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1월 29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살아도 죽어도 혁명투사 김중권동지의 한생에서
혁명의
혁명투사 김중권동지가 걸어온 한생도
《조선혁명을 보위하여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고
나라없던 그 시절 자기들을 이끌어줄
날이 갈수록
이때부터 김중권동지는 조국과 혁명을 위한 참다운 인생길을 걷게 되였다. 김중권동지는
김중권동지는 이 나날 무엇보다도 광범한 대중속에서
원쑤들의 백색테로가 살판치는 살벌한 속에서도 밤낮없이 나다니는 아들을 두고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김중권동지는
이렇듯 김중권동지는
주체20(1931)년 12월,
력사적인 겨울명월구회의에서
그처럼 젊으신 나이에 비범한 예지와 강철의 담력을 지니시고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단호히 무장투쟁을 선포하신
백두산청년장군을 우러러 감격에 목메이던 그 시각 김중권동지는 그이께서 제시하신 항일무장투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갈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겨울명월구회의이후 김중권동지는 공청원들을 항일무장대오의 핵심으로 키우는 한편
언제인가
그런데 그곳에는 통신원 한 동무만 있을뿐 텅 비여있었다.
공청지도일군들이 항상 군중속에서 살며 사업에서는 대중의 선두에 서는 기수가 되고 사람과의 사업에서는 참된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는
이것은 언제나
주체22(1933)년 가을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총을 잡은 김중권동지는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가 속한 부대는 이듬해 봄 량수천자부근 석두하자습격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이날 성안으로 돌격하던 부대는 갑자기 나타난 적들의 수많은 병력앞에서 잠시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안되였다.밤사이 놈들이 병력을 증강하였던것이다. 불의에 조성된 정황앞에서 일부 대원들이 전투를 뒤로 미루자고 제기하여왔다.
하지만 전투를 지휘하던 김중권동지는
김중권동지는 그자리에 쓰러진채 더 일어나지 못하였다.그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가다듬으며 대원들에게 마지막말을 남기였다.
《동무들,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살아도 죽어도
이것이 그의 한생에 관통되여있은 불굴의 혁명정신이였다. 김중권동지는 비록 20대의 꽃나이에 삶의 고동을 멈추었지만 그는 오늘도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 영생하며 혁명가의 참된 생이란 어떤것인가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리홍철 |