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6월 23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티없이 깨끗한 충실성을 지닌 참된 전사

혁명투사 지태환동지의 한생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모셔진 사진문헌들은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사가 응축되여있는 우리 혁명의 고귀한 재보이다.

만단사연을 전하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소중한 그 사진문헌들에는 항일혁명투사 지태환동지의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빛나는 위훈도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선렬들이 보여준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고결한 혁명정신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으며 그들이 세운 불멸의 투쟁업적과 위훈은 오늘도 조선혁명을 떠밀어주는 고귀한 밑천이 되여 길이 빛나고있습니다.》

지태환동지는 주체20(1931)년 봄부터 혁명투쟁에 참가하였다.그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여러 습격전투와 유격구를 보위하기 위한 방어전투들에 참가하여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는 주체25(1936)년 겨울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서 후방일군으로 활동하면서 부대의 후방조건보장을 위하여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지태환동지는 사령관동지의 사상과 의도를 관철하는 길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보천보전투와 구시산전투직후 장백현의 지양개등판에서는 전승을 경축하는 군민련환대회가 진행되였다.

군민련환대회가 끝날무렵 세개 부대가 함께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찍게 되였다.4사에 사진기가 있었던것이다.그러나 요청자는 많고 사진종판은 적은것으로 하여 대원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킬수는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 대원들이 사진을 더 찍고싶어하는 광경을 보시면서 큰 충격을 받으시였다.사진에 대한 대원들의 갈망이 마음에 몹시 걸리시였다.

그날 숙소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몇 지휘관들에게 어린 대원들이 사진을 찍고싶어 4사의 사진사를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들어주던데 우리도 사진기가 한대 있기는 있어야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깊이 새긴 지태환동지는 사진기공작사업에 달라붙었다.

적들이 주민들의 거민증을 내고 주민등록을 하는데 쓸 사진을 찍으려고 20도구경찰분서에 사진기 한대를 가져다놓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19도구 구장이였던 리훈과 함께 장시간동안 사진기를 빼내기 위한 묘책을 토론하였다.

그리하여 사진기는 경계가 삼엄한 20도구경찰분서로부터 19도구에 있는 친일주구의 집마당으로 옮겨졌고 유격대원들이 촬영현장에 나타나 사진을 찍으러 온 주민들에게 선동연설을 한바탕 한 다음 사진기를 메고 유유히 사라지는 희극이 벌어졌다.지태환동지는 적구에서 사진기만 구해온것이 아니라 사진사까지 데리고왔다.

이렇게 되여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가지가지의 사실들을 전하는 귀중한 사진문헌들이 기적적으로 력사에 남을수 있었다.

지태환동지는 입이 무겁고 실속이 있었다.무슨 과업을 받아안기만 하면 실농군처럼 수걱수걱 해냈다.

그는 조국땅 방방곡곡에 혁명의 불길을 지펴올릴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로선을 높이 받들고 국내에 들어가 령활하고 용의주도한 정치공작으로 각계각층 인민들을 혁명조직에 묶어세웠다.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장백현 19도구에 파견되여서도 기층당조직과 조국광복회조직들을 튼튼히 꾸리는 한편 생산유격대를 발동하여 원호물자마련, 정보수집, 군사정찰, 주구청산 등 다양한 사업들을 힘있게 벌리였다.

일제가 조작한 《혜산사건》으로 장백지구와 혜산일대에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어난 속에서도 파괴된 조직을 수습하기 위하여 이악하게 활동하던 지태환동지는 그만 주체26(1937)년 12월에 변절자의 밀고로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였다.그는 철창속에서도 일제교형리들과 맞서 굴함없이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태환동지를 추억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우리가 항일혁명시절의 모습을 몇장이나마 남길수 있었던것은 지태환이 사진기를 공작해온 덕이였다.그런데 지태환자신은 사진기앞에 나선적이 없었다.견결하고 솜씨있는 지하정치공작원이였던 그는 〈혜산사건〉때 체포되면서 적들의 문건에 비로소 사진을 남기였다.

지태환은 포승에 묶이운채 사진을 찍히웠는데 분통이 어린 얼굴을 외로 돌린채 날카로운 시선을 땅에 박고있었다.자부심이 남달리 강한 그 사나이의 심장이 얼마나 원한으로 끓어올랐겠는가.그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태연하였다.지태환은 〈나는 일제놈들에게서 피값을 다 받아냈다.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고도 혁명가요를 높이 부르며 옥중투쟁을 과감히 벌리던 지태환동지는 조국해방을 몇달 앞두고 서대문형무소에서 희생되였다.

그는 오늘 우리의 곁에 없다.

하지만 지태환동지가 보여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고결한 혁명정신, 그가 세운 투쟁업적과 위훈은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길이 빛나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