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6월 28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나라의 신경을 지켜 복무의 자욱을 변함없이 새겨가는 참된 일군

황해남도체신관리국 과장 리명호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황해남도체신관리국에 제대배낭을 푼 때로부터 지난 10여년간 우리의 주인공이 걸어온 삶의 자욱에는 참으로 의미심장하고도 값진 인생의 철리가 새겨져있다.

자기가 맡은 초소를 나라의 신경, 혈맥으로 여기고 불타는 열정과 완강한 실천력으로 짧은 기간에 도내 체신부문의 현대화와 물질기술적토대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였으며 농업과 교육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정보화실현에 적극 기여하고있는 황해남도체신관리국 과장 리명호동무,

우리는 그의 삶과 투쟁을 통하여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조국과 시대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심장으로 자각할 때, 그 의무를 지키는 길에서 변함없는 복무자의 자세로 살며 일할 때 그런 삶은 조국이 기억하고 인민이 평가하는 값높은 삶으로 된다는것을.

 

나의 군사복무는 끝나지 않았다

 

긍지스럽고 보람찼던 나날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리명호동무에게 있어서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서 보낸 30여년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한생의 귀중한 재부였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기가 할바앞에서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말거라.》

이것은 김책공업대학(당시) 입학통지서를 조선인민군입대증으로 바꿔쥐고 조국보위초소에로 떠나던 날 환송열기로 끓어번지는 역두에서 그에게 아버지가 한 부탁이다.이것은 아버지이기 전에 전세대가 새 세대에게 의무에 대한 자각을 심어준 첫 당부였다.

때는 1976년 8월, 판문점사건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던 그 시각 리명호동무는 전쟁로병인 아버지의 당부를 심장에 새기고 전선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시작된 군사복무였다.즐거움과 랑만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려움도 많았던 시절이였다.눈보라치는 겨울에도, 뙤약볕 내려쪼이는 한여름에도 부대의 지휘통신보장을 위해 늘 무선통신기재를 둘러메고 조국의 산야를 누벼가던 나날 그는 복무자의 자각을 말이나 글줄이 아닌 병사의 땀젖은 군복속에 새겨넣으며 성장했다.

하기에 입대한지 한해도 못되여 유능한 통신병이 된 리명호동무는 21살의 애젊은 나이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고 그후 어깨에 별을 단 군관으로 복무의 길을 이어가는 나날에도 맡겨진 전투임무수행의 앞장에 섬으로써 언제나 부대의 자랑으로 되였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리명호동무는 제대되여 황해남도체신관리국 부원으로 배치받았다.

첫 출근을 앞둔 날 밤 그는 잠을 이룰수 없었다.이제는 그토록 정이 든 군복을 다시 입을수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고 그럴수록 한생 마음의 군복만은 벗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다졌다.다음날 아침 거울앞에서 오래도록 옷매무시를 바로잡는 그에게로 안해가 다가왔다.

《대렬검열을 받기 위해 군복차림새를 깐깐히 살펴보던 그 습관은 여전하구만요.》

리명호동무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랐다.

《난 군사복무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소.》

얼마후 그는 단정한 옷차림새로 집뜨락을 나섰다.그리고 힘찬 발걸음을 내짚었다.비록 초소는 바뀌고 맡은 임무도 다르지만 조국을 위한 복무자의 변함없는 그 자세로!

그가 도체신관리국 부원으로 임명되여 첫 과업을 받았을 때였다.그것은 도내 어느 한 지역의 통신망구성에 대한 자료작성이였는데 별로 큰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과제였다.

다음날 저녁이였다.리명호동무가 내여민 문건에 눈길을 주던 관리국일군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자료의 정확성이 나무랄데 없는데다가 과제에 밝혀져있지 않은 통신망의 불합리한 구조와 그 해결대책까지 구체적으로 첨부되여있었던것이다.

《자료작성을 위해 그 먼곳까지 직접 다녀왔소?》

일군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리명호동무를 바라보았다.바지가랭이에 묻은 흙탕물이며 땀배인 자욱이 채 마르지 않은 옷…

얼마후 관리국에서는 새로 온 부원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갔다.

도내 전기통신부문의 구조와 설비들에 정통하기 위해 휴식일, 명절날도 가림이 없고 자기 부문은 물론 그 련관단위의 실태까지 손금보듯 꿰드느라 하루일이 끝난 뒤면 수십리 먼길도 주저없이 떠나군 하는 무서운 정열가,

맡은 일에서 한치의 에누리도 모르며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전에는 하루든, 열흘이든 일손을 놓지 않는 리명호동무를 두고 사람들은 승벽심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너나없이 이야기했다.그러나 그 열정은 단순히 승벽심이나 성격때문이 아니였다.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는 드팀없는 자각, 자기 초소를 조국이라는 크나큰 심장에 박동을 더해주는 피줄기로 여기고 한생 복무자의 자세로 살려는 높은 책임감이 그런 열정과 헌신을 낳게 했던것이다.

오늘도 관리국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몇해전 여름 뜻밖의 폭우로 청단군과 벽성군을 비롯한 도안의 여러 지역이 큰물피해를 입었을 때 통신망복구작업에서 발휘한 그의 희생성과 헌신적인 노력을 잊지 못하고있다.그때 여러개의 크고작은 저수지제방이 터져나가고 수많은 농경지와 건물이 물에 잠긴 속에서 진행된 통신망복구작업은 말그대로 목숨을 내대야 하는 준엄한 결전과도 같았다.

리명호동무를 비롯한 도체신관리국 일군들이 탄 차가 벽성군 죽천리를 떠나 선암저수지로 달리던 도중 어느 한 강을 건늘 때였다.갑자기 차창의 절반까지 물이 차오르며 발동이 멎어버렸다.더는 앞으로 나갈수 없었다.

모두들 점점 불어나는 강물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하는 속에 문득 한사람이 허리에 바줄을 감기 시작했다.리명호동무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명호동무, 저 물살에는 위험하오.》

《얼마동안이라도 물이 찌기를 기다리는게 어떻습니까.》

그러나 리명호동무의 결심은 단호했다.

《군사복무땐 이보다 더한 고비도 헤쳐넘었는데 일없습니다.누구든 선암저수지에 빨리 가닿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그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품치는 강물속에 뛰여드는 리명호동무의 모습에서 인간이 사회앞에, 조국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를 다한다는것이 어떤것이며 그 길에서는 자기의 모든것 지어 목숨까지 기꺼이 바쳐야 할 시각도 있음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다.

얼마후 리명호동무는 당의 신임에 의하여 도체신관리국 과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그는 더욱더 불같이 살며 일했다.

맡겨진 일감앞에서 불가능이란 말조차 모르며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완벽한 수준에서 끝장을 보고야마는 그의 남다른 기질과 일본새는 신원세멘트공장조업에 필요한 통신망과 세멘트생산공정의 정보화실현과정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공장의 통신망구축과 함께 원료채취로부터 수송, 소성, 제품출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공정을 정보화하는 사업은 줄잡아도 몇달은 실히 걸려야 할 방대한 작업량이였다.그런데 공장준공날자까지는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준공식전까지 통신망을 꾸리는것만도 기적이라고 여겼다.그러나 리명호동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에서 바라는것이라면 그 어떤 일도 무조건 해야 하며 또 할수 있다는것, 바로 이것이 그가 수십년간의 군사복무를 통하여 뼈와 살에 새겨넣은 드팀없는 신조였다.

리명호동무의 치밀하고도 능숙한 공사조직, 결패있는 사업전개력과 관리국기술자들의 완강한 투쟁기풍은 응당한 결실을 안아왔다.그처럼 힘들게만 생각되던 공사가 단 보름만에 결속되여 세멘트공장준공식을 성과적으로 보장할수 있었던것이다.후날 사업성과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병사의 대답소리 〈알았습니다.〉는 〈명령을 수행했습니다.〉라는 보고나 같은것이요.명령이자 곧 집행이라는 군인의 기질과 배짱, 이것이면 세상에 못해낼 일이란 없소.》

이렇듯 마음속군복을 벗지 않고 당정책관철의 한길에서 오직 정보로만 걸어온 그의 열정과 노력에 떠받들려 지난 10여년간 황해남도체신관리국은 통신, 방송, 중계설비들의 현대화와 자료통신망관리의 과학화수준에서 전국의 앞장에 서는 자랑을 떨칠수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여기에 한개 도의 전기통신부문을 책임진 일군으로서 리명호동무가 지닌 불타는 충성심과 높은 실력, 완강한 실천력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모든것이 어렵고 부족한 속에서도 불과 몇해사이에 도안의 모든 체신초소에 2중전원체계와 통신계통종합감시체계를 확립하고 자연에네르기발전소 자동조종체계 등 많은 과학기술성과들을 이룩하여 전국적인 축전과 전람회들에서 발명증서, 특허증서, 정보기술성과등록증을 수여받음.

리명호동무가 제15차 전국발명 및 새 기술전람회에서 발명증서를 받은 통신계통종합감시체계만 놓고보아도 이 기술의 도입으로 도에서는 나라에 막대한 경제적리익을 줄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도내 체신부문의 현대화와 인민경제 여러 부문의 정보화실현에 바쳐진 리명호동무의 헌신적인 노력을 다 설명할수는 없다.

지금으로부터 여러해전 그가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에 내려갔을 때였다.농장의 빛섬유케블관리정형에 대하여 알아보던 그에게 별안간 관리위원장이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공장들에서 구축하고있는 통합생산체계를 우리같은 협동농장들에서도 할수 있습니까?》

뜻밖의 물음앞에서 리명호동무는 선뜻 대답을 줄수 없었다.협동농장의 통합생산체계에 대해서 생각해본적도 없거니와 그것이 체신부문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기때문이였다.그날 관리국으로 돌아온 리명호동무는 생각이 깊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문득 황해남도에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농사에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이 되새겨졌다.다음날 관리국당조직을 찾은 그는 자기의 결심을 터놓았다.

《협동농장경영관리체계의 정보화를 우리가 맡아 실현하겠습니다.》

긴말은 하지 않았어도 리명호동무의 심중에서 무엇이 고패치고있는지 초급당일군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잠시후 그는 리명호동무의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당조직이 적극 밀어주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삼지강협동농장의 농업경영관리체계를 정보화하기 위한 연구 및 개발사업이 시작되였다.

사실 협동농장의 생산지휘 및 경영관리체계를 정보화하기 위한 사업은 초행길이나 다름없었다.전국적으로 놓고볼 때 경영활동에 정보기술을 도입한 농업부문 단위들이 더러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것이였다.하기에 아직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일을 자체의 힘으로 꽤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와 함께 굳이 체신부문이 아닌 다른 단위 일에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리명호동무는 자기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농업생산이 왜 남의 일이겠는가.우리가 맡은 통신보장사업도 결국은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 필요한것이다.

이런 관점과 배심을 안고 리명호동무는 새 기술개발사업에 과감히 뛰여들었다.

농장의 경영업무체계와 과학기술보급체계, 포전상태감시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였다.

난관과 애로는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눈에는 익고 손에는 설다는 말이 있듯이 프로그람작성으로부터 장치설계에 이르는 모든것이 생소했고 새 기술개발에 따르는 자재와 설비도 부족했다.

그러나 농업생산의 과학화, 정보화를 기어이 실현하여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당정책을 현실로 꽃피울 리명호동무와 기술집단의 신념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개발사업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진행되던 어느날이였다.늦은저녁 포전들을 돌아보던 관리위원장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도에 올라가는 리명호동무를 바래워준것이 분명 한시간전이였는데 놀랍게도 그가 포전머리에 앉아있는것이 아닌가.

《통신망선로를 다시 확인해봤는데 아무래도 선로를 포전의 이쪽변두리로 돌려야겠습니다.》

자료통신망의 합리적인 구축을 위해 수십리 밤길을 되돌아온 그앞에서 관리위원장은 뜨거운것을 삼킬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이런 불같은 열정과 헌신에 떠받들려 삼지강협동농장의 경영업무정보화는 불과 석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실현될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과학기술성과를 두고 기뻐했다.그러나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이룩한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는것을 체질화한 리명호동무의 머리속에서는 새로운 구상과 목표가 자리잡고있었다.

삼지강협동농장의 경험에 토대하여 보다 완성된 협동농장통합경영정보체계를 도안의 모든 협동농장에 개발도입하는것이였다.

새 기술개발집단은 신들메를 조여매고 또다시 험난한 탐구의 길에 나섰다.이 나날에 리명호동무는 참으로 많은 길을 걸었고 연구사업의 성공을 위해 헤아릴수 없는 낮과 밤을 바쳤다.

언제부터인가 청단군 심평농장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은 그를 비롯한 도체신관리국 일군들과 기술자들을 《우리 과장》, 《우리 기술원》이라고 정답게 부르기 시작했다.

도안의 통신업무사업전반을 지휘해야 하는 바쁜 속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게 수십리 먼길을 달려와 농장발전을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 그들을 어찌 떠받들고 존경하지 않을수 있으랴.

도체신관리국의 기술자들이 자체로 개발한 수자식포전종합측정장치, 기상관측기재를 비롯한 첨단제품과 선진적인 통합경영정보화체계는 심평농장의 면모와 영농공정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작업반통계원, 문건작성, 농장토양분석실을 두고 《없어진 세가지》라고 자랑담아 부르는 속에 이 농장에서는 작업반과 분조까지 콤퓨터에 의한 정연한 지령체계와 모든 영농공정을 앉은자리에서 한눈에 볼수 있는 장악체계, 필지별토양상태와 농작물영양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데 기초한 과학적인 시비체계를 확립함으로써 해마다 알곡생산에서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게 되였던것이다.

이처럼 지난 10여년간 농업부문은 물론 교육과 문화를 비롯한 황해남도의 여러 부문에서 이룩된 과학화, 정보화의 성과속에는 당에서 그토록 관심하는 문제,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일에서는 네일내일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맡아 끝까지 수행하고야마는 리명호동무의 열화같은 애국심과 헌신성이 보석처럼 빛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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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어디에 가나 우리 당이 품들여 키운 제대군관들이 있다.

그들모두가 리명호동무처럼 당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아글타글 애써 일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과 난관앞에서도 굴할줄 모르며 당과 수령을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싸우는 군인기질, 군인본때로 살며 투쟁한다면 내 조국은 또 얼마나 강해질것인가.

조국과 시대앞에 지닌 자기의 의무에 끝까지 충실하고 변함없는 복무자의 자세로 삶을 빛내여가고있는 리명호동무에게 어머니당은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