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10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우리 당의 대건설구상을 충직하게 받들어가는 전초병대오의 기수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기사장 윤성철동무에 대한 이야기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나라의 굴지의 건재공업기지인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가 부글부글 끓어번진다.절세위인들을 대를 이어 명예지배인으로 높이 모신 영광의 일터에서 세멘트증산성과로 우리 당을 억척같이 받들어온 상원의 로동계급이 오늘의 80일전투에서도 전초병의 위력을 남김없이 떨쳐갈 충성의 열의드높이 생산돌격전을 힘있게 벌리고있다.그 자랑스러운 진군대오의 앞장에 우리 당이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내세워준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 기사장 윤성철동무도 서있다. 우리 당의 대건설구상을 충직하게 받들어갈 일념을 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짚은 그날부터 지난 수십년간 윤성철동무는 생산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였으며 자체의 기술개발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생산조직과 지휘를 짜고들어 련합기업소가 해마다 세멘트생산계획을 어김없이 수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아버지의 당원증번호
지금으로부터 24년전 명당지구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대에 그린듯이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에 배치된 윤성철동무였다. 웅장한 부유가소탑과 싸이로들, 해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이는 생산설비들, 과일나무를 심은 야산아래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살림집들과 봉사시설들, 기업소와 주택지구사이로 푸른 물 넘실거리며 유유히 흘러가는 상원천… 지금껏 례사롭게만 보아오던 명당지구의 전경이 그날따라 새로운 의미로 안겨오는것은 무엇때문이였던가.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이는 윤성철동무의 눈앞에 아버지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불치의 병으로 생명이 각일각 꺼져가던 아버지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여 혁명전사의 삶에 영생의 빛을 안겨주신
하늘같은 그 사랑과 믿음에 미처 보답하지 못하고 가는 죄스러움을 안고 아버지는 림종을 앞둔 시각에 영웅메달을 쓸어보며 눈물속에 말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유언이기 전에 혁명의 전세대가 새 세대에게 하는 간곡한 당부였다.대를 이어서라도 끝까지 수행해야 할 혁명임무였다.하기에 윤성철동무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로 달려왔던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본때있게 일해보리라 결심도 컸지만 실천하는 길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련합기업소의 석회석광산 파쇄1직장 로동자로 배치되였을 때 그는 고까운 감정이 앞섰다.자동화공학을 전공한 대학졸업생이 돌이나 깨는 곳에서 일한다는게 어쩐지 부끄럽게만 여겨졌던것이다.그가 이런 속내를 비쳤을 때 어머니는 호되게 꾸짖었다. 《너의 아버지는 당에서 주는 과업앞에서 저울질하는 법을 몰랐다.그런데 아버지의 뜻을 잇자고 온 네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윤성철동무는 피줄은 유전되지만 충실성은 저절로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자기가 애용하는 수첩의 첫장에 전세대 당원들의 넋을 참답게 이어갈 굳은 의지를 담아 자기의 당원증번호가 아니라 아버지의 당원증번호를 새겨넣었다. 당시 석회석광산에서는 고압전동기에 쓰이는 전동기솔때문에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여서 모든것이 부족했고 그만큼 보장도 제대로 따라서지 못했다.전동기솔을 자체로 해결해볼 결심을 품은 윤성철동무는 낮에는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기술자료들을 연구하면서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였다.그는 끝내 전동기솔을 자체로 만들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여 고압전동기의 정상가동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게 하였으며 첫 발명권을 받았다.윤성철동무는 아버지의 당원증번호를 새긴 수첩에 자기의 첫 사업성과를 긍지높이 기록하였다. 몇년후에 윤성철동무는 파쇄1직장 부직장장을 거쳐 갓 조직된 동력직장의 직장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직장의 전반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나가던 어느날 그는 굴착기가 고장났다는 소식을 받고 종업원들과 함께 달려갔다.밤을 밝히며 굴착기를 수리하는 과정에 종업원들의 기술기능수준이 높지 못하다는것을 간파한 그는 다음날부터 종업원들에 대한 기술학습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직장의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도 동시에 밀고나갔다.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종업원들의 기술기능수준은 현저히 높아졌고 직장은 무슨 일이나 척척 해제끼는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3대혁명붉은기단위로 되였다. 윤성철동무에게 있어서 광산에서의 하루하루는 단순히 광석을 캐는 나날이 아니라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기술자의 민족적자존심, 과학으로 조국의 부강번영을 억척같이 받들어갈 신념을 굳히는 과정이였다. 광산에서 뜻하지 않은 일로 침착기가 파손되였을 때였다.광산에 와있던 다른 나라의 기술자는 조선사람의 기술로써는 침착기를 도저히 살릴수 없다고 머리를 흔들었다.윤성철동무는 그 기술자에게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다, 우리가 침착기를 어떻게 살려내는가 똑똑히 보라고 면박을 주었다.침착기의 기술자료가 하나도 없는 속에서 그는 종업원들과 창조적지혜를 합치고 합리적인 방도들을 찾아내며 낮과 밤이 따로 없는 투쟁을 벌려 기어이 침착기를 살려내고야말았다.기운차게 돌아가는 침착기를 넋잃은 사람처럼 바라보던 그 기술자는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조선의 기술자, 로동자들의 수준이 간단치 않다고 경탄했다.
학위를 수여받은 날에 윤성철동무는 사연깊은 수첩에 또 하나의 자랑찬 성과를 기록하였다.
당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해 석회석광산 기사장으로 임명된 그는 아버지의 소원이였고 자기 인생의 목표인
광산의 일군들과 종업원들과 함께 윤성철동무는 피눈물을 뿌리며
그날의 맹세를 걸음걸음 새겨보며 그는
련합기업소 기사장으로 사업하게 된 첫날에 윤성철동무는 기업소구내길을 걸으며 아버지의 당원증번호가 새겨진 수첩을 조용히 펼쳐들었다.아버지의 당원증번호가 마치 심장의 피방울이 되여 가슴에 흘러드는듯싶었다. 그것은 세멘트증산으로 우리 당을 받들어온 전세대들의 피줄이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충성의 피줄로 더욱 굳건히 이어지는 순간이였다.
《담보합니다!》
기술자의 실력은 단순한 과학적재능이나 창조적능력의 발현이 아니다.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나 당과 조국에 필요한것이라면 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따져보지 않는것이 윤성철동무의 사업태도이다.한g의 세멘트라도 더 생산하여 당의 뜻을 받들고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할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것 지어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해내야 한다는것이 그의 드팀없는 신조였다. 공정설계상 결함이 있는것으로 하여 1호소성로를 개건현대화해야 할 절박한 과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개건현대화공사를 토론하는 마당에서 일부 일군들이 기업소가 맡고있는 세멘트생산과제도 아름찬 때에 무게가 1만t이상의 설비들을 해체하고 조립해야 하는 그런 큰 공사를 벌려놓았다가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그 후과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윤성철동무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렇게 자기의 드팀없는 결심을 피력한 윤성철동무는 개건현대화공사의 성과적보장을 위한 자료들을 내놓으며 저력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당적량심으로 담보합니다!》 물론 윤성철동무도 만약의 경우를 생각 못한것은 아니였다.만약이란 물음앞에 선 순간에 당과 조국의 부름보다 자신의 운명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그는 아마 그런 결심을 내리지 못하였을것이다.날이 갈수록 굳세여지는 세멘트처럼 세월의 흐름속에 더욱 억세여지고 위력해지는 상원로동계급의 신념과 의지가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들어앉았기에 그는 만약이라는 물음앞에 완강히 도전해나설수 있었다. 40여일의 간고한 투쟁끝에 1호소성로의 개건현대화공사가 성과적으로 끝나고 성공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 윤성철동무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삼가 아뢰였다.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걸을수록 자욱은 깊이 남는 법이다. 많은 일감을 안고 바삐 일해야 했지만 자기의 어깨가 무거워지면 그만큼 조국의 짐이 덜어진다고 생각한 윤성철동무는 원가를 줄이면서도 더 많은 세멘트를 생산하기 위한 방도를 거듭 모색하며 만짐을 지고 뛰고 또 뛰였다. 련합기업소에서는 오래전부터 세멘트생산에 리용되는 철광석을 먼곳에서 기차와 자동차로 운반하다보니 많은 로력과 연유, 자재들이 소비되고있었다. 기업소가까이에 있는 철광석을 세멘트생산에 리용할수 없겠는가를 생각한 윤성철동무는 시료를 채취해다가 분석을 진행했고 사색을 거듭하며 일출봉광산을 개발할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다. 일출봉광산에 로천채굴장을 꾸리자면 박토처리가 문제였다.그 많은 박토를 효과적으로 리용할수 없겠는가를 거듭 궁리하던 그의 머리속에 박토인 점판암을 세멘트부가물로 리용할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그는 점판암을 세멘트생산에 얼마든지 리용할수 있다는 과학적인 담보를 얻어내여 수십만t생산능력의 세멘트공장을 새로 세운것과 맞먹는 실리를 얻을수 있게 하였다.
그는 기업소의 기술개발력량을 튼튼히 꾸린데 기초하여 중앙조종실과 원료분쇄공정을 개건현대화하는 사업도 통이 크게 밀고나갔으며 2호소성로개건현대화공사를 성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작전과 지휘를 짜고들어
상원세멘트련합기업소는 실지 자신을 도와주는 기업소, 자신에게 힘이 되는 기업소라고 하신
활주로포장용세멘트와 마식령스키장의 삭도기둥기초공사에 쓰일 세멘트생산과제가 맡겨졌을 때에도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고 기존공식을 대담하게 타파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방도를 내놓음으로써 당에서 준 과업을 제때에 수행할수 있게 하였다. 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윤성철동무를 가리켜 척척박사라고 부른다.이것은 어떠한 기술적지도도 막힘없이 진행하는 그의 높은 실력에 대한 평가이다. 실력은 창조적능력이고 실적이다.현실에서 써먹을수 있는 산지식, 어떤 분야의 과학기술적문제도 원만히 풀어제끼는 만능지식을 소유해야 자기앞에 맡겨진 혁명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다. 《우리 기술자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없어야 하오.》 이것은 윤성철동무가 기술자들에게 입버릇처럼 외우는 말이다. 세멘트생산을 과학기술적으로 담보해야 하는 기술일군으로서 윤성철동무는 누구보다 실력에 대한 요구성이 높았다.한건의 기술자료도 반드시 현장조건과 결부하여 파고들어 생산에 리용할수 있는 묘술을 터득하는것이 그의 학습방법이고 탐구자세였다.이런 진지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현장에서 제기되는 모든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신속정확하게 풀어나가는 실력가로 될수 있었다. 윤성철동무가 기술자, 로동자들을 위해 사심없이 바친 진정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뜨거운것인가. 하기에 그를 두고 사람들은 기업소에 없어서는 안될 진짜배기기술자, 진짜배기인간이라고 그처럼 정담아 부르는것이다. 《담보합니다!》
이 대답과 함께 세멘트생산기지의 숨결을 지켜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살아오는 나날에 윤성철동무는 여러 대회에 참가하여
당과 조국앞에 일편단심 충성과 혁명적신념, 강철같은 의지와 배짱, 슬기와 재능으로 충만된 담보한다는 대답을 주저없이, 떳떳이 하는 이런 기술자야말로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인격의 소유자,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겠는가.
윤성철동무의 손목에서는
언제나 그러했던것처럼,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경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