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2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혁명의 혁명투사 지병학동지의 한생에서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혁명사의 자랑찬 갈피마다에는 당과
《혁명선렬들의
어린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선 지병학동지는 주체23(1934)년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제2차 북만원정을 비롯한 간고한 전투와 행군의 나날
주체26(1937)년 11월 어느날 그는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을 때마다 해당 부대에 가면 골간적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혁명가는 절해고도에 홀로 남아서도 싸워이길줄 알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신
그는 대원들이
지병학동지의 고심어린 노력과 헌신에 의해 중대는 짧은 기간에 훌륭한 전투대오로 자라났다.
지병학동지는 중국항일무장부대에 파견되여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힘을 합쳐 육탄으로 적들의 포위망을 뚫었다.
후날 력사적인 남패자회의에 참가한 중국항일무장부대의 지휘관은 지병학동지를 비롯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없었더라면 자기 부대는 외차구에서 전멸당했을것이라고 하면서 우수한 군정간부들을 많이 양성하여 파견해주신
지병학동지는 준엄하였던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결사옹위하고
주체34(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조국은 드디여 해방되였다.그러나 지병학동지는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지원할데 대한
지병학동지는 포연에 절은 군복을 벗어볼새가 없었다.제국주의자들의 무력침공에 의해 우리 조국에 준엄한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던것이다.
주체39(1950)년 7월 조국해방전쟁 제1계단 제4차 작전방침을 제시하신
그는 최춘국동지의 의도대로 전투를 지휘하여 안동의 적을 완전히 포위섬멸하고 승리의 보고를
그후 제45보병사단 사단장으로 사업한 지병학동지는 련합부대를 능숙히 지휘하였다.그는 854.1고지습격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조국해방전쟁이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난 후에도 지병학동지는 혁명의 군복을 벗지 않았다.
백두산시절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한 지병학동지. 살아서도 빛나고 죽어서도 영생하는것이 충신의 삶이다.
지병학동지가 지니였던
본사기자 심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