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8일
《우리 은파군 대청리인민들의 격정에 넘친 목소리
당의 은정속에 자연의 재앙을 말끔히 가시고 사회주의농촌의 본보기마을로 훌륭히 일떠선 은파군 대청리의 새 살림집들에서 행복한 생활이 꽃펴나고있다. 지난 10월 15일 새집들이를 한 때로부터 꿈만 같이 흘러가는 대청리인민들의 생활에 대해 알고싶어 며칠전 우리는 취재길에 올랐다.
《우리 어린이들과 인민들을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하여 그들의 행복의 웃음소리, 로동당만세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게 하자는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고 의지입니다.》 참으로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살림집들이였다. 집집마다 여러칸의 살림방들과 부엌, 세면장, 창고, 집짐승우리 등이 갖추어져있는 1동 1세대의 살림집들은 생활을 편리하고 문화적으로 할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있었다.
지난 8월 이곳에 나오시여 농장원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설계를 잘하여야 한다고, 살림집형식도 농장원들이 좋아하는대로 해주자고 하시며 살림집설계에 대한 심사를 일군들이 하지 말고 농장원들이 하게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신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중천에 떠오른 해가 벌판과 마을들을 따스히 비쳐주는 류달리 쾌청한 날씨였다. 마당가에서는 로인들이 담소를 나누고있었고 집집에서는 아이들의 랑랑한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울려나왔다. 이곳에서 군인건설자들을 만나 취재하던 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새 집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니 감개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가 제일먼저 찾은 곳은 이 고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지 꼭 들려보고야 간다는 김봉실녀성의 집이였다.
집마당가에 들어서니
우리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김봉실녀성은 새 집에 입사한지 수십일이 흘렀지만 지금도 꼭 꿈을 꾸는것 같다며 연방 자랑을 늘어놓았다. 여기는 공동살림방, 여기는 딸, 사위가 있는 부부방 그리고 여기는 손자, 손녀가 있는 자식방이라며 우리를 이끌고 집안을 한바퀴 돌고난 그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방이 넓지, 해빛이 잘 들지, 수도를 틀면 맑은 물이 항상 쏟아지지, 게다가 구들은 또 얼마나 따뜻하다구요.우리같은 평범한 농장원가정에 이런 살림집을 무상으로 지어주는 나라가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참말이지 우리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있는데 마침 작업반에서 일하는 딸, 사위가 오전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섰다.
알고보니 사위인 강명근동무는 제5작업반 2분조장으로 일하고있었는데 얼마전에는 당창건 75돐 경축대표가 되여
우리
《그뿐이 아닙니다.살림집천정의 높이며 환기창의 높이까지도 몸소 가늠해보시며 참으로 세심한 정을 기울이시였습니다.》
격정에 젖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느라니 지난 9월 은파군 대청리일대의 피해복구건설현장을 찾으시여 지난번에 이곳에 왔을 때 만나본 농장원들의 요구대로 살림집을 건설자재소요량이나 부지절약측면을 고려하지 말고 1동 1세대로 지어주라고 지시를 주고 설계안을 비준해주었는데 그렇게 하기 정말 잘하였다고, 농장원들의 요구에 맞고 농장원들이 좋다고 해야 많은 품을 들여 새로 건설한 보람도 크다고 말씀하신
이제 학교에 나가면 우리 집은
다른 고장에 사는 친척들과 도당과 군당위원회의 일군들은 물론 길가던 사람들까지도 우리
바로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런 목소리가 울려왔다. 《부엌에 물이 잘 나옵니까? 세면장물이 잘 빠집니까?》 목소리의 주인들은 새 살림집을 지어준 군인건설자들이였다.자기들이 지은 새 집에 입사한 사람들이 불편없이 살도록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미흡한데가 없는가를 알아보고 바로잡아준다는것이였다.
농사를 더 잘 지어
70나이가 넘은 로인은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감회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는 자주 이런 말을 들려주군 하였습니다.해방전에는 문대신 거적때기를 걸친 집에서 살다보니 겨울철이면 온 집안 사람들이 동상을 입기가 일쑤였는데 나라가 해방되니 집에 문도 늘어난다고 말입니다.그런데 지금은 우리 집에 살림방들과 세면장, 부엌, 창고를 비롯해서 문만 해도 10개가 넘습니다.이게 다 우리
깊은 감동을 안고 로인의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작업반 당초급일군은 마을에 며칠전 새 생명이 태여났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새 보금자리에서 아기가 태여났으니 기쁨인들 얼마나 클것인가.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히 대청리 20인민반에 살고있는 전순애녀성의 집으로 향했다.
산모의 어머니인 전순애녀성은 우리
《요즈음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군 합니다.만약 우리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번과 같은 재해를 당하였으면 어떻게 되였을가 하고 말입니다.아마 제 손녀는 세상에 태여나보지도 못하였을것이고 우리 가정은 굶어죽든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였을것입니다.
큰물이 범람한 험한 길을 헤치시고 우리 대청땅을 여러차례나 찾아주신
하기에 새 집에서 밥을 짓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때없이 우리
이것을 어찌 제5작업반 마을에서만 울리는 목소리라고 하랴.
《지금도
그런데 글쎄
평범한 농장원들에게 인사를 하시고 가시는 길에는 인민들을 도와주러 왔다가 오히려 신세를 지고 간다고 말씀하시였으니 세상에 우리
《피해를 입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멀리에 있는 친정부모를 그리며 울었습니다.그런데 친부모도 올념을 못하는 그 험한 길로 우리
진정
뜨거움과 격정에 넘친 이야기는 수없이 많아도 그것을 하나로 합치면 조선로동당 만세, 사회주의 만세,
《우리
이 꾸밈없이 진실하고 격정에 넘친 목소리는 우리
본사기자 유광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