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0월 21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고산지대농사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리는 미더운 선구자 갑산군 사평협동농장 제1작업반 반장 한만섭동무에 대한 이야기
예로부터 삼수, 갑산이라면 우리 나라에서 험한 산골로, 사람 못살 고장으로 알려져왔다.일찌기
《농사일을 잘하여 알곡증산으로 당을 받들고 조국에 헌신하는 사람이 당의 충직한 농업전사이고 내 나라의 참된 애국농민입니다.》 사회주의농촌에 자원진출한 그날부터 오늘까지 쌀로써 당을 받들고 사회주의를 지켜갈 충성의 일념을 안고 한만섭동무는 지대적특성에 맞는 선진적인 과학농법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수백마리의 집짐승을 길러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였으며 작업반의 면모를 훌륭히 일신시켰다. 당에서는 고산지대농사의 본보기를 창조해가며 순간의 답보도 없이 쉬임없이 달려온 그를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절세위인들의 발자취가 뜨겁게 어려있는 영광의 땅을 자기의 살붙이처럼 소중히 품어안고 다수확의 풍요한 작황을 펼쳐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애국농민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뚜렷한 대답으로 된다.
산간지대와 벌방지대는 있을수 있어도
갑산군 읍지구의 어느 한 단위에서 로동생활을 하던 한만섭동무가 협동벌에 자원진출한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전이였다. 그가 농장에 온 날 리당일군은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십년전 구배가 심한 후치령과 매덕령을 넘어 갑산군 사평협동농장에 찾아오신
흰쌀밥을 먹어보는것이 가장 큰 소원이기도 했던 사평리사람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신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라 헐치 않았다.하지만 그는 갑산군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하면 그만큼 국가의 부담을 덜어주는것으로 된다고 하신
분조장으로 일하게 된 그는 분조의 마지막 한뙈기의 땅까지도 다 기름지게 걸구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다.구슬땀이 씨앗처럼 뿌려지고 성실한 노력이 바쳐진 분조포전에는 좋은 작황이 펼쳐졌다. 몇해후에 한만섭동무는 작업반장으로 임명되였다.
작업반의 모든 포전들을 옥토로 걸구자면 결정적으로 자기 고장의 특성에 맞는 방도를 찾아야 했다.한만섭동무는 산간지대에 위치한 작업반의 포전들을 다루는데 맞게 부림소의 마리수를 늘이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내밀었고 많은 니탄을 실어다 흙보산비료도 생산하였다.읍지구에 나가 진거름을 실어다 질좋은 유기질거름을 생산하여 정보당 수십t씩 내였다.바치는 땀이 무거워질수록 작업반포전들의 땅색갈이 달라졌다.지력이 개선된 땅에서는 곡식들이 우쭉우쭉 키를 솟구며 자랐고 작업반의 알곡생산실적은 그전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였다. 어느날 친정집에 다녀온 한 농장원이 한만섭동무를 찾아왔다.그 농장원은 여기처럼 지대가 높고 산골인데도 그곳 농장의 알곡수확고는 훨씬 높더라고 하는것이였다. 다음날 서둘러 길을 떠난 한만섭동무는 자기 작업반과 지대적특성이 같은 여러 농장을 돌아보는 과정에 생각이 깊어졌다. 그는 자신이 과학농사의 기수가 될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었다.며칠밤을 꼬박 지새우며 농업기술지식들을 직심스레 파고들었고 선진적인 영농방법을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하지만 농장원들속에 과학농사에 대한 옳바른 견해와 관점을 심어주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작업반원들앞에 논벼소식재배를 도입하는 문제를 내놓았을 때였다.일부 반원들이 걱정어린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사평땅에서는 벼모를 많이 꽂아야 밥을 먹을수 있다, 벌방의 영농방법을 산골에 도입하는것은 모험이다, 실패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고 하였다. 손맥이 풀렸다.자기의 진정을 알아주지 않는 반원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이런 때 군당책임일군이 찾아왔다.그는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책임일군에게 터놓았다. 입술이 터갈라지고 눈에 충혈이 진 그의 얼굴을 정깊은 눈길로 바라보던 책임일군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만섭동무는 농장원들이 다니는 길옆의 논에 시험포전을 정하고 먼저 300평의 면적에 논벼소식재배를 하였다.농장원들이 호기심을 품고 매일과 같이 시험포전에 들려 사방으로 아지를 뻗치는 논벼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어느덧 가을이 왔다.시험포전의 벼를 수확하여 무게를 떠보던 농장원들이 모두 놀랐다.여느 포전에 비해 몇배나 더 많은 소출이 났던것이다. 앞선 영농기술과 방법들을 놓고 진행하는 기술학습에 참가하면서부터 과학농사를 대하는 작업반원들의 관점과 태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반원들모두가 포전별에 따르는 토양상태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거름을 질적으로 냈고 영농공정별적기와 질적수준을 따져가면서 합리적인 의견들도 제기하였다. 반원들의 드높은 열의에 맞게 한만섭동무는 집짐승을 수백마리로 늘여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내밀었다.강냉이여러개체모아심기방법을 받아들여 강냉이농사에서도 성과를 이룩하였다.모든 농사일을 과학기술적으로 하기 위한 바람이 불면서 작업반의 알곡생산실적은 해마다 뛰여올랐다. 몇해전 가을밤 농장원들과 함께 하루일을 끝내고 구수한 낟알향기가 풍기는 밭머리에서 달아오른 몸을 식히던 한만섭동무의 귀전에 반원들이 주고받는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쯤하면 벌방보다는 못해도 산골농사에서야 당당히 큰소리를 칠수 있지.》 《우리같은 산골이 어떻게 벌방과 견주겠어.》 반원들의 말을 심중히 듣고있던 한만섭동무가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이 땅에 산간지대와 벌방지대는 있을수 있어도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농사군의 애국심에는 차이가 있을수 없소.알곡증산으로 당을 받들겠다는 신념만 굳건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벌방지대농사를 따라앞설수 있는거요.》
이런 마음으로 땅과 함께 속태우며 진정을 다 바치는 나날에 작업반은 농장적으로, 군적으로 제일 앞선 자리에 당당히 들어서게 되였다.벌방지대 못지 않은 다수확을 이룩한 자랑을 안고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 참가하였던 한만섭동무는
한만섭동무와 같이 쌀로써 우리 혁명을 보위하고 사회주의를 지키겠다는 결사의 각오를 안고 벌방지대와도 배심있게 경쟁하는 이런 실농군들이 많을 때 이 땅에는 언제나 풍요한 가을만 펼쳐질것이다.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마을로
한만섭동무에게는 소중한 꿈이 있다. 그것은 작업반을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사회주의리상촌으로 꾸리는것이다. 그 꿈을 하나하나 현실로 꽃피우며,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들을 내세우며 한만섭동무는 멈춤없이 줄기차게 달려왔다. 그가 처음 작업반장사업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여도 일부 작업반원들속에서는 땅을 다루는 농촌사람들이야 텁텁한 맛이 나는게 상례라고 여기면서 생활을 되는대로 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농장원들의 그릇된 인식부터 고쳐주어야겠다고 결심한 한만섭동무는 먼저 분조별, 농장원별료리품평회를 조직하기로 하였다.자기 고장에서 생산되는 음식감으로 누가 더 많은 가지수의 료리를 질적으로 감칠맛이 있게 만드는가를 평가원칙으로 삼았다.품평회가 진행된 날에 이만한 료리면 도시부럽지 않은 잔치상을 차리겠다며 즐겁게 웃고떠드는 작업반원들에게 한만섭동무는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했다.
《일찌기
그날의 료리품평회는 농장원들의 머리속에 뿌리깊이 남아있던 지난 시기의 생활방식을 깨는 하나의 계기로 되였다. 몇년전에 건설했던 농업과학기술선전실을 새로 다시 짓는 과정을 통해서도 한만섭동무는 반원들의 머리속에 지배하던 낡은 사고방식과 일본새를 말끔히 털어버렸다. 작업반을 누구나 부러워하게 꾸리겠다는 강렬한 지향, 농촌이라고 하여 왜 도시부럽지 않은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겠는가 하는 자존심, 이것이 그의 창조정신이였고 특유한 기질이였다. 하기에 그는 건물을 설계할 때에도 후대들이 더는 손댈것이 없도록 높은 요구성을 제기했고 블로크 한장을 쌓고 기와 한장을 얹어도 세심히 따져보면서 질적으로 해나가도록 반원들을 이끌어주었다.한만섭동무의 높은 리상과 포부, 반원들의 성실한 땀과 노력에 의하여 농업과학기술선전실뿐아니라 분조창고들과 집짐승우리, 태양열온실 등 작업반의 모든 건물들이 산골마을의 풍치와 어울리게 독특한 형식으로 일떠섰다. 한만섭동무는 건물들을 훌륭히 꾸리는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작업반원들이 실지 문명한 생활을 꾸려나가도록 이끌어주었다. 어느날 한 작업반원의 집을 찾았던 그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방안이며 집주변이 알뜰하게 정리되여있지 못하였다.생각이 깊어졌다. 며칠후 농장원의 집에 찾아가 벽체미장도 해주고 집안팎도 깨끗이 정리해준 그는 반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십년전
그후 반원들이 작업반일도 가정생활도 알뜰하고 깐지게 꾸려나가니 농사에서도 응당한 성과가 이룩되였다. 작업반의 면모가 일신되고 농장원들의 생활이 나날이 향상되였다.지난날 뒤떨어진 작업반이라고 사람들이 머리를 젓던 작업반이 오늘은 군적으로 첫손가락에 들게 되자 작업반원들의 얼굴마다에서는 늘 웃음이 사라질줄 몰랐다. 작업반의 호주라는 자각을 가지고 반원들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는 한만섭동무이기에 누구의 집에 앓는 식구는 없는지, 집에 불은 잘 드는지 늘 깊은 관심을 돌리며 반원들에게 더 좋은 생활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아낌없는 진정을 기울이였다. 언제인가 몇명의 녀성농장원의 아침출근이 늦어진 일이 있었다.알고보니 아이들을 맡기러 탁아소에 갔다가 늦어진것이였다.당시 작업반에는 탁아소가 없었다.그러다나니 녀성농장원들은 아이들을 다른 탁아소에 맡기고 찾거나 젖을 먹이러 오갈 때 여간만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사업에 빈구석이 있다는것을 느끼게 된 한만섭동무는 작업반마을에 탁아소를 꾸려줄것을 결심하였다.그는 마을의 중심에 탁아소의 위치를 정한데 이어 건물을 손색없이 건설하기 위한 조직사업을 치밀하게 하고 자신이 이 사업의 앞장에 섰다.아이들에게 편리하고 그들의 동심에 맞게 방들을 꾸리고 마당에는 여러가지 운동기재들도 설치해주었다. 작업반장의 웅심깊은 마음에 감동된 녀성농장원들은 맡은 일에 더욱 성수를 냈다. 앉으나서나 오직 당에서 바라는 높이에 작업반을 올려세우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며 이악하게 실천해온 한만섭동무의 피타는 노력은 작업반이 2중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하는 자랑찬 결실을 안아왔다. 시대의 요구에 늘 비추어보면서 집단의 지혜와 힘으로 문명을 창조하며 새로운 목표를 향해 완강히 돌진하는 이런 사람이 우리 당이 바라는 실천가형의 일군인것이다.
《80일전투의 불길드높이 당 제8차대회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자!》는 전투적구호와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받아안고 온 나라의 협동벌들에서 올해농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다.그 앞장에 한만섭동무와 반원들도 서있다. 쌀로써 당을 받들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충성과 애국의 한마음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선구자의 발자욱을 뚜렷이 새겨가는 한만섭동무와 같은 견실한 농촌혁명가, 애국농민들에 의해 사회주의농촌진지가 더욱 굳건히 다져지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경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