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27일 로동신문

 

실화

생의 흔적

 

《아무래도 내가 인차 무산쪽엘 다녀와야 할것 같다.거기서는 밤잠들도 잊고 일한다는데…》

이른아침 출근준비를 서두르던 조옥희가 느닷없이 하는 말에 그의 딸인 리혜숙은 어마지두 놀란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고 그러세요.이제 겨우 추서기 시작했는데 그 험한데를…》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딸의 얼굴을 외면하며 조옥희는 혼자소리로 외웠다.

《글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여적 가보질 못했지.…》

조옥희는 이런 말을 남기고 저 먼저 출근길에 나섰다.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리혜숙은 점도록 바라보았다.

한생을 일밖에 모르고 산 어머니, 79살나이인 오늘도 청진시 포항구역가내축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고있는 어머니였다.

비온 뒤인지라 길가에는 어머니의 발자욱이 또렷이 새겨졌다.그 발자욱들을 보느라니 어머니의 한생이 돌이켜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진정으로 애국을 하려면 애국의 마음을 가지고 애국적인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청진시 포항구역의 살림집들에는 때없이 이런 목소리가 울리였다.

《뜨물을 내려보내주세요.뜨물받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집에서 모은 뜨물을 내려다 손달구지의 뜨물통에 쏟아주군 하였다.뜨물을 처리할 걱정이 없어져서 좋다고 하는 가정주부가 있는가 하면 새벽마다 잠을 깨운다고 귀찮아하는 녀인도 있었다.

이렇게 매일과 같이 뜨물을 모아들이는 젊은 녀인이 바로 정주시의 농촌마을에서 살다가 청진시로 시집온 조옥희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한 아빠트의 뜨물을 받아 손달구지에 싣고 떠나려는데 마을아낙네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옥희는 손달구지를 잡은 손에 맥이 풀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어느 정도 각오는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힘이 들줄은 몰랐다.

문득 시집올 때 어머니가 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농촌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도시에 가니 눈에 선게 많을게다.그렇다고 편안히 앉아 남편시중이나 들어서야 무엇이 남겠니.난 네가 처녀때 하던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그러며 집에서 키우던 새끼돼지를 안겨주던 어머니였다.그날따라 어머니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저녁에 집에 들어서니 어디서 무슨 말인가를 들은가싶은 남편이 성이 나서 그를 맞아주었다.

《당신 정 돼지를 키우겠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든지 마음대로 하오.이거야 어디 귀가 성가셔 견디겠소.》

그는 목놓아 울고싶었다.그러나 피나게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그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가다듬고 일어나 돼지우리로 향했다.

먹이를 제시간에 주지 않아 돼지우리에서는 벌써 소동이 일어났다.여러 마리의 어미돼지가 앞발을 칸막이우에 올려놓고 꽥꽥 소리를 지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김이 물물 나는 돼지물을 퍼주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어서 많이 먹어라.그래야 하루빨리 인민군대를 찾아가지.》

하루는 학교에 갔던 리혜숙이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옥희와 그의 남편, 담임교원이 속이 까매서 온밤 찾고 또 찾았다.

날이 푸름푸름 밝을 새벽녘이 되여서야 그들은 학교운동장의 철봉대밑에 쭈그리고앉아 졸고있는 혜숙을 발견할수 있었다.

너무도 기가 막혀 어떻게 된 일인가고 따져묻는 어머니에게 혜숙은 울먹이며 말했다.

《동무들이… 나한테서 뜨물냄새가 난대요.엄마… 돼지키우는거 그만두면 안되나요?!》

옥희는 혜숙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이 엄마가 잘못했다.다신… 돼지를 안 키우마.》

옥희는 더는 돼지를 키우지 않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도사렸다.그러나 정작 빈 돼지우리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로부터 며칠후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자기를 구역당위원회일군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남성이 동일군과 함께 집에 들어섰다.

그는 집살림형편이며 빈 돼지우리까지 다 돌아보고나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간 마음고생이 컸다는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우리가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옥희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수 없어 그저 어리벙벙하기만 하였다.

《최근 당에서는 도시주민들도 돼지를 길러 인민생활을 높일데 대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구역당위원회에서는 가정부인들로 가내축산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옥희동무에게 축산작업반장사업을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

옥희는 그만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참을수 없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터치지 못했던 눈물을 마음껏 쏟았다.

해방전 머슴군의 딸이였던 그는 나라가 굳건해야 가정의 행복도 있다는것을 실체험을 통하여 사무치게 깨달았다.하기에 처녀시절부터 많은 돼지를 길러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주고있었던것이다.

몇해후 옥희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고 청진시 포항구역가내축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찬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겨울날 부족되는 돼지먹이를 구하느라 밤이 깊어서야 집에 들어서게 된 옥희는 송구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남편의 얼굴색을 살피며 급히 부엌으로 들어서던 그는 그만 깜짝 놀랐다.어느새 남편이 저녁식사준비를 다 해놓았던것이다.

어쩔바를 몰라하는 옥희에게 다가온 남편은 빨갛게 언 안해의 두손을 자기의 더운 손으로 감싸주었다.

《난 요즘에야 당신의 손이 얼마나 보배로운 손인지 알게 됐소.당신을 한가정에만 묻어두려고 했던 날 용서하오.》

옥희는 무한히 행복했다.일을 하고 또 해도 전혀 힘든줄 몰랐다.

포항구역가내축산관리위원회에서는 해마다 수백t의 고기를 생산하여 인민군군인들과 전쟁로병, 영예군인을 비롯한 주민들은 물론 김책제철련합기업소와 중요대상건설장들에도 보내주었다.


**


북방의 찬바람을 들쓰며 한대의 화물자동차가 뿌연 달빛속을 달리고있었다.

그 차의 적재함에는 멀리 다른 지방에서 떠난 옥희가 타고있었다.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는 때여서 렬차들도 때없이 멈춰섰다.하는수없이 옥희는 벌써 이틀째 여러번 차를 갈아타며 먼길을 오고있었다.

자동차는 동켠하늘이 희붐해질무렵에야 청진시를 가까이 하게 되였다.차에서 밤새 시달린 사람들속에서 갑자기 역정에 찬 목소리가 울렸다.

《제길, 이 마대짐 임자가 누구요?》

졸고있던 옥희가 눈을 떠보니 곁에 있던 마대짐이 어느새 소리친 중년사나이의 발치에 가있었다.마대속에서 꿈틀거리며 꿀꿀거리는 짐승소리가 났다.

《제거예요!》

옥희는 황급히 마대를 끄당겼다.그런데 흰 비료마대에 뭔가 질쩍한 자리가 뒤따라 나타났다.

《넨장, 귀한 비료에다 오줌을 쌌군.아주머니 거 졸고만 있지 말고 제 짐건사를 잘하구려.비료까지 이렇게 더럽히면 어쩐단 말이요.》

중년사나이는 수백리밖에서 얻어오는 비료가 더럽혀졌다고 하면서 오만상을 찌프렸다.

《미안해요.》

옥희는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겨우 혀아래소리로 사과하였다.

옥희는 이렇게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축산을 중단함이 없이 내밀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뛰여다녔다.먹이보장을 위해 길가의 가로수잎까지도 모두 모아왔으며 우량종의 새끼돼지들을 구해오느라 수백리길도 멀다 하지 않고 달려가군 하였다.

어느덧 날이 밝아 차는 청진시에 이르렀다.차에서 내리는 옥희를 여러명의 가내축산관리위원회 종업원이 마중하였다.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길손들은 옥희가 다름아닌 축산을 잘하기로 소문난 포항구역가내축산관리위원회 위원장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원 저런, 우리가 인민들에게 고기를 더 먹이겠다고 뛰여다니는 관리위원장을 몰라봤구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으며 옥희는 한없는 긍지와 기쁨에 휩싸였다.

당에서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표창장을 수여해주었고 값높이 내세워주었다.

옥희는 그 사랑,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량품종의 종자돼지구입과 함께 3원교잡체계를 받아들여 새끼돼지생산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하지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에게 어떤 영광이 다가오고있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주체86(1997)년 3월 30일 《로동신문》에는 전국축산일군열성자회의 참가자들에 대한 국가표창과 선물수여식이 진행된데 대한 보도가 실리였다.바로 여기에는 조옥희에게 공민의 최고영예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한다는 내용도 씌여있었다.

그에게 베풀어지는 당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후에도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시계표창과 위대한 장군님의 표창장을 수여받았으며 일흔번째 생일을 맞을 때에는 은정어린 생일상도 받아안았다.


**


어머니의 한생을 돌이켜보는 리혜숙의 눈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어머니의 발자욱이 다시 안겨들었다.

어제날의 평범한 가정주부를 당원으로, 일군으로,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 로력영웅으로 키워준 당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어머니는 삼지연과 어랑천, 려명거리를 비롯하여 나라의 방방곡곡에 발자욱을 새겨왔다.그 발자욱은 피해복구전투장들에도 찍혀질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발자욱들은 혜숙에게 이렇게 말해주는것 같았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한 생의 흔적은 영원히 남아있다는것을.

본사기자 유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