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7월 25일 로동신문
기행 예가 바로 사회주의무릉도원이라오 과일군에 펼쳐진 100리청춘과원을 돌아보고
지난 7월 12일 과일군에서 생산한 첫물복숭아를 실은 자동차행렬이 수도에 들어섰다.집집마다에 복숭아향기가 차넘쳤다. 탐스러운 복숭아를 맛보며 기쁨을 금치 못하는 수도시민들의 밝은 모습을 가슴에 새겨안고 우리는 과일군에 대한 취재길에 올랐다.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펼쳐진 훌륭한 과수원들은
20리 날바다를 가로지른 서해갑문을 지나 푸른 들을 옆에 끼고 한참동안 가느라니 눈뿌리아득하게 펼쳐진 과수바다가 안겨들었다.한폭의 그림마냥 아름다운 이곳이 바로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100리청춘과원, 과일군이였다. 《우리 과일군을 옛날에는 바람이 세게 부는 지대라고 하여 풍천이라고 하였답니다.…》 우리와 동행한 군의 일군이 자기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구수하게 펼쳐놓았다.
원래 송화군의 한 지역이였던 이곳은 해방전까지는 밭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락후한 농업지대였다.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명승지로 이름난 룡수포해수욕장, 천년나마 자랐다는 두그루 은행나무 등 군에 대한 끝없는 자랑을 들으며 우리가 이른 곳은 과수밭면적에 있어서 군적으로 규모가 제일 큰 송곡과수농장이였다.
우리는 먼저 농장에서 오래동안 일해오고있는 정철만동무를 만났다.그는 27년전 이곳을 찾아주신
과일군과수종합농장(당시)에 오신 그날
과수밭에서는 그때까지도 복숭아수확이 한창이였다.한알의 복숭아라도 상할세라 정성을 기울이는 농업근로자들의 모습을 보니 열매따는 기쁨을 함께 맛보고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이 농장에서 올해에 복숭아가 례년에 없이 잘되였다고 한다.알고보니 이곳 관리위원장이 300알사과나무에 대한 혁명일화로 하여 유명해진 신대과수농장 제10작업반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리대혁동무였다.지난해에 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되여온 그는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농업근로자들을 과일증산에로 불러일으켰다. 우리 농장의 포전들도 모두 300알사과나무포전처럼 만들자. 이런 결심을 안고 모두가 아글타글 노력한 결과 포전마다 열매가 주렁졌다.그들이 과일대풍을 안아오기 위하여 얼마나 심혈을 바쳐가고있는가 하는것은 한해에 수천t의 물거름이 생산된다는 돼지목장을 돌아보면서도 잘 알수 있었다. 이어 우리는 신대과수농장 제10작업반으로 향하였다.
어디인가.우리
과수밭의 곳곳을 돌아보느라니 우리 인민들에게 맛좋은 과일을 더 많이 안겨주고싶어하시는
서늘한 바람결에 사과나무잎들이 흐느적거리는 포전에 들어서니 누구인가 김을 매고있었다.기술부반장 김종화동무였는데 그는 40여년간 과일농사를 해오면서 사람들로부터 《과일박사》라고 불리우고있다는것이였다.올해에도 사과가 300알나마 달린 나무들이 적지 않다고 하며 그는 과수작업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과수작업에서는 덜 바쁜 계절이 따로 없다.밑거름주기며 꽃가루묻혀주기, 농약뿌리기, 김매기, 열매솎기, 가지자르기…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는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비껴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뉘엿뉘엿 저녁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였다.우리가 마을로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심었더니 마을에 웃음이 폈소 처녀들 아침낮에 꽃보며 웃고 저녁에는 꽃속에서 노래부르오 …
저도모르게 마음이 끌려 흥얼흥얼 따라부르느라니 이 노래를 작곡한 인민예술가 김옥성선생이 바로 과일군출신이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과수연구소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도시에서는 느낄수 없는 농촌마을특유의 유정한 정서에 푹 취하여 얼마간 걷느라니 사과와 현미경을 형상한 마크가 새겨져있는 산뜻한 건물이 나졌다. 과일군의 한복판에 이런 현대적인 과수연구소가 나오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근 20년전 군을 찾아주신
과수연구소와 함께 남천기슭에 있는 린비료공장도 군의 과수업발전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단위였다. 그 공장으로 말하면 우리가 여러 농장을 돌아보면서 꼭 들려보고싶었던 곳이였다.만나는 사람마다 올해에 이 공장에서 생산한 린비료로 흙보산비료를 만들어 포전마다 듬뿍 내였는데 효과가 좋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것이다. 공장일군은 달래리에서부터 실어오는 린회석도 군의것이요, 파쇄기와 분쇄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들도 군농기계작업소와 농기구공장에서 제작한것이요, 생산공정확립에서 제기되는 기술적문제들도 군과학기술위원회를 비롯한 자체의 기술력량으로 해결하였으니 이 린비료야말로 진짜 우리의것이 아닌가고 긍지에 넘쳐 말하였다. 읍지구에 위치한 복합미생물비료공장도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본 우리는 취재길의 종착점인 염전과수농장에 이르렀다. 전망대에 오르니 바다기슭까지 무연하게 펼쳐진 과수밭들과 꽃동산마냥 아름다운 선경마을이 안겨왔다. 지난날 가마를 걸어놓고 바다물을 끓여 얻은 소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소금군》들이 모여산다는 뜻에서 《염촌》이라 불리웠다는 마을, 바로 이곳에 우리 당의 은덕으로 해마다 풍작이 이룩되는 과수바다가 펼쳐지고 마을에는 문화주택들이 즐비하게 일떠섰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현실인가. 울타리마다에 장식한 빨간 사과알그림과 10일유치원도 우리를 기쁘게 했지만 문화후생시설에 붙인 《사과원》이라는 그 이름은 또 얼마나 정다운가. 마을에는 과일나무를 많이 심어가꾸는 가정이 적지 않았다.그중에는 사과나무가 수십그루나 있는 집도 있었는데 집주인은 오랜 교육자인 70대의 전영준로인이였다. 몇해전에 년로보장을 받은 때부터 사과나무를 가꾸기 시작하였다는 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내 손으로 과일나무를 가꾸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오늘 그 소원을 이렇게 풀고있지 않소.》 그러면서 그동안 가지자르는 방법이며 열매솎는 방법도 배웠다고, 최근년간 집에서 수확한 과일을 유치원어린이들에게 보내주었는데 정말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참으로 서해기슭에 펼쳐진 100리청춘과원에서는 볼수록 정답고 들을수록 더 듣고싶은 참되고도 아름다운 생활이 끝없이 꽃펴나고있었다. 과일나무모생산에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는 북청과수농장의 류철남동무며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운무농장 뜨락또르운전수 김철희동무, 찬바람부는 겨울날 언땅을 까내며 린회석을 캐냈다는 군안의 청년동맹원들…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되새기느라니 우리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는것이 있었다.
정녕 수도의 집집마다에 넘쳐나는 과일향기는 우리 인민에 대한
서해기슭의 100리청춘과원, 여기서 세세년년 진함이 없는 뜨거운 사랑의 향기, 헌신의 향기가 끝없이 넘쳐흐르고 온 나라로 퍼져갈것이라는 생각에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스스로 터져나왔다. 예가 바로 사회주의무릉도원이라오! 글 및 사진 김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