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22일 로동신문

 

위대한 향도, 승리와 영광의 75년

당사업에서의 혁명적전환은 이렇게 마련되였다

 

1970년대는 우리 당과 혁명력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위대한 전환의 년대, 창조와 혁신의 불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친 격동의 년대였다.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 인민군장병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 자립, 자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력사에 류례없는 기적을 창조하였으며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고 당의 조직사상적기초를 새롭게 축성하는데서 결정적승리를 이룩하였다.사회주의경제를 그 어떤 세계적파동에도 끄떡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자립경제로 발전시키였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와 같은 뜻깊은 구호들이 태여나고 속도전의 진격나팔소리, 혁명의 북소리가 온 나라를 진감하던 그 나날은 우리 조국청사에 일대 륭성과 번영의 년대로 빛을 뿌리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당 제5차대회가 제시한 당사업의 총적과업을 견결히 관철함으로써 우리 당을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며 우리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할수 있는 조직사상적기초를 튼튼히 다져놓았다.》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가 펼친 휘황한 설계도따라 주체혁명위업수행을 위한 거창한 투쟁을 이끌어 1970년대를 승리와 영광으로 아로새긴 우리 당의 자랑찬 로정,

그것은 당사업에서 항일유격대식방법을 철저히 구현하도록 하시여 전당과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우리 당을 불패의 전위대오로 강화발전시키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항일유격대식배낭을 메고 군중속으로!

 

주체103(2014)년 2월이였다.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신 40돐을 계기로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이 뜻깊은 대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혁명적인 사상공세로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갈데 대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면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당의 령도밑에 모든 일군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아래에 내려가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의 요구대로 군중을 발동시키고 혁신의 불길을 지펴올리던 1970년대의 약동하는 기상이 온 나라에 차넘치게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하다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잊지 못해하시는 1970년대 당사업에서의 전환은 과연 어떻게 마련되였던가.

당사업을 개선강화하는것은 1970년대 우리 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당 제5차대회에서 제시하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강령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하였다.그것은 이 시기 당사업에 관료주의, 형식주의의 낡은 틀이 적지 않게 남아있은것과도 관련되여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헤아리시고 당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것을 자신께서 맡아 수행하여야 할 과업으로 내세우신분이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의 기본사명과 임무, 혁명과 건설이 심화발전되고있는 현실적요구에 맞게 당사업에 남아있는 낡은 틀을 대담하게 마사버릴것을 결심하시고 그 근본방도를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몸소 창조하신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을 구현하는데서 찾으시였다.

주체62(1973)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도들에 내려갔던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들을 통하여 도, 시, 군당일군들이 종래의 낡은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사업하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간고한 나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중대에 내려가 생활하시였고 오늘도 쉬임없이 공장과 농촌들을 찾아가시는데 동무들은 아직도 옛날 본새 그대로이라고 하시면서 모두가 다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아래에 내려가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배낭을 메고 군중속으로!

이것은 우리 당사업에서 하나의 큰 전환이였다.

일군들이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야 당과 대중과의 혈연적련계를 강화하고 대중을 당의 두리에 더욱 굳게 묶어세울수 있으며 대중의 혁명적열의와 창발성을 적극 불러일으켜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이겨내고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밀고나갈수 있다.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유격대원들이 군중속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진행하던 때의 기풍과 방법이 전당에 확립될 때 우리 당은 로쇠와 침체를 모르고 끊임없이 약동하고 전진하는 혁명적인 당으로 강화발전될수 있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항일유격대식으로 배낭을 메고 아래에 내려갈데 대하여 그처럼 간곡히 가르치신것이다.

그로부터 얼마후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초급당총회를 지도하시는 과정에 그때까지도 일군들이 아래에 내려가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운 사업지도체계를 세워주시였다.

항일유격대의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당은 당사업도 응당 항일유격대식으로 하여야 한다.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의도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63(1974)년 2월 19일에 진행된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사상일군대회에서 하신 뜻깊은 가르치심이 력사의 메아리가 되여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준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하시다가 포전에서 〈동무 누구요?〉하고 물으시면 〈예, 저는 군당사상비서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오고 〈무엇하러 나왔소?〉라고 물으시면 〈당정책을 해설하러 나왔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이것이 가장 리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이렇게 되면 언제나 당의 목소리가 군중속에서 울리고 군중이 당의 숨결을 따라 같이 숨쉴수 있게 될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당사상일군들이 갖추어야 할 풍모와 사업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해 여름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4차 조직일군대회에서 당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개선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회에서 혁명적인 사업방법을 세우는데서 가장 중요한것은 낡은 재래식사업방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으로 전환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창조하신 새로운 혁명적인 사업방법, 김일성주의당사업방법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김일성주의당사업방법대로!

이것은 우리 당사업을 철두철미 위대한 수령님의 당건설사상대로, 김일성주의의 요구대로 해나가도록 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항일유격대식으로 당사업을 참신하게 벌려 우리 당을 생기발랄하고 기백넘치는 당,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은 당으로 강화해나가는데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지도적지침이였다.

혁명활동의 첫 시기부터 사람과의 사업을 통하여 혁명의 골간도 꾸리고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도 마련하시였으며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도 닦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건설력사상 처음으로 당사업은 사람과의 사업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첫 시기부터 열길 물속은 몰라도 한길 사람의 속은 알아야 한다는 금언을 좌우명으로 내세우시며 당사업을 사람들의 마음과의 사업으로 전환시키시였다.

일군들을 만나실 때면 군중속에 들어가 조직정치사업을 진행해야 하며 여러가지 회의에도 참가하여보고 학습회와 강연회에도 참가하여 출연도 해보아야 한다고, 그리고 합숙과 식당, 학교, 상점, 가정들에도 들어가보면서 대중의 요구와 애로를 깊이 알아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아래에 내려가는 문제에 대하여 세심히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김일성주의당사업방법대로!

여기에는 모든 일군들이 항일유격대의 정치일군들처럼 군중속에 몸을 잠그고 그들의 요구와 지향에 맞게 조직정치사업을 진행해나가도록 함으로써 당의 전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의지가 비껴있었다.

《당사업에서 형식주의를 없앨데 대하여》, 《당사업의 기본은 사람과의 사업이다》, 《현시기 당사업에서 나서는 중심과업에 대하여》, 《당사업을 개선하며 경제사업을 밀고나가는데서 제기되는 당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를 비롯한 위대한 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은 우리의 모든 일군들이 사업방법과 작풍을 개선하고 어머니당의 일군다운 풍모를 갖추어나가도록 하는 성장의 귀중한 자양분이였다.

당기구체계도 아래에 접근할수 있게 개편하도록 하시고 당일군들이 현지에 늘 내려가 사업하는 체계도 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수많은 일군들이 군중이 있는 현실속으로 깊이 들어갔으며 대중과 고락을 같이하고 그들의 정신력을 발동하여 혁명과 건설사업을 해나가는 혁명적기풍을 확립해나갔다.그들가운데는 로동자들과 함께 손에 기계기름을 묻혀가며 일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현장을 들었다놓는 일군이 있는가 하면 집이 없어 새살림을 펴지 못하는 제대군인들을 위해 주택건설장에서 밤을 새운 일군도 있었다.씨붙임철이면 밭에 나가 밭갈이에 앞장서기도 하고 진거름이 듬뿍 담긴 싸리바구니를 들고 밭이랑을 함께 타며 농장원들의 살림살이형편을 알아보는 일군도 있었다.누구도 풀수 없다고 나앉았던 가정문제까지 관심하며 기어이 풀어준 일군에 대한 이야기며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밥곽까지 열어보면서 생활형편을 료해하여 필요한 대책을 세운 일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생명이 경각에 이른 순간까지도 마이크를 잡고 전시가요를 불러 생산자대중의 심금을 울린 일군에 대한 이야기도 바로 이 나날에 생겨난것이다.

항일유격대의 정치일군들처럼 혁명의 량식이 되고 불씨가 될 배낭을 메고 공장으로, 농촌으로, 건설장으로 달려가는 당일군들의 기백과 열정은 그대로 1970년대 우리 당의 숨결이고 맥박이였다.

주체64(1975)년 3월 어느날 3대혁명전시관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안주군(당시)당일군들이 아래에 내려갈 때 메고다니던 배낭을 몸소 보아주시였다.

각종 정치서적과 문예서적들, 하모니카, 붓, 색감…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의 의도에 맞게 일해나가고있는 안주군당위원회 일군들을 높이 평가하시며 당사상사업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킬것을 결심하면서 중요하게 의도하였고 여러차례 강조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수수한 배낭이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거기에서 지난날의 낡은 틀을 대담하게 마스고 항일유격대식으로 당사업을 참신하게 벌려나가는 당일군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시였던것이다.

주체69(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당사업전반에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이 구현됨으로써 당의 면모가 새로와지고 당사업기풍이 근본적으로 일신되였습니다.전당에 혁명적기백이 약동하며 모든 사업이 패기있고 생기발랄하게 진행되는것이 오늘 우리 당의 면모이며 사업기풍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는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을 구현하여 1970년대 우리 당사업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탁월한 령도력에 대한 고귀한 평가이기도 하였다.

 

당은 언제나 인민과 함께

 

혁명적당의 령도는 인민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최대한 발동하여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나가는 과정이다.당이 혁명과 건설을 옳게 령도해나가자면 인민대중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지니고 대중의 사상을 적극 발동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해나가야 한다.

주체62(1973)년 6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지금 광업이 걸려서 더 할것도 못한다고 하시며 심려하고계시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가장 힘을 넣으시는 부문의 하나인 채취공업부문에서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방도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동계급의 사상발동에서 찾으시였다.경제선동의 집중포화를 들이댈것을 결심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은률광산을 비롯한 여러 광산에 당, 경제, 출판보도일군, 예술인들을 망라하는 경제선동대를 파견하여 집중적인 선동공세를 벌리도록 하시였다.

광업전선을 들었다놓는 경제선동의 북소리는 대중의 혁명적열의를 높여주었고 쇠돌생산에서 비약이 일어나 용광로에서 쇠물이 꽝꽝 쏟아져나오게 하였으며 이 과정에 항일유격대의 대중정치선동방법을 구현한 새로운 경제선동경험이 창조되였다.이에 기초하여 그해 11월에는 금성뜨락또르공장과 승리자동차종합공장(당시)에서 진행된 큰 규모의 경제선동을 통하여 새로운 경제선동의 본보기가 마련되였다.

가시는 곳마다에서 사상전의 방법에 의한 정신력의 발동을 호소하시고 그 위력으로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전환을 안아오시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일관한 혁명령도방법이였다.1970년대를 들었다놓은 70일전투의 승리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상전의 위력으로 안아오시였다.

12개의 중앙예술단과 48개의 지방예술단체 예술인들을 1 250여개의 주요전투장들에 파견, 국가경제기관과 근로단체조직들, 문학예술부문과 출판보도부문들에서 생산현장에 달려나가 선동활동 진행,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단위들에 예술선전대, 방송분견대, 출판보도선전조, 기동예술선동대들을 조직…

이 모든것은 전당이 선전원이 되고 선동원이 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구상과 현명한 령도가 낳은 격동적인 현실이였다.

몸소 아래에 내려가는 실천적모범을 보여주시면서 일군들이 아래에 내려가서는 어느 초소에 서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며 교양은 어떻게 하고 군중은 어떻게 동원하여야 하는가 하는 등 방법론과 묘술을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64(1975)년 7월 1일에 진행하신 검덕광산(당시)에 대한 현지지도는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갱안에 들어가지 않을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오겠는가, 우리의 귀중한 로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다 들어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수수한 싸리안전모를 쓰시고 광부들이 아침저녁으로 타고다니는 인차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

막장에서 너무도 뜻밖에 그이를 만나뵈옵게 된 한 오랜 광부는 《그 귀하신 몸으로 여기가 어데라고…》 하면서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다.그러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보고싶어서 왔다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룡양광산에도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7호굴착기 영웅소대장을 비롯한 광부들과 만나 담화도 나누시고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광산의 당일군을 렬차에 태우시고 당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검덕광산과 룡양광산에 대한 우리 장군님의 력사적인 현지지도는 경제사업을 떠난 당사업이란 있을수 없으며 대중의 심장의 문을 열고 걸린 문제를 제때에 풀어주면서 믿음과 사랑으로 대중의 정신력을 불러일으켜 기적을 창조해야 한다는 귀중한 진리를 실천적모범으로 일깨워주신 거룩한 자욱이였다.

검덕의 광부들이 광물생산을 힘있게 다그쳐 6개년계획을 앞당겨 수행하고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의 봉화를 높이 추켜들 때 서해의 은률광산에서는 대형장거리벨트콘베아수송선건설이 완공되는 성과가 이룩되였으며 무산-청진사이 대형장거리정광수송관이 건설되고 황해제철소(당시)에서는 전면적자동화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

정녕 1970년대를 창조와 변혁의 년대로 빛내인 대건설전투들과 주체조선의 위용을 과시하며 일떠선 거창한 창조물들은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을 발동하여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안아오는 우리 당의 탁월한 령도의 고귀한 결실이였다.

꺼질줄 모르는 당중앙창가의 불빛과 더불어 창조의 새날이 밝아오던 그 나날 우리 장군님께서 언제 한번 편히 쉬신적 있었던가.

인민의 의사가 당중앙위원회에까지 거침없이 전달되고 당중앙의 숨결이 매 사람의 마음속까지 쭉쭉 스며들도록 하는 정연한 사업체계를 세워주시고 아래당조직들에 대한 지도방법으로부터 군중사업방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당의 사업체계를 하나하나 세워나가시던 나날들, 혁명적원칙성과 뜨거운 어머니사랑으로 인민의 운명을 보살펴주는 참된 당일군들을 키워내시는데 바쳐진 심혈과 로고, 수시로 제기되는 문건들을 보시고 결론을 주시며 지새우신 무수한 밤들…

격동의 그 나날 자신께는 쉴 시간이 따로 없다고, 자신께서 한시간 쉬면 온 나라가 그만큼 쉬는것으로 된다고 하시며 우리 장군님께서 한밤을 꼬박 새우시고 밝아오는 새날을 맞으신적은 그 얼마였고 끝없이 이어가신 그 헌신의 날과 달들에 인민의 심장을 울리는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수많이 태여났던가.

사람들은 오늘도 얼음장을 타고 표류하는 한 어로공처녀를 위하여 직승기까지 동원되였던 사실을 잊지 않고있다.

기어이 구원하여야 한다고, 구원하지 못하면 차라리 보고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장군님.

구조전투가 시작되여 20시간만에 기적적으로 구원된 어로공처녀를 부여안고 그의 어머니는 잃은줄 알았던 너를 당에서 두번다시 세상에 태여나게 해주었다고 오열을 터치였다.

멀리 있는 자식을 두고 더 마음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조국과 떨어진 곳에서 생사기로에 놓인 환자를 위해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신분도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인민들은 우리 당에 자기의 모든것을 의탁하고있으며 우리 당을 어머니당이라고 부르고있다고, 어머니당이라는 말속에는 우리 당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함께 장래운명까지 보살펴줄것을 바라는 인민들의 크나큰 기대가 담겨져있다고 하시며 인민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활짝 꽃피워주신 위대한 장군님.

어느해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마을에 떳떳치 못한 가정경력으로 마음에 그늘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누구나 이 문제가 벌써 여러차례의 료해끝에 기정사실로 고착된것만큼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은 사람들의 정치적운명과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몇번의 료해로 락착지어버릴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굳이 다시 알아보게 하시였다.그러시고는 그 지방에서 교활하고 악랄한 적들의 분렬암해책동이 우심했던 사실에 각별히 류의하면서 그들의 문제를 료해하도록 구체적인 방법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교활하고 간악한 원쑤들에게 무참히 희생된 피살자들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 가족들에게 렬사증을 수여하는 감격어린 화폭이 펼쳐지게 되였다.

너무도 놀라와 처음에는 넋을 잃고있던 사람들이 정작 렬사증을 받아안게 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위대한 장군님 계시는 평양하늘을 우러러 눈물로 두볼을 적시며 만세를 목청껏 부르던 사람들, 그들의 심장속에서 세차게 분출하던 사상감정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바로 이것이였다.이 절대적인 신뢰의 감정은 인민들로 하여금 당의 품에 운명의 피줄기를 굳건히 이어놓게 하였으며 이 땅의 천만인민모두가 세차게 펄럭이는 당기폭을 어머니의 모습으로 새겨안고 혁명의 한길로만 곧바로 달릴수 있게 하였다.

인민이라는 대지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 억세고도 줄기찬 향도의 힘으로 우리 조국을 승리의 한길로만 이끌어온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1970년대 우리 당발전에서 위대한 전환을 안아온 혁명적인 사업방법인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의 우월성과 생활력은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새로운 력사적시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끝없이 과시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당건설사상과 령도업적을 확고부동한 지침으로 삼으시고 당사업과 당활동을 오직 수령님들의 뜻대로 진행해나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여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 존엄과 위용은 더욱 높이 떨쳐질것이다.

글 본사기자 백영미
사진 본사기자 리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