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7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혁명투사 박락권동지의 한생에서
오늘도 대성산의 주작봉마루에서 영생하고있는 항일혁명투사들의 모습은 후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있는가.
이 고귀한 진리를 우리는 혁명투사 박락권동지의 길지 않은 한생을 통하여 더욱 깊이 새겨안게 된다.
《박락권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감무쌍한 싸움군이였습니다.그는 군사지휘관으로서의 기지도 있고 날파람도 있었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감무쌍한 싸움군, 이것이
하다면 그 어떤 난관과 시련도 단호히 맞받아나간 강의한 혁명가로서의 박락권동지의 불굴의 신념과 억센 절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것인가. 함경북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난 박락권동지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략탈에 못이겨 낯설은 이국땅으로 떠나가는 부모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느게 되였다.그러나 어디에 간들 나라없는 백성의 처지는 다를바 없었다.조국을 빼앗긴 설음을 안고 피눈물속에서 자란 박락권동지였기에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안고 13살에 벌써 용약 혁명투쟁에 나섰으며 16살에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항일혁명투쟁에 나섰던 투사들이 그러했던것처럼 박락권동지에게 있어서
그의 이런 불굴의 신념과 의지는 적들과의 싸움에서 남김없이 발휘되였다.
박락권동지가 왕청유격대에 있을 때였다.어느날 일제《토벌대》놈들과 불의에 조우하여 총격전을 벌리던 그는 악착스럽게 달려드는 적들과 싸우다 그만 복부에 심한 중상을 입게 되였다.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기어이
혁명에 대한 책임성이 남달리 높은 불굴의 투사인 박락권동지를
비록 멀리 떨어져있었어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고있던 시기 박락권동지는 전우들과 함께
일제의 패망과 함께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땅에 가보고싶었지만 박락권동지는
주체35(1946)년 4월 박락권동지는 련대를 이끌고 제1차 장춘해방전투에 참가하였다.이 전투에서 박락권동지는 앞장에서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박격포탄파편을 여러군데 맞고 애석하게도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마지막순간에 그는 동지들에게 《아! 조국땅에 나가서
그가 희생된것이 너무도 가슴아프시여
살아서도 빛나고 죽어서도 영생하는것이 충신의 삶이다.
본사기자 백영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