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3일 로동신문

 

수령과 호위전사

항일혁명투사 리을설동지가 받아안은
숭고한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

 

백두에서 시작된 조선혁명의 장구한 로정에는 당과 조국에 무한히 충실한 참된 혁명가들의 자욱이 무수히 새겨져있다.

결코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들로 대오를 뭇고 시작한것은 아니지만 우리 혁명이 수천수만의 열혈투사들을 자랑스럽게 배출하게 된것은 그들모두를 품에 안아 키워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항일혁명투사 리을설동지도 위대한 태양의 그 품속에서 쇠소리나는 투사로, 유능한 군사일군으로 자라나 수령옹위의 제1선에서 당과 수령을 결사보위하여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은 인민대중을 승리와 영광의 길로 이끌어주는 령도자인 동시에 그들을 혁명가로 키워주는 스승이며 어버이입니다.》

햇병아리소년중대원으로 불리우던 항일유격대시절부터 조선인민군 원수로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오로지 충성의 한길만을 걸은 리을설동지, 그의 한생은 평범하였던 인간이 위대한 수령의 슬하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값높은 삶을 빛내이는가를 보여준다.

 

항일의 로투사, 옛 경위대원

 

따사로운 해빛이 강산에 흘러넘치던 주체101(2012)년 4월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00돐경축 열병식에서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연설을 받아안고 온 나라가 환희와 격정에 설레이던 그때 리을설동지는 남다른 충격에 휩싸여있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가 삼가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고 친히 회답서한을 보내주신것이였다.해빛보다 더 눈부시고 뜨거운 빛발이 친필의 글발마다에서 강렬히 뿜어나오는것만 같았다.

 

《리을설동지!

               또다시 보내주신 편지를 고맙게

               받아보았습니다.

               로투사동지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혁명을 위해 나의 모든것을 다 바쳐

               가겠습니다.

               을설동지! 항상 건강해주십시오.

               로투사동지들이 건강한 몸으로 계셔야

                김정은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전투적인사를 올립니다.

               경례!

2012년 4월 27일

김정은  드림.》

 

피눈물의 12월에 이어 벌써 두번째로 받아안는 우리 원수님의 회답서한이였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아흔한살, 최고사령부 검열관으로서 군복은 입고있지만 당과 혁명을 위해 이전처럼 일을 꽝꽝 하지 못하는 그였다.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은정넘친 회답서한을 쓰실 때마다 로투사라고 존대하여주시는것이였다.

그이의 한없는 믿음과 사랑에 접할수록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생각이 사무쳐오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남달리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누려온 나날이 감회깊이 되새겨졌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 만나뵈온것은 보천보전투가 있은 직후인 주체26(1937)년 여름 장백현 19도구 지양개에서였다.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의 승리를 경축하는 군민련환대회가 성황리에 진행된 그곳으로 참군의 꿈을 안고 찾아온 20여명의 소년들속에 리을설동지도 있었다.

어떤 지휘관들은 키가 총기장보다 더 작은 애숭이들이 어떻게 왜놈들과 싸우겠는가고 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른들이 눈우에서 자면 자기들도 눈우에서 잘수 있고 어른들이 전투를 할 때에는 자기들도 전투를 할수 있으니 유격대에 받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소년들이 못내 기특하고 미덥게 여겨지시였다.소년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고향과 부모, 생활경력에 대하여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모두를 혁명가로 키우실 결심을 굳히시였다.이렇게 되여 함경북도 성진군(오늘의 김책시)의 빈농가에서 태여나 가족과 함께 이국땅에서 떠돌이생활을 한 리을설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고 항일무장투쟁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 소년중대 대원이 되였다.

입대한지 얼마 안 있어 주력부대와 함께 백두산으로 진출하던 어느날 리을설동지는 행군의 휴식참에 위대한 수령님께 《장군님, 우리 조상들은 어째서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까?》라고 오래동안 품어온 의문을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철부지소년중대원이 걸어온 수난많은 길을 더듬어보시는듯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그것은 봉건통치배들이 사대주의를 하였기때문이라고,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시면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된 가슴아픈 사연들을 들려주시였다.

리을설동지는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걸음걸음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참된 투사의 신념을 체득하며 성장의 길을 걷게 되였다.

소년중대가 첫 전투에 참가하게 되였을 때에는 흥분으로 들먹거리는 리을설동지의 어깨를 다정히 눌러주시며 적을 단방에 쏘아잡을수 있게 정확히 조준하도록 일깨워주시고 눈보라를 헤치는 행군길에서는 그의 총도 친히 메여다주시며 하루빨리 훌륭한 유격대원으로 자라나도록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주체27(1938)년 12월부터 그 이듬해 3월까지 진행된 고난의 행군은 리을설동지에게 있어서 한생 잊을수 없는 혁명대학과정이였다.

한다하는 구대원들도 지탱하기 어려워했던 간고한 행군길에서 모진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한치한치 걸음을 옮기던 리을설동지는 어느날 극심한 피로로 쓰러지게 되였다.한참만에 그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품에 꼭 안고계시는것이였다.그의 눈가에는 힘겹게 전진하는 대오에서 눈사람이 되여 기여가거나 의식을 잃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전우들의 모습이 안겨들었다.이러다가는 전 대오가 눈속에 묻혀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맥없이 눈을 감는데 문득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노래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는 《적기가》를 입속으로 따라불렀다.다른 대원들도 목소리를 합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더욱 뜨겁게 껴안으시며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 어려운 고비를 견디여내자.

우리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조국이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온갖 시련을 이겨내는 행군과정에 리을설동지는 몰라보게 자라났다.그는 신입대원이 옷을 모닥불에 태우고 우들우들 떠는것을 보자 강짜로 그 옷을 벗기고 자기의 군복을 입혀주었다.그리고는 불에 타서 구멍이 숭숭 난 그 옷을 입은채 대오의 앞장에서 생눈길을 헤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대정자에서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시면서 리을설동지가 발휘한 동지애의 모범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후 《철혈》의 창간호에 그 사실을 싣도록 하시였다.

그때 리을설동지는 얼마나 뜨거운것을 삼키였던가.일제를 쳐부실 열망뿐이였던 소년중대원들에게 적과 싸워 이기는 법,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는 법, 자신을 수양하는 법 등을 하나하나 배워주시고 열렬한 애국심과 혁명적신념, 숭고한 동지애를 깊이 심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떠나 그의 성장을 어찌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리을설동지가 경위대원으로 활동하던 시기 안도현의 한 밀영에서 사령부가 변절자 림수산이 끌고온 적《특수부대》의 포위에 든적이 있었다.당번보초였던 리을설동지가 식사를 하는 동안 친히 보초를 서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들었다.순간 강위룡동지와 함께 보초소로 번개같이 달려간 리을설동지는 적들을 향해 경기관총을 휘둘러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서 이 사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적들이 포위환을 좁히며 다가들자 리을설은 수류탄을 뽑아들고 우뚝 일어서서 〈이놈들아, 덤빌테면 덤벼들라.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고 부르짖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서슬푸르고 도고했던지 적들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위룡은 나를 탄막속에서 완전히 뽑아내였다.》

리을설동지와 같은 어제날의 품팔이군, 문맹자, 머슴군들이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항일의 맹장으로, 혁명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신념이 대쪽같은 투사로 성장하였다.

로투사!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 정깊은 부름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조국과 혁명을 알고 불굴의 의지를 체질화한 혁명의 1세들에게 드리는 숭고한 경의였으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께 다진 맹세를 지켜 혁명가의 모범을 빛내여가기를 바라시는 따사로운 축복임을 리을설동지는 가슴깊이 새기였다.

 

태양을 옹위하는 길에서

 

주체73(1984)년 2월에 리을설동지는 호위총국장(당시)으로 임명되였다.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경위중대 기관총수로, 해방후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후시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관장으로 사업한 그가 호위전사로 수령님곁에 다시 서게 된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격정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온 그를 만나신 자리에서 《을설이, 이제는 늙어서 죽을 때까지 나와 같이 있자구.》라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리을설동지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한생 품어주고 키워주신 그 손길로 생의 마지막까지 보살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 목이 메이고 수령님 품을 떠나 내 어이 살랴 하는 생각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것이였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아뢰였다.

《수령님, 그 믿음에 보답하겠는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어떻게 되여 호위총국장의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였는지 다 알지 못하였다.

전 호위총국장이 다른 직무에 조동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 누구를 호위총국장으로 임명하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시 조선인민군 대련합부대장이였던 리을설동지를 임명하였으면 좋겠다고 선뜻 말씀올리시였다.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시며 리을설동무는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손에 무장을 잡고 싸워온 충실한 동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을설동지를 생각하실 때면 항일무장투쟁시기 그를 쏘련의 무전강습소에 보내시였던 일을 되새기군 하시였다.강습이 끝난 후 쏘련군대의 한 고위간부가 그에게 국제당의 요구이니 조선으로 나갈 차비를 하라고 하며 당신이 믿음직해서 그런다, 우리가 전략상으로 중시하는 성진이 당신의 고향이니 거기에 가 배겨있으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무전으로 우리에게 보고하면 된다고 하였다.국제당의 지시라고 하면 웬간한 사람들은 다 《예, 예》 하던 때였으나 리을설동지는 나는 우리 사령관동지한테서 강습이 끝난 다음 부대에 돌아와 무전교관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몸이라고 하면서 그 요구를 거절하였다.쏘련사람이 김일성동지의 허락은 차후에 받을테니 조선으로 나가라고 설복하였지만 그는 《나는 우리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밖에 모르오.그 명령을 집행하기 전에는 고향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갈수 없소.인젠 하루빨리 부대로 돌아가야겠으니 더 막지 마시오.》라고 하며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리을설이 사령관이 준 명령을 집행하기 전에는 그 어떤 임무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한것은 우리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의 표현이였습니다.

리을설은 소년중대시절부터 현재까지 나를 위한 호위사업에 한생을 바치면서도 나의 뜻을 어기거나 임무수행에 태공한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자나깨나 오직 자기 수령만을 생각하고 수령의 건강과 신변안전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내가 1939년에 올기강에서 낚시질을 할 때에도 내뒤에서 기관총을 걸어놓고 호위사업을 한 사람은 경위대원 리을설이였습니다.》

조선인민군 대련합부대장으로 사업하던 시기에도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밖에 그 누구도 모른다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살며 투쟁하였다.

1960년대말 직권을 악용하여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댄 한 군벌주의자가 있었다.어느날 그자는 부대에 나타나 리을설동지가 자기에게 굽신거리지 않는다고 트집을 걸다못해 군단장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다짜고짜로 령장을 떼려고 덤벼들었다.

그때 리을설동지는 군벌주의자의 손을 단호히 쳐갈기며 꾸짖었다.

《경거망동하지 말라.나는 수령님께서 임명하신 군단장이야.그리고 이 령장은 수령님께서 직접 주신거구.그런데 네가 감히 나를 어째보겠다구.나는 당장 네놈의 군벌관료주의적망동을 수령님께 보고드리겠다!》

그의 기상에 질겁한 군벌주의자가 자기에게 신경병이 있어서 그랬으니 리해해달라고 애걸복걸하였으나 리을설동지는 《똑똑히 들으라.이 리을설은 위대한 수령님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신 군단사령관이야!》라고 다시 된타격을 안기였다.

자기자신만이 아니라 호위전사들 누구나 오직 수령밖에 모르는 쇠소리나는 호위병들로 자라나도록 이끌어준 리을설동지였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리승엽이 최고사령부로 찾아온적이 있었다.그때 친위중대 보초병은 호위근무규정대로 그를 단속하고 오늘은 장군님을 만날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하였다.리승엽이 시간을 다투는 문제인데 네가 책임지겠는가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하자 보초병은 그자의 가슴팍에 총구를 들이대며 총알같이 웨쳤다.《돌아가지 않으면 쏘겠다!》

후날 이 일을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을설동지에게 친위중대 대원들이 동무를 닮아 점점 배짱이 세지는것 같다고 교시하시였다.

리을설동지의 배짱은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다라는 신념으로 나날이 든든해지는것이였으며 살아도 수령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수령님을 위하여 값있게 죽어야 한다는것이 그의 투철한 인생관이였다.

주체41(1952)년 봄이였다.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우리의 생활을 더욱 검박하게 조직하고 모든 부문에서 더 절약하며 식생활도 보다 검소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리을설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두고 걱정하자 수령님께서는 《일없소.잡곡을 섞으면 오히려 밥맛이 더 좋소.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하오.》라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지휘처 문앞의 디딤돌이 낮아 호위성원들이 다시 만들려고 벽돌과 세멘트를 구해온것을 보시고도 저 디딤돌이 어쨌다고 귀중한 벽돌과 세멘트를 쓰겠는가, 미국놈들의 야수적인 폭격에 인민들이 집을 잃고 방공호에서 살고있는데 우리가 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린들 그것이 무슨 불편으로 되겠는가, 한g의 세멘트, 한장의 벽돌이라도 아꼈다가 인민들의 집을 짓는데 쓰자고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강철의 령장이실뿐아니라 한없이 소탈하고 검박한 위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천품을 보여주는 이런 사실들에 접할 때마다 리을설동지는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모시고있는가를 심장으로 절감하였다.

오랜 기간 어버이수령님 가까이에서 사업하고 생활하는 남다른 행운을 지닌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이런 사연들이 천이던가, 만이던가.

하기에 밥술을 뜨거나 잠자리에 누워서도 위대한 수령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위하겠는가를 생각하며 위급한 순간에는 서슴없이 한몸을 내댄 리을설동지였다.

그가 호위총국장으로 임명된 이듬해 4월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앞에서 수십년전의 일을 감회깊이 회억하시였다.

주체41(1952)년 8월 최고사령부를 겨냥한 미제공중비적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갱도입구로부터 불과 20m 되나마나한 곳에 반t짜리 육중한 폭탄이 떨어졌다.다행히도 불발이였으나 정황은 매우 긴박하였다.폭탄이 언제 터질지 알수 없었던것이였다.리을설동지는 비상회의를 열고 부관들과 호위성원들에게 결사전을 호소하여 목도로 그 시한탄을 메다가 뒤산너머 골짜기에 내던질것을 결정하였다.

위험한 불발탄을 어떻게 그 먼곳까지 날라가겠는가, 그 자리에서 터치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의 립장은 드팀이 없었다.불발탄을 그 자리에서 터치면 위대한 수령님의 숙소와 집무실이 손상되겠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설사 우리가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불발탄을 최고사령부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더 멀리 가져다 터쳐야 한다!

비장한 각오를 품고 위험한 불발탄이 실린 무거운 목도를 앞장에서 메고 한치한치 나아가던 리을설동지의 모습을 정녕 잊을수 없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가 수십년세월 한번도 입밖에 낸적이 없는 그날의 위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옆에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는 리을설동지를 자신의 곁으로 부르시였다.

《리을설동무, 우리 같이 그때를 회상하면서 기념사진이나 한장 찍읍시다.》

그날의 기념사진, 그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머나먼 혁명의 길을 함께 걸어온 전사에게 베푸신 뜨거운 사랑이였으며 그가 변함없이 한길을 가도록 떠밀어주시는 크나큰 고무였다.

절세위인들의 남다른 믿음속에 충성의 자욱을 새겨가던 리을설동지는 자기 한생에서 가장 가슴아픈 일에 부닥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신것이였다.

피눈물의 7월이 흐르던 어느날 밤 리을설동지는 펜을 들었다.

《위대한 장군님

조의기간 늘 장군님곁에 있으면서도 죄스러움이 앞서고 어떤 말씀을 올려도 장군님의 가슴만 더 아프게 해드릴것 같아 마음을 쓰다가 오늘에야 이 글을 올리는 저를 욕 많이 하십시오.

정말 그때 죄많은 이 늙은이는 장군님 발밑에 엎드려 빌고 또 빌고싶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모셔온 로투사라고 하시며 호위사령관의 중책을 맡겨주시였는데 그 신임에 보답하기는커녕 장군님앞에, 선렬들과 인민들앞에 대를 두고 씻지 못할 큰죄를 지었다고 절절히 아뢰인 리을설동지,

하지만 그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실 금수산기념궁전(당시)공사를 그가 책임지고 하도록 하여주시였다.

정녕 그것은 한생토록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에서 받들어온 로투사를 수령님의 영원한 호위전사로 내세워주시는 최상최대의 신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속에 리을설동지는 주체84(1995)년 가을 조선인민군 원수칭호를 수여받았다.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

 

주체104(2015)년 11월 7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끝없이 충직한 호위전사이며 로혁명가인 리을설동지가 94살을 일기로 서거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리을설동지는 총을 잡고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투철한 신념과 백옥같은 량심을 지니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충정다해 받들어온 수령님과 장군님의 제일혁명동지, 제일혁명전우였습니다.》

리을설동지는 평범한 나날에나 시련의 시기에나 변함없는 자세로 당과 수령을 보위한 최고사령부의 문전보초병이였다고, 리을설동지의 한생이야말로 혁명의 수령을 총대로 보위한 참된 호위전사의 빛나는 한생이라고, 리을설동지를 잃고 제일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것이 한평생 수령님과 장군님을 따라 혁명의 천만리길을 헤쳐오며 고생을 많이 한 로투사에게 더 좋은 래일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였다는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우리 혁명의 원로이며 당과 조국앞에 큰 공적을 세운 항일혁명투사들이 편히 앉아 이 세상 만복을 누리게 하시려는것이 우리 원수님의 열화같은 진정이였다.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서 혁명가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릴수 있는 영광과 행복을 다 누려왔다.그가 90이 넘도록 생을 이어올수 있은것도 위대한 장군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을 떠나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금수산기념궁전공사가 한창이던 주체85(1996)년 3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을설동지에게 어느 한 나라에 다녀올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이번 기회에 그 나라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보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돌아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입니다.》라고 못박으시였다.

그가 떠나던 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행장에까지 몸소 나오시여 어서 비행기에 오르라고, 자신께서는 호위사령관이 탄 비행기가 떠나는것을 보고야 들어가겠다고 하시며 그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비행기가 리륙하여 점점 멀어질 때까지도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비행장에 서계신 위대한 장군님,

어찌하여 그이께서 그처럼 바쁜 때에 그를 외국으로 떠밀어보내시고 비행장에까지 나오시여 오래도록 바래워주시였는지 리을설동지가 알게 된것은 얼마후였다.그를 검진한 병원에서는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려있으며 시급히 수술해야 한다고 결론하였던것이다.

리을설동지는 본인도, 안해와 자식들도 모르는 병조를 가려내여 제때에 치료를 받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고마움이 사무쳐와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50여일이 지나 조국에 돌아온 리을설동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또다시 비행장에 나오신것이였다.

바래워주시던 그날처럼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술을 성과적으로 받고 돌아온 사령관동무를 보니 한시름놓인다고 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호위사령관동무는 일생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어린 나이때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산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면서 고생을 하였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면서 배에 박힌 파편때문에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페수술을 받느라고 고생을 하였습니다.호위사령관동무의 복부를 보면 성한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순간 로투사의 뇌리에는 수십년전의 못 잊을 사연이 어제런듯 갈마들었다.

해방직후 함흥에 파견되여 사업하던 그가 반동놈들의 흉탄에 심한 부상을 입은적이 있었다.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경남도 도립병원(당시)에서 구급치료를 받도록 하시였으며 한달후에는 평양으로 소환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리을설동지가 도착하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처가 다 나았는가부터 물으시였다.그가 다 나았다고, 마음쓰시게 하여 죄스럽다고 아뢰였지만 수령님께서는 그의 상처자리까지 손수 만져보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김책동무로부터 동무가 반동놈들의 총탄에 맞아 사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걱정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성한 몸으로 돌아왔으니 인젠 발편잠을 자게 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나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속에 그는 또다시 새 삶의 박동을 받아안은것이였다.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그가 여든번째 생일을 맞을 때에는 량면수예병풍 《소나무와 학》을 선물로 보내주자고 하시며 그러면 아마 로당익장할것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열화같은 그 사랑을 그대로 이어주신분은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항일혁명투사들이 몇명 남지 않았다고 하시며 그들의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고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도록 하신 원수님의 각별한 손길이 있어 그는 생의 말년에도 하루하루를 값있게 빛내일수 있었다.

리을설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70돐에 즈음하여 제정된 김정일훈장을 제일먼저 수여받았다.좀해서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그날만은 마음속에 끓어넘치는 격정을 감추지 못하였다.해방후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사연깊은 콩나물잔치상을 차려주시던 일이며 10여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화국2중영웅인 그에게 또다시 영웅칭호를 수여하려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 영웅칭호보다 더 높은 칭호가 없는것이 유감입니다.》라고 교시하신 사실을 되새기는 로투사의 주름진 두볼로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을 모두 합쳐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속에서 리을설동지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받드는 길에 온넋을 바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로투사들이 앉아만 있어도 힘이 된다고 하시였지만 편안히 앉아서 당의 혜택만을 받을수 없었던 그는 녕원발전소와 희천발전소, 과학기술전당건설장을 비롯하여 당의 구상이 현실로 꽃펴나는 시대의 전구들을 쉬임없이 찾아다니였다.그때마다 그는 승용차에 사륜차를 싣고 다니였다.생의 마감을 며칠 앞둔 날에도 사륜차에 몸을 싣고 건설장을 돌아보며 군인건설자들을 고무한 로투사였다.

한생토록 체험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위인상을 세세년년 전해갈 한마음으로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쉬임없이 붓을 달려 우리 혁명의 귀중한 재보로 되는 많은 도서들을 남기였다.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은 충성과 위훈, 보답으로 한생을 빛내여온 로투사들이 살아서만이 아니라 죽어서도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도록 하여주시는 은혜로운 태양이시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리을설동지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시고 몸소 령구를 찾으시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시였으며 장의식에까지 참가하시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정한 로투사의 묘소에 흙을 얹어야 할 시각이 다가왔을 때 한 일군이 준비한 삽을 경애하는 원수님께 정중히 올리였다.하지만 그이께서는 그것을 밀어놓으시고 친히 두손에 흙을 담아드시였다.

그이의 뜨거운 손에 실려 투사의 묘소에 정히 얹혀진 그것이 정녕 무심한 흙이였던가.혁명의 원로들을 무한히 존대하고 귀중히 여기시며 영원한 삶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체취이고 온기였으며 숨결이 아니였던가.

이 숭엄한 화폭앞에서 투사의 유가족들만이 아닌 온 나라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격정의 눈물을 쏟았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어느 한 군관학교의 명칭에 리을설동지의 이름을 달도록 하시여 그의 고결한 정신이 더욱 빛나게 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이 바라보이는 대성산혁명렬사릉에 항일의 옛 전우들과 나란히 수령결사옹위의 영원한 초병으로 자리잡은 로투사!

숭고한 도덕의리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호위전사는 살아서도 영광, 죽어서도 영광을 누리고있는것이다.

리을설동지의 값높은 한생은 우리모두에게 새겨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이야말로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을 열혈혁명가, 불굴의 투사로 키워 가장 고귀한 삶을 안겨주는 위대한 태양의 품이라는것을.

그렇다.대를 이어 절세의 위인을 높이 모시여 수천수만의 충신들이 끝없이 자라나고 백두에서 시작된 우리 혁명의 충실성의 전통이 굳건히 이어지며 우리 조국은 그 어떤 풍파속에서도 줄기차게 전진해나가는것이다.

본사기자 허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