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17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생의 마지막까지 혁명투사 최춘국동지의 한생에서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은 류례없이 간고하고도 험난한 길을 헤쳐왔다.이 나날
최춘국동지는
《우리 혁명가들은 항일혁명선렬들처럼 죽어도 살아도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빈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최춘국동지는 어려서부터 머슴군으로, 공사판의 소년로동자로 떠돌면서 나라잃은 민족의 설음과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최춘국동지가 주체19(1930)년 가을 온성지구에 나오신
비범한 예지로 혁명의 길, 투쟁의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는
주체21(1932)년 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 최춘국동지는
최춘국동지는 간고하고 피어린 투쟁의 나날
갓 창설된 유격구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고 미쳐날뛰던 일제는 1933년 겨울 5천여명의 대병력과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소왕청유격구에 달려들었다.
적들의 악랄한 기도를 환히 꿰뚫어보신
최춘국동지는 수십배에 달하는 적의 정예무력과 맞서야 하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유격구보위를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불러일으켜 영웅적으로 싸움으로써 혁명의 책원지를 튼튼히 보위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줄기차게 확대발전시켜나갈데 대한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것을 조선혁명가들의 첫째가는 의무로, 확고한 신조로 간직하였던 최춘국동지는 언제 어디서나
그는 전투에서뿐아니라 일상생활과 부대관리의 모든 면에서도 유능한 군사지휘관, 능숙한 정치일군으로서의 풍모를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최춘국동지는 성미가 첫날색시같이 얌전하고 마음씨가 비단결같으면서도 강직하였다.좀해서는 남들앞에 나서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하지만 그는 정치지도원은 춤도 출줄 알고 노래도 잘 불러야 중대를 생기발랄하고 락천적인 중대로 꾸려나갈수 있다고 하신
《끝없이 유하고 끝없이 억센 사람, 이것이 항일의 용장 최춘국이다.》
모든 사업을
주체39(1950)년 7월 30일이였다.
안동에 있는 적들을 포위섬멸할데 대한 명령을 받고
생명이 일각을 다투는 그 긴박한 순간 군의에게 자기의 생명을 5분만 더 연장시켜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그는 참모장을 찾았다. 그 최후의 5분동안에 모지름을 써가며 안동의 적을 완전히 포위섬멸할 자기의 작전적의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그는 마지막힘을 모아 이렇게 절절히 당부하였다.
《내대신 동무가
그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숭고한 풍모는 오늘도 우리 인민들에게 참된 혁명전사는 어떤 자세와 립장, 어떤 신념과 절개를 가지고 혁명의
최춘국동지가 우리곁을 떠난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진 그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고귀한 투쟁업적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으며 오늘도 천만군민을 당중앙결사옹위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본사기자 심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