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4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사령부를 보위하는 길에 이 한몸 방탄벽이 되리라

혁명투사 리달경동지의 한생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첫 세대들인 항일혁명투사들은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였습니다.그들은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전설적영웅으로 높이 모시고 받들었으며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수령님을 견결히 옹호보위하였습니다.》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어떻게 받들어모셔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준 항일의 열혈충신들가운데는 항일혁명투사 리달경동지도 있다.

나라없던 그 세월 빈곤한 가정에서 태여나 모진 고생속에 살아오면서 망국노의 설음을 뼈에 사무치게 절감한 리달경동지,

그러던 그가 참다운 인생의 봄을 맞이한것은 주체20(1931)년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그때부터였다.

리달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도하신 추수투쟁과 춘황투쟁의 앞장에 서서 군중을 불러일으켜 용감히 싸웠으며 수령님께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자 지체없이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국내진공작전방침을 높이 받들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무비의 용감성을 높이 발휘하던 주체26(1937)년 봄이였다.어느날 그가 속한 부대는 무산지구로 진출하다가 휴식중에 적과 불의에 맞다들게 되였다.

매우 위급한 정황이였다.적들은 일제사격을 하면서 부대가 있는 곳으로부터 30~40m까지 기여들어왔다.아군에게 손쓸 틈을 주지 않으려는것이였다.

바로 이때 부대의 기관총수인 리달경동지가 먼저 적들을 맞받아 맹렬하게 사격을 하여 급한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

언제나 자기 무기를 눈동자와 같이 사랑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어떤 곤난한 조건에서도 무기를 책임적으로 정비하고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놓군 한 리달경동지였다.이날도 리달경동지는 남들이 곤하여 잠들었을 때 기관총을 깨끗이 소제한 다음 임의의 시각에 쏠수 있게 전투준비를 갖추어놓았던것이다.

리달경동지가 적들에게 련거퍼 기관총불벼락을 들씌우는 사이에 유격대원들은 재빨리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보복의 총탄을 날리였다.적들은 무리죽음을 내면서도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지만 끝내는 몽땅 소멸되고말았다.

이렇듯 리달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간직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철저히 구현한 충직한 투사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리달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주력부대의 경위중대 정치지도원, 경위중대장의 중책을 지니고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 무겁고도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간삼봉전투때에도 리달경동지는 사령부가까이에 중대를 배치하고 달려드는 적들을 정면으로 공격하여 무리죽음을 줌으로써 사령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위하였다.

주체26(1937)년 10월 어느날 무송현 서강에서의 도로매복전투때였다.

한낮이 지나자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적의 기마수송대렬이 나타났다.

사격명령이 내리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적들에게 불소나기를 안기였다.놈들은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완강하게 접어들었다.그중 한놈이 어느새 큰 나무뒤에 숨어 지휘처를 향해 기관총사격을 가해왔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치자 리달경동지는 옆에 있는 기관총수의 기관총을 넘겨받아가지고 그놈을 향하여 몰사격을 퍼부었다.

적의 기관총은 일시 아가리를 다물었다.그런데 적기관총이 다시 불을 토하기 시작하였다.더는 지체할수 없는 그 순간 리달경동지는 기관총을 안은채 적기관총수놈을 향하여 맞받아달려나가며 방아쇠를 당기였다.적의 화력을 자기에게로 집중시킴으로써 사령관동지의 신변을 보위하기 위해서였다.

여러발의 총탄이 날아와 몸에 박혔지만 리달경동지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멸적의 총탄을 날리였다.

정녕 그가 발휘한 무비의 희생정신은 한몸이 그대로 방탄벽이 되여서라도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해야 한다는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의 세찬 분출이였다.

리달경동지는 적기관총수놈이 너부러진 다음에야 기관총을 안은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전투가 끝난 후 그는 즉시 후방밀영의 병원으로 후송되였으나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치렬한 격전장에서 원쑤들의 흉탄에 쓰러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사령관동지의 신변안전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싸운 항일혁명투사 리달경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먼 후날에도 그를 못 잊어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리동학의 후임으로 경위중대장이 된 리달경은 원래 4사에서 기관총수로 있던 사람이였다.그는 백발백중의 명사수였다.어찌나도 총을 잘 쏘았던지 리달경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그는 경위중대의 정치지도원으로 얼마간 있다가 리동학이 련대장으로 소환되여간 다음 중대장으로 임명되였으나 한달도 못되여 전사하였다.》

리달경동지의 생은 비록 길지 않았다.그러나 조선혁명사에 아로새겨진 그의 위훈은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항일혁명선렬들이 발휘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이 어떤것인가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간고한 항일대전의 나날 혁명의 사령부를 한몸바쳐 보위한 열혈충신들의 고결한 정신과 빛나는 자욱을 이어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당중앙결사옹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승리만을 떨쳐가려는것이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철석의 의지이다.

고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