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9월 28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혁명투사 오일남동지의 한생에서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닌
나라없던 그 세월 망국노의 설음을 뼈에 사무치게 절감한 오일남동지는 주체21(1932)년 화룡현에서 반일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원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안고 적의 《토벌》로부터 유격구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던 그는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억울하게도 《민생단》의 루명을 쓰게 되였다. 오일남동지가 재생의 봄을 맞이한것은 주체25(1936)년 가을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 사랑이면 이보다 더 뜨거운 사랑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일남동지는 자신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그는 주체26(1937)년 봄 동강밀영에서 있은 1개월간의 집중적인 군정훈련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였으며
오일남동지는 사령부직속 기관총소대장으로서 사격솜씨도 좋고 대오관리에서도 빈틈이 없었다.그는 강한 인내력과 투지를 가진 사람이였다. 구시산전투때였다.오일남동지는 전투에서 총상을 당하였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동지들은 지양개에 도착해서야 오일남동지의 군복에 배여있는 피를 보고 그가 부상당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웃옷을 벗겨보니 살에 탄알이 박혀있었는데 그 끄트머리가 보일락말락하였다.그런데도 그는 웃고만 있었다.
오일남동지는 대원들을
소년중대원들이 짧은 기간에 구대원들 못지 않은 전투원들로 성장하게 된데는 오일남동지의 노력이 깃들어있었다. 그후 오일남동지는 주력부대에서 중대장의 임무를 지니고 륙과송전투와 홍기하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혁명의 사령부를 지켜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이 다가옴에 따라 오일남동지에게는 더 무겁고 어려운 임무가 맡겨졌다.그는
그러던 주체30(1941)년 7월 어느날 오일남동지는 관개구일대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적들과 치렬한 격전을 벌리다가 그만 부상을 입고 체포되였다. 원쑤놈들에게 체포된것이 통절하기 그지없었으나 그는 옥중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오일남동지는 놈들의 야수적인 고문도 간교한 회유도 꿋꿋이 이겨내면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정녕
《나에게로 날아드는 적탄을 몸으로 막고 전사한 리권행도 7련대출신이였고 사령부의 명령, 지시를 관철하는 길에서 귀중한 생명을 바친 오일남, 손태춘, 김혁철도 7련대출신이였습니다.》
오일남동지의 고귀한 생은
본사기자 심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