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6월 19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

락랑구역연료사업소 지배인 김희옥동무에 대한 이야기

 

락랑구역연료사업소에 들어서면 첫눈에 안겨오는 글발이 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

우리는 이 글발이 지배인 김희옥동무에게 소중히 자리잡고있는 량심의 물음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들이 바라는것이라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겠다는 정신으로 인민을 위하여 발바닥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여야 합니다.》

김희옥동무는 근 20년간 락랑구역연료사업소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인민의 참된 복무자, 충복으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였다.최근에는 원료투입으로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생산공정의 자동화, 흐름선화가 실현된 로력절약형, 원가절약형구멍탄공장을 일떠세웠다.

높은 목표와 리상을 가지고 사업을 설계하고 작전하며 새것을 창조하고 받아들이는데서 개척자, 선구자가 되여 일단 시작한 일은 완강하게 내밀어 끝장을 보고야마는 김희옥동무의 헌신적인 사업기풍은 우리 일군들이 오늘날 조국과 인민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서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된다.

 

충복은 대답을 말로 하지 않는다

 

10년전 어느 겨울날이였다.

리과대학의 책임일군과 국가과학원의 일군이 락랑구역연료사업소를 찾아왔다.

《사업소에서 저열탄연소첨가제를 도입하겠다는것이 사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김희옥동무가 반색을 하였다.

《사업소의 요구조건은 무엇입니까.》

혹시 이 조건, 저 조건 타산해보고 그만두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그들의 눈빛에 다분히 비껴있었다.

《요구조건은 하나입니다.연소첨가제가 반드시 우리 나라의 원료에 의거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래도 선듯 믿기 어려운듯 리과대학 책임일군이 힘들게 말을 꺼냈다.

《실험실적연구성과가 현장도입에서도 꼭 성공한다는 담보는 없습니다.연구사의 요구대로 조건을 보장하기가 헐치 않겠는데…》

《걱정마십시오.우리 식의 저열탄연소첨가제만 나올수 있다면 1년이고 3년이고 사업조건을 전적으로 보장하겠습니다.》

녀성지배인의 잡도리가 보통이 아니라는것을 확신하게 된 그들은 반가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들을 바래운 김희옥동무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수 없었다.

저열탄연소첨가제, 그것을 얼마나 애타게 갈망했던가.

김희옥동무가 락랑구역연료사업소 지배인사업을 시작한것은 주체91(2002)년 10월이였다.

낡은 설비 몇대밖에 없는 생산현장, 변변한 자동차도 없는 사업소…

(내가 꽤 해낼수 있을가.)

욕망같아서는 무슨 일감을 잡아 열정을 쏟아붓고싶었지만 그는 이런 생소한 곳에서 몇달을 지탱해내겠는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초급당위원장이 그와 마주앉았다.오랜 당일군인 그는 지배인보다 한달 먼저 이 사업소에서 사업을 시작하였었다.

《생각보다 헐치 않겠지요?》

속마음을 알고 하는 소리같아 김희옥동무는 선듯 대답을 못했다.

사실 식료공장에서 일한 경력도 있는 김희옥동무는 식료공장이라면 본때있게 추켜세울수 있을것 같았다.그래서인지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제기할가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인민의 충복이 되려고 나선 길인데 뭘 주저합니까.당조직은 지배인동무를 믿습니다.》

초급당위원장은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역주민들의 땔감문제를 원만히 보장한다는것이 쉽지 않다.주민들은 말이 아니라 결과를 바란다.…

김희옥동무는 자기자신과 일터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였다.

영광스러운 우리 당대렬에 들어서면서 실천으로 위대한 장군님께 충성다하겠다고 맹세다지던 일, 일군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심장을 뜨겁게 불태우는 진짜배기혁명가가 되자면 혁명밖에 모르는 사람,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사업수첩의 첫 페지에 정중히 모시고 일군으로서의 첫걸음을 떼던 그날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당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인민생활문제를 외면한다면 어떻게 당원이고 일군이라고 할수 있는가.)

그날 그는 자기 수첩에 이렇게 또박또박 썼다.

《충복은 대답을 말로 하지 않는다!》

다음날부터 그는 연료부문에 대한 당정책을 심도있게 파고들었다.그는 당보를 학습해도 기사를 읽는것이 아니라 옮겨베꼈다.그때 얼마나 비상한 각오를 안고 접어들었던지 그것이 몸에 푹 배여 지금까지도 그의 첫 일과는 당보학습, 당정책학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김희옥동무는 첫 사업을 사업소건물의 난방공사를 하는것으로 시작하였다.추운 겨울 불편을 참지 못해 사무실을 거의나 비우다싶이 하였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사업소를 정든 보금자리로 여기게 되면서 사업기풍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몇달후에는 사업소아래 공급소들의 면모를 모두 일신시켰다.

하지만 주민용땔감문제는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였다.당시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석유공급이 따라서지 못하여 주민용땔감을 석탄에 주로 의거하게 되였는데 석탄을 실어오는 일부터가 한걸음한걸음이 악전고투였다.한해치고 절반을 탄광에 나가살다싶이 하면서 기차로, 자동차로 탄을 실어왔다.때로는 손에 땀을 쥐고 아슬아슬한 령길을 넘어야 했고 이름모를 고개에서 차가 고장나 모닥불에 언 손을 녹이며 추운 겨울밤을 보내기도 했다.

손에 물집이 나도록 착화탄을 찍어 주민들에게 공급하였지만 얼마 안되는 녀성들의 힘으로 수만세대나 되는 주민들의 땔감수요를 도저히 보장할수 없었다.

김희옥동무는 착화탄생산을 기계화할 결심을 내렸다.착화탄수요를 보장하자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업소에는 기계를 아는 사람도, 설비와 자재도 없었다.그러나 그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인재도 자체로 키우고 설비도 자체로 갖추어야 한다.)

그가 당시 사업소의 부원이였던 한정혁동무를 데리고 평양기계대학을 찾아간것도 그무렵이였다.

《마음같아서는 제가 여기서 공부하고싶은데 그럴수 없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저대신 이 동무를 잘 키워주십시오.》

사업소에 기계기사가 한명만 있어도 마음껏 일을 내밀수 있다고 절절한 심정을 터놓는 녀성일군의 호소는 대학일군들의 마음을 뜨겁게 울렸다.이렇게 되여 한정혁동무가 대학통신공부를 하게 되였고 사업소를 떠메고나가는 기둥으로 자라나게 되였다.

김희옥동무는 설비문제도 자체로 해결하였다.다른 단위들에서 페기시킨 기계들을 하나하나 가져다 피타게 살려냈다.그 기계들이 오늘 사업소가 자랑하는 강력한 공무기지의 든든한 밑천으로 되고있다.

흐름식생산공정에 필요한 30여대의 설비들을 자체로 제작하고 설치하였을 때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수 없었다.

주체94(2005)년 김희옥동무는 마침내 년간 수백만장 생산능력의 흐름식착화탄생산공정을 꾸려놓고야말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다.주민들속에서 착화탄의 질이 낮다는 반영이 제기되였던것이다.

어느날 김희옥동무는 한 주민이 공급받은 착화탄을 부스러뜨려 마대에 담는것을 보게 되였다.알고보니 질좋은 탄과 섞어 다시 빚으려고 한다는것이였다.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한다고 뛰여다녔지만 아직도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김희옥동무는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그는 저탄장에서 질좋은 탄만을 골라 착화탄을 빚도록 사업을 조직하였다.그랬더니 주민들의 반영이 대단하였다.대신 저탄장 한쪽에는 좋은 탄을 골라내고 남은 저열탄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어떻게 캐낸 석탄이고 어떻게 날라온 석탄인가.)

그때부터 김희옥동무의 머리속에는 온통 저열탄도 땔감으로 리용할수 있는 연소첨가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저열탄의 발열량을 높여보려고 별의별 실험을 다해보았다.만족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안타깝게 속을 썩이던 때에 출장길에서 리과대학에 저열탄연소첨가제에 대한 실험을 하는 과학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그런 과학자가 있다면 우리 사업소로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정말 대학에서 사람이 찾아온것이였다.

얼마후 김희옥동무는 리과대학의 교원과 함께 저열탄연소첨가제도입시험에 달라붙었다.추운 겨울에 진행된 시험은 탄가스에 의한 중독위험을 동반하였지만 이들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열탄연소첨가제를 도입하여 주민용땔감문제를 해결하리라!

이들이 낮이나 밤이나 온갖 정력을 다 쏟아부은 보람이 있어 6개월만에는 저열탄연소첨가제도입에 성공하고 인차 생산기지를 꾸려놓을수 있게 되였다.저열탄연소첨가제는 후에 실정에 맞게 여러차례 갱신되고 여러 단위에서도 개발되였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기적같은 일이였다.사업소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칠새 없었다.

실적으로 인민의 충복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 김희옥동무는 주체102(2013)년 3월 영광스럽게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고 진행된 전국경공업대회의 주석단에 올랐으며 토론까지 하였다.

충복은 대답을 말로 하지 않는다!

김희옥동무는 맹세를 지켰다.

사업을 시작하여 5년만에 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한데 이어 련이어 2중26호모범기대영예상공장, 모범체육공장, 모범준법단위, 2중모범기술혁신단위, 모범과학기술보급실쟁취단위,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의 영예를 지니였다.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에서 쌓은 이 값높은 영예와 실적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떳떳한 대답을 주고있다.

 

리상의 높이는 참된 삶의 높이

 

성과에 만족을 모르고 계속혁신, 계속전진만을 아는 완강한 실천가인 김희옥동무의 리상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이였다.

김희옥동무는 구멍탄공장을 점도록 바라보며 조용히 눈굽을 닦았다.그의 마음속에는 현대적인 구멍탄공장을 새롭게 일떠세울 포부가 자리잡고있었다.정작 10년전에 자기 손끝으로 피나게 일떠세운 건물을 제손으로 헐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섰던것이다.

밤잠을 잊고 뛰여다니며 건설자재를 하나하나 모아 일떠세운 건물에 흐름식착화탄생산공정을 꾸리느라 종업원들과 땀을 함께 바치던 나날이 눈앞에 선했다.주민용땔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세월 쏟아부은 심혼이 깃들어있고 저열탄연소첨가제를 완성하기 위해 바친 헌신의 자욱도 거기에 새겨져있었다.자그마한 사업소가 한 일이 국가적인 관심사가 되여 내각과 성, 중앙기관, 연료부문 일군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정든 일터였다.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에 바쳐온 땀과 열정이 소중하게 안겨올수록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리상을 더욱 억제할수 없었다.

(시대가 요구하고 인민이 요구하고있다.주저하지 말자.)

그는 결심을 굳혔다.그날부터 자기 손으로 그린 형성안이 얼마인지 모른다.밤새워 그리고는 아쉬운것 같아 또 그려보기를 그 몇번…

부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리용하면서도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완성한 형성안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완전자동화된 구멍탄공장!

한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던것이다.

감탄보다 걱정들이 더 컸다.자그마한 사업소의 힘으로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한단 말인가.

김희옥동무는 절절한 어조로 일군들에게 말하였다.

《늘어나는 주민용땔감수요를 보장하지 못하고 시대의 요구에도 따라서지 못할바에는 우리가 왜 필요합니까.》

김희옥동무의 결심을 당조직에서 지지해주었다.리과대학에서도 적극 도와나섰다.

며칠후부터 공사가 시작되였다.

건물을 흔적도 없이 헐어내고 기초를 파는것까지는 그럭저럭 빨리 해냈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김희옥동무는 세멘트, 철근을 해결하려고 이를 악물고 뛰여다녔다.얼마 안되는 녀성들의 힘으로 공사를 한다는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하루, 한달이 힘겹게 흘렀다.

어느날 앓는 몸으로 공사를 이끌던 김희옥동무가 끝내 쓰러졌다.

의식을 차리기 바쁘게 집을 나서려는 김희옥동무의 앞을 남편 조순일동무가 막아나섰다.

《당신 꽤 견디여내겠소? 하루만이라도 좀 푹 쉬오.》

말은 조용히 하였지만 이번에는 기어코 눌러앉힐 심산이였다.

《이번 일까지만 끝내면 사업소가 허리를 펼것 같애요.》

아무 일도 없은듯 웃어보였지만 안해의 병색을 알아보지 못할리 없는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말 좀 하기요.사람들이 뒤에서 뭐라고 하는지 아오?》

딸들이 다 커서 시집을 가도록 가정생활에 몸을 깊이 잠그지 못했어도 언제 한번 싫은소리 한적이 없었던 남편이였다.

《나도 사람들이 쉰을 훨씬 넘긴 나이에 그렇게 큰 일판을 벌려놓았다가 어쩌겠는가고 걱정한다는걸 알아요.그런데 주먹을 부르쥐고 달려도 앞에는 일감뿐이니 맥을 놓을수가 없군요.》

주민용땔감에 대한 수요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제 한몸이나 돌보면서 편히 살아갈수는 없다고, 눈을 감으면 인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믿음을 주고 말없이 보살펴주는 당조직의 손길, 어려운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을 바치는 종업원들의 모습이 어려와 누워있을수 없다고 절절하게 말하는 그를 조순일동무도 더 만류할수 없었다.

《함께 가기요.내 연료사업소를 위해 뭘 좀 준비해놓은것이 있소.》

김희옥동무는 그러한 남편이 정말 미덥고 고마왔다.

출장길에서 연료사업소일까지 걱정하면서 일손을 보태준 진정으로 고마운 혁명동지였다.그러한 남편앞에 언제인가는 단란한 가정의 주부로 나서고싶었지만 10년이 지나고 또 몇해가 흘렀어도 어쩔수 없었다.한가지를 해놓으면 또 아쉬운것이 있고 그것을 해제끼면 또 새 일감이 기다렸다.

이런 그였기에 종업원들과 힘을 합쳐 2년 남짓한 사이에 현대적인 구멍탄공장을 기어코 일떠세우고야말았다.생산공정에서 설비의 국산화비중은 97%를 넘어섰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김희옥동무가 자체의 힘으로 구멍탄공장을 개건현대화하여 주민들의 땔감문제해결에 이바지하고있는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이 사업소의 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종전보다 훨씬 적은 로력으로 5배의 구멍탄과 착화탄을 생산할수 있는 현대화된 생산공정, 원료투입으로부터 포장까지 사람이 콤퓨터조종과 감시만 하는 속에 착화탄과 구멍탄이 쏟아져나오는것을 보며 사람들은 이 일을 정말 사업소자체로 했는가고 묻군 한다.

그럴 때면 김희옥동무는 종업원들의 정신력을 믿고 일판을 벌려놓던 때를 돌이켜보며 기초를 파면 건물을 세울 방도가 생기고 건물이 서면 설비를 차려놓을 방도가 나진다고 웃으며 말해주군 한다.

사람들은 그 놀라운 현실앞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고있지만 이 사업소에서 정면돌파전의 첫해인 올해에 재자원화사업에서 혁신적인 성과가 이룩되여 머지않아 쓸모없이 버려지던 페설물이 주민용땔감으로 전환되는 기적같은 현실을 보게 되리라는것을 상상조차 못할것이다.

김희옥동무는 일욕심도 많지만 다정다감한 인정미로 하여 종업원들의 사랑을 받는 일군이다.

구멍탄공장의 현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어느날이였다.현장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던 한 녀성종업원이 지쳐 쓰러졌다.이 일을 알기 바쁘게 그가 누워있는 곳으로 달려간 김희옥동무는 점적관이 꽂혀져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한시간나마 말없이 곁에 앉아있다가 조용히 나가는 지배인을 보면서 그도 눈물을 흘렸다.종업원들의 가정에 어려운 사정이 제기되면 만사를 제끼고 뛰여다니고 밤낮으로 수고하는 종업원들을 위해 때없이 가정에서 음식을 마련해가지고 나오는 그의 마음을 모두가 잘 알고있었다.

일군 한사람한사람에게 세심한 관심을 돌리며 참된 애국자로 키우려고 애쓰는 그 진정은 또 얼마나 뜨거웠던가.사업소에서 자란 여러명의 일군이 구역안의 한개 단위를 맡아 책임적으로 이끌어나가는것을 보면서 김희옥동무는 더없는 보람을 느끼군 한다.

그의 머리속에는 지금도 종업원들을 보란듯이 내세울 일감이 꽉 차있다.

첫걸음을 뗀 자력갱생기지들을 활성화하여 종업원들의 생활조건을 더 잘 보장해주며 그들이 먼지 한점 없는 현장에서 일하도록 새 기술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일감들이 머리속에서 떠날줄 모르고있다.

리상이 높은 사람은 끊임없이 일을 찾아하면서도 시련과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16과학기술상수상자인 김희옥동무가 해놓은 일을 보고서는 그가 몇년전 중병으로 쓰러졌다가 소생한 녀성이라는것을 아마 믿기 어려울것이다.우리 당의 리상에 따라서려는 불같은 마음이 식지 않으면 인생의 불길도 쉬임없이 타오른다는것을 김희옥동무는 자기의 강의한 삶으로 증명하고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

걸어온 인생길을 뒤돌아볼 때 김희옥동무처럼 이 량심의 물음에 떳떳하게 대답할수 있다면, 땀과 열정, 지혜와 재능 그 모든것을 진정으로 다 바쳤다고 자부할수 있다면 그 생은 시대의 아름다운 찬가로 끝없이 메아리칠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동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