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4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맡겨진 혁명임무에 무한히 충실하였던 항일의 작식대원 혁명투사 최순산동지의 한생에서
우리 조국청사에
그 불굴의 투사들가운데는 억대우같은 장정들도 감당해내기 힘들어하는 혈전의 길을 꿋꿋이 헤친 녀성혁명가들이 적지 않았으니 최순산동지도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녀대원들은
최순산동지는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함경북도 회령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다.정든 고향산천을 떠나 낯설은 이역땅에서 온갖 불행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그는 투쟁만이 살길이라는것을 깊이 깨닫고 일찍부터 혁명의 길에 나섰다. 최순산동지는 모든 사업에서 정력적이였고 투쟁에서 굴할줄 모르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다.연길출신의 투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를 책임성이 높고 강인한 녀자라고 평가한것은 우연한것이 아니다. 조직생활과 실천투쟁을 통하여 자신을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단련해나가던 최순산동지는 주체23(1934)년 2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부대에서 그가 맡은 일은 작식대에서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하는것이였다.그는 맡겨진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있는 힘과 열정을 다 바쳐나갔다. 그러한 최순산동지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아쉬운 심정이 소용돌이치고있었다. 화식도구나 식량을 지고다녀야 하는 육체적부담도 능히 견디여낼수 있었고 전우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굶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참기 어려운것은 자기 손으로 원쑤놈들을 속시원히 잡아치우지 못하는것이였다.대원들이 적들을 무자비하게 족쳐댈 때마다 전투장으로 달려가고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일군 하였다.
그때마다 최순산동지는 작식대일도
유격대원들을 위해 어렵고 힘든 작식대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해나가는 최순산동지를 누구보다 위해주시고 내세워주신분은
그토록 어려운 속에서도 땀에 절고 기름때묻은 차림을 하고 모임장소나 대렬속에 들어서기 꺼려하는 작식대원들의 속마음까지 헤아리시여 여벌군복까지 공급해주도록 하시고 물을 많이 만지는 그들을 위해 크림도 보내주신
이것이 최순산동지의 심장에 고패친 신념의 맹세였다. 어느날 행군의 쉴참에 저녁준비를 하던 최순산동지는 쌀을 씻다가 바늘에 손바닥을 찔리웠다.부러진 바늘토막은 살속에 깊이 박히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손바닥에 박힌 바늘토막을 뽑아낼 여유가 없었다.밥을 빨리 지어야 부대가 다음단계의 전투행동에로 넘어갈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최순산동지는 그날부터 살을 쑤시는 아픔때문에 여간 큰 고통을 받지 않았다.보통녀자들같으면 당분간 밥을 짓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였겠지만 그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일손을 놓게 되면 다른 전투원 한명이 자기를 대신해야 한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그러는 사이에 바늘은 손등거죽까지 뚫었다.뾰족한 바늘끝이 손등우에 내밀렸을 때에야 그는 전우들에게 바늘을 뽑아달라고 부탁하였다.
《부러진 바늘토막을 살속에 두고도 아픔을 남모르게 참으면서 보름동안이나 전우들에게 밥을 지어준 녀인, 이것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항일전쟁의 불길속을 헤쳐온 녀투사들의 초상입니다.》
혁명초소를 가리지 않고 수년세월을 하루와 같이 자기에게 맡겨진 작식대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최순산동지에게
그는
조국이 해방된 후에도 최순산동지는 항일의 작식대시절처럼 맡겨진 혁명임무에 충실하였으며 사회주의건설시기에는 봉사부문에서 성실히 일하였다.
항일유격대의 녀투사들이 발휘한 혁명의
최순산동지의 한생은 우리 인민의 심장마다에 당과
본사기자 심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