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11일 로동신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조국해방 3대로선 만세!》 최 용 진
최근년간 백두산지구를 비롯하여 전국도처에서 발굴되고있는 구호문헌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특히 신흥군 서곡리에서 발굴된 조국해방 3대로선에 관한 구호문헌들을 보니 이제는 오랜 세월이 지나가서 기억에 희미해지던 사실들이 어제일같이 되살아난다. 우리가 서곡리의 두무봉에 조국해방 3대로선에 대한 구호를 쓴것은 1943년 2월이였다. 이해에 들어서면서 세계정세도 혁명의 편에 유리하게 급변하였다. 몇달어간에 이전 쏘련을 다 집어삼킨다고 장담하던 파쑈도이췰란드는 쓰딸린그라드부근에서 벌어진 대격전에서 크게 패하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전선에서도 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일제도 중국전선에서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몰려들어가고있었으며 태평양전선에서도 세력균형을 완전히 잃고 패전을 거듭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제의 멸망은 더욱더 명백해졌으며 조국해방의 대사변도 당면한 문제로 되여가고있었다. 급변한 정세는 조국해방을 위한 일제와의 최후결전준비를 더욱 철저히 갖출것을 요구하였다.
정세발전의 추이를 예리하게 살피고계시던
그때 훈련기지에서 군정훈련을 하고있던 우리 지휘관들도
우리는 련락을 받은 즉시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구체적인 임무를 받고 또 신분증도 받았다. 신분증을 펼쳐보니 징병, 징용모집원으로 되여있어 그것을 가지면 어디나 마음대로 다닐수 있게 되여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신분에 맞게 행색을 갖추고 청진까지 걸어나와서 기차를 탔다. 걸어올 때도 그랬지만 기차를 타고보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우리가 오른 렬차칸만 둘러보아도 일제의 구두발밑에 무참히 짓밟히고있는 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엿볼수 있었다. 한쪽켠에는 열대여섯살쯤 되는 처녀애들이 조그마한 보퉁이를 가슴에 꼭 껴안고 앉았는데 얼굴엔 눈물자욱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차안의 려객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부모들의 품을 떠나 방직공장과 제사공장으로 팔려가는 처녀애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다른 모퉁이에는 경찰의 호송을 받는 청년들 서너명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징병과 징용을 기피하여 숨어다니다가 체포되여간다는것이였다. 그밖에 여기저기 앉아있는 사람들 역시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렬차칸이 그대로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 모든 정상을 보니 가슴에서 불이 일어 견딜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청년들을 호송하는 경찰놈들과 처녀애들을 끌고가는 놈들을 요정내고싶었다.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더욱 안타까왔다. 그런데 우리가 탄 렬차가 성진 (지금의 김책)역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악 하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경찰놈이 코를 싸쥐고 넘어가는 찰나에 청년들이 묶이운 손을 풀지도 못한채 승강대로 달려가 뛰여내리는것이였다. 그 일은 그야말로 눈깜박할사이에 벌어졌다. 경찰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복닥소동을 피웠으나 달리는 렬차안에서 아무런 소득도 얻을수 없었다. 나는 당황하여 쩔쩔매는 놈들의 몰골을 보며 통쾌감을 금할수 없었다. 더우기 우리 인민이 결코 왜놈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으며 이렇게나 저렇게나 놈들을 맞받아 싸우고있다고 생각을 하니 이제껏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온몸에 힘이 솟구치였다. 나는 북청역에 내릴 때까지 그 청년들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북청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에 와서 대기하고있던 소부대동무가 우리를 반겨맞아주며 다음로정은 자기가 길안내를 하게 되였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은 그 동무의 길안내를 받으면서 목적지인 서곡리 두무봉까지 무사히 갈수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여 알아보니
우리는 급히
나는 동무들을 부르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하루도 편한 잠을 자지 못했소.이렇게 무사히 온것을 보니 기쁩니다.
우리의 로정이며 안전대책까지 다 세워주시고도 무사히 도착한 우리들을 보시고 그토록 기뻐하시는
그래서 나는
동무들이 그 먼길을 일제놈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온것을 알게 되면 일제놈들이 눈이 뒤집혀질것입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오면서 보고 느낀 점, 특히 청년들이 렬차에서 뛰여내리던 사실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씀드렸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주의깊게 들어주시던
그것 보시오.우리 인민의 반일사상이 얼마나 높습니까.일제놈들이 제아무리 총칼을 휘두르며 억압해도 우리 조선사람들은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고는 그런 청년들을 무장시키고 전체 인민을 반일봉기에 나서게 하면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해방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부른것은 바로 그 준비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 예감을 증명이나 해주듯 좀 있으니 각지에서 소부대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이 련이어 도착하였다.
훈련생들은 한 50명정도 되였는데 신흥군에 있는 광산과 탄광의 청년들 그리고 근거지주변의 농촌청년들과 징병, 징용을 기피하여 산속에 은신하고있던 청년들이라고 하였다. 무장준비는 아직 원만하지 못했으나 그들의 사기는 매우 좋았다. 훈련은 간백산강습소를 나온 동무가 책임지고 하였는데 아주 잘하였다. 그들이 훈련하는것을 보니 당장 전투에 인입하여도 손색이 없을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여기에서도 대단한 력량이 준비되고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였으며 전국각지의 비밀근거지마다에서 그만한 력량이 자란다면 그것은 정말 큰 힘으로 되리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다.
그러시면서 간백산강습소에서 핵심들을 하루빨리 더 많이 육성하여 파견함으로써 전국도처에서 크고작은 무장대들을 조직하여 훈련을 잘 주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을 들으니 멀지 않아 조국해방작전을 위한 보다 거창한 사업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그리하여 우리는 전국의 혁명조직들과 무장대들의 실태를 알수 있게 되였고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전과들에 대하여 잘 알고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질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 하신데 기초하여
회의에는 최현, 김일, 안길, 최춘국 등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소부대, 소조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 40여명이 참가하였다.
그러시면서 이미 제시하신 조국해방 3대로선을 밝히시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제시해주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은 조국해방 3대로선의 중심내용을 이루며 일제와의 최후결전에서 승리의 결정적요인이였다.
그러므로
전인민적봉기는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일뿐아니라 식민지반봉건사회인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필수적요구로 나서는 문제였다.
배후련합작전은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들을 전술적우세로 타승하여 일제의 멸망을 앞당기게 하는 독창적인 전술적방침이였다.
순간 회의장에서는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나는 조국해방은 이미 다된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각지에서 훈련을 받고있는 무장대들의 력량을 보충하면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일제놈들을 격멸하고 조국을 해방할수 있다는 배심을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나는 조국해방 3대로선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면서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위한
돌이켜보면
그리고 조국광복회조직을 전국적범위에로 확대하면서 일제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을 그 두리에 묶어세우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이즈음에는 광범한 인민대중이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결속되여가고있었으며 도처에 수많은 무장대들이 조직되여 훈련을 받고있었다. 그러한 력량이 단순히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심량면으로 돕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조국해방작전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전민봉기로, 배후련합작전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호응한다면 일제는 정말 오도가도 못하고 독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될것이였다.
그 모든것을 생각하니
그래서 우리는 회의가 끝난 후 나무껍질을 벗기고 구호를 쓸 때 그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았던것이다. 《조국해방 3대로선 만세!》 참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전인민적봉기, 배후련합작전을 하나의 전략전술적체계속에 결합시킨 조국해방 3대로선은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성과적으로 결속할수 있게 한 승리의 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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