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26일 로동신문

 

한시도 늦출수 없고 한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이다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는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략탈정책과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은 인류력사에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것입니다.》

지난날 일제는 우리 나라를 수십년간이나 강점하고 악랄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수많은 특대형반인륜범죄들을 저질렀다.

이러한 살륙만행은 우리 나라가 해방된 후에도 계속되였다.

1945년 8월 24일 교또부 마이즈루앞바다를 항행하던 일본해군수송선 《우끼시마마루》에서 요란한 폭발이 여러차례 일어나는 동시에 배가 동강나 바다에 침몰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배에는 해방을 맞고 꿈결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기쁨을 안은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그들 거의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일제의 의도적인 조선인집단학살만행이였다.

《우끼시마마루》에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와 아오모리현, 혹가이도의 군사기지건설장, 탄광 등 죽음의 고역장들에서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수천명의 조선사람들이 타고있었다.

일제는 군사기지들의 비밀을 지키고 저들이 저지른 비인도적학대행위와 살인범죄를 영원히 묻어버리며 침략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패전의 앙갚음을 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잔인한 대학살만행을 저질렀다.이것은 패망후에 일제에 의해 감행된 극악한 조선인집단학살사건으로서 응당 사건직후에 그 진상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처벌,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이 실시되였어야 하였다.

하지만 일본당국은 사건발생후 사망자수를 극히 줄여서 서둘러 발표하고는 저들의 범행이 내외에 알려지는것을 막기 위해 철저한 보도관제를 실시하였다.간악한 일제는 이렇듯 비렬한짓을 감행한것도 모자라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모두 학살하려고 책동하였다.

배가 폭발하고 물에 가라앉을 때 일부 사람들은 죽을 힘을 다해 헤염을 쳐서 간신히 뭍에 오를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그들마저도 살해하려고 음흉하게 획책하였다.

그 참변에서 겨우 살아남은 한 생존자는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어느 한 장소에 수용되였다.그런데 여기서도 살인음모가 꾸며지고있는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다음날 갑자기 숙소안의 증기탕크가 폭발하여 수십명의 동포들이 중상을 입었다.》라고 회고하였다.

당시 마이즈루항가까이에서 살던 사람들은 배가 가라앉은 후 약 두주일간 매일과 같이 시체와 유물들이 물우로 떠올랐으며 바다기슭에 밀려나온 시체들은 일본해군 병사들이 몰래 끌어가군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950년대에야 고철로 쓰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배를 끌어올려 해체하였다.그러나 본심은 제놈들이 저지른 학살만행의 범죄증거물을 말끔히 없애치우자는데 있었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은 일본당국의 흉계에 의해 감행된 반인륜적인 범죄이다.

제2차 세계대전종결당시 련합군의 명령으로 일본령해에서 100t급이상 되는 선박들의 항행은 중지되였다.이러한 상황에서 수천t급의 배가 출항하였다는것은 폭침사건이 우발적인것이 아니라 일본당국의 치밀한 타산과 의도적인 계획에 따라 감행된것이라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오늘까지도 엄연한 이 범죄사실에 대하여 전면부정하면서 진상규명과 배상을 위한 그 어떠한 실천적조치도 취하지 않고있다.

배의 침몰로 죽은 사람들의 정확한 수자와 주소, 성명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을뿐더러 만천하에 드러난 엄연한 범죄행위인 《우끼시마마루》폭침행위에 대하여 기뢰에 부딪쳤다는 기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흑막속에 덮어버리고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있다.

이것이야말로 력사적진실에 대한 완전한 외곡날조인 동시에 일본특유의 교활성과 파렴치성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

우리 인민은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온갖 특대형반인륜범죄행위들을 저지르고도 성차지 않아 해방후에도 음으로양으로 대량학살만행을 감행하면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끈질기게 매달려온 일본의 죄악을 잊지 않고있으며 그 모든것을 반드시 결산할 의지로 가슴 불태우고있다.

본사기자 김승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