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0월 25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후대교육을 위한 길에 새겨가는 순결한 량심과 헌신의 자욱 평천구역 봉학소학교 교장인 공훈교원 리경애동무에 대한 이야기
《교육사업은 량심이고 헌신이며 애국입니다.》 후대교육을 위하여 모든것을 묵묵히 바쳐가는 참된 교육자들속에는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닌 평천구역 봉학소학교 교장인 공훈교원 리경애동무도 있다. 그의 교육년한은 25년, 한생을 교단에 바쳐온 오랜 교육자들에 비하면 결코 길다고 할수 없다. 허나 그는 남들이 한생을 바쳐온것과도 맞먹는 열정과 땀을 교육사업에 쏟아부었다.특히 교장으로 사업한 지난 10년간 그는 학교의 면모를 일신시키고 자질향상의 불바람을 일으켜 많은 교원들이 10월8일모범교수자로 되게 하였다.또한 새 교육방법창조사업도 적극 벌리고 학생들의 학과실력을 부쩍 높여나감으로써 학교가 3중영예의 붉은기학교칭호를 쟁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후대교육을 위해 바쳐온 그의 불같은 삶은 교육자들에게 당이 안겨준 직업적혁명가의 영예를 어떻게 빛내여나가야 하는가를 다시한번 가슴깊이 새겨주고있다.
교육자가 되기 전에 애국자가 되라
지금으로부터 19년전이였다. 평천구역 간성동의 어느 한 가정에서는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이젠 그만 쉬여야 하지 않겠소?》 《괜찮아요.한번 더 따져보아야겠어요.》 평양간성인민학교(당시) 교원으로 일하던 리경애동무가 남편의 방조를 받아가며 구역적인 교수방법토론회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있었다. 며칠후에 진행되게 될 이 교수방법토론회에 구역안의 교원들이 출연하게 되는데 학교를 대표하여 리경애동무가 참가하게 되였던것이다.학교일군들은 지난 기간 교육사업에서 그가 발휘한 남다른 열정과 실력에 기대를 걸고있었다.그만큼 이 사업은 학교의 명예와도 관련된 책임적인 일이였다. 《당조직과도 토론이 있었소.난 경애동무가 잘해내리라고 믿소.》 이렇게 말하는 교장의 믿음어린 시선이 잊혀지지 않았다. 영예로운 과업을 받아안았지만 리경애동무에게는 걱정과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그때 첫 방조자가 되여준것이 바로 그의 남편이였다. 평양인쇄공업대학(당시) 교원인 남편 김성찬동무는 먼저 이런 의견을 주었다. 《교수방법에서 새로운것이 있어야 하오.창조적이여야 한단 말이요.》 이렇게 되여 리경애동무는 그사이 교육과학원(당시)의 연구사들도 만나 토의하면서 제목선정으로부터 교수방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품을 들여가며 교수방법토론회에 출연할 준비를 해왔다.탐구는 학교에서뿐아니라 집에서도 계속되였다. 그밤 따라 안해의 건강을 념려하는 남편에게 리경애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한군데가 마음에 걸려 편히 쉴수가 없구만요.》 사소한 부족점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안해의 마음, 교육자의 량심이 헤아려져 김성찬동무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리경애동무의 피타는 노력은 응당한 결실을 가져왔다. 교수방법토론회에서 보여준 그의 교수방법은 높이 평가되였다.이로 하여 그는 전국적인 교수방법토론회에도 참가하게 되였으며 학교에서 남먼저 새 교수방법등록증을 받아안게 되였다.그리고 이태후에는 구역적으로 몇명밖에 안되는 10월8일모범교수자대렬에 들어서게 되였다. 지금은 그에게 새 교수방법등록증만도 13개, 실험기구 및 교편물창안증과 교육과학성과등록증 등 많은 증서들이 있지만 교육자로서 처음으로 받아안은 새 교수방법등록증에 대한 긍지는 오늘도 소중히 간직되여있다.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기의 량심을 기울여온 애국의 첫 증서로 여겼기때문이였다. 하다면 교육자로서의 그의 열정은 어디에 뿌리를 둔것인가. 리경애동무가 교원생활의 첫발을 내디디던 때는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시기였다. 생활상곤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교단을 떠나가는 교원들도 있었다. 그의 가정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새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학교에로의 출근길이 더 멀어졌다. 한겨울에 평천구역에서부터 당시 교편을 잡고있던 사동구역의 평양송화인민학교까지 젖먹이어린것을 업고 매일 새벽 남보다 먼저 집을 나서야 했던 그때가 그에게서 제일 힘겨운 때였다.출근길이 늦어질가봐 늘 걱정이 컸다.발을 얼구는 추위도 괴로운것이 아니였다.다른 학급에는 교원이 들어와 수업을 시작할 때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담임학급학생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도록 안타까왔다. 학생들이 나를 기다린다. 오직 이 한가지 생각을 안고 그는 출근길을 재촉하군 하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리경애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모두가 나에게는 단순히 선생님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아니였습니다.당에서 한 교육자를 믿고 맡겨준 조국의 미래였습니다.》 그 미래를 위해 그는 매일매일의 일과와 생활을 자기 량심에 출석을 긋는 심정으로 대해왔고 그런 한마음으로 교단을 변함없이 지켜왔다. 이렇게 후대들을 위한 뿌리가 되고 밑거름이 되여온 그의 진할줄 모르는 열정의 원천은 후대교육사업을 책임졌다는 남다른 긍지와 영예감이였다.하기에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언제 한번 교단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 긍지와 보람을 안고 그는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며 담임한 학급을 최우등생학급으로 만들었고 교수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였다.그 나날에 장난이 세찬 학생들의 어지러워진 교복도 빨아입히고 떨어진 단추도 다시 달아주며 그들에게 친부모와 같은 정을 기울였다.그리고 학생들의 가정을 찾아가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책으로 학부형들에게 사죄하는 때도 있었다.당의 뜻대로 후대들을 쭉정이가 아니라 앞날의 조국을 떠받드는 알찬 열매로 키워낸다면 그에게는 더 바랄것이 없었다. 후대들을 위해 바쳐가는 교육자로서의 그의 열정과 자세는 분과장, 교장으로 사업하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리경애동무가 교장으로 사업하던 주체101(2012)년 온 나라가 조선소년단창립 66돐 경축행사준비로 들끓던 때였다. 소년단대표선발사업이 끝나가고있던 때 리경애동무는 학습과 조직생활에서도 모범인 학생을 한명이라도 더 참가시키려고 애쓰고있었다. 그가 만난 구역의 해당 일군은 리경애동무에게 사정하듯 말하였다. 《교장선생도 형편을 잘 알지 않소.구역적으로 참가자수는 정해져있는거구…》 순간 리경애동무에게는 자기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다른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들 김정주도 소년단대표로 선출되였던것이다.아들대신 우리 학교 학생을 보낸다면.그러나 선뜻 결심이 내려지지 않았다.잠시 마음속으로 모대기던 그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저의 아들대신 우리 학교 학생을 보내주십시오.》 일군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게 정말이요?… 아니,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소.》 그러나 교장의 끈질긴 설복에 그 일군도 승낙하고야말았다. 그때 학교로 돌아오는 리경애동무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소년단대표로 선출되였다고 그렇게 기뻐하던 아들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그런데 어머니인 나는… 그날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선 그는 이 사실을 남편과 아들에게 터놓았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끝내 울분을 터치고야말았다. 《어머닌 학교밖에 몰라.…》 그앞에서 리경애동무가 무슨 말을 더 하랴.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의 순간순간이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면 교육자로서 리경애동무의 선택은 이렇듯 늘 교육사업과 학생들을 위한것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것을 그는 응당한 본분으로 여겨왔다. 후날 리경애동무가 제기한 학생도, 그의 아들도 다 경축행사에 참가하게 되였을 때 그는 한 교육자의 마음도 다 헤아려주는 어머니당의 따사로운 품에 고마움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보답의 일념을 안고 그는 후대교육사업에 더욱 전심하였다. 리경애동무는 이런 교육자이다. 그는 당이 안겨준 직업적혁명가라는 고귀한 칭호를 빛내이는 길에 자기의 피와 땀, 지혜와 열정을 고스란히 바쳐왔다.그것을 참된 애국, 삶의 더없는 보람으로 여겼다. 오늘은 비록 빛나는 위훈으로 이름을 날리지는 않아도 먼 후날의 후대들앞에 자신을 세워보며 조국의 미래를 위해 뿌리가 되고 거름이 되여 처녀시절부터 오늘까지 교단에 온넋을 다 바쳐온 리경애동무. 하기에 그의 모습은 교육자이기 전에 가사보다 국사를 앞에 놓을줄 아는 애국자의 모습으로 뚜렷이 안겨오는것이다.
당의 교육정책관철의 선구자로
리경애동무가 평천구역 봉학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을 때였다. 다른 학교 교장들이 축하해주며 고무해주었다. 《그 학교야 원래 교원자질이나 학생실력이 높은데 크게 걱정할건 없어요.》 사실 2중영예의 붉은기학교칭호를 쟁취한 학교는 구역적으로도 손꼽히는 단위로 되고있었다.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이전 교장을 비롯한 전세대 교육자들의 노력이 컸다. (내가 그들처럼 잘해낼수 있을가?) 평범한 교원시절과는 달리 많은 학생들과 교원들을 포함하여 한개 단위의 교육사업을 당앞에, 조국앞에 책임져야 한다는 자각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였다. 그때 그는 당의 교육정책관철에서 선구자가 될 확고한 결심을 다졌다. 학교사업을 료해하는 과정에 그는 먼저 단위의 면모부터 일신하기로 하였다.교육에 리용되는 수단과 자원이 풍부해지고 교육의 모습이 달라지고있는 때에 당의 뜻을 받들어 교육조건과 환경을 개선해야 교원들의 자질도 높일수 있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교원들앞에서 학교개건을 위한 전망목표를 제기하였다.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난 교원의 긍지, 학생의 긍지란 자기 학교에 대한 긍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그러자면 학교의 면모부터 일신해야 합니다.》 교원들의 호응속에 그는 앞장에서 개건사업을 밀고나갔다. 백수십개의 창문을 교체하는 사업으로부터 시작된 학교개건사업은 해마다 벌어졌다.전기선공사, 수도공사, 난방공사, 외부벽체공사, 인공잔디깔기… 이 나날 리경애동무가 찾아간 기관, 만나본 일군들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해마다 그 면모가 달라지는 학교에 많은 일군들과 교육자들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를 참관하면서 한 일군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던진 말이 리경애동무의 귀전에서 떠날줄 몰랐다. 《옷은 비단옷을 걸쳤는데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게 아쉽구만.》 건물의 내외부는 멋있게 꾸려졌는데 지붕이 아직 때벗이를 못했다는 소리였다.다시 보니 낡은 기와들이 눈에 안겨오는것이였다. 그는 크지 않은 성과에 스스로 만족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눈이 내려 미끈거리는 지붕으로 주저없이 올라가보았다. 그리하여 후원단체의 적극적인 방조속에 짧은 기간에 지붕공사를 완성하였다.그리고 지붕우에 수십개의 태양빛전지판을 설치하였다.자연에네르기를 적극 리용할데 대한 당의 방침대로 자체로 전기를 생산하여 교육사업에 리용하기도 하고 적은 전기나마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심장속에 든든히 쪼아박은것이 있었다. 당정책관철에서는 만족을 몰라야 한다는것이였다. 그의 이런 불같은 지향에 이끌려 교원들도 적극적으로 떨쳐나서게 되였고 학교는 몰라보게 전변되였다. 하여 학교는 3중영예의 붉은기학교칭호도 쟁취하게 되였다. 이 나날에 그는 언제나 착상과 설계를 앞세우면서 대중을 이끌어갔다. 어떤 일을 작전하고 전개하기 전에 리경애동무가 먼저 뼈심을 들여 연구하는것이 바로 당정책이였다. 제13차 전국교육일군대회이후 학교에 꾸려진 다기능화된 교실, 교육교양마당으로 변모된 복도와 홀들, 야외수영장, 2층복도에 개방식으로 전개해놓은 학생도서열람장과 가동식직관물을 비롯하여 자체의 힘으로 제작한 수백점의 교편물,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 교육사업의 정보화도 당정책에 대한 깊은 연구의 결과에 이룩된것이였다. 학생들을 주동적인 학습자, 탐구자로 되게 하는 교수방법을 창조할 때였다. 대부분 교원들이 교원위주의 수업이 몸에 푹 배여 좀처럼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교수구조를 혁신해야 하는 이 사업이 잘 추진되지 못하고있었다. 교원들이 맥을 놓고있을 때 리경애동무는 그들과 마주앉았다. 《깨우쳐주는 교수를 구현하는것이 목적인것만큼 여기에 모든것을 복종시켜야 해요.자료도 잘 연구하고 학술용어부터 우리 식으로 만들자요.》 이렇게 당정책에 기초하여 방도도 내놓으며 교원들은 물론 교육연구원 연구사들과 탐구의 나날을 보내는 과정에 새로운 교수구조가 설계될수 있었고 가상현실기술을 받아들인 교수방법들과 종합실천교육방식도 우리 식으로 창조도입할수 있었다. 언제나 창조로 일관된 리경애동무의 끝없는 일욕심은 소학교 4, 5학년의 수업에서 과목담임제를 실시하기 위한 사업에서도 성과를 안아오게 하였다. 이렇게 리경애동무는 언제나 뚜렷한 목표와 리상을 안고 앞장에서 대중을 이끌며 교육혁명수행에 이바지할수 있는 창조적인 열매들을 안아오는데 불타는 정열을 바쳐갔다. 새로운것의 창조는 결코 요구성만 높인다고 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였다.대중과의 사업, 마음과의 사업을 동반하여야 하였다. 교육혁명의 불길속에서 교원자질향상의 된바람을 일으킬 때였다. 어느날 한 녀교원의 수업에 대한 참관을 마친 리경애동무는 생각이 깊었다.그 교원의 교수자질이 낮은것이 문제였다. 교육이란 먼 후날에 미래앞에 평가받는 책임적인 사업이다.수업이 잘못되는것을 알면서도 인정에 사로잡혀 교육자의 량심을 외면할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교장은 학교당조직과 토의하고 그 교원이 전적으로 자질향상에만 달라붙게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그 교원에게서 자포자기와 동요를 일으키고있었다. 교장은 그를 찾아가 절절히 이야기하였다. 《발전하는 시대에 따라서자면 자신에 대한 요구성을 높여야 해요.난 선생이 떳떳이 자기 실력으로 교단을 계속 빛내기를 바랄뿐이예요.》 신심을 안겨주는 교장의 말에 감동된 그 교원은 새로운 결심을 가지게 되였다. 이처럼 학교일군으로서 리경애동무는 매 교원들을 아끼고 이끌어주면서 집단의 단합을 도모해나가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군 하였다. 큰 수술을 받는 한 교원을 위해 수술장에서 꼬박 밤을 밝히기도 하고 보약과 영양제들도 보내주어 다시 대오에 설수 있게 한것을 비롯하여 교직원들을 위해 그가 왼심을 써온 이야기는 많고많다. 이 과정에 교원들의 자질이 높아지고 학생들의 학과실력은 전국적으로도 손꼽히게 되였다. 그가 기울여온 순결한 량심과 헌신의 날과 날들은 새라새로이 변모되는 교정과 함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서로 돕고 이끄는 쇠소리나는 학교집단의 모습에, 학생들의 높은 학과실력에 그대로 깃들어있다. 후대교육을 위해 앞장에서 힘차게 달려온 그를 당에서는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비롯하여 영광의 대회들에 대표로 불러주었고 공훈교원으로 내세워주었다. 그 사랑, 그 믿음을 안고 그는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80일전투에서 선구자의 영예를 더 높이 떨치며 또다시 알찬 열매들을 안아올 열의에 넘쳐있다. 오늘 우리 당은 교원들을 믿고 교원들에게 의거하여 교육혁명을 빛나게 실현해나갈 원대한 구상을 펼쳤다.그 믿음과 직업적혁명가의 고귀한 칭호는 교육자로서의 량심과 헌신속에 빛난다는것을 리경애동무는 자기의 실천적모범으로 교육자들의 심장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공로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