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0월 1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값높은 실천으로 우리 당을 진실하게 받들어가는 참된 인간 선천수산사업소 지배인 김명규동무에 대한 이야기
그는 과연 듣던바대로 말이 적은 사람이였다.하지만 말이 적은것만큼 행동은 실속있었고 그 결과는 무게가 있었다.하기에 그의 마음을 알고 심장의 목소리를 듣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말로 하는 애국은 필요없다. 선천수산사업소 지배인 김명규동무는 지금껏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누가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혁명과업수행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여왔으며 나라에 리익을 주는 좋은 일을 많이 해왔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일을 하여 어머니당에 기쁨을 드릴것인가. 자나깨나 오직 이 하나만을 생각하며 값높은 실천으로 우리 당을 진실하게 받들어가는 참된 인간이기에 어머니당은 그에게 누구나 쉽게 지닐수 없는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크나큰 영예를 안겨주었다.
헌신과 투신이 체질화된 사람
김명규동무는 나라에 도움을 줄수만 있다면 자기 한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인간이며 손에서 일감을 놓을줄 모르는 성실하고 꾸준한 실천가이다. 김명규동무가 선천군의 한 도래굽이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전이였다. 운전사출신인 그가 처음으로 수산물생산에 나섰을 때 책임졌다는 한개 단위란 고작 여러명의 선원들과 크지 않은 목선 한척으로 이루어졌을뿐이였다. 초행길을 헤쳐야 하는 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하여 웃단위에서는 첫해에는 사업소토대를 갖추는데 모를 박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을 주었다. 기관청사도 없이 일하는 조건에서 남들같으면 그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하였을것이다.하지만 김명규동무의 량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해에 여러척의 배를 확보하면서도 많은 수산물을 생산하였다.하여 사업소의 연혁사에는 청소하였던 첫해부터 생산계획을 수행하였다는 떳떳한 기록이 남게 되였다. 다음해에는 청사를 자체로 짓고 또다시 여러척의 배를 확보하여 사업소토대를 보다 강화하면서도 첫해보다 3배이상으로 높아진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마다 그렇게 많은 수산물을 생산할수 있었을가. 이것이 층층이 높아진 사업소의 인민경제계획장성률과 실적표를 보면서 우리가 가진 의문이였다.보통의 상식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우리 지배인동지는 일감을 잡지 않고서는 잠시도 못 견디는 성미랍니다.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하지 않고서는 참지 못하지요.》 사업소가 조직되였을 때부터 지배인과 함께 일해온 한 일군이 한 말이였다. 우리는 그에게서 목선 몇척으로 물고기를 잡는것이 성차지 않아 큼직한 양식장을 꾸려놓고 조개양식을 전개한 이야기며 그것으로도 만족할수 없어 또다시 기관출력이 보다 큰 철선들을 여러척이나 마련하여 물고기잡이에 심혼을 쏟아부은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그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10년전 지배인이 배수리기지를 자체로 꾸려놓자는 제기를 하였다.배들이 파손되면 먼곳에 가서 수리하군 하였는데 그러다나니 생산계획수행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었던것이다. 그러나 선듯 나서는 종업원이 없었다. 자그마한 사업소가 배수리까지 자체로 한다는것이 너무 어벌차지 않은가. 워낙 말이 없는 지배인인지라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해마다 배수리에 들어가는 자금이 얼마인가를 조용히 다시 불러주었을뿐이다.그리고는 바다기슭에 나가 곡괭이를 박았다.그는 이렇게 《나가자》의 구령을 입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실천으로 웨치군 하였다. 해마다 6월이면 양식장에 100여t의 돌과 수십t의 조개껍질을 넣어주어 애지중지 조개를 키워내는 사업을 앞장에서 지휘한 일군, 궂은날, 마른날 가림없이 늘 날바다에 나가 살다싶이 하면서 한t의 수산물이라도 더 생산하려고 아글타글 애쓰며 어로작업을 지휘하는 일군이 바로 그였다.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겨울에도 얼음장을 깨며 바다로 나가고 먼바다에서 직접 용접작업을 하면서 배의 고장을 퇴치하여 수산물생산을 보장한 사람도 그였다.난파도에 기울어지는 배를 구원하기 위해 11월의 차디찬 물속에도 제일먼저 뛰여들고 통나무들이 굴러내리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번개같이 한몸을 내대여 10여명의 동지들을 구원한 사람도 그였다. 그렇게 앞장에서 투신한 보람이 있기에 사업소는 언제나 다른 단위보다 더 많은 실적을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도저히 성차하지 않는것은 당에서 걱정하는 인민생활문제를 푸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또 하고싶어하는 그의 체질화된 헌신과 투신의 표현이였다.그 진실한 애국의 마음에 머리숙어져 종업원들도 말없이 따라나섰다. 불과 몇달만에 상가대가 생겨나고 각종 공작기계들과 설비들이 갖추어진 배수리기지가 일떠섰을 때 종업원들은 자기 힘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아뜩해보이던 일도 단단히 각오를 하고 접어들면 단숨에 해제낄수 있다는 신심이 생긴것이다.보다 더 긍지스러운것은 배수리를 자체로 하면서부터 수산물생산량이 종전보다 훨씬 뛰여오른것이다. 실천가들에게 만족이란 없는 법이다. 김명규동무는 몇년후 상가대확장공사를 또다시 벌려놓았다. 수십리나 되는 곳에 가서 막돌과 거석을 실어와 부리는 작업이 헐치 않았다.당시에는 자동하차를 할수 있는 차가 사업소에 없었기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인원으로 운반작업을 하였다.김명규동무는 종업원들이 부주의로 상할세라 작업조직을 치밀하게 하면서도 자신은 집채같은 바위에 어깨를 서슴없이 들이밀어 어려운 고비를 극복해나가군 하였다.나라에 보탬을 주려는 그의 비상한 각오는 종업원들속에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인불발의 의지를 심어주었다. 마침내 자그마하던 사업소의 수리기지는 각종 배 10척도 동시에 수리할수 있는 믿음직한 기지로 변모되였다. 여기서 한겨울에 손색없이 수리정비되여 만단의 준비를 갖춘 크고작은 배들이 봄철이 오면 줄지어 바다로 진출하는 장쾌한 광경은 이 수산사업소의 자랑이다. 한편 김명규동무는 배마다 어군탐지기를 비롯하여 현대적인 어로설비를 원만히 장비해나갔으며 각종 운수기재도 그쯘히 갖추어놓아 수산물생산을 늘이는데 필요한 토대를 더욱 완비해나갔다. 그러던 김명규동무는 4년전 5월 영광스럽게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는
《여보, 나에게도 이런 날이 있을줄은 정말 몰랐구만.대회전기간 내가 꿈속에 있는가 했소.… 거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있지 않소.그걸 좀 들려주오.》 늘 조용하던 집안에 노래 《전사의 길》의 은은한 선률이 울려퍼졌다.
길이여 길이여 너의 끝은 그 어디 한생을 걸어도 못다 걸을 길이여 먼길을 왔다고 돌아보지 말라 전사가 가는 길 후회가 없다네 … 노래를 듣다가는 따라부르고 부르다가 울고 울다가는 또 부르며 한가정의 저녁이 흘렀다. 《여보, 당신이 심하게 앓을 때조차 난 곁에서 돌봐주지 못하고 바다에 나가 살았소.당신이 지금껏 말없이 날 리해해주고 떠밀어주었으니 오늘같은 날도 있게 되였지.그런데 말이요.…》 《됐어요.뭘 말하자는지 알아요.당신 결심대로 하세요.노래에도 있지 않아요.〈먼길을 왔다고 돌아보지 말라 전사가 가는 길 후회가 없다네〉, 어서 떠나세요.》
김명규동무는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안고 바다로 나갔다.이런 그였기에 한몸을 내대고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지휘하여 당 제7차대회가 열린 그해에 전례없는 수산물생산실적을 기록하여
크나큰 영광으로 가슴부풀리며 그는 혁명과업수행에 온넋을 쏟아부었다.하여 다음해인 2017년에는 최고생산년도를 기록한 전해보다는 1.3배, 계획보다는 무려 2배가 넘는 생산실적을 올릴수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였다.현대적인 만능어선들을 갖추어놓고 다른 단위의 배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나운 파도속에서도 용감하게 어로작업을 진행하는 불굴의 희생정신, 때로는 언밥덩어리를 깨물며 강추위속에서도 물고기잡이를 중단하지 않은 남다른 헌신성, 낮에 밤을 이어 물고기잡이를 진행하면서도 자기 한몸의 피곤보다 먼저 인민생활문제때문에 그처럼 마음쓰시는
김명규동무는 올해에 여러 정보의 간석지논을 풀 결심을 주저없이 하였다. 단 한번도 우에다 손을 내밀지 않고 자체로 생산토대를 강화함으로써 수산물생산을 장성시켜 나라에 큰 리익을 주면서도 전반적인 사업소면모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일신시켰으며 돌박산을 깎아 수백㎡의 온실과 축산기지를 일떠세워 고기와 알, 남새문제를 자체로 해결해나가고있는 사업소였지만 목표는 계속 높아졌다. 포전을 수평으로 정리하고 논두렁을 만들며 물길을 형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리 지배인동진 정말 일욕심이 너무 커.》 일에 지칠 때면 저도모르게 이런 말을 터놓던 종업원들이 마침내 그 땅에 첫모를 꽂던 날에는 《동무들은 힘들게 개간한 이 땅이 그냥 놀고있는데 가슴아프지 않소?》라고 하던 지배인의 말을 다시 외워보며 감탕속에서 석달이나 고생하던 일들을 즐겁게 추억하였다. 그 간석지에 어느덧 황금이삭이 물결치는 광경을 보면서 김명규동무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사람은 이 멋에 사는것이지.》 애국이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이고 투신이라면 애국자는 바로 그 헌신과 투신을 체질화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헌신과 투신을 체질화하고 맡겨진 혁명과업수행에서 높은 실적을 내는 사람, 조국에 보탬을 주기 위해 한몸을 내대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이다.
아름다운 자욱은 마음속에 남는다
김명규동무가 우리 당을 진실하게 받들어나가는 참된 인간으로 돋보이는것은 비단 무에서 유를 창조해가는 실천력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결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종업원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진심으로 돌봐주는 그의 따뜻한 인정미는 그대로 사업소전투력의 밑거름으로 되고있다. 언제인가 바다에서 물고기잡이가 한창일 때였다.어로작업은 분초를 다투고있었다. 김명규지배인이 한 선장에게 권고하였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게로구만.어서 가보라구.》 종업원들의 얼굴색만 보아도 심중을 가늠하는 지배인이였다. 《별게 아닙니다.물고기잡이가 한창인데 선장이 어떻게 자리를 뜨겠습니까.》 《배는 나에게 맡기고 어서 가라는데…》 지배인이 뭍으로 들어갈 배까지 조직하고 등을 떠미는 바람에 그는 눈물이 글썽해서 배에서 내리지 않을수 없었다.집에 들어서니 안해의 병은 몹시 위급하였다.갑자기 두눈에 동통이 왔는데 의사들은 자칫하면 실명까지 올수 있다고 하였다.그가 마음을 바재이면서 있는데 다음날 지배인이 그의 집에 불쑥 들어섰다.안해의 병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듣고난 그는 절대로 겁을 먹으면 안된다고, 사업소당조직이 있고 고마운 사회주의제도가 있는데 뭘 걱정하는가고 신심을 주었다.그리고는 환자를 류경안과종합병원으로 보내는 조직사업을 해주었다.김명규동무는 환자가 많은 고려약을 써야 된다는것을 알고는 수십리 밤길도 주저없이 달려가 필요한 약초들을 마련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지배인동지.》 선장이 진정으로 말했을 때 김명규동무는 손을 저으며 말하였다. 《나도 아파보아서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아오.》 이것은 그가 바다에서 긴장한 어로활동을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아픈 기색을 보이는 종업원들이 있으면 주저없이 뭍으로 떠밀어보낼 때마다 하는 말이였다. 이런 일군이기에 종업원들은 우리 지배인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며 존경하고 따른다. 종업원가족들이 지배인을 때없이 찾아와 가정에서 제기되는 사소한 문제도 일일이 제기하는것이 우연하지 않다.그럴 때면 그는 언제 한번 얼굴색을 달리하지 않고 그 해결을 위한 조직사업을 깐깐히 하군 하였다.그렇게 살림집을 해결해준 가정만도 수십세대나 된다. 종업원들이 기탄없이 제기하는 문제를 아흔아홉번 해결해주다가 한번만 제대로 들어주지 못해도 안타까와 속을 태우는 사람이 바로 김명규동무이다. 언제인가 종업원들의 생일을 또박또박 적어넣은 그의 수첩을 보고 사업소의 한 일군이 그에게 물은적이 있었다. 《수산물생산만 해도 간단치 않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런것까지 생각하자니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심부름군이 심부름을 하는거야 당연하지 않소.》 그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을뿐이다. 오죽하면 종업원들속에서 지배인이 하도 마음이 좋으니 우리가 너무 철없이 사업소에 매여달리지 않는가고 스스로 자책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겠는가. 한때 사업소에는 일을 쓰게 하지 못하는 종업원이 있었다.그에게 집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사업소일군들은 머리를 가로저었다.그런 애꾸러기들까지 사업소에서 돌봐주어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것이다. 그때 김명규동무는 말하였다. 《사람이 다 하나같지 않소.우리가 그의 아버지라면 차별할수 있소?》 이렇게 되여 그에게 사업소에서 마련한 덩실한 살림집이 배정되였으며 일찌기 부모를 잃고 성격이 이지러졌던 그는 점차 혁신자로 성장하게 되였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뜻밖에 불구가 되자 인생의 꿈을 포기하다싶이 하였던 한 청년을 사업소에 데려와 생활도 따뜻이 돌봐주고 일하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주어 참된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한것을 비롯하여 사업소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론의되던 일부 종업원들을 꾸준히 품들여 기능을 높여주고 깐진 일솜씨를 갖추도록 손잡아 이끌어줌으로써 마침내는 사업소의 기둥으로 키운 그런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다. 이렇듯 종업원들의 생활조건보장을 위하여 마음쓰는 지배인이지만 나라의 재산관리를 소홀히 하는 현상과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한번은 한 종업원이 부주의로 배의 설비를 파손시킨적이 있었다.설비도 설비였지만 문제는 그 책임을 통절하게 느끼지 않는 태도였다. 《동무는 그 설비가 자기의 손발이고 눈동자라고 생각해본적이 있는가.나라의 재부를 자기 살점처럼 여기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제 한몸을 위해서라면 나라도 팔아먹는 역적으로 굴러떨어진단 말이요.》 평소에는 너그럽던 지배인이 너무도 격분하여 추상같이 웨치던 때를 돌이켜보며 그 종업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배인동지의 착한 마음씨와 따스한 인정미는 결코 원칙을 떠난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면서 종업원들을 하나와 같이 대해주고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알아보고 걸리는것이 있을세라 대책을 세워주면서도 나라를 생각할줄 모르고 저 하나만의 리익을 위해서 사는 그런 인간이 될가봐 지배인동지는 몹시 걱정한다고,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호되게 꾸짖는데 그 교훈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하였다. 어느해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는 군의 책임일군으로부터 협동농장들에서 비닐박막이 모자라 안타까와한다는 말을 듣게 되였다. (당에서 농사를 그처럼 중시하는데 내가 과연 농사일을 자기 일처럼 대해왔던가.영농용기름도 마련하여 여러차례 보내주고 해마다 수십t의 거름과 소농기구도 농장들에 보내주었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어.) 몇밤을 자책으로 보낸 김명규동무는 사업소당조직과 토론하고 10만㎡의 비닐박막을 군에 지원하기로 하였다.얼마후 상상외로 많은 비닐박막을 접수받은 군의 일군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어디서나 농업부문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이렇게 통이 크게 도와준 단위는 없었던것이다. 김명규동무는 이처럼 자기 단위만을 책임질것이 아니라 나라에 한가지라도 보탬을 더 주기 위해 걱정하고 고민해야 일군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기에 그는 원군사업도 량심적으로 하여왔다.사업소의 연혁사에는 성심성의로 원군의 미풍을 발휘한 긍지높은 일들이 자랑스럽게 기록되여있다. 종업원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바쁜 속에서도 해마다 전사자가족과 영예군인가정도 꼭꼭 찾아가군 하는 그의 마음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명의 종업원이 해놓은 일과 한명의 일군이 해놓은 일은 차이가 있다.다름아닌 혁명의 지휘성원이기에 김명규동무가 걸어온 자욱자욱은 정녕 혁신과 위훈이라는 말로만 다 표현할수 없다. 실천적모범으로 집단을 혁신자대오로 만들고 한개 단위를 나라를 위하여,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애국집단으로 이끌어온것으로 하여 김명규동무의 성실한 노력과 책임적인 일본새, 뜨거운 인간애와 불굴의 헌신성은 더욱 돋보이는것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의 자욱은 세월의 갈피가 아니라 뭇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다. 선천수산사업소의 종업원들만이 아닌 협동벌의 주인들과 병사들의 마음속에도 뚜렷이 새겨져있는 우리 지배인, 그 친근한 부름이야말로 김명규동무가 어제도 남겨왔으며 오늘도 찍어가고 래일도 새겨가게 될 참된 인간의 아름다운 자욱으로 될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동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