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성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전환을 일으킬데 대하여

(발취)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한 결론

주체83(1994)년 7월 6일

 

얼마전에 카터가 우리 나라에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미국이 우리 나라의 《핵문제》를 유엔에 끌고가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제재를 받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다, 우리 나라에 대하여 미국도 제재를 가하였고 일본도 제재를 가하였으며 그밖의 다른 나라들도 제재를 가하였다,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별일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제재를 더 받는다고 하여 못살아갈줄 아는가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재조치를 취소시키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제재조치를 취소시키겠으면 취소시키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날 밤에 본국과 전화로 련계를 가졌던것 같습니다. 이튿날 아침 카터는 나를 만나 미국이 북조선에 대하여 제재조치를 취하자고 하던것을 취소시키기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제재조치를 취소시키겠다고 하니 감사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던것을 취소시켜도 좋고 안 시켜도 좋다, 우리가 미국을 반대하는것은 당신들탓이지 우리탓이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기때문에 우리도 당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 대하여 자꾸 못살게 노는데 아무리 압력을 가하고 못살게 놀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나갈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카터는 나에게 미국이 우리 나라에 제재를 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것, 우리에게 경수로를 대주도록 하겠다는것, 제3단계 조미회담을 하도록 하겠다는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내가 제기한 문제를 다 받아들인셈입니다. 미국이 그 약속을 어떻게 리행하겠는가 하는것은 두고보아야 알겠지만 제3단계 조미회담은 하게 되였습니다. 제3단계 조미회담을 하기 위하여 외교부 제1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우리 대표단이 제네바에 갔습니다.

김영삼이 나를 만나기 위하여 이달 25일에 평양에 오게 됩니다. 그는 《대통령》자리에 올라앉아 취임연설을 하면서 내가 한나산에서 만나자고 하면 한나산에 가서 만나고 백두산에서 만나자고 하면 백두산에 가서 만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후 미국이 《핵문제》를 걸고들면서 우리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자 김영삼은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수 없다고 하면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카터가 나를 만나 김영삼이 김일성주석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표시하였다고 하면서 그를 만나주지 않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카터에게 나는 김영삼을 만나지 않겠다고 한적이 없다, 우리가 《특별사찰》을 받지 않으면 그가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기때문에 나도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핵무기를 내놓지 않으면 악수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과 무엇때문에 만나겠는가, 그러나 그가 자기가 한 말을 취소하고 오겠다고 하면 만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평양에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김영삼이 평양에 찾아오는것과 관련하여 지금 남조선에서는 흰기발을 들고 찾아가는것이라느니, 김영삼이 평양에 가면 김일성주석에게 녹아난다느니 뭐니 하면서 벅적 떠든다고 합니다. 김영삼이 평양에 올 때 수행원을 180명 데리고 온다는데 그가운데 기자가 8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일군들이 남측실무성원들과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실무적문제들을 토의할 때 남측에서 기자를 80명 데리고 오겠다는 문제가 제기되였다고 하기에 나는 해당 일군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들을 80명이 아니라 800명을 데리고 와도 좋다, 그들이 평양에 와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남조선기자들이 많이 오겠다는것은 평양에 와보자는것입니다. 그들이 평양에 아무리 많이 들어와 돌아다녀도 흠잡을것이 없습니다. 남조선기자들에게 평양시를 보여주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것이 없습니다. 평양에 와본 다른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다 평양이 서울보다 낫다고 하고있습니다. 카터도 평양이 서울보다 훨씬 낫다고 하면서 평양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