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7월 24일 로동신문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추동한 주체의 령도방법
장장 75년, 력사상 그 어느 당도 걸어보지 못한 험난한 혁명의 길을 헤쳐오는 과정에 우리 당은 조직력과 전투력, 령도력에 있어서 세계의 그 어느 당과도 대비할수 없는 높은 권위와 존엄을 지니였다. 당과 대중이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고 당의 령도에 천만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대중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온 우리 당의 주체적령도방법의 정당성과 생활력에 대한 뚜렷한 증시로 된다.
일찌기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과정에 로동계급의 당건설에서 가장 우월한 과학적이고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령도방법을 창조하신
그이께서는 당건설위업수행에서 당사업체계와 방법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당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인민들의 소박한 목소리도 정책에 담으시며 당건설과 국가건설을 비롯한 사회경제생활의 모든 분야에 인민적인 령도방법이 철저히 확립되도록 이끌어주신
모진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계속혁신, 계속전진의 기치높이 보다 큰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조국의 격동적인 현실은 대대로 절세의 위인들을 높이 모신 존엄높은 조선로동당의 주체적인 령도예술이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다.
사람과의 사업을 당사업의 기본으로
1950년대말-1960년대초는 우리 나라에서 거창한 사회적변혁들이 훌륭히 수행되여 인민의 세기적숙원인 사회주의제도가 일떠서고 우리 조국이 천리마의 나라로 위용떨치던 벅찬 시기였다. 사회주의제도의 수립으로 우리 나라에 조성된 새로운 환경은 그에 맞게 당사업을 개선하여 고조된 인민대중의 혁명적기세를 옳게 조직동원함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힘있게 다그칠것을 요구하였다.
당시
주체45(1956)년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후 제1차 5개년계획의 첫해과업을 수행하는데서 천리마를 타고 전국의 앞장에서 내달리던 강선제강소(당시)가 5개년계획을 앞당겨 마감짓게 될 주체48(1959)년의 첫시작부터 시련을 겪고있었다.
그해 1월계획을 미달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5개년계획을 시작하던 주체46(1957)년에 비해 제강소는 능력이 커지고 계속 확장되고있었다.
물론 큰 제강소이다보니 그 운영에서 이러저러한 편향들이 많이 나타나고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것은 제강소의 높아가는 능력에 일군들의 사업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것이였다.그저 분주히 뛰여다니고 호령을 하는것으로써는 도저히 제강소를 운영해나갈수가 없는것이였다.
제강소의 실태를 료해하신 후에도
현실은 아무리 인민적인 사회제도가 수립되였다고 하여도 일군들의 사업방법이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것으로 완성되지 못할 때에는 혁명과 건설에서 인민대중의 창조적능력을 원만히 발휘시킬수 없고 생산력발전과 사회주의건설 그자체를 한걸음도 전진시킬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혁명은 인민을 위한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기에
이 투쟁은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계속되였고 특히 주체44(1955)년 당중앙위원회 4월전원회의를 계기로 전당적인 투쟁으로 심화되였다.
사회주의제도수립후 이 사업에 대한
당사업의 기본을 사람과의 사업으로 규정하시면서
당일군들이 군중과의 사업에서 설복과 교양을 기본으로 하며 언제나 대중의 선두에 서는 기수가 될데 대한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머니가 되며 겸손하고 소박하며 소탈하고 고상한 도덕품성을 지닐데 대한 문제, 허심하게 배워 정치리론수준과 문화기술수준을 끊임없이 높여나갈데 대한 문제…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환경에 맞게 대중지도의 새로운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세우시려는
사회주의제도의 수립과 함께 당사업을 사람과의 사업으로 전환시키시고 일군들의 사업방법개선을 사회주의운명과 관련되는 최대의 중대사로 내세우신 여기에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
인민을 믿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여 걸린 고리들을 풀어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전통적인 사업방법이다.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을 외면하고 인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백번 패한다는것이
우리 당의 전통적인 사업방법인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도 바로 그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에는 당, 국가, 경제기관들의 지도의 기본방향과 원칙들이 체계화되여있다. 웃기관이 아래기관을 도와주고 웃사람이 아래사람을 도와주며 일군들이 늘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옳바른 방도를 세우며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의 자각적인 열성과 창발성을 동원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할것을 요구하는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이것은 인민대중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과 립장, 그들에 대한 최대의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로동계급의 당의 가장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대중령도방법이다.
강서군(당시)과 청산리를 새로운 사업방법을 창조하기 위한 시범단위로 정하시고 지도소조를 파견하신
이른아침 청산리의 숫눈길에 현지지도의 자욱을 새겨가시던
지난해 몇공수나 벌었고 알곡과 현금은 얼마씩 분배받았는가.부엌세간은 얼마나 갖추었는가.이부자리는 몇채나 있는가.…
이렇듯 농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된 청산리와 강서군에 대한
리안의 초급일군들과 핵심당원들과의 담화, 강서편직생산협동조합과 강서도자기공장에 대한 현지지도, 군당위원회일군들에 대한 구체적인 료해…
이렇게
주체49(1960)년 2월 8일
회의참가자들의 토론을 마지막까지 들어주신
인민대중속에 들어가시여 그들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한 대중지도사상, 한 지역의 실태에서 혁명과 건설의 전반사업을 꿰뚫어보시고 먼 장래까지 내다보시며 그 생활력이 확고히 담보되는 대중지도방법을 창조하신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은 이렇듯 고요한 서재에서가 아니라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을 안으시고
그것은 일찌기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창조하신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의 새로운 구현이였고 새 조국건설의 첫 시기부터 끊임없이 이어가신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과 더불어 이 땅 그 어디에나 새겨가신
20세기 말엽 어느 한 나라의 통신은 《청산리, 사회주의의 시험포》라는 글을 발표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통신은 글에서 세상에 유명한 청산리방법은 사회주의를 관리운영하는 기본방법으로서 이미 그 시험에서 훌륭히 성공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사회주의건설에서 세계가 공인하고 격찬한 가장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대중령도방법인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바로 여기에
청산리정신은 모든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할데 대한 주체사상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있는 대중령도에 관한 사상이다.그리고 청산리방법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인 인민대중의 창조력을 적극 동원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데 대한 주체사상의 요구를 구현하고있는 대중지도방법이며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고 인민대중의 역할을 높여나가는 당사업방법이다.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과 같은 위력한 무기가 있었기에 우리의 모든 당조직들은 투쟁만을 아는 생기발랄한 조직으로, 일군들은 혁명적일본새와 사업작풍을 소유한 당정책관철의 기수로 자라고 당의 전투력과 령도적역할은 비상히 강화될수 있었다.
혁명적군중로선의 빛나는 결실
당이 옳바른 대중령도방법체계를 세웠다고 하여 혁명과 건설이 저절로 진척되는것은 아니다. 문제는 당일군들을 비롯한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이 당의 사상을 어떻게 접수하고 관철해나가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시대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 당의 혁명적군중로선을 구현한 새로운 대중령도방법을 창조하신
주체49(1960)년 2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청산리와 강서군에 대한 지도사업정형을 총화하시고 일군들이 아래에 대한 지도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과 방법을 밝혀주신
중앙과 도의 유능한 일군들을 지도성원으로 파견하시여 전국의 모든 군들과 리들에 대한 집중지도를 진행하게 하시는 한편 자신께서도 몸소 순안과 순천을 비롯한 여러 군과 리에 나가시여 집중지도사업정형을 알아보시며 구체적인 지도를 주신 우리
그 나날에 중앙이 도를, 도가 군을, 군이 리를 책임적으로 지도하는 사업체계, 우가 아래를 도와주는 체계가 정연하게 서게 되였으며 당사업은 사무실에서의 문서놀음이 아니라 창조로 들끓는 공장의 작업현장들과 논밭머리에서 진행되는 참신한 창조적사업으로 전환되였다. 결과 나라의 경제사업에서는 참으로 커다란 전변이 이룩되였다. 우리 당의 위력한 대중령도방법이 창조된 그 첫해에 모든 농촌들에서는 만풍년이 들어 나라의 알곡생산은 전해에 비하여 1.4배, 주체35(1946)년의 2배로 늘어나는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였다. 공업분야에서도 혁신이 일어나 그해의 공업총생산액은 주체45(1956)년에 비하여 3.5배로 장성하였다. 이것은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전당, 전국에 일반화되는 속에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과 성장에서 얼마나 큰 전진과 변혁이 이룩되였는가를 웅변으로 전하여주는 명백한 대답으로 된다.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천리마시대 인간개조의 모범이 창조된 력사의 땅 리현리가 소중히 자리잡고있다. 그 옛날 《망자골》이 풍년골이 되였다는 이야기로 사회주의농촌의 새 력사에 자랑스러운 한페지를 기록한 리현땅이 전하는 사연은 얼마나 가슴뜨거운것인가.
주체50(1961)년 1월 어느날 이른아침 찬눈길을 헤치시며 리현리에 찾아오신
이 고장 일군들과 당원들의 토론에서 사회주의농촌의 지향과 요구를 깊이 헤아리시고
뒤떨어진 사람을 교양개조하는 사업에서 모범을 보인 한 처녀선동원의 토론도 주의깊게 들어주시며 이런 동무가 리현리에 한두사람이 아닐것이며 다른 리에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이것은 우리 당이 거둔 귀중한 성과라고 하시면서
사회주의건설에서 인간개조문제가 차지하는 지위와 중요성이 얼마나 크시였으면 우리
모든 사업의 첫 공정은 사람과의 사업으로부터 시작되며 경제사업의 성과여부도 결국 사람과의 사업을 잘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려있다는것이 바로 우리
공장의 구내길과 포전길을 끝없이 걷고걸으시며 인간개조사업이 대중자신의 사업으로 전환되도록 하시면서
바로 그 길에서 인민경제와 농업부문에 대한 지도관리를 개선하는데서 주체성과 과학성의 원칙이 훌륭히 구현된 대안의 사업체계가 탄생하였고 새로운 농업지도체계가 창조되였다.
대안전기공장(당시)과 숙천군에 불멸의
대안의 사업체계가 창조됨으로써 당위원회의 집체적지도밑에 생산자대중이 기업관리와 생산의 실제적인 주인으로 되였으며 기업관리에서 웃사람과 아래사람들사이, 생산자들사이, 작업반들사이, 직장들사이에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기풍이 높이 발양되는 속에 나라의 경제발전에서는 놀라운 성과들이 이룩되게 되였다.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농업지도체계는 농촌경리를 기업적방법으로 지도하며 전인민적소유와 협동적소유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협동경리에 대한 국가적지도와 방조를 강화하게 하는 가장 우월한 농업지도체계로서 사회주의협동경리의 생활력이 그대로 전야마다에 만풍년의 노래소리로 울려퍼지게 하였다. 력사는 우리 당의 령도밑에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투쟁속에서 창조된 우리 식의 경제관리체계와 농업지도체계가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적요구에 부합되는 가장 우월한 사회관리체계라는것을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뚜렷이 확증하였다.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만이 지배하던 이 땅에서 어제날의 평범한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이 격동의 천리마시대를 탄생시켰고 우리 조국을 사회주의공업국가로 전변시키는 력사의 기적을 창조하였다.
복잡다단한 세계정치정세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사회주의의 본태가 굳건히 고수되고 혁명의 전진이 촉진된 자랑찬 현실, 우리 나라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락원으로 온 세상에 찬연한 빛을 뿌리게 된것은 바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과 그 구현인 대안의 사업체계는 주체사상을 철저히 구현한 사업방법과 사업체계인것으로 하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우리 당이 일관하게 틀어쥐고 나가야 할 대중령도방법이다.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에 의거하여 중중첩첩 막아나서는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사회주의건설을 보다 확신성있게 밀고나갈수 있는 우리 당의 가장 우월하고 과학적이며 인민적인 대중령도방법을 창조하신
글 본사기자 채히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