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17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생의 마지막까지 수령께 충직한 참된 혁명전사

혁명투사 최춘국동지의 한생에서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은 류례없이 간고하고도 험난한 길을 헤쳐왔다.이 나날 수령의 전사로서의 혁명적의리를 지키고 수령의 혁명위업에 충실한 수많은 혁명가들이 자라났다.그 대오속에 항일혁명투사 최춘국동지도 있다.

최춘국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모시고 그이께서 주신 명령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빛나게 관철한 견결한 혁명가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가들은 항일혁명선렬들처럼 죽어도 살아도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빈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최춘국동지는 어려서부터 머슴군으로, 공사판의 소년로동자로 떠돌면서 나라잃은 민족의 설음과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최춘국동지가 주체19(1930)년 가을 온성지구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그의 인생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뜻깊은 계기로 되였다.

비범한 예지로 혁명의 길, 투쟁의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그는 도탄에 빠진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탁월한 령도자는 오직 우리 수령님 한분밖에 없다는것을 심장으로 절감하였고 혁명의 길에 한생을 바칠 굳은 결심을 다졌다.

주체21(1932)년 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 최춘국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세심한 지도와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그는 분대장, 중대정치지도원을 거쳐 련대, 려단정치위원의 중책을 지닌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정치일군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최춘국동지는 간고하고 피어린 투쟁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민족의 태양이시고 오직 그이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갈 때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할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게 다졌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최춘국동지의 무한한 충실성은 사령관동지의 명령, 지시를 절대적인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철저히 관철한데서 뚜렷이 표현되였다.그는 사령관동지의 명령, 지시를 한치도 어길수 없는 지상의 임무로, 가장 숭고한 삶의 요구로 받아들이였으며 아무리 과업이 어렵고 조건이 불리하다 하더라도 기어이 집행하고야마는 혁명적기풍을 높이 발휘하였다.

갓 창설된 유격구를 요람기에 없애버리려고 미쳐날뛰던 일제는 1933년 겨울 5천여명의 대병력과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소왕청유격구에 달려들었다.

적들의 악랄한 기도를 환히 꿰뚫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한 부대를 이끄시고 적후방에 진출하시면서 유격구를 보위할데 대한 중요한 임무를 최춘국동지에게 주시였다.

최춘국동지는 수십배에 달하는 적의 정예무력과 맞서야 하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유격구보위를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불러일으켜 영웅적으로 싸움으로써 혁명의 책원지를 튼튼히 보위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줄기차게 확대발전시켜나갈데 대한 사령관동지의 작전적구상을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것을 조선혁명가들의 첫째가는 의무로, 확고한 신조로 간직하였던 최춘국동지는 언제 어디서나 사령관동지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였고 사령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전투에서뿐아니라 일상생활과 부대관리의 모든 면에서도 유능한 군사지휘관, 능숙한 정치일군으로서의 풍모를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최춘국동지는 성미가 첫날색시같이 얌전하고 마음씨가 비단결같으면서도 강직하였다.좀해서는 남들앞에 나서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하지만 그는 정치지도원은 춤도 출줄 알고 노래도 잘 불러야 중대를 생기발랄하고 락천적인 중대로 꾸려나갈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밤마다 밖에 나가 남몰래 직심스럽게 춤련습을 하였으며 혁명적동지애와 실천적모범으로 대오를 굳게 묶어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춘국동지를 감회깊이 추억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끝없이 유하고 끝없이 억센 사람, 이것이 항일의 용장 최춘국이다.》

모든 사업을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과 의도대로 한치의 드팀도 없이 책임적으로 수행한 최춘국동지의 투쟁기풍과 풍모는 해방후 건당, 건국, 건군의 어려운 과업을 수행할 때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에나 변함이 없었다.

주체39(1950)년 7월 30일이였다.

안동에 있는 적들을 포위섬멸할데 대한 명령을 받고 위대한 수령님께 한시바삐 승전소식을 전해드릴 일념으로 앞장에서 전투를 이끌던 최춘국동지는 적탄에 그만 치명상을 입게 되였다.

생명이 일각을 다투는 그 긴박한 순간 군의에게 자기의 생명을 5분만 더 연장시켜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그는 참모장을 찾았다.

그 최후의 5분동안에 모지름을 써가며 안동의 적을 완전히 포위섬멸할 자기의 작전적의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그는 마지막힘을 모아 이렇게 절절히 당부하였다.

《내대신 동무가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완수해줄것을 부탁하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이라면 물과 불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들던 열혈의 인간, 수령의 혁명위업에 그렇게도 충직하였던 혁명전사는 이렇게 우리곁을 떠나갔다.

수령의 명령은 말로써가 아니라 모든 지혜와 정력, 생명까지 깡그리 바쳐 무조건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는것을 최후의 순간까지 실천으로 보여준 최춘국동지,

그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숭고한 풍모는 오늘도 우리 인민들에게 참된 혁명전사는 어떤 자세와 립장, 어떤 신념과 절개를 가지고 혁명의 수령을 받들어모셔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참된 귀감으로 되고있다.

최춘국동지가 우리곁을 떠난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진 그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고귀한 투쟁업적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으며 오늘도 천만군민을 당중앙결사옹위전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본사기자 심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