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9월 30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과학탐구의 숫눈길에 새겨가는 불타는 충성과 애국의 자욱

평양기계대학 기계설계연구소 소장 최동일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과학자, 기술자들은 당이 마련해준 과학기술룡마의 날개를 활짝 펴고 과학적재능과 열정을 총폭발시켜 누구나 다 높은 과학기술성과들을 내놓음으로써 부강조국건설에 이바지하는 참된 애국자가 되여야 합니다.》

세계와 경쟁하고 세계에 도전하며 세계를 앞서나갈 야심만만한 포부에 넘쳐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의 나날을 높은 과학연구성과로 빛내여가고있는 미더운 과학자들,

그 자랑스러운 대오의 앞장에 우리의 주인공이 서있다.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수십년세월 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과 높은 실력, 불타는 열정을 안고 우리의 기술, 우리의 지혜로 인민경제발전에 절실히 필요한 여러가지 첨단기계설비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 기쁨을 드린 평양기계대학 기계설계연구소 소장 최동일동무,

그의 값높은 삶은 자력으로 강국의 리상과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오늘의 벅찬 투쟁에서 우리 시대 과학자들의 심장이 무엇으로 고동쳐야 하는가에 대한 또 하나의 귀중한 대답으로 된다.

 

당과 수령이 바라는것이라면

 

세번째로 반복되는 물음이였다.

《정말 자신있소?》

교원의 얼굴에 비낀 미심쩍은 기색도 아랑곳없이 대학생은 또다시 거침없이 대답했다.

《해내겠습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마침내 《좋소.론문을 꼭 성공시키기요.》라고 말하며 교원은 그의 손을 힘있게 틀어잡았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최동일동무가 평양기계대학졸업을 앞두고있던 시기였다.졸업론문의 주제를 직기의 고속도화로 확정지은 그날 밤 최동일동무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쉬이 잠들수 없었다.대학생으로서는 쉽지 않은 연구과제를 맡았다는 흥분으로 가슴이 부풀었고 대학으로 떠나던 날 아버지가 하던 당부가 다시금 되새겨졌다.

《나라의 덕으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응당 그 은혜를 갚을줄 알아야 한다.보답이라는게 뭐겠니.우리 수령님께서 바라시는것을 해내는게 바로 보답이 아니겠냐.네가 기계를 전공하는것만큼 앞으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릴 훌륭한 기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피타게 배워야 한다.》

1960년대의 김책공업대학(당시) 졸업생이며 옹진군에 첫 전주대를 세운 전기기술자들중의 한사람이였던 아버지의 당부는 최동일동무의 심장에 좌우명마냥 깊이 새겨졌다.

그의 어린시절은 옹진군과 강령군에서 흘러갔다.1970년대 우리 조국은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사회주의공업화를 완성한 기세로 새로운 천리마의 속도로 질풍같이 내달리고있었다.농업분야에서도 공업의 높은 수준을 따라서기 위한 기술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고있었다.하기에 중학시절 황금이삭 물결치는 고향마을의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볼 때마다 최동일동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하군 했다.

(배우고 또 배워 고향땅을 기계화가 실현된 현대적인 문화농촌으로 전변시키리라!)

그는 분과 초를 쪼개가며 이악하게 공부했다.하여 도적으로 진행되는 중학교부문 학과경연마다에는 언제나 강령군을 대표하여 최동일동무가 있었고 전국적인 학과경연에서도 늘 순위권안에 들군 했다.

중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평양기계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그의 향학열은 조금도 식을줄 몰랐다.그가 대학생이 된 이듬해 수도 평양에 전민학습의 대전당인 인민대학습당이 일떠섰다.

그는 강의가 끝난 뒤면 그곳에 붙어살다싶이 했다.

전공과목인 방직기계분야를 깊이있게 파고들고 그 부문의 세계적추세를 환히 꿰들기 위해 밤잠을 잊어가며 애썼고 방학기간이면 우리 나라 방직기계공업실태를 파악하느라 늘 생산현장에서 로동자들과 고락을 함께 하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최동일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방직기계의 고속도화를 실현함으로써 인민들에게 더 많은 천을 생산공급할데 대하여 주신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되였다.

방직기계의 고속도화!

그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인민의 행복을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빛나는 실천으로 받들어갈 열의가 20대 청춘의 심장속에서 펄펄 끓어번졌다.

이때부터 최동일동무의 사색은 직기의 고속도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탐구하는데로 지향되였고 졸업을 앞둔 때에는 대학졸업론문의 주제도 그것으로 정하게 되였다.…

얼마후 최동일동무는 대학생으로서는 처음으로 방직기계의 고속도화를 학술적으로 론증함으로써 후보준박사(당시)칭호를 받고 대학을 졸업했다.박사원시절에는 연구성과를 실천에 도입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평양시의 어느 한 직물공장 생산설비들의 능률을 10%나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직기의 생산능률을 1%만 올려도 큰 성과로 보던 당시 생산능률의 10%장성은 대단한 성과였다.

당과 수령이 바라고 의도하는것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것이라고 해도 무조건 끝까지 수행하고 과학탐구의 초행길도 남먼저 헤쳐가야 한다는 최동일동무의 삶의 신조는 박사원을 졸업하고 대학교원으로 일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 한 방직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나라의 방직기계공업을 현대화할데 대한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을 때였다.그 가르치심에 비추어볼 때 당시 대학에서 리용하고있는 교과서와 교수안은 빠르게 발전하는 방직기계부문의 세계적추세에 따라서지 못하고있었다.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모두를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유능한 혁명인재로 키울수 있겠는가.

그는 방직기계에 관한 교과서와 참고서, 교수안을 전부 새로 쓸것을 결심했다.쉬운 일이 아니였다.오랜 기간 기성관념으로 굳어져온 그 모든것을 뒤바꾼다는것이 어찌 말처럼 쉬울수 있으랴.

그러나 최동일동무의 결심은 확고했다.그는 현대방직기계공업의 발전추세를 교수사업실천에 구현하기 위한 집필사업으로 낮과 밤을 이어갔다.인민대학습당의 사서들은 대학생시절과 마찬가지로 매일이다싶이 이곳을 찾는 류달리 키가 큰 평양기계대학의 단골손님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하군 했다.

그의 노력은 응당한 결실을 맺었다.한해후 최동일동무는 새 교과서와 교수안을 훌륭히 집필완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어느날 방직공업부문의 권위있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았다.우리 나라의 방직공장들에서 쓰고있는 북직기들을 어떤 현대적인 직기로 교체할것인가를 토의하기 위해서였다.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가운데 30대 초엽의 한사람이 연단에 나섰다.최동일동무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더 다양한 옷감을 안겨주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실천으로 받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연창대직기를 방직공업부문에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 평양기계대학에서 유연창대직기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개발해내겠습니다.》

회의참가자들 대부분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있는 유연창대직기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본적이 없는 설비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 알수 없었다.평양기계대학의 젊은 교원이 현대적인 직기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그후 최동일동무와 연구집단은 평양방직기계공장의 기술자들을 비롯한 련관단위의 과학자, 기술자, 기능공들과 지혜를 합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유연창대직기를 개발하고 여러 방직공장에 도입함으로써 위대한 장군님께 커다란 기쁨을 드리였다.

과학자, 지식인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바로 최동일동무처럼 아무리 어렵고 힘든것이라고 하여도 당과 수령이 바라고 의도하는 문제를 스스로 맡아안고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실천해야 진정으로 당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는것이다.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이라!

 

여섯해전 최동일동무가 소장으로 사업하는 평양기계대학 기계설계연구소에 어려운 과업이 맡겨졌다.김정숙평양제사공장에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공정을 꾸릴데 대한 연구과제였다.

어느날 연구사들은 한장의 사진을 놓고 모여앉았다.발전되였다고 하는 몇몇 나라들에서만 만드는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공정이 찍혀진 사진이였는데 보기에도 듣기에도 처음인 설비였다.그날 최동일동무는 긴말을 하지 않았다.다만 이렇게 말했을뿐이였다.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줍시다.》

그의 말에 어떤 사연이 담겨져있는지 연구사들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설비를 파악하기 위해 만났던 외국기술자들이 경제대국인 자기네 나라에서도 그 설비에 대하여서는 엄두조차 못 내는데 조선기술자들이 어떻게 만들겠는가, 설비를 만드는 품이면 차라리 지금 저희들이 쓰고있는 설비를 통채로 사가는것이 낫지 않겠는가고 으시대던 모습이 눈앞에 방불히 떠오르는것만 같았다.

조선사람의 본때, 비록 일곱 글자밖에 안되는 말이였지만 거기에는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공정을 꾸리기 위한 사업이 왜 중요하며 연구사업에 어떤 자세와 립장을 가지고 달라붙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 담겨져있었다.

당이 바란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울 결사관철의 정신, 기어이 우리의 힘과 지혜로 남의것에 못지 않은 훌륭한 창조물을 만들어내고야말 높은 민족적자존심을 안고 최동일동무를 비롯한 연구집단은 미지의 과학탐구세계에 서슴없이 뛰여들었다.그야말로 사진 한장만을 놓고 시작한 초행길이였다.

방대한 문헌연구를 도와 온 대학이 떨쳐나섰고 가장 합리적이고 리상적인 설계를 위해 고심어린 낮과 밤을 바쳤다.

문헌자료에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설비와 비슷한것은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전반적인 생산공정에 대한 자료는 공개된것이 전혀 없다나니 애로와 난관은 이루 다 말할수 없었다.실매듭기 하나만 놓고보아도 그랬다.

그 설비는 0.2초동안에 실을 감고 매듭을 짓고 끊는 동작을 비롯하여 8가지나 되는 동작을 수행하는데 배구공보다도 작은 크기안에 전동기, 나사기구, 각종 지레대, 실린더 등 수십종의 부속품이 들어가있는 정밀한것이였다.

총설계를 완성해야 할 기일이 박두한 때였다.일부 사람들속에서 실매듭기만은 수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였다.

과학자의 량심이냐, 눈앞의 실적이냐 하는 갈림길앞에서 모대기던 그때 최동일동무에게는 문득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몸가까이 모셨던 잊을수 없는 그날이 어제런듯 되새겨졌다.

지금으로부터 여섯해전 8월 평양양말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현장에서 자동양말꽂는기계를 조립하던 평양기계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을 만나주시였다.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자체의 힘으로 만드는 기계를 보시며 그이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였던가.

영광의 그날 최동일동무와 연구사들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자자구구 심장에 아로새기며 우리 당에서 바라는 인민경제의 현대화, 당의 국산화방침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더 깊이 절감할수 있었다.

연구집단은 나약해졌던 자신들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생소한 실매듭기설계에 대담하게 달라붙었다.그런데 그토록 애써 제작한 설비는 시운전에서부터 말썽을 부렸다.분해했다가 조립하기를 그 몇번…

실매듭기제작이 어찌나 힘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으면 설비가 들어앉을 설치틀바닥이 불수강처럼 반들반들해졌겠는가.

어느날 깊은 밤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방금 설비조립을 끝낸 뒤 한 연구사가 그만 앉은자리에서 깊은 잠에 들었다.어디선가 울려오는 웅글은 시계종소리에 소스라치듯 깨여난 그는 서둘러 자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깜빡 졸았다고 생각한 사이가 무려 두시간을 넘은것이 아닌가.그러나 보다 놀라운 일은 앞에 있었다.소장이 자기가 잠들기 전에 본 모습그대로 실매듭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설치틀에 그린듯이 앉아있었던것이다.얼마나 실매듭기제작으로 고심했으면 옹근 두시간을 그렇게 한자세로 앉아있었으랴 하는 생각에 연구사의 가슴은 저도모르게 달아올랐다.

이런 간고한 노력끝에 연구집단은 끝내 실매듭기를 우리 식으로 만들어내고야말았다.이것은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공정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사업과정에 있은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다.

오로지 당에 기쁨드릴 그날을 한시라도 앞당기기 위하여 조선과학자의 명예를 걸고 민족자존의 정신력으로 굴함없이 전진해온 탐구의 나날속에 드디여 성공의 날은 왔다.우리의 힘과 기술로 만든 무인화된 위생용품생산흐름선에서 완성된 제품이 쏟아져나오는 날 최동일동무를 비롯한 온 연구집단은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였다.

그후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김정숙평양제사공장과 평양기계대학, 평양방직기계공장을 비롯한 해당 부문의 일군들, 과학자, 기술자, 로동계급이 당에서 준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공정을 훌륭히 꾸려놓은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우리의 힘과 기술로 제작한 위생용품생산설비는 물론 생산되여나오는 위생용품의 질이 세계적수준이라고, 이것만 놓고보아도 자강력제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갈 때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는 높은 치하의 말씀을 주시였다.

그날의 영광과 감격을 안고 최동일동무는 더욱 분발해나섰다.

언제인가 그는 채굴공업부문에서 어느 한 화공품생산공정의 현대화문제가 절실한 요구로 나서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만약 그것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다면 그 비용은 엄청난것이였다.

이때에도 최동일동무는 주체조선의 과학자로서 자기의 두어깨에 지워진 의무를 놓고 결코 주저와 동요를 몰랐다.누가 시키거나 권고한것은 없었지만 그는 어렵고 위험한 연구과제를 스스로 맡아 피타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화공품생산공정의 현대화, 무인화를 실현하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 기쁨을 드릴수 있었다.

높은 실력과 불타는 열정으로 나라의 기계제작분야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새겨온 최동일동무, 그의 긍지높은 삶은 말해주고있다.

부강조국건설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과학연구성과들이 애국의 열매라면 그 뿌리는 세계를 앞서나갈 열망에 불타는 우리 과학자, 지식인들의 높은 민족적자존심이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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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창대직기와 현대적인 위생용품생산공정, 신발자동포장기를 비롯하여 인민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수많은 기계설비를 창안제작하는데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표창장을 수여받고 2.16과학기술상수상자로, 2017년 국가최우수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된 최동일동무는 얼마전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니였다.

뜻깊은 그날 그는 이렇게 마음속맹세를 다졌다.

오늘의 이 영광, 이 행복을 언제나 잊지 않고 어머니 우리 당을 더 높은 과학연구성과로 받들어가겠습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