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18일 로동신문

 

우리 원수님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참된 충신

주규창동지의 한생을 빛내여준
위대한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령도자의 위인적풍모에 매혹된 수천수만의 열혈의 인간들이 하나로 뭉쳐 용용한 충성의 대하를 이룬 격동의 우리 시대,

일편단심 당과 숨결도 운명도 함께 하는 충신들의 대부대가 주체혁명위업완성의 억척의 의지를 안고 당중앙을 옹위하며 장엄한 진군을 다그치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추억속에 그 이름 값높이 빛나는 주규창동지,

해방전 잔뼈가 굵기 전부터 소년로동을 강요당하며 인생의 최하층에서 쓰라린 치욕을 체험한 주규창동지가 어떻게 되여 원사, 교수, 박사로 자라나 인민의 사랑을 받고 령도자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충신들의 군상에서 빛날수 있게 되였는가.

여기에 영광스러운 우리 당력사에 아로새겨진 숭고한 동지애의 일단을 정히 펼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규창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고문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충직한 혁명전사, 우리 당의 친근한 혁명전우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늘 뜨거운 정을 기울여주시던 전사, 기쁜 일이 있어도, 힘들 때에도 그려보시는 주규창동지,

한없이 숭고한 동지적믿음과 사랑으로 수놓아진 한 평범한 혁명전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사람들은 우리 인민모두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고 혁명의 천만리를 헤쳐나가는 위대한 당의 은혜로움에 대하여 더욱 감동깊이 절감하게 될것이다.

 

영광과 행복의 절정

 

우리 조국의 력사에서 새로운 전환기가 펼쳐지던 주체101(2012)년 2월 15일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진행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70돐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주규창동지를 비롯한 당중앙군사위원회 일군들은 혁명의 군복을 입고 참가하게 되였다.

그날 주규창동지는 분에 넘치게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축하를 남먼저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상장의 군복차림으로 경애하는 원수님을 한자리에 모신 꿈만같은 행복으로 하여 주규창동지는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한없는 격정에 휩싸여있는 주규창동지를 몸가까이 불러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군복을 입으니 한결 젊고 씩씩해보인다고 하시며 광명성절에 즈음하여 높은 군사칭호를 수여받고 혁명의 군복을 입은 전사를 뜨겁게 축하해주시였다.

주규창동지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신임을 받아안은 격동된 심정을 담아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다함없는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그러한 그를 바라보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생애의 마지막나날 일군들의 군사칭호와 관련한 문건을 친히 비준해주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던 일을 감회깊이 들려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런데 장군님께서 군복을 입은 동무들을 만나보지 못하시고 너무도 뜻밖에 우리곁을 떠나시였다고, 장군님께서 오늘 이렇게 군복을 입은 동무들을 만나보시였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시였겠는가고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순간 장내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세차게 일렁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군복입은 전사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절하시였으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 다음날에도 주규창동지를 비롯한 일군들을 부르시여 보고 또 보시며 다시금 축하해주시였으랴.

주규창동지는 영광과 행복의 절정에서 눈시울을 적시였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군복을 어루쓸어보는 그의 눈가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못 견디게 어려오고 이름할수 없는 감회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지극히 평범하던 그를 당에 무한히 충실한 전사로 키워주시고 그의 인생을 끝없는 행복과 영광으로 빛내여주신분이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사랑하는 전사를 늘 곁에 두고싶어하시며 《주규창동무는 나의 충실한 방조자입니다.》라고 정담아, 사랑담아 친근히 말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따뜻한 그 음성을 주규창동지가 어찌 순간인들 잊을수 있었으랴.

그가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중임을 맡은 때로부터 얼마 안되던 주체90(2001)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전화로 그를 찾아주시였다.그는 황황히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주규창동지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 직무가 힘에 부치지 않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가 맡은 일을 원만히 해내겠는지 걱정된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럴것이라고 하시며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이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주규창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함흥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수행하게 되였다.

끓어오르는 흥분을 얼마만이라도 눅잦혀보려고 그는 달리는 차에서 줄곧 창밖을 내다보았다.젖빛안개가 함흥시가의 즐비하게 늘어선 살림집지붕들을 뒤덮으면서 바다멀기마냥 끊임없이 넘실거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 도착하시였다.

주규창동지의 인생에 깊은 자욱을 남긴 잊지 못할 곳이였다.1960년대 중엽 어느 한 연구소에서 일하던 그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온 곳이 바로 이 기업소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사연깊은 기업소를 다시 찾게 된 그의 가슴은 마냥 들먹이기만 하였다.

지난 기간 기업소 로동계급이 생산한 설비들을 보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규창동지에게 시선을 돌리시며 이런 멋에 쪽잠에 줴기밥을 들면서도 로동계급을 찾아온다고 더없이 만족해하시였다.

쪽잠에 줴기밥을 드시면서도 로동계급을 찾아 마음달리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그 믿음, 그 진정!

위대한 령도자와 로동계급사이의 이런 혈연의 뉴대가 있어 겹쌓이는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창조와 비약의 동음을 높이 울려온 우리 조국이 아니던가.

절세위인의 하늘같은 믿음에 떠받들린 로동계급이 와와 소리치며 들고일어나는 모습, 그 장엄한 기상이 안겨와 주규창동지의 가슴은 바람안은 돛폭처럼 한껏 부풀어올랐다.

위대한 장군님을 수행한 잊을수 없는 그날 주규창동지는 한생 생산자대중에게서 허심하게 배우고 그들의 무궁무진한 창조적힘과 지혜에 의거할 결심을 더욱 굳히였다.실로 이를데 없는 충격을 받아안은 날이였다.

이렇게 그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훌륭한 인민을 알게 해주시고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성장의 걸음걸음에 아낌없는 정과 열을 기울이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그 많고많은 날들중에는 주규창동지가 늘 잊지 못해한 어느해 가을날의 이야기도 있다.

그날은 주체91(2002)년 10월 23일이였다.

주규창동지를 불러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쩌다 조용한 기회에 마주앉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건강은 어떠한가, 부서사업은 어떤가, 힘에 부치지 않는가 등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친어버이심정으로 헤아려주시였다.

화기에 넘친 담화가 이윽토록 진행되는 행복의 순간이였다.

흔치 않은 기회에 자나깨나 가슴을 불태우는 념원을 아뢰일 충동이 치밀어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 부디 건강에 류의하시고 안녕하시기를 간절히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거듭 고맙다고 하시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것을 해놓아야 하겠는데 시간이 한초한초 흐르는것이 안타깝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시계를 자주 보지 않는다고 하시였다.시계를 보시면 흐르는 시간이 너무도 아쉽기때문이라는 뜻이였다.

천금보다 귀중한것이 시간이라고 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은 더없이 절절하였다.

아, 이런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 안긴 우리 인민보다 더 행복한 인민이 그 어디에 또 있을것인가.

이름할수 없는 충격, 솟구치는 산악같은 힘으로 하여 그의 심장은 세차게 고동쳤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처럼 높이 떠받드시는 우리 인민을 위해 분초를 아껴 헌신분투하여 참된 생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것이 그 시각 그의 온넋을 불태운 일념이였다.

우리 장군님의 한평생은 사랑하는 전사들과 인민들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정의 한평생이였다.

언제인가 먼 출장길에 있던 주규창동지가 뜻밖의 사고로 큰일을 당할번 한적이 있었다.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크게 걱정하시며 치료계획까지 세워주시였다.

오랜 시일이 걸려야 하는 치료였다.그지없는 송구스러움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전대미문의 시련의 언덕을 넘고넘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보좌해드려야 할 때에 일시나마 그이곁을 떠나야 한다는 괴로움때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앞에서 지금껏 오직 《알았습니다.》, 이 한마디 대답밖에 몰랐던 그였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할수 없었다.

하지만 전사들의 건강상문제와는 타협을 모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결심은 확고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가 이제는 나이가 많기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왕 치료받던바에는 병원에서 하라는대로 하여야 한다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동무가 치료를 받느라고 나의 사업을 잘 보좌하지 못하여 안됐다고 하는데 절대로 미안해하지 말고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 조급해하지 말고 치료를 잘 받아야 하겠다.

이렇게 당부하시기를 몇차례, 그루를 박으시기를 그 몇번…

마침내 그가 완쾌되여 어버이장군님의 품에 안기였을 때였다.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는 동무를 보지 못할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라고 하시며 완전히 회복되여 돌아왔으니 이제는 나와 함께 다닐수 있게 되였다고 진정 기쁨에 겨워하시였다.

언제인가 그가 감기에 걸리였을 때에는 출근하지 말고 며칠동안 집에서 안정하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곡진한 과업을 주신 위대한 장군님,

이런 각별한 사랑으로 어느해 3월에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에게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동무는 나이가 있는것만큼 건강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합니다.나는 동무가 앓지 말고 건강하여 일하기를 바랍니다.》

찌는듯 물쿠는 속에서도 끊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느해 8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사들과 뜻깊은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고향과 살아온 경력, 일터는 서로 달라도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겨 그이의 동지적사랑을 받아안으며 성장한 전사들이였다.

한사람한사람에게 혈연의 정과 열을 쏟아온 잊지 못할 나날들이 떠오르신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감개무량해하시였다.

그들중에는 전해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아안은 주규창동지도 있었다.

믿음과 사랑이 어린 시선으로 전사를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교시하시였다.

《주규창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도 80살이 넘은 오랜 일군입니다.》

마디마디에 눈물겹도록 뜨거운 정이 넘쳐흐르는 어버이의 사려에 과연 누구인들 심장이 높뛰지 않을수 있으랴.

너무도 황송하여 진정하지 못하고있는 그의 손을 따뜻이 잡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주규창동무의 생일 80돐을 축하해주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사랑하는 전사의 앞길에 영광과 행복의 날이 계속되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다함없는 진정이 어린 축복이였다.

그날 저녁 그의 집에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양복이 주인을 기다리고있었다.

아, 한번 안기면 열백번 안기고싶고 죽어서도 영원히 안겨살 어버이장군님의 품!

절세의 위인과 영원히 생사운명을 같이하고 그 어떤 풍파가 닥쳐와도 그이를 결사옹위할 신념과 의지가 그의 가슴에 산악처럼 더욱 굳건히 자리잡았다.

주규창동지는 생의 한순간한순간 이날에 다진 충성의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피타게 사색하고 헌신해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그를 전적으로 믿고 중임을 맡겨주시며 일을 잘해나가도록 늘 마음을 기울이시였다.

능력이 딸릴 때에는 안목도 틔워주시고 내밀성이 부족할 때에는 담을 키워주시며 신임을 베푸시고 용기를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어제날 소박하고 순진한 농촌청년이였던 주규창동지, 수령의 참다운 혁명전사로서의 그의 인생길은 이렇게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는 앞으로 자기의 삶을 얼마나 위대한 손길이 걸음걸음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며 축복해주게 되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기슭이 없는 사랑의 대하

 

인간이 오를수 있는 영광과 행복의 절정은 조국과 인민의 추억속에 애국자로, 충신으로 영생하는것이다.

이런 영예와 행복은 누구나 바란다고 하여 지니게 되는것이 아니며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전사들만이 누릴수 있는 최상의 행운이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품들여 키워주신 전사, 제자들이 당을 받들어 한생을 끝까지 빛나게 살도록 믿음과 사랑으로 고무해주시는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그이의 따뜻한 손길에 이끌리여 주규창동지는 로쇠를 모르고 로당익장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당의 위업에 충실할수 있었다.

산과 들이 가을단장을 곱게 하던 몇해전 10월이였다.

우리 조국의 매일, 매 시각이 세계정치사에 거대한 충격과 여운을 남기며 격동적으로 흐르던 그무렵의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주규창동지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주규창동지는 년로로 하여 어느 한 연구기관에서 고문으로 일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 국방력강화의 초석이 되여온 주규창동지의 한생의 공적을 더듬으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하시는 뜨거운 말씀이 일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자신께서는 주규창고문의 나이가 88살이지만 그를 중앙당 군수공업부 고문으로 올려오려고 한다고, 그에게 권한을 주어 연구부문이든 공장이든 가고싶은 곳에 다 가보게 하려고 한다고, 그러면 그가 매우 좋아할것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주규창고문과 같은 전세대들을 떠나서 오늘의 군수공업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당과 수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전세대 일군들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삶을 빛내이도록 사업과 생활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혁명전사들에 대한 그이의 한없이 숭고한 혁명적의리의 세계는 실로 만사람을 격동시키는것이였다.

이날 당중앙위원회 한 책임일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규창고문이 나이가 88살이지만 아직도 계속 출근하면서 당의 군수공업정책집행을 위하여 애쓰고있는데 해당 일군들이 그의 사업과 생활에 응당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다고 걱정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더 늦기 전에 그를 중앙당에 올려와 곁에서 우리가 그의 생활을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랑하는 전사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대해같은 은정의 세계에 접한 일군은 젖어드는 목소리로 로세대들을 잘 돌봐주지 못하여 면목이 없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한 그에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나이많은 일군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고 그들의 조언과 방조를 받으면서 일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또다시 그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주규창동지의 사무실을 꾸린 정형을 알아보시였다.

참으로 다심하기 이를데 없는 보살피심이였다.

일군들로부터 이런 감동적인 사연을 전해듣는 그의 심정이 오죽하였으랴.

《경애하는 원수님! …저같은 고목이 뭐길래 그처럼 어려운 강행군일과속에서도…》

오열에 흐느끼는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일군들도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세상에 다시없을 이런 신임에 떠받들리여 주규창동지는 더 큰 중임을 맡아안게 되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날이였다.

당중앙위원회의 한 일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오늘이 주규창 중앙당 군수공업부 고문의 88돐생일이라고 하시면서 일군들이 주규창고문의 집에 가서 생일을 축하해주고 앞으로 계속 건강하여 사업에 대한 좋은 의견을 주기 바란다고 인사를 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곡진히 이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마련해주신 뜻깊고 의의깊은 자리에서였다.

소박하면서도 민족적풍습과 례법을 갖추어 차린 생일상앞에 정히 앉은 그는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이름을 꼽으시여 그와 자리를 같이하게 하여주신 일군들 누구나 인간의 한생에 이렇듯 영광넘친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격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주규창동지는 지나온 생을 뜨겁게 돌이켜보았고 무슨 말로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할 말을 찾을수 없다고 곱씹기만 하였다.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처럼 오직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따르고 보좌해드리며 자기 가정을 충신가정으로 꾸릴 결심만을 외웠다.

그날 그지없는 어버이사랑에 목메여 눈시울적시며 감회깊은 회포를 나누던 오랜 친지들도 다 돌아간 깊은 밤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혁명해온 길지 않은 나날들이 세찬 감격을 불러일으켜 주규창동지는 걷잡을수없이 흐르는 눈물을 그냥 손수건으로 훔치였다.

주체100(2011)년 9월 어느날도 그런 날중의 하루였다.

련일 정력적인 혁명활동을 벌리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던 주규창동지는 이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에 모시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당을 받들어 충신의 자세를 변치 않는 그를 더없이 미더워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사와 사연깊은 자리를 함께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실한 사람이라고, 자그마한 가식도 없이 진심으로 당을 받들고 따르는 일군이라고 내세워주시는 전사, 나이가 있는것만큼 건강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각근히 돌봐주시는 전사와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정은 참으로 감회로우시였다.

그의 건강과 사업에 대하여 사려깊이 헤아려주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절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부장동무는 앞으로도 건강한 몸으로 지금 맡고있는 사업을 계속 잘해주어야 합니다.부장동무가 맡고있는 사업을 대신할 사람이 없습니다.그러므로 부장동무는 건강관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그 순간 주규창동지는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내 생명 다할 때까지 당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의 모습에서 이런 불타는 맹세를 읽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며 믿는다고 고무해주시였다.

령도자의 위대성을 신념으로 체득하고 결사의 투신으로 따르며 받드는 혁명전사의 일편단심처럼 진실하고 순결한 감정은 없다.

주규창동지의 심장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안겨주신 믿음과 기대로 순간순간 세차게 높뛰였다.

(내가 맡은 직책상임무만이라도 충실히 수행한다면 경애하는 원수님의 어깨에 실린 중하를 다문 얼마만이라도 덜어드릴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책임감으로 그의 마음은 늘 큰 연덩어리를 안은듯 무거웠다.

모든 부문에 전문가이상으로 밝고 정통해야 경애하는 원수님께 다진 맹세를 훌륭하게 실천할수 있다는 비상한 각오로 그는 실력을 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모질게 채찍질하며 무한한 열정을 발휘하였다.

맡은 부문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업적을 심장에 쪼아박고 전문분야의 책을 거의나 탐독하면서 피타게 헌신하였다.

어떤 때는 며칠밤을 밝혀가며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였고 또 어떤 때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려야 할 공장, 기업소들의 실태료해를 단 며칠동안에 진행하고 현지에서 사업을 작전하고 전개하였다.다른 사람들에게 줄 임무도 자기가 발벗고나서 책임적으로 수행하였다.

나이도 많은데 조직사업만 하면 되지 않는가고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일군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주신 과업을 집행하는 중대사인데 누가 조직자가 따로 있고 관철자가 따로 있다고 했소.》라고 하면서 끝장을 볼 때까지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그 투지와 기백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류례없이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던 지난 세기 90년대 사탕알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수 없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로 피를 끓이며 민족의 존엄과 번영의 만년초석을 쌓는 길에 한몸 결연히 내대고 돌진하던 그때를 방불케 하였다.

완강한 실천력으로 당정책을 신속정확히 집행한 주규창동지,

하기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언제인가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과 당의 방침을 관철하는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대책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짜고들어 진행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주규창동무만 한 일군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당에 대한 충실성을 체질화한 전사의 훌륭한 성품을 그렇듯 중히 여기시며 높이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 무한한 믿음과 사랑으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세상을 뒤흔드는 특대사변을 이룩하시였을 때에도 주규창동지를 생각하시며 당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온 이런 일군들이 있어 오늘의 성과가 이룩된것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두해전 1월 1일 주규창동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신년사를 받아안고 격정으로 들끓는 로동계급을 찾아 먼 지방으로 달려갔다.열이 있는 상태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지만 무작정 떠난 길이였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실려온 후 그는 병마와 힘겹게 싸웠지만 끝내 이겨낼수 없었다.

그날은 그해 9월 3일이였다.


* *


시련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으시는 폭풍사나운 력사의 준령을 그이와 함께 헤친 전사, 언제 봐도 말이 없고 조용하지만 당정책관철에서는 무서운 정열가, 배짱군인 전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고인의 령구가 안치되여있는 곳을 찾으시였다.

비록 숨은 졌어도 내 생명 다할 때까지 당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꼭 보답하겠다고 하던 그날의 맹세를 실천하기 위해 지금도 애쓰듯 근엄한 표정으로 전사는 기척없이 누워있었다.

금시라도 찾으면 수줍은 얼굴에 홍조를 띠우던 평시의 모습으로 인사를 할것만 같은 로혁명가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아프시였다.

90살을 가까이한 그에게 주실수 있는 믿음과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고도 그처럼 비통해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유가족들도 흐느끼였다.

영결의 아픔을 못이겨하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규창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충직한 혁명전사, 우리 당의 친근한 혁명전우였다고 하시면서 못내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는 지금까지 당과 수령을 받들어 충실히 일하였습니다.》

형언할수 없는 애석함을 안고계시면서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유가족들을 육친의 정으로 위로해주시였다.

유가족들의 흐느낌소리가 고조되였다.

우리 당과 인민이 영원히 잊지 못할 주규창동지의 고결한 생애에 뜨거운 추억을 얹으시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주규창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고문이 지녔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으로 사람들을 교양하여야 합니다.》

주체혁명위업수행에 특출한 공헌을 한 로혁명가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경의였다.

또한 당과 혁명앞에 무한히 순결하고 고지식하였던 충신의 삶을 새세대들이 고스란히 이어가게 하시려는 그이의 고결한 뜻의 발현이였다.

흐르는 눈물속에 남편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영원한 믿음과 사랑의 세계를 새기는 유가족들의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휘발유를 태우는것이 아깝다고 하면서 어쩌다 집에 들어오는 날에도 교외에서 걸어서 퇴근하여 안해의 속을 태운 주규창동지였다.

제일 어렵고 힘든 곳으로, 이것이 자식들의 전망과 관련한 그의 어길수 없는 기준이였다.

오래동안 한컬레의 신발만 계속 수리하면서 신는 아버지에게 마련해준 새 신발을 끝내 사양하여 사랑하는 딸을 울린 고정한 일군,

먼곳의 대학으로 떠나야 하는 자식을 하루라도 더 끼고있고싶어 왼심을 쓰는 딸에게 《당장 떠나보내야 한다.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 가정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부모들이 싸고돌면 자식을 그르치게 한다는걸 알지 못한단 말이냐?》라고 벼락을 친 집안의 엄한 가장이였던 주규창동지,

오늘 조선혁명박물관에 정히 보관된 원사, 교수, 박사증서들도 그가 자기 집 벽면에 거는것을 한사코 반대하여 걸지 못하던 증서들이 아니던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당과 혁명을 위하여 끝없이 헌신하였고 인민앞에 무한히 량심적이고 성실하였다고 뜨겁게 추억하시는 주규창동지,

충신은 우리곁을 떠났어도 령도자의 추억속에 영생한다.

주규창동지의 삶을 빛내여준 은혜로운 품, 이 땅의 천만사람모두를 혁명가로 키워 어엿하게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은 이 세상의 열과 정을 다 합쳐도 비길수 없는 위대한 태양의 품이다.

인간으로서, 혁명가로서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믿음과 사랑속에서 그이의 전사로 한생을 값있게 살며 성스러운 혁명위업에 한몸바쳐 싸워나가는것보다 더 큰 행복, 더 큰 영광은 없다.

본사기자 량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