁명박물관의
《성국이 보아라. …나는 네가 입대초기의 어려운 고비를 용하게 이겨내고 마음의 준비도 더 좋아진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한다. 집의 소식과 식구들의 소식은 너의 동생들이 편지로 전하겠기에 나는 오늘 네가 군사복무를 하는데 도움이 될가 하여 몇가지 문제만 적으려고 한다. 하나의 문안편지로만 생각지 말고 가슴속깊이 새겨넣고 언제나 지침으로 삼기 바란다.
첫째로,
충성심은 혁명가의 생명이다.… 충성심은 혁명가의 삶의 원천이며 삶의 목적이다.혁명하는 사람의 삶의 보람은 충성심을 꽃피우는데 있으며 혁명가의 생의 길이는 충성심의 크기에 의하여 담보되는것이다. 이것은 오늘까지 내가 생활체험을 통하여 얻은 신념이며 생활신조이다. 너는 무엇보다도 이것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아니 너뿐아니라 혁명을 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사업에서나 생활에서나 당과
부모의 옳바른 삶, 한점의 티도 없는 깨끗한 삶이 자식들의 인생에 주는 영향은 이처럼 크다.아버지 리경선동지는 비록 세상을 떠났어도 생전의 모습은 때로는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길이 되고 때로는 엄한 채찍이 되여 리성국동지의 사업과 생활속에 소리없이 와닿았다.
리성국동지는 인민군대적으로 젊고 능력있는 지휘성원이였지만
그 성품이 과연 타고난것이였는가.리성국동지가 남긴 수양수첩에는 이런 글들이 있다. 《2014년 1월 8일
사람이 한생을 후회없이 곧바로 산다는것은 헐치 않은 일이다.특히 당의 신임속에 일정한 사회적직분이 있는 책임일군일수록 더욱 그렇다.간부일수록 늘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양을 쌓아나갈 때
《2015년 4월 30일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수준이 제일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당에서 준 직무의 높이가 결코 인격의 높이, 도덕적수양의 높이가 아니다.이 나라의 평범한 로동자나 병사들가운데는 인격이나 수양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첫 페지에
그날
《아버지가 살아서 상장의 군사칭호를 받은 동무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시였겠소.》 순간 리성국동지는 군사복무의 첫걸음을 떼던 시절 최전연에서 병사생활을 한 다음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대장이 되라고 하며 군인 수십명을 거느린 소대장이면 대단하다고 하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였다. 군관이 된 아들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는 비록 인민군소대장도 크게 여기였지만
리성국동지의 가슴속에 크나큰 격정이 차올랐다.그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맹세다졌다.
(내 삶의 하늘이신
그날의 맹세를 리성국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안고 살았다.
두해전 최고사령부의 작전적구상과 의도를 받들어 서남전선을 믿음직하게 지켜가던 리성국군단장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러던 어느날 리성국동지가 해당 부문 일군들을 찾았다. 《조국으로 돌아갑시다.한초가 급합니다.》
자기 병은 이미 기울었으니 더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한시바삐
조국으로 돌아온 날 저녁 리성국동지는 안해에게 제일 좋은 필기도구와 원고지를 가져다달라고 하였다.온종일 불치병의 말기증상에 따르는 극심한 아픔에 시달리고있는 그가 뜻밖의 부탁을 하는 바람에 안해는 영문을 몰라하였다. 그때에야 리성국동지는 자기의 속생각을 터놓았다.
《지난 몇해동안
우리 병사들이 제일 좋아하는것이 바로
성한 사람인 경우에도 집필사업은 헐한 일이 아니다.칼로 내장을 우벼내는것만 같은 아픔이 계속되는 속에서 그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한손으로는 배를 그러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원주필을 틀어쥐고 모진 아픔을 강잉히 참아가며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충성과 흠모의 글줄을 이어간 리성국동지,
당과
누구나 쉽게 발휘할수 없는 결사의 각오와 의지로
《이 이야기들은 반드시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 생의 마지막시각을 10여일 앞둔 2018년 10월 중순 어느날 군단장병들은 리성국동지가 병원침상에서 써보낸 편지를 받았다. 《군단장병동지들!
그러나 나는 동지들을 믿습니다.나의 몫까지 합쳐 군단이
나의 심장의 박동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는 마지막순간까지 전진하는 군단의 대오속에 같이 있을것입니다.분발하고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군단을
전투적인사를 보냅니다.》
이렇듯 리성국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리성국, 리경선동지들은 한창 혁명에 몸바칠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하지만 그들은 자기의 한생보다 더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를 우리 혁명력사에, 이 땅의 새 세대들에게 남기였다. 충실성의 억센 뿌리는 무엇인가.그것은 과연 어떻게 계승되는가.
그들의 고결한 삶은 참된 인간만이 당과
혁명은 한세대에 끝나지 않으며 전세대들이 새 세대들에게 물려준 가장 귀중한 유산인 당과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당과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